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유의 목소리엔 묘한 힘이 있다. 투명하면서도 아련한 음색이 저 편의 기억을 불러오기 때문이다. 이를 반영한 <꽃갈피>는 세대 간을 잇는 가교 역할을 하며 좋은 성적을 거뒀다. 기대가 너무 컸던 탓일까. 이번 앨범에서 그만큼의 감동은 발견되지 않는다. 여전히 좋은 보컬과 세련된 편곡으로 다듬어진 결과물이지만, 원곡을 2017년 버전으로 다시 부른 것 이상의 의미를 발견하긴 어렵다.
첫 리메이크의 성공은 그가 태어나기 이전 노래의 감성을 체화하고, 나아가 그것을 자신만의 어법으로 변형시켰기에 가능한 것이었다. 단적인 예로 「나의 옛날이야기」를 메우는 서정적이고 또렷한 음성은 조덕배의 툭 내던지는 무심한 창법을 지워냈고, 「삐에로는 우릴 보고 웃지」는 보컬 리프와 층층이 쌓이는 화음이 원곡의 신시사이저 역할을 대신하며 복고 분위기를 표현했다.
그러나 「잠 못 드는 밤 비는 내리고」는 원래보다 한 층 톤다운 됐지만 전자 피아노와 베이스는 여전히 1990년대 팝 발라드에 머무른다. 「비밀의 화원」에서는 이상은이 오버랩되고, 「어젯밤 이야기」는 중심 멜로디와 엇박 리듬을 그대로 강조해 기존의 틀을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이러한 요소들이 앨범을 ‘다시 만듦’의 범주에 가둔다.
원작자의 색채가 옅어진 것도 아쉬운 부분이다. 「너의 의미」를 김창완과 함께 부르고 「여름밤의 꿈」을 쓴 윤상이 연주에 참여하는 등 원작자와 함께하는 방식으로 이끌어간 이전과 달리, 이 음반에서는 정성하나 적재, 혁오의 임현제가 참여해 젊은 층의 감각으로 꾸린다. 이 차이가 원작자의 아우라를 끌어오거나, 원작과 그가 부른 노래 사이에 놓인 시간의 공백을 지울 수 없게 한다. 선정된 곡들의 발매년도가 지난번과 크게 다르지 않음에도 이질적인 감각을 선사하는 것은 이 때문이다.
여기엔 옅어진 아날로그 색채도 한 몫 한다. 부피 큰 수록곡들 사이에서 그의 진가를 보여주는 곡은 제목처럼 한 계절의 선선한 풍경을 여유롭게 그린 「가을 아침」이다. 목소리만으로 오롯하게 처음을 장식하고, 기타와 틴 휘슬의 청아함으로 아날로그 느낌을 강화해 그의 색채가 곡에 알맞게 녹아든다.
높은 곡 소화력, 연령과 관계없이 친숙하게 다가간다는 점에서 아이유의 꽃갈피 시리즈의 의의는 여전히 유효하다. 또래에게 낯선 1991년의 「가을 아침」을 소개하고 이를 음원 차트 상위에 놓은 것도 그이기에 가능하다. 그러나 이번 신보는 ‘재해석’은 됐지만 ‘재창조’는 되지 않았다. <꽃갈피 둘>엔 그 시절 곡을 자신만의 맑은 감수성으로 표현해 모든 이를 공감하게 만든 아이유의 흔적은 사라지고, 지난 시절을 동경하며 복원하는데 충실한 한 후배 가수만 남아있다.
강민정(jao1457@naver.com)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