[왜 너는 이 책을] 오늘은 짬뽕책방입니다
여성의 이야기를 담은 『이번 생은 망원시장』, 『박서원 시전집』을 소개해드립니다.
글ㆍ사진 엄지혜
2018.05.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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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정 : 안녕하세요, 지혜 님~


지혜 : (특별한 인사를 하고 싶은데, 어휘력이 딸려서) ㅎㅎ 잘 지내셨죠?


의정 : 입안에 겪어본 적 없는 염증이 나서 놀란 것 빼곤 잘 있습니다.


지혜 : 앗, 입안 염증이라면 피로한 거예요. 일이 많으시군요. (업무 다 알면서 모르는 척. -_-;)


의정 : 입술은 자주 트는데 입안은 처음이라… 나름 새 경험이라고 생각하려고요.

 

지혜 : 그럼 음식을 먹는 게 불편하시겠어요? 매운 거 잘 못 먹을 텐데요.


의정 : 다른 쪽으로 열심히 먹습니다. 어제부터 외양간 고치는 심정으로 열심히 약을 바르고 있어요. 아픈 이야기는 재미없으니 즐거운 이야기를 해볼까요?


지혜 : (그래도 일단 잠을 푸~ 욱 많이 주무시라는 말씀을 드리고 싶네요.) 즐거운 이야기라면 혹시 책 이야기?


의정 : 그렇겠죠? 이번 달에는 술술 읽히는 책을 골라 왔어요. 구술생애사 책이거든요.


지혜 : 오, 구술생애사 좋아합니다. 술술 읽히는 책도 좋고요. 책 제목이?

 

의정 : 『이번 생은 망원시장』 입니다. ‘오늘은 맑음'이라는 제목으로 나왔던 책인데, 글항아리에서 개정판으로 냈어요. 망원시장에서 일하는 상인, 특히 여성 상인 9명의 이야기를 담았습니다. 복닥복닥하고 맛있는, 사람 냄새가 나는 책입니다. 즐겁고 찡하게 읽었어요. 지혜 님의 책은 무엇인가요?


지혜 : 저는 오랜만에 시집을 골랐어요. ‘최측의농간’에서 나온 『박서원 시전집』 . 빨간색 표지가 강렬한데요. 시를 읽고 싶은 요즘이라서 골랐어요.


의정 : 최측의농간? 출판사 이름이 특이하네요. 혹시 사장님이 최 씨일까요?


지혜 : 아닙니다. ^^; 최측의농간은 ‘다시 읽힐 가치’가 있는 절판 도서를 복간하는 출판사예요. 저희가 요즘 팟캐스트 <책읽아웃>을 제작하고 있잖아요? '오은의 옹기종기'에 '알쏭달쏭'이라는 코너 속 코너를 만들었는데, 청취자들의 사연을 받아 상담하고 있어요. 몇 주 전, 한 대학원생 청취자의 메시지가 도착했는데요. 작년부터 이슈화된 문단이나 예술계와 관련된 사건을 알게 된 후 좋아했던 시, 연극에 대해 회의감이 들었다고 해요. 그래서 어떻게 예술 작품을 바라봐야 할지 고민하셨어요.


의정 : 오은 시인님이 해답을 주셨나요?


지혜 : "당분간 여성 작가들의 좋은 작품들을 보면 어떻겠느냐”고 하셨어요. 저는 일부러는 아닌데, 읽게 되는 소설이나 시를 보면 대개 여성 작가의 작품이에요. 왜 그럴까 생각했는데. 지난달 김진애 작가의 『여자의 독서』 를 읽다가 이런 문장을 발견했어요.

 

나는 여성 작가의 책을 추천하는 남자를 신뢰하게 된다. 그들은 세상의 아픔을 외면하지 않고, 구조적 불공평함을 인식하고, 다른 사람의 상처를 들여다볼 줄 알고, 자신과 다른 감성에 귀 기울이면서 균형 잡힌 세계관을 가지고 있을 것이라 기대하게 된다. (11쪽)

 

지혜 : 특별히 남성 작가의 작품을 피한 건 아니었는데, '이유가 이거였나' 싶더라고요. 그래서 여성 시인의 작품을 읽고 싶던 찰나에 『박서원 시전집』 을 발견했어요. 시전집이라 수록 작품이 상당한데, 작품 제목 색인을 구성해서 작품을 쉽게 찾아볼 수 있어요.


