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을 잘 쓰고 싶다면 가장 좋은 방법. 잘 살면 된다. 물론 잘 사는 것이 돈을 많이 버는 것을 뜻하진 않는다. 잘 사는 것과 잘 쓰는 것이 무슨 상관이냐고 물을 수 있겠다. 그것은 곧 삶과 글의 합일 여부와 관련을 맺는다. 쓰는 것은 생각하는 것에서 비롯되고, 생각하는 것은 사는 것을 고민하는 것이다. 사는 대로 생각하면 내 삶은 없다. 내 삶이 없는 글은 남의 삶을 대필해주는 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생각하는 대로 살면 다르다. 삶은 내 것이며 글도 내 것이 될 수 있다. 글과 삶이 일치할 때, 아주 높은 단계의 글쓰기가 가능하다. 잘 살 때 좋은 글이 나올 수 있는 이유다. 물론 글 쓰는 사람의 유명세는 그때 중요하지 않다.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를 쓴 이강룡은 그렇게 지행합일을 최종 목표로 삼은 이다. ‘한국어를 잘 이해하고 제대로 표현하는 법’이라는 부제를 단 이 책은 표면적으론 견고한 글쓰기를 할 수 있는 기본을 알려준다. 속살을 보면 글과 삶이 일치하기 위해 어떻게 살아야하는지를 생각하게 만든다. 삶과 연관된 글쓰기의 기본 태도를 다룬다고 할 수 있다.
좋은 글의 조건, 일관성
“좋은 글에는 판단이나 주장보다 근거가 많다. 다짐과 예측은 적고 경험 사례는 많다. 단편적 해설이나 전망보다 믿을 만한 구체적인 근거 자료가 드러나야 고급 정보다.”(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 37쪽)
이강룡은 말하는 좋은 글의 조건. 주장이 적고 근거가 많다. 더 높은 단계가 있다. 근거만으로 주장을 담는다. 그는 그런 글을 읽어야 하며, 이름값에 현혹되지 말라고 강조한다. 아울러 글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일관성이다. 일관성은 글의 거의 전부이며, 좋은 작가는 일관성을 지킨다는 것. 그렇다면 어떤 일관성을 지키면 될까.
첫 단계, 표기의 일관성이다. 그는 기존 번역서나 초고를 검토할 때 언어 표현을 일관되게 쓰는가를 우선 본다. 가령 앞부분에서는 뉴턴, 뒷부분에 가서 뉴튼이라고 써서는 안 된다는 것. 여기서 그는 오역이 발견됐을 때 대처하는 방법을 건넨다. SNS에 올려 사방만방 떠들지 말고 번역자에게 넌지시 이메일을 보낼 것. 그렇게 교정이 되면 누구도 상처를 받지 않으면서 독자들은 교정된 책을 만날 수 있다. 누이 좋고 매부 좋은 방법.
다음 단계는 단어와 단어 사이의 일관성이다. 서로 어울리는 단어가 있다. 가령, ‘벙커원 규모가 굉장히 작다’고 표현하면 엉터리. ‘굉장히’와 ‘작다’가 어울리지 않는다. 굉장히는 ‘규모가 으리으리하게’라는 뜻인데 작다를 수식하면 ‘규모가 으리으리하게 작다’로 어울리지 않는다. 그가 지적하는 또 하나는 ‘확실히 ~인 듯하다’. ‘확실히’와 ‘~인 듯하다’는 충돌하는 개념이다. 요즘 기자들이나 글 쓰는 사람들이 흔히 범하는 실수에 대해서도 언급한다.
“나이를 쓸 때, 아라비아 숫자로 19라고 쓰고, 살이라는 말을 접미사로 붙인다. 아라비아 숫자가 나오면 한자식으로 ‘세’라고 써야 한다. 19세라고 쓰던가, 열아홉 살이라고 써야한다. 19살은 없다. 단어와 단어 사이의 일관성, 그런 감각을 익혀야 한다. 번역을 할 때 좋은 대본을 골라야 하는 이유가 그것이다.”
마지막 단계로 문장이다. 좋은 문장을 일관되게 구성하는가. 그는 ‘싯다르타가 보리수나무 아래 네 가지 깨달음을 얻는다. 우리는 사성제라고 배웠다. 네 가지의 성스러운 깨달음’이라는 문장을 예로 들었다.
“‘네 종류’라고 하지 않았다. 네는 고유어이고, 종류는 한자어다. 일관성이 없다. 첫째 깨달음은 인생은 고통의 연속이다. 고통이라는 문장이 처음에 나왔다고 치자, 다음에 고통에 대한 설명이 나와야 한다. 고통은 집착에서 온다. 그게 둘째 문장이다. 첫째와 둘째 문장이 연결돼 있다. 다음은 집착에 대해 얘기한다. 좋은 글은 앞문장과 뒷문장이 꽉 맞물린다. 훌륭한 문장은 요약할 수가 없다. 뺄 만한 것이 없다. 동어반복을 줄이고 정수만 남긴 문장이 좋은 문장이다.”
