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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호 “죄 없는 사람이 죄인이 되는 부조리의 시대”

『차남들의 세계사』 이기호 작가와의 만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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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 24일, 서울 망원동의 카페에서 독자들이 만난 이기호 작가는 낭독만은 피하고 싶어 했다. 대신 소설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차남들의 세계사』는 전두환 정권 시절 간첩 사건에 휘말린 어수룩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최근 5년 동안 잡고 있던 장편 소설 『차남들의 세계사』를 쓴 이기호 작가는 얼마 전 아일랜드를 다녀왔다. 한국어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한국어로 된 소설을 낭독한다는 것이 무척 어색했다고 전했다. 지난 8월 24일, 서울 망원동의 카페에서 독자들이 만난 그는 낭독만은 피하고 싶어 했다. 대신 소설을 둘러싼 다양한 이야기를 들려줬다. 『차남들의 세계사』는 전두환 정권 시절 간첩 사건에 휘말린 어수룩한 한 남자의 이야기다. 국가권력이 소재로 등장해서 국가와 사회를 생각하게 만든다. 이전 작품들을 통해 유쾌하고 익살스러운 이야기꾼 면모를 보여 온 작가의 또 다른 모습을 만날 수 있다. 물론 이기호 작가의 유쾌함과 익살도 살아 있다. 이날 행사는 소설가 정용준의 사회로 진행됐다. 

 

작가만남-이기호

 

근황은 어떤가?


책이 나온 지 얼마 안 됐다. 출판사에서 이런저런 일을 시키더라(웃음). 오늘 같은 일정도 있고. 크게 다른 건 없다. 글을 써야하는데, 좀처럼 글이 잘 써지지 않아서 낑낑 거리고 있다.

 

이 책을 2009년부터 썼다. 5년 동안 품고 있었다. 차마 서둘러 쓸 수 없었다고 하던데, 이 소설을 품고 있으면서 차마 서둘러 쓰지 못했던 이유도 있을 것 같고, 그렇게 나온 책에 대한 소회를 듣고 싶다.

 

생각하고 있던 만큼의 시간이 걸린 것 같다. 나는 단편소설과 장편소설을 쓰는 작법이 다르다. 단편은 플롯(구성)을 잡아놓고 쓰지 않는다. 첫 문장과 마지막 문장이 떠오르면 단편소설을 쓰기 시작한다. 출발을 하면 빨리 끝낸다. 그러나 장편은 그렇지 않다. 꽤 많은 자료 조사를 하고 오랜 시간 플롯을 섬세하고 촘촘하게 짜놓는 스타일이다. 처음 1부를 쓸 때는 플롯이 정해져 있었는데, 문제가 생겼다. 대부분 작가도 마찬가지겠지만, 연극배우처럼 작중 인물에게 감정이입이 될 때가 있다. 그렇지 않으면 내면 심리에 대해 얘기할 수가 없다. 내면은 논리만으로 설명될 수 없으니까. 그렇게 감정이입이 되니까, 생각했던 플롯과 사건으로 소설을 쓸 수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더라.

 

이 소설을 쓴 기간은 5년이지만, 멈칫거리고 있던 시간이 4년이었다. 또 한국소설 판은 단편 위주다. 장편을 쓰고 있으면 단편 청탁이 들어온다. 우리나라 작가들의 창작 원동력이 마감이다(웃음). 그러니 마감이 있으니 단편을 먼저 쓰고 장편을 미룬다. 쓰다가 한번 멈추면 다시 감정이입을 하는데 시간이 걸린다. 뭔가 다시 시작하는 느낌으로 감정이입을 해서 써나간다. 그러다가 또 단편 마감이 다가온다. 잘 됐다, 괴로운데, 이러면서 미뤄지고. 그렇게 나온 결과물이 이 책이다.

 

제목의 ‘차남’은 이기호 작가의 소설 속 인물을 압축적으로 드러내는 핵심인 것 같다. 그래서일까. 읽기 전부터 등장인물에 대해 억울하고 짠하고, 울분에 차 있지만 그걸 풀지 못하는 지질한 성격의 소유자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라.  


나는 ‘세계사’에 더 집중했다(웃음). 책에는 차남이 나오지 않는다. 사회자의 말처럼 정치적으로 억압받는 등 총체적으로 억압받는 존재를 아우르는 것으로 ‘차남’이라는 단어를 썼다. 나도 차남으로 살아서 설움과 울분, 아쉬움을 잘 알고 있다(웃음).