의정 : 아아, 박서원 시인이 여성이었군요. 중성적인 이름이라 남성이라고 생각하고 있었어요. 그러고 보니 중성적인 이름이면 남성일 거라 짐작하는 때가 많은 것도 세상을 바라보는 방식이 기울어져 있기 때문이겠죠? 전집이라면 기존에도 시집을 여러 권 낸 시인인가 봐요.


지혜 : 생전에 5권의 시집을 내셨는데요. 2012년에 세상을 떠나기 전, 생전에 자신의 모든 원고를 스스로 정리하고 폐기하셨다고 해요. 출판사가 이번 시집을 복간하기 위해 굉장히 애쓴 걸로 알아요.


의정 : '다시 읽힐 가치'를 위해 힘쓴 최측의농간 출판사를 응원합니다...만 '농간'이 들어가니 어쩐지 계속 농담을 하는 느낌이 드네요.


지혜 : (ㅎㅎㅎ 그럼 분위기를 좀 바꿔서) 그거 아세요?


의정 : 무엇을요?


지혜 : 저 취재 나갔다가 혼자 망원시장에 들러 도넛을 사 먹은 적 있어요.


의정 : ㅋㅋㅋㅋㅋ 맛있게 드셨나요?


도넛으로 턴을 만들어주셨으니 조금 더 이야기하자면, 『이번 생은 망원시장』 은 최현숙 작가님이 망원시장 여성 상인의 구술생애사 작업 제안을 받고 구술생애사 강좌 심화반 학생들과 함께 만든 작업물입니다.


지혜 : 최현숙 작가님은 혹시,  『할배의 탄생』  쓰신 분인가요?


의정 : 오 네, 맞습니다. 민주노동당 소속으로 국회의원 선거에 나오시기도 했었죠. 책에는 등저로 나왔지만, 최현숙 님의 구술생애사를 푼다면 어마어마한 이야기가 나오지 않을까 싶어요. 개인적으로 언젠가 욕심내고 싶은 주제입니다.


지혜 : 욕심을 드러내는 일, 흔치 않은데. 주목하도록 하겠습니다. 그나저나 망리단길은 안녕한지 잘 모르겠어요. 한때 망원시장이 엄청 핫했잖아요? 지금은 연트럴파크 핫 플레이스 소식도 별로 없고, 성수동 이야기도 안 들리고, 어디가 핫한지 모르겠네요.


의정 : 글쎄요. 저도 핫한 동네로 다니질 않아서요. 안 그래도 책에서 상인들이 망원시장에 젊은 사람들이 오고 활성화되는 게 너무 좋은데, 한편으로는 먹거리만 점점 늘어나다 보니 시장의 다양성이 없어질까 봐 걱정하는 목소리도 담겼더라고요. 재개발되면서 살기 좋아지는 것도 있지만, 상업지구로 개발되면서 원주민의 일상은 어떻게 될까 생각하게 되기도 합니다. 앗, 또 진지해졌군요.


지혜 : 그럼 제가 또 가볍게 턴을! 제가 지난주에 수유재래시장을 다녀왔어요. 북서울꿈의숲에 놀러 갔다가 갑자기 떡볶이가 너무 먹고 싶어서 차를 끌고 갔는데요. 여기 시장은 주차권을 주더라고요. 물건을 구입할 때마다 1장을 주는데, 1장당 30분. 그래서 저는 3장을 받아 1시간 30분 무료 주차를 했어요. (제가 주차비에 민감해서... ㅎㅎ) 아무튼 전 시장에만 가면 돈을 헤프게 쓰게 됩니다. 그것도 현금을 콸콸….