말과 글과 삶의 합일, 그 지고의 가치
그는 8월말이면 읽는 詩로서 윤동주 시인의 「별 헤는 밤」을 좋아한다며 뺄 만한 문장이 없는 좋은 글로 꼽았다. 특히 윤동주 시인이 훌륭한 작가인 이유로 형식적인 일관성뿐 아니라 그것이 삶까지 연결됐음을 꼽았다. 아주 높은 단계의 글쓰기는 지행합일을 한다는 것. 즉, 말과 글과 삶이 일치한다.
“윤동주 시인이 詩를 쓰다가 삶을 돌아보니 일치하지 않자, 그것이 괴로운 거라. 그래서 그 괴로움을 詩로 표현한다. 고전만 읽어선 안 된다. 그러면 산으로 간다. 그런데 좋은 글을 가려내는 안목을 연마하다보면 고전에 닿는다. 서정주 시인의 글도 뺄 곳이 없다. 그럼에도 그의 글은 삶과 일치하지 않는다. 글에선 아름다운 신념에 대해 쓰면서도 삶에서는 그러지 못했다. 평생의 삶과 글이 일치하고 많은 시간과 노고를 들여서 작품을 만들어낸 사람에게 주어지는 상이 노벨문학상이다. 이것은 작품에만 주는 상이 아니다.”
“격을 맞춘 문장은 단정하고 자연스러우며 일관성도 높다. 격 맞추기의 최종 단계는 아마도 글과 말과 행동의 일치일 것이다. 지행합일이라는 말은 글 쓰는 이에게 최종 목표와 같은 상태다.”(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 165쪽)
그는 우리 주변에도 많은 시간과 노고를 들인 글이 있다며, 다시 한 번 이름값에 얽매이지 말 것을 주문했다. 축구인 차범근이 좋은 글을 쓴 사례로 소개됐다. 차범근? 글을 잘 썼나? 이런 의문도 들겠다. 이강룡의 설명을 들으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차범근의 글에는 사소한 문법적인 오류나 형식적인 오류를 넘어서는 삶의 일관성이 깃들어 있다. 차범근만이 쓸 수 있는 글을 쓴다. 다른 사람은 쓸 수가 없다. 차범근의 글을 읽어보면 좋은 글은 사소한 문법적인 오류를 뛰어넘을 수 있음을 알 수 있다. 시간과 노고가 많이 들어간 글을 많이 봐라. 몸으로 뛴 글을 읽어라.”
이강룡이 제시하는 몸으로 뛴 글, 좋은 글의 예다. ‘환경보존을 위해 일회용 컵을 사용하지 맙시다’라는 글을 봤다고 하자. 문제는 주장만 있다는 것. 좋은 문장은 이렇다. ‘저는 텀블러를 쓴지 1년이 됐습니다.’ 즉, 1년 동안 환경보존을 위해 텀블러를 썼다는 말이다. 행동과 글이 일관성을 지닌 몸으로 뛴 글이다. 또 하나의 좋은 예가 따른다.
“온라인 강연 테드X에 소개된 ‘스티브 아디스’는 뉴욕 맨해튼에 딸을 데리고 가서 사진을 찍는다. 이듬해 같은 자리에서 똑같은 자리에서 딸과 사진을 찍는다. 재미가 생긴다. 3년 차에 똑같은 사진을 찍는다. 딸이 점점 크고, 똑같은 날 똑같은 장소에서 15년 동안 찍는다. 그리고 그것을 딸에게 선물한다. 여러분이 감당할 수 있는 좁은 범위를 설정하고 그것을 끝까지 밀어붙여라. 마치 오타쿠처럼. 좋은 작가는 주제 범위를 좁히고 깊고 끈질기게 늘어진다.”
“어떤 글을 읽으며 가늠해 보라. 이 글에는 과연 얼마나 오랜 시간의 켜가 쌓여 있는지. 어떤 글이든 시간과 노고가 들어가면 읽을 만한 가치도 깃든다.”( 『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 41쪽)
좋은 글을 쓰고 싶다면
자, 그렇다면 좋은 글을 쓰고 싶다고? 이강룡에 제시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좁게 시작할 것. 좋은 작가는 끝까지 물고 늘어진다. 그리고 시간과 노고와 노력을 들이고 고통을 극복한 그런 글과 작품을 찾아서 읽을 것. 그것이 공부하는 사람의 예의라고 그는 강조했다. 괴테가 어떻게 좋은 글을 쓸 수 있었는지에 대한 설명을 이었다.
괴테가 지녔던 원래의 꿈은 화가였다. 자신이 그름을 잘 그린다고 자부하며 살았다. 그러던 어느 해, 괴테가 이탈리아 기행을 갔는데, 자신의 한계를 알아챘다. 미켈란젤로, 라파엘로 등 거장들의 회화 작품 앞에서 감탄은 기본이요. 자신의 그림이 얼마나 초라했는지를 깨달았다. 깨끗하게 화가의 꿈을 단념했다. 35세였다. 대신 자신이 잘 할 수 있는 다른 분야가 있다는 것도 알게 됐다. 글 짓는 작가.
