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사월
2024년 3월 21일 목요일
진우 훤 리에게
너는 진우로 사랑받은 적이 있니? 이훤이 사랑받는 동안 진우도 사랑을 받니? 오늘 인요가에서 몸을 늘리며 좀 울었다. 내 몸을 느끼며 생각했다. 사월은 사랑받고 돈 버는 애, 수진은…… 중학교 3학년쯤에 멈춰져 있다. 내 몸은 수진에 가깝다. 4집 뮤직비디오를 보고 엄마가 뭐라는지 알아? 못생기게 찍으려고 작정한 것처럼 보인대……. 화도 안 난다. 엄마, 배우들 보면 누구 죽이는 역할도 하고 액션도 하고 그러잖아, 예술가는 일상적이지 않은 모습을 대신 보여 주는 거래, 호탕한 딸인 것처럼 말했지만 아픈 말은 흔적을 남긴다. 가족이면 별로라도 그냥 잘했다고 말해 주면 안 되나. 안 그래도 밖에서 얻어터지는데.
4집을 발매하고 이틀도 안 지난 지금, 사랑해 주는 사람들 이야기만 듣기에도 모자란 이 시간에 굳이 나에 대한 부정적인 이야기를 찾는다. 괜히 보고 아파하며 마음을 추스른다. 마치 상처가 있어야 마음을 알아차릴 수 있는 사람처럼. 이 앨범이 어떤 앨범이 되는지는 생각보다 오랜 시간이 걸리지. 명반이라 하는 앨범들이 처음 나왔을 때는 별 평가를 못 받기도 하고, 지금은 꽤 잘되는 것 같지만 나중에 되돌아보면 꼭 그렇지만도 않다. 그리고 발매 하루 만에 전 곡을 다 듣고 크리틱을 하는 사람들은 나를 무척 좋아하는 사람들인 거야. 그 관심은 고마운 것이다. 반응이 있다는 데에 감사하다.
대중 예술이기 때문에 이 작업에 누가 어떤 말을 하건 자유다. 평생을 단련한 선수들의 스포츠 경기를 보면서 우리가 맥주 마시고 잘하네 못하네 하는 것이 대중문화다. 그 쪽팔린 길을 내가 원했다. 도마 위에 오르는 것, 이게 진짜 좋으냐 별로냐 가타부타, 뭔가 만드는 사람들은 그런 화젯거리에 오를 수 있다는 것도 고마운 일이지. 나는 어떤 의견이나 비난에도 진실이 있고 그걸 내가 수용해야 진짜 성숙한 사람이 된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 그렇다고 그 모든 의견을 다 찾아볼 필요는 없었을 텐데. 하나의 댓글을 수용하기에도 우리는 약해지고 아파지잖아. 누군지 모를 사람들의 날이 선 반응을 찾아보다가 내 마음이 걸레짝이 되었나 봐. 이 모든 것에 중독되어서 난 웹에서 나를 계속 찾아보고 있었다고.
그렇지만 오늘 도약의 경험을 했다. 쓰고 풀고 나누고 싶은데 그럼 내가 얼마나 아팠는지 말해야 하니까 너에게 편지를 쓴다. 내 블로그도 사실 공개된 공간이고, 팬들에겐 걱정 끼치거나 불평하는 것도 싫고…… 그냥 지금 나에게 너 말고는 이 이야기를 할 사람이 없네.
요가를 마치고 선생님과 인사를 하는데 선생님이 잠깐, 하면서 선물을 주셨다. 내가 언젠가 물어봤던 요가원에 있는 초였다. 4집 발매 선물이래. 이 초가 좋아 보여서 선생님께 구매처를 물어보고 내가 좋아하는 언니에게 생일 선물로도 주었는데 내 것을 산 적은 없었다. 그렇게 말하니 선생님은 왜! 스스로한테는 안 주고…… 하셨다. 오늘 선생님께 받으려고 그랬나 봐요.
“앨범에 있는 노래 다 정말 좋더라!” 나는 질질 울면서 대답했다. 선생님…… 사실 좋다는 이야기가 훨씬 많은데, 안 좋다는 이야기를 제가 너무 많이 찾아봤어요……. 질질 울다가 펑펑 울었다. 선생님은 나를 안아 주고 달래 주다가 말씀하셨다.
“나는 내 책에 대한 댓글 하나도 안 봐. 좋은 이야기를 못 봐서 아쉽긴 하지만 거기서 누가 어떻게 쓰건 안 궁금해. 내 북 토크에 직접 와준 사람들의 이야기가 궁금해. 그리고 그것보다 내 마음이 제일 궁금해.”