 

이 소설의 가장 큰 특징은 화법인 것 같다. ‘이기호 방식’이라는 생각이 들더라. 변사 같기도 하고, 대화하는 것 같기도 하고, 심리학자처럼 말하기도 하고, 작가의 의도가 있었을 것 같다.


소설을 문학적으로 습득했다기보다 이야기로서 먼저 받아들였다. 구식일 수 있는데, 나는 할머니에게 이야기를 들으면서 자란 세대다. 소설을 쓸 때도 그런 형식을 취하기도 한다. 소설이 궁극적으로 세상을 변화시킬 수 있으면 좋겠지만, 현실적으로는 안 되고. 나는 한두 사람에게라도 내 이야기가 가닿을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그래서 플롯을 심각하게 생각하지 않는다. 글을 쓰면서 막힐 때가 많은데, 문장을 다듬고 그러지 않는다. 그때의 내 마음을 드러내자고 생각하면서 문장을 꺼낸다.

 

이 책을 시작하게 된 동기가 있다면?

 

책은 강원도 원주가 배경이다. 실화를 바탕으로 허구적인 인물이 나온다. 나는 소설가지만 가장 잘 아는 공간이나 인물에 대해 쓴다. 그래서 내 글에는 원주가 많이 나온다. 지금 내가 사는 곳은 광주인데, 아직은 잘 모른다. 원주에서 태어나 가장 오래 살아서 그곳이 배경으로 자주 나온다. 잘 알기 때문에 문장에 대해서도 자신감도 생긴다. 『양철북』을 쓴 귄터 그라스는 그 자신의 할아버지와 할머니에 대한 역사를 잘 모르는 인간은 작가가 될 자격이 없다고 말했다. 즉, 자기 정체성을 강조한 것이다.

 

이 소설 속 사건의 배경은 부산 미문화원 방화사건인데, 당시 주범들이 원주로 도망쳐 온다. 그들이 숨어 들어간 곳이 가톨릭교육관이었다. 왜 이 사건부터 시작했느냐면, 1987년, 나는 수배자들이 있었던 그곳에서 묵었는데, 이 이야기를 들었다. 당시 그들을 숨겨줬던 신부님이 잡혀갔다더라. 신부가 잡혀갔다니, 어린 나이에 충격을 받았다. 이 소설을 쓰기 직전에도 교육관을 왔다 갔다 했다. 그러면서 이 소설이 시작됐다. 그때 가졌던 의문에 살을 붙이면서 소설을 써나갔다. 처음에는 간단한 소동극이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죄가 없는 사람이 어느 날 죄인이 돼서 무죄를 증명하기 위해 노력하다가 죄인이 되는 부조리한 사건. 이 정도로만 비쳤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는데, 쓰면서 이런 부조리함은 어디에서 오는 것인가, 개인의 문제인가 시대의 문제인가, 이런 의문들이 결합되면서 소소하게 갈 수 없겠다는 생각이 들더라.

 

책을 읽으면서 어느 순간 딱 멈췄다. 주인공이 순한 인물인데, 얼마나 기구한 인생을 살 것인지 그려지면서 답답해지더라. 그런 인물을 그리면서 힘들지 않았나?

 

내게 힘이 겨웠던 서사는 나쁜 놈들의 서사다. 작가로서 마냥 감정이입만 할 수도 없고, 감정이입을 했다가도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할 순간이 있을 수밖에 없다. 이게 소설의 힘이라고 생각한다. 어떤 분들은 단식을 하는데, 어떤 분들은 삼시 세끼를 잘 먹는다. 그게 인간이다. 아무리 나쁜 짓을 해도 집에 들어가서는 웃는 얼굴로 가족을 만난다. 작가로서는 그런 것을 종합적으로 파악해야하니까 힘이 들 수밖에 없다. 이 책은 원고지로 1100장 가량인데, 몇 배의 파지가 나왔다. 등장인물들의 서사가 지금처럼 가지 않았다. 나복만은 죽기도 했었다.

 

지금 나는 한 대학의 문예창작과에서 글쓰기를 가르친다. 학생들에게 내 작품을 보여주면 엄청나게 날카롭게 분석한다. 작가 뺨을 때린다(웃음). 다른 동료 작가 작품에 대해서도 핵심을 찌른다. 그렇게 날카롭게 지적하면서도 자기들이 글을 쓰면 개판 오 분 전이다. 나도 마찬가지였다. 신인일 때는 내 작품이 죽인다며 혼자 ‘자뻑’을 했다. 남들이 뭐라고 하면 소설을 잘 모른다며 말했었다. 자기 스스로의 감정에서 헤어 나오질 못했다. 소설을 조금씩 써나가면서 얻은 하나가 있다. 소설 쓰는 방법이 좋아진 것이 아니라, 내 작품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을 갖추게 됐다. 습작생과 작가의 가장 큰 차이는 자기 작품에 대해 객관적인 시선을 갖출 수 있느냐다. 그것만 확보하면 작가가 될 수 있다. 그런데 그게 쉽지 않지.

