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지만 선명한
[작지만 선명한] 이상한 방식의 안온함, 안온북스의 책
작은 출판사의 책을 소개하는 큐레이션 시리즈 ‘작지만 선명한’. 문학의 아이러니 같은 책을 만드는 ‘안온북스’를 소개합니다.
글: 서효인
2025.1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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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온하다는 말을 책에 붙이기가 조금은 겸연쩍다고 생각합니다. 책은, 적어도 문학은 오랫동안 불온한 어떤 것이었습니다. 문학의 아름다움은 종종 읽는 이를 불안하게 했습니다. 문학의 완벽함은 때때로 읽는 이를 긴장케 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는 책을 읽고 문학을 즐겼습니다. 가까이에 두고 이야기 나눕니다. 혹시 이 불안과 긴장이 우리를 안온하게 하는 게 아닐까요? 문학의 아이러니는 그런 것에 비롯될는지도 모릅니다. 그저 즐겁고 편안하지는 못한 것. 불편하고 쓰라린 것. 그러함으로 인해 존재하는 것. 안온북스는 이상한 방식으로 당신의 삶을 안온하게 만드는 책을 만들려고 합니다. 아직 세상에 오지 않는 문학을 찾는 게 그 방법이라 믿습니다. 가까운 시기에 나온 안온북스의 책 세 권을 여기에서 소개합니다. 당신에게 불편한 온전함을 전해주리라 감히 말씀드려봅니다. 


 

『세계의 주인 각본집』

윤가은 감독 | 안온북스

 

<우리들>, <우리집>의 시나리오를 쓰고 영화를 연출한 윤가은 감독의 6년 만의 신작 <세계의 주인>의 각본집입니다. 작가는 말합니다. 시나리오는 영원히 완성될 수 없다고. 영화는 결국 현장에서 혹은 편집실에서 시나리오와는 다른 모습으로 만들어지고 탄생할 수밖에 없습니다. 다만 영화의 장면으로 완성되고 혹은 편집되어 사라짐으로써 완성에 기여한 문장과 대사를 눈으로 확인하는 일은, 그 영화의 전부를 간직하는 일이 될 것입니다. 영화 <세계의 주인>은 그럴 만한 가치가 충분한 영화이기도 하지요. 

 


『몸을 두고 왔나 봐』

전성진 저 | 안온북스

 

『베를린에는 육개장이 없어서』를 편집하고, 홍보하면서 작가에게 반해버렸습니다. 그리고 작가의 다음 이야기가 궁금했어요. 그 이야기를 책으로 낼 수 있어서 다행이고, 영광입니다. 『몸을 두고 왔나 봐』는 독일이라는 타지에서 예기치 않은 사고로 몸을 다친 이후 떠나는 시간 여행입니다. 과학소설은 아닙니다. 책에서 시간 여행은 과학적 사실이 아닌 존재론적 사유로 가능합니다. 그때 그곳에 몸을 두고 와버린 작가는 시간과 기억을 거슬러 몸에게 말을 겁니다. 다시는 너를 그곳에 두고 가지 않겠다고. 

 


『우리가 마주할 기적은 무한하기에』

이하진 저 | 안온북스

 

이번에는 진짜 과학소설입니다. 많은 과학소설에 인류는 치명적인 실수를 반복하고 그리하여 자명한 멸망에 이릅니다. 과학소설은 우리의 현실을 피하지 않고 직시하여 디스토피아를 그립니다. 동시에 좋은 과학소설은 그 안에서 일말의 희망을 찾습니다. 희망이 없어 보임에도 끝내 뒤적이고 실험합니다. 이하진의 소설은 가장 열심히 그것을 찾습니다. 감히 ‘기적’이라 말하면서, 인간이 가져야 할 자세를 보여줍니다. 그것은 멸망을 피하는 방법은 아닐 것입니다. 인간다운 방식으로 멸망을 대하는 모습일 것입니다. 

 

함께 읽는 다른 출판사의 책

 



『내 주머니는 맑고 강풍』

최진영 저 | 핀드

 

정말 주머니에 넣고 다니고 싶게 생긴 책입니다. 까다롭게 작은 판형을 넓고 넓은 최진영의 마음을 담았으니 그 안이 맑은데 바람이 불지 않는다면 이상한 일이겠죠. 소설가는 픽션으로 세상을 말한다지만 읽는 우리는 등장인물이 아닌, 작가의 목소리마저 듣고 싶다는 욕심을 부려봅니다. 이 책은 그 욕심을 충족시킵니다. 장편을 써야 해, 소설을 써야 해, 좋은 글을 써야 해, 좋은 사람이 되고 싶어…… 이상하게 착하고 순한 방향으로 부는 바람이 우리를 청량하게 합니다. 우리는 계속 최진영을 읽어야만 할 것 같다는 예감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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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효인

시를 짓고 책을 만듭니다. 안온북스에서 일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