선생님 저는 이거 시작하고 하루도 피드백을 안 찾아본 날이 없어요
“자신을 스스로 아프게 하는 데에 중독된 거야. 그 상처는 2번 차크라에 자국을 남긴대. 그거 안 봐도 괜찮아. 수진은 그거 안 봐도 자신이 뭘 잘하는지 뭘 못하는지 누구보다 잘 알잖아. 수진이 그거 보고 아파하면 나도 여기서 아파할 거야. 그걸 기억해.”
한참을 엉엉 소리 내서 울고 눈물 닦고 코 풀고 선생님을 꼭 껴안았다. 거의 10년 동안 나에 대해 누가 뭐라고 할지 매일 찾아봤다. 안 볼 이유가 없었는데 이제 생겼다. 너무나 필요한 말, 이제야 얻은 말.
네가 아파하면 나도 아파.
요가원을 뛰어나오며 하하 웃으며 펑펑 눈물이 났다.
중독으로부터 해방될 이유가 드디어 생겼다.
이훤
2024년 6월 22일 토요일
죽음과 스쾃과 청경채 파스타
가만히 있어도 땀이 난다 사월아. 에어컨 대신 작은 선풍기가 돌고 있어. 창 안쪽으로 미미하게 드는 바람과 선풍기 날 사이를 뚫고 오는 온풍 사이에서 크고 작은 죽음에 대해 생각한다.
어제는 발등에 각질이 생긴 걸 보았다. 찾아보니 각질도 피부라고, 저절로 떨어져 나간다고 한다. 천천히 죽어 가는 피부인 셈이야. 피부도 죽는다는 사실이 이상해. 노력하지 않아도 대부분의 피부가 거기 있다는 게 더 이상한가? 덕분에 안팎으로 우리가 서서히 죽어가고 있다는 걸 기억한다. 내 일부가 탈락하면 어디로 갈까. 구르고 날리고 하수구를 타고 다른 생명의 거주지로 흘러들까. 그러고 보니 잘라낸 손톱도 모발도 작은 죽음이었다.
이 편지를 쓰다 말고 컴퓨터가 너무 느려서 바탕화면으로 돌아가 휴지통을 비웠어. 980MB의 사진과 문서 등을 지웠어. 뭘 이렇게 많이 찍고 만들었을까. 휴지통에서도 삭제되면 데이터는 영원히 사라지게 돼. 되돌아갈 수 없는 상태니까 죽음이라 불러도 될까. 무한 복사 가능한 파일들도 클릭 몇 번이면 끝을 맞는다. 우리는 계속 우리의 일부를 지워 나간다. 그런 종류의 결말도 죽음이라 부를 수 있을까?
문만 열면 러브버그가 너무 많다. 공중을 날아다니며 어떻게 짝짓기할 수 있는지 징그럽고 감탄스러워. 포유류는 평생 하지 못할 체위라 조금 부럽다. 플라잉 섹스라니. 네가 말한 공중 뿌리다. 사방에 날아다니는 검은 점들이 오류 난 픽셀처럼 보인다. 일부러 지운 미디어 아트 같아. 어쩌면 인간들이 더 오류에 가까울지도 모른다. 러브버그는 일주일 길게는 두 주밖에 못 산다. 일주일만 머물 수 있다면 조금 더 너그러워져야 하는 걸까. 걔들 사체가 마당에 듬성듬성 쌓여 있는데, 그게 제때 전하지 못한 말들처럼 자꾸 눈에 밟혀. 너무 많이 죽어 있기도 하고. 시도 때도 없이 사랑을 나눠서 러브버그라고 부르던데. 에너지를 다 써서 죽는 건가? 얼마나 좋은 섹스를 하길래…… 죽음에 이르는 쾌락이라니…….
작가로서 나는 가끔 죽어 있다고 느낀다. 너무 많은 걸 쓰고 찍고 옮기기 때문인가. 언어가 말라 가는 느낌이 든다. 그럼에도 마감 앞에 서면 무언가를 쓴다. 어떨 땐 거의 기계적으로 완성한 원고지만 끝냈다는 사실에 만족하며 송고하곤 하는데, 이게 죽지 않은 상태와 무엇이 다른지 생각한다. 짓는 행위가 매일 새로울 순 없다. 그러니까 작가로서 훈련이 누적돼 가능한 일이겠거니 생각하거든? 어떤 날은 영혼이 시든 상태와 잘 단련된 맷집을 구분하기가 어렵다. 오래 기다린 작업 앞에서는 여전히 내 안에 끓는 무언가가 선명히 느껴지기도 한다. 그러다 무기력하게 앉아 있는 날이 다시 찾아오고. 오늘은 스쾃과 런지를 하면서 겨우 위기를 모면하고 있다. 중둔근에 힘 빡 들어가면서 피가 돌고 갑자기 그 힘으로 원고를 맺었어.