 

작가만남-이기호

 

이 세계에 대해, 악에 대해 소설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일까?

 

이 소설은 2014년에 나왔지만, 2013년 겨울에 마침표를 찍었다고 보면 된다. 이 소설을 처음 쓰기 시작한 2009년은 이명박(MB)정부가 들어선 1년 후였다. 무슨 이유에선지 모르겠는데 MB정부가 들어서면서 내 감수성이 훼손되고 있다는 생각이 들더라. 데뷔했을 때는 김대중 정부였는데, 당시 내게 주어진 감각은 정치적 민주주의가 과거와 달라졌다는 것이었다. 나는 당시 소설의 중요한 요소가 재밌고 흥미 있는 이야기에 있으니 그 방향으로 가겠다는 생각을 했었다. 말하자면 엔터테인먼트지. 흥미위주의 진귀한 이야기로 가면 재밌고 나쁘지 않겠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SF를 쓰고 싶어서 준비도 하고 있었다.

 

그러다가 어느 순간, 어떤 작가들 때문에 충격을 받았다. 당시에도 나는 광주에 있었는데, 서울보다 한 단계 늦게 거리감을 두고 온다. 용산 참사도 그랬다. 작가에게 중요한 것은 공감 능력이라고 보는데, 그해 무더운 여름, 용산역에 내렸다. 한 작가가 참사 현장에서 땀을 뻘뻘 흘리며 피켓을 들고 서 있는 것을 봤다. 이런 것들이 점진적으로 다가오면서 소설이라는 것을, 소설의 범위라는 것을 내가 축소시키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사람들에게 별다른 영향력으로 다가서지 않는다고 해도 소설가들은 뭔가를 보여줘야 하지 않을까.

 

 『차남들의 세계사』에서 나복만을 그렇게 만든 것은 힘들기는 했지만, 나에겐 의미였고 희망이었다. 지금 우리 시대에 소설이 갖는 의미가 예전의 『난장이가 쏘아올린 작은 공』이나 『광장』이 나오던 시절의 소설과 다르다. 그때는 소설이 어마어마한 영향력을 갖고 있었다. 정치적인 영향력은 물론이고. 소설을 보면서 자기가 어떻게 살아가야겠다는 생각을 했던 거지. 그런데 내가 이전에 쓴 소설은 그렇지 않았다는 것을 깨달았다. 후루룩 넘기면서 하하하 웃고 툭 끊기는 것. 그러나 이번 소설을 쓰면서 나는 더 이상 그럴 수 없겠다고 생각했다.  
 
작가의 말씀을 들으니, 같은 소설가 입장에서 내가 쓰고 싶은 것과 써야만 할 것 같은 것, 외면하고 싶으나 그럼에도 작가의 의도를 간섭하는 불편한 기운이 내게만 있는 것이 아님을 확인했다. 다른 작품에서 작가가 했던 말인데, 자신이 손만 부지런하면 소설을 쓰겠다는 그 마음은 변함이 없나? 
 
학교에서 학생들과 공부하고 가르치면서 곤혹스러울 때가 있다. 소설창작론이나 글쓰기에 대해 언급한 책이 굉장히 많다. 이론만 보면 기가 막힌다. 그런데 그런 책의 작가들에게 왜 글을 이따위로 쓰느냐고 묻고 싶다. 학생들에게도 말한다. 짧게 단문을 쓰라고. 형용사와 부사, 접속사 쓰지 말라고. 이론과 실제는 그런데 다르다. 이 소설에서 나복만 캐릭터에 영감을 준 사람은 1980년 진도간첩단 사건에 억울하게 연루된 한 사람이었다. 안기부에서 공작을 하고 법원에서 사형을 구형했었는데, 증거가 일본산 라디오 한 대였다. 사형 선고를 받고는 이 분이 대법원 판사에게 네 문장짜리 호소문을 썼다. 아무런 죄 없는 사람에게 이런 최고형을 내리는 것은 가혹하지 않습니까. 이런 식의 문장이었는데, 맞춤법도 제대로 맞추지 못한 호소문이었다. 그렇다고 학생들에게 맞춤법을 틀리더라고 진정성으로 쓰라고 말할 수는 없잖나.