작가라는 새로운 꿈. 그러면서 20대 초반에 구상했었던 파우스트 출간을 단념했다. 그리고 다짐했다. 생을 마감하기 전까지 훌륭한 작품 하나를 반드시 남기리라. 그의 삶이 전환됐다. 그리고 열심히 노력했다. 죽기 한 해 전 82세에 괴테는 『파우스트』를 완성했다. 중간중간 끊임없이 고쳤다. 완성했다. 『파우스트』에는 무려 58년이라는 노고가 들어가 있다.
“좋은 글에는 많은 노고가 담겨 있다. 중국산 제품을 쓰지 말자는 칼럼은 좋은 칼럼이 아니다. 중국산 제품 없이 1년간 살아보기의 기록, 이런 것이 좋다. 수준 높은 대본을 선정하면 힘은 들지만, 완역하면 번역 실력이 일취월장한다. 번역자가 가장 괴로울 때는 이상한 대본을 만날 때 괴롭다. 좋은 대본, 좋은 글을 만나기 위해 노력해라. 좋은 글은 시간과 노고가 많이 들어간 글이다. 그러면 번역 실력도 성장한다. 부사에 눈을 뜨면, 텍스트가 달라지고 좀 더 한국어다운 글이 나온다.”
그는 가수 김창완이 글을 잘 쓴다며 『이제야 보이네』라는 김창완의 산문집에 나온 문장을 인용했다. “나는 게으른 어부다. 나는 그늘에 앉아 그물코를 손질하고 있다. 이 에세이는 내가 그동안 놓쳐버린 물고기에 대한 이야기다.” 어부, 그물코, 물고기. 일관성이다. 범주의 오류를 범하지 않는 일관성. 더불어 일관성이 떨어지는 예와 그렇지 않은 예를 보여줬다.
20대를 위한 책들이 펄떡펄떡 뛰는 물고기 같다면, 30대를 위한 책들은 적당히 숙성된 와인 같다.
<적절하게 바꾼 예>
20대를 위한 책들이 강렬한 스카치위스키 같다면, 30대를 위한 책들은 적당히 숙성된 와인 같다.
이강룡은 원어 병기에 대해서도 덧붙인다.
“원어병기를 해야 할 때가 있다. 일관된 기준 하나는, 원어 병기는 하지 마라. 한글만으로 의미를 전달하는 것이 가장 좋다. 그러나 그것이 쉽지 않다. 그래서 원어 병기를 해야 할 때는 뚜렷한 목적이 있어야 한다.”
그는 강연 처음부터 끝까지 ‘일관성’이라는 화두를 놓지 않았다. 글 쓰는 사람이 갖춰야 할 모든 것이 그 안에 녹아 있다. 그것은 삶과 직접 맞닿는다. 그에 의하면, 저자나 번역자는 독자를 믿고 일관성을 갖춘 근거를 들어 독자가 잘 판단하도록 도와주는 사람이다. 그래서 단순하게 아름답다고 말하기기보다 아름다운 것을 보여주고, 동물을 사랑하라고 말하지 말고 사랑하는 것을 보여주라고 권한다. 그가 든 예는 이렇다.
저는 매우 적극적인 사람입니다. -> 저는 제대하고 6개월간 지하철에서 레깅스를 팔았습니다.
“일본의 사진작가 구와바라 시세이는 자기만이 할 수 있는 일을 하면서 고생을 서슴지 않았다. 글도 잘 쓴다. 그는 말과 글과 삶이 일치하는 사람이다. 그리고 이런 말을 썼다. “나는 한국 경제 성장의 밑거름이 된 이들의 오열을 사진으로 남기고 싶었다.” 잘 쓰기 위해서는 잘 살아야 한다. 잘 쓰려면 잘 살게 되고, 잘 살다 보니 잘 쓴다. 이게 선순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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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이강룡 저 | 유유
번역가이자 글쓰기 교육 전문가인 이강룡이 쓴『번역자를 위한 우리말 공부』(유유)는 한국어 실력을 제대로 갖추어야 훌륭한 번역자가 될 수 있다고 말하는 책이다. 원서를 분석하고 외국어 공부를 하는 것 말고, 평소 한국어 의사소통 습관을 잘 들여야 번역자에게 좋은 글쓰기 태도가 몸에 밴다고 그는 주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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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이준수
커피로 세상을 사유하는,
당신 하나만을 위한 커피를 내리는 남자.
마을 공동체 꽃을 피우기 위한 이야기도 짓고 있다.
앙ㅋ
2014.09.18
간결하고 명확해서 좋네요. 우리말을 잘해야 외국어도 유창하게!
skyy1116
2014.09.18
담아갈게요 ^-^
서유당
2014.09.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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