의정 : 그 정도인가요? ㅋㅋㅋ


지혜 : 제가 시장에서 산 것을 대략 잡아보면 떡볶이, 튀김, 오징어채, 우엉채, 아몬드, 참외, 토마토, 아들 쫄바지 2개, 핫바 3개 기타 등등. ㅋㅋ 근데 의정 님은 '시장에 가면 이건 꼭 사 먹는다' 하는 것이 있나요?


의정 : 뜬금없이 채소를 사고 싶네요. 시장의 채소 가격을 마트가 따라갈 수 없단 말이죠. 요새 밥을 잘 못 챙겨 먹다 보니 금방 시들어서 버리는데 말이에요.


지혜 : ㅎㅎㅎㅎ 예전에 채널예스에 의정 님이 쓴 글 ‘나는 보신주의자입니다’ 가 생각납니다.


의정 : 아이쿠!


지혜 : 어이쿠! ㅎㅎㅎ 저는 요즘 시집을 읽으면서 제 마음의 상태를 보곤 하는데요. 어떤 시기에 내 눈에 들어오는 문장들을 정리해보면 내 상황이 어느 정도 파악되는 것 같아요. 『박서원 시전집』 을 읽으면서는 '어두워도'라는 시가 눈에 들어오더군요.

 

어두워도 다 보인다는 거_ 새빨간 아니 새카만 거짓말_ 만져지는 게 중요한 것도 알아_ 하지만 눈에 보이는 거_ 헛것이다 말하면_ 이 세상 그리움으로 바라보는 모든_ 맑은 눈동자를 무시하는 거야_ 알겠어!

 

의정 : 순간 요새 마음이 어두우신가 했습니다.


지혜 : 밝은 건 아닌 것 같아요. (그런 척합니다만. ㅎㅎ) 작품을 두 개 더 소개하고 싶어요.

 

명성이라든가 낙태한 여자의 부도덕_ 말고는 할 말이 없는 당신들_ 회가 동하게 하는_ 꼽추 춤을 애꾸 춤을 보시겠어요? -「아픈 꽃을 보시겠어요?」 중

 

모든 게 진실하기만 하다면 얼마나 욕되겠어_ 싸울 게 없는 일방통행인 우리는 얼마나 불행하겠어 때로는 가식이 필요해 -「엄마, 애비 없는 아이를 낳고 싶어」 중

 

지혜 : 뭔가 제 마음이 읽히나요? (어려운 질문... ㅎ)


의정 : 읽힐 듯 말듯... 시에서 세상과 싸우는 화자가 느껴지는 것 같기도 하고요. 시집은 그래서 참 권하기 어려운 것 같아요. 다른 장르보다 자기가 느낀 걸 다른 사람이 느끼리라는 자신이 없으니까요. 그저 문장을 건네줄 뿐이죠. '이 시가 난 참 좋았어, 총총' 하고.


지혜 : 정확한 포인트예요! 총총~. 의정 님은  『이번 생은 망원시장』 에서 가장 흥미로웠던 내용은 무엇이었나요?


의정 : 마포구에서 여성 건강 사업을 하면서 설문지를 돌렸었대요. '당신은 아픈데도 참고 일한 적이 있습니까?'라는 질문이었는데, 종로연떡방 황성연 사장님이 그 질문을 보고 볼펜을 멈추고 생각하셨던 문구가 마음에 남아요.

 

이걸 내가 어떻게 써야 되나. 나는 늘 아프거든요. 365일 다 아파요. 어깨가 아프지 않으면 허리가 아프고, 허리가 아프지 않으면 머리가 아프고, 지금처럼 감기 걸려 있을 때도 있고. (중략) 근데 이게 다 슬프지는 않거든. 왜냐하면 남한테 손 안 내밀고 내가 돈을 벌어서 내 가족이랑 여유 있게 쓰거든요. (91쪽)

 

지혜 : 아........;;; 답도 인상적이지만요. 어쩐지 질문만으로도 저는 위로가 되네요.