 

요즘 그런 생각이 들기도 한다. 집중력이 발휘되는 진정한 순간이 오면 의도하지 않은 (좋은) 문장이 쏟아질 때가 있다. 신이 깃든 순간이 아닐까 싶다. 동료작가의 글을 볼 때도 그렇다. 훈련과 집중을 하다가 그 순간이 나올 때까지 기다리는 수밖에 없다고 생각한다. 그렇다고, 기다려라, 신이 올 것이다, 마음을 정제해라, 이렇게 말할 수는 없다. 지금 시대가 글쓰기에 있어서는 최악의 환경이다. 아무리 좋은 컴퓨터 프로그램을 갖고 있어도 신이 깃들 수 없는 환경이거든(웃음). 조금 다르게 갈 수밖에 없지 않은가 싶다.  
 
앞으로 어떻게 쓰실 것인지, 어떤 글을 쓰고 싶은지 궁금하다.

 

앞선 소설이 『사과는 잘해요』였다. 포털사이트에 연재했던 작품으로 매일이 마감이었다. 그때는 작가 같은 느낌이 들더라. 공지영 작가와 같은 시기에 연재했는데, 공지역 작가는 댓글이 하루에 몇 백 개 이상 달렸다. 내 것에는 고작 몇 개가 달리고(웃음). 나는 다음 작품을 생각하는 사람이 아니다. 『사과는 잘해요』를 내고 한 기자와 이야기를 할 기회가 있었다. 죄에 대해 이야기를 하다가 다음 작품도 죄를 다룬 작품을 쓸 수도 있다고만 말했는데, 『차남들의 세계사』가 나오자 죄 2부작이 나왔다고 하더라. 전혀 상관이 없는 건데(웃음).

 

내게 작가라는 자의식이 왜 없는지 생각해보니 박경리 선생이나 박완서 선생도 소설을 어떻게 써야하는지, 즉 소설에 대한 두려움을 말씀하셨다. 소설 쓰는 햇수, 작품 권수가 늘어나면서 소설을 능수능란하게 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는 첫 문장에 대한 공포가 여전히 무척 크다. 평생 안고가야 할 공포일 수도 있고.

 

그런데 진정성이 진실은 아니다. 진정성이라는 단어는 철학 용어로 알고 있는데, 그것은 부정하는 것이다. 현재의 나를 계속 부정하는 그런 의미로 알고 있다. 내가 남녀의 사랑이야기를 잘 써서 호평을 받았다고 치자. 그러면 다음 작품은 이와 비슷하게 가면 호평 받을 것임을 안다. 철학에서 이런 것은 진정한 것이 아니다. 앞선 작품을 부정하고 다른 것으로 가야 한다. 진정성은 현재의 나에 대해 정의내릴 수 없음이다. 내가 작가라는 자의식을 가질 수 없는 것은 어쩌면 그나마 나은 상태다. 작가가 아니라는 생각, 작가가 무엇인지 모른다는 생각이 있어야 작가로서의 진정한 자의식이 생기지 않을까. 나에겐 가장 어려운 지점이 그런 것이다.

 

 내게도 쉬운 것이 있다. 나복만 같은 사람이 1부와 같이 바보 같고 찌질한 짓을 하다가 망해버리는 이야기. 내겐 그런 것이 쉽다. 그것을 넘어선 2부가 정말 어려웠다. 앞으로 쓸 다른 작품은 이번 것과 또 달라야 하는 것이지. 선배 작가로부터 배운 것이 이런 것이다. 독자의 기대를 배반하면서 다른 길로 가는 것. 그런 것이 자극이 되고 힘과 배움이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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차남들의 세계사이기호 저 | 민음사
이기호 작가의 두 번째 장편소설 『차남들의 세계사』가 출간되었다. 이 작품은 계간 《세계의 문학》에 2009년 가을부터 2010년 겨울까지 연재됐던 『수배의 힘』이 제목을 갈아입고 나온 것이다. 얼떨결에 ‘부산 미문화원 방화 사건’에 연루되어 수배자 신세가 되고 만 ‘나복만’의 삶을 이기호 특유의 걸출한 입담으로 풀어내는 파란만장한 인생 역정으로, 광기의 역사 속에서 한 개인의 삶과 꿈이 어떤 식으로 파괴될 수 있는지를 보여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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