신나는 일도 있다. 장편 소설 『가녀장의 시대』를 영어로 옮기는 중이야. 문장을 다른 언어로 옮기는 동안 목격하는 작은 죽음과 탄생에 매료돼서 시작한 일이다. 잘될 땐 아주 커다란 효능감을 느끼고 안 될 땐 영혼이 턱턱 말라. 번역은 좀 다른 형태의 창작 같아. 내 문장은 아니지만 거의 새 문장을 쓰는 만큼을 고민해야 하거든. 의역도 많고. 생략된 맥락도 챙겨야 하고. 한글에는 유독 구체적인 지칭이 많다고 느낀다. 이를테면, 작은엄마, 큰아빠, 외삼촌, 넷째 이모, 막내 고모 등등. 한글에서는 친가와 외가로 나눠진 호칭이 영어에서는 훨씬 단순해지거든. 작은이모도 작은고모도 외숙모도 모두 AUNT(IE)일 뿐이잖아. 원문의 중요한 뉘앙스 일부는 언어가 바뀌며 사라진다.
그리고 동시에 언어는 그 당시 중요했던 가치를 증거처럼 가리킨다. 부계 사회가 디폴트였잖아. 아버지 쪽 식구를 <친하고 가까운> 친을 써서 친가로 부르고 어머니 쪽 식구를 <바깥>을 지칭하는 외가로 불렀다. 큰아빠랑 결혼하면 큰엄마가 되었다. 모두 오래된 질서에 영향받은 언어다. 한편 바로 그게 원작자가 재현하고 싶은 복잡한 한국 정서이기도 해서 어떻게 살릴지 고민이 된다. 두 나라 사이 통째로 비어 있는 구간을 메우는 기쁨이 크긴 커. 직역이 어려운 문장들 앞에서 머리를 쥐어뜯기도 하지만 말이야. 번역을 전업으로 하는 동료들을 찾아가 묻고 싶었다.
여러분, 이 일을 어떻게 매일 8시간씩 해오신 거예요?
<그렇게 귀하던 것이 어떻게 이렇게 아무렇지도 않은 것이 되는지>. 너의 그 문장이 내가 겪은 상태와도 비슷해서 고개를 막 끄덕이며 읽었다. 책 내고 한창 북 토크를 다닌 뒤 정신 차려 보면 더 이상 책이 아무것도 아닌 것 같잖아. 세일즈 포인트도 떨어지고 읽을 사람은 다 읽은 것 같고. 겨우 두 달 지났을 뿐인데 말이야. 책 나오기 전후로 너무 많이 읽고 고치는 동안 저자 안에서 텍스트가 안에서 낡기 때문일 텐데……. 그럴 때 씩씩한 작가를 거의 보지 못했다. 출간 블루 같은 거 모두가 겪는 것 같다. 어떻게 안 그럴까. 몇 년을 갈아 만든 열매가 두 달 만에 소진되는데.
그럴수록 네 말처럼 침묵을 소중히 여기고 싶다. 말하지 않는 것도 소리 내는 방식이고 선택이며 다음 문장의 중요한 성분이라고 기억하고 싶다. <진짜 하고 싶은 말이 있으면 내고 없으면 안 내도 된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는 날들을 만들기로 했다. 먹고 읽고 듣고 자는 시간을 충분히 구획할 거다. 네가 만화책 보고 청경채 파스타 만들어 먹고 팟캐스트 들었다는 일기를 읽고서 안심했다. 죽음에 대한 생각을 멈출 수 없다고 썼지만 생활 속 사월이가 부지런히 움직이는 것 같아서. 그러는 동안 이미 얇고 좁고 뭉툭한 죽음들을 잘 맞았겠구나, 그리고 그것들 굴리면서 내일을 잘 채비하고 있겠구나 싶어서. 스스로에게 좋은 걸 많이 먹이고 나를 거의 죽음으로 내모는 풍경 앞에도 나아가며 살자 친구야. 라디오도 가끔 듣고. 두려워하면서. 아무것도 무서워하지 않으면서. 어떤 날은 눈물이 질질 나는 대로 흘러내리게 두면서.
사월이 요즘 가장 가고 싶은 곳은 어디야? 다음 쉬는 날에는 그곳에 함께 가보고 싶다.
*필자 | 김사월
한국의 싱어송라이터. 정규 앨범 「수잔」, 「로맨스」, 「헤븐」, 「디폴트」를 발매했다. 잘 웃고 잘 울다가 뭔가를 기록하는 사람.
*필자 | 이훤
시집 『양눈잡이』와 산문집 『눈에 덜 띄는』 등 여섯 권의 책을 쓰고 찍었다. 「We Meet in the Past Tense」 등의 전시와 『끝내주는 인생』, 『정확한 사랑의 실험』 등의 출판물에 사진으로 함께했다. 시선을 만들고 정지된 장면을 잇고 모국어를 새삼스러워하는 사람. 사진관 <작업실 두눈>을 운영한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예스리커버] 가녀장의 시대
출판사 | 이야기장수
김사월, 이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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