의정 : 시장을 지켜온 사람들이 얼마나 억세게 살았나, 그리고 그렇게 살아올 수 있었던 이유는 자기를 그만큼 잘 이해하고 있었기 때문이 아닌가 싶은 생각이 들었어요. 시장에서 일하다 보면 별일을 다 겪잖아요. 진상 손님을 만나기도 하고, 종일 가게를 지켜야 하니까 해외여행을 한 번도 못 가본 분도 있고요. 그래도 9명 모두의 구술에서 자기 공간을 자기가 꾸려나갔다는 것에 자부심이 느껴져서 저도 용기를 뿜뿜 얻었습니다. 하지만 무엇보다 책을 읽으면서 제일 많이 들었던 생각이 뭔지 아세요?


지혜 : 몰라요~ 완전 궁금해요!


의정 : ‘아... 녹취 푸는 데 진짜 힘들었겠다’였어요. -_-


지혜 : ㅎㅎㅎ 요즘 녹취 푸는 앱이 있다는 것 알아요? 유료인데 괜찮대요. 써본 적은 없지만. ㅋ


의정 : 다운로드해 써봤는데 무료 버전은 영 말을 못 잡더라고요. 녹취 풀기 힘들다고 하면서 한편으로는 인터뷰이와 더 가까워지는 기분도 들고, 애증의 관계입니다. 후후


지혜 : 신기하게 정말 좋았던 인터뷰는 녹취 푸는 게 전혀 안 지루하고 즐겁죠. 하지만 말이 심하게 빠르거나, 질문 1개에 30분 이상 답하시는 분들을 접하면 끄응. 말을 적절하게, 기분 나쁘지 않게 끊을 수 있는 기술이 우리에겐 너무 필요해요. 근데 오늘 저희 <책읽아웃> ‘삼천포책방’ 느낌 아니에요? 저는 '어떤,책임'감을 갖고 대화하고 있는뎃. 크헉, 뭔가 밀린 것 같아요.


의정 : ㅎㅎㅎㅎ ‘어떤,책임’ 느낌도 나지 않나요? 책임을 가지고 책을 소개한다는 면에서요.


지혜 : 그럼 오늘은 '짬뽕책방'으로 할까요?


의정 : 오, 짬뽕책방! 좋습니다. 오늘 비가 내리는데, 얼른 염증이 낫고 얼큰한 짬뽕을 먹어야죠. 『일단 오늘은 나한테 잘합시다』 의 도대체 작가님이 이런 명언을 하신 적이 있어요. “비 오는 날의 짬뽕은 그냥 짬뽕이 아니라 ‘비 오는 날의 짬뽕’입니다. ‘비 오는 날의 짬뽕’이 온전한 음식명인 것입니다.”


지혜 : 갑자기 진심 짬뽕이 당기네요. 저는 오늘 그냥 쭉 무겁게 나가볼까 봐요. 『박서원 시전집』 뒤 표지에 박힌, 강렬한 글귀를 소개하고 싶군요.

 

그래. 더 큰 고통을 가지고 와.

 

지혜 : (아주 상투적인) 슬프고 멋지다는 말밖에 못해서 아쉽지만, 저는 어떤 결기가 느껴져서 기운이 생기더라고요.


의정 : 아까 '세상과 싸운다'라는 표현을 했는데, 결기라는 단어가 더 착 붙네요. 시인의 세상을 향한 결기. 다른 시도 궁금해져요.


지혜 : ㅋㅋㅋㅋ 넴! 그나저나 어서 빨리 우리 모두 짬뽕을 먹을 수 있는 기운이 생기길 바라며, 이만 마무리할까요?


의정 : 이열치열로 짬뽕을 먹을 계절이에요. 초여름에 기운 잃지 말고 행복하시길요! 중간중간 책을 읽어주셔도 좋고, 아니어도 좋고요.


지혜 : 짬뽕 맛집을 알게 되면 톡 드릴게요~. 오늘은 '불현듯'(오은 시인) 버전으로 인사해볼게요. 콧소리를 잔뜩 넣어야 해요~~~! 안뇽~~~!


의정 : 그럼 전 '톨콩'(김하나 작가) 버전을 시도해보죠! 독자분들~ 다음 달, 알람 맞춰두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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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지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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