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기 길을 찾아 나서는 그대에게 『구룬파 유치원』
니시우치 미나미가 만든 이야기의 구룬파와 그래픽디자이너 출신 화가 호리우치 세이치가 그려낸 구룬파는 한 사람이 만든 것 같다. 단순하면서도 비례감이며 디테일을 적절히 구사한 그림이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일이 구룬파에게 딱 맞는 것처럼. 사랑하는 내 후배도, 내 후배처럼 자기 길을 찾아 새로운 걸음을 내디딘 이들도, 구룬파가 이룬 낙원의 정경을 이루길 빈다.
2014.03.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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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배, 나 그만두려고요.”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커피 잔부터 부딪친다.
“잘했어!”
십 년 차 나는 후배라고 하지만 그도 이제 마흔 중반이다. 그룹 계열사로 한 번 자리를 옮겨 앉았을 뿐 거의 20년 넘게 다닌 일터에서 애면글면 정성을 쏟았으니 쉬이 사표가 수리될 리 없다. 그래도 과감하게 책상 정리중이란다. 스스로도 ‘심사숙고’가 지나쳐 ‘장고악수(長考惡手)’를 반복한다며 괴로워하는 처지이니, 그 준열한 결정에 무슨 말을 덧붙이랴. ‘잘했다’고 거듭 추임새 넣어가며 마음고생하는 얘기며 새로운 계획을 듣는 와중에 머릿속으로는 분주히 그림책 서가를 뒤진다. 무슨 책이더라? 코끼리가 여러 직장을 떠돌다 마침내 제 일을 찾고 행복해지는 그림책인데… 코끼리가 썼다는 글씨가 속표지에 나오는 일본 그림책인데!
후배와 헤어지고 돌아오자마자 만사 제쳐놓고 『구룬파 유치원』 을 찾아낸다. 정글에 사는 게으름뱅이 외톨이 코끼리 구룬파는 걸핏하면 외롭다며 눈물을 흘리고 풀밭에서 진흙투성이가 되도록 딩구는 탓에 모두들 눈살을 찌푸리는 문제거리다. 코끼리들은 어느 날 ‘구룬파 대책 회의’ 열고 분분한 논의 끝에 ‘일을 하게 내보내자’고 결정한다. (처음 이 그림책을 읽었을 때 구룬파의 고군분투에 몰입했던 것과 달리 이번에는 코끼리들이 구룬파 문제에 대한 해결책으로 ‘일’을 제안한 데 감탄한다. 모름지기 일을 할 때, 일다운 일을 할 때 삶이 꽃피는 법! 세상 모든 고전 명작이 그렇듯 뛰어난 그림책 또한 읽을 때마다 새로운 감동을 안겨주는 것이다.) 구룬파는 무리의 도움을 받아 멋지게 바뀐 모습으로 바깥세상을 향해 떠난다.
구룬파가 처음 일하러 간 곳은 비스킷 가게. 그러나 구룬파가 힘껏 일해서 만든 비스킷은 너무 크고 비싸서 아무도 사지 않는다. 주인 아저씨가 말한다. “구룬파야, 이제 비스킷 만드는 일은 그만두어야겠다.”
비스킷 공장
자기가 만든 비스킷을 코에 얹고 다시 길을 떠난 구룬파는 접시 가게에서도 너무 큰 접시를 만드는 바람에 쫓겨나고, 구두 가게에서는 너무 큰 구두를 만든 탓에, 피아노 공장에서는 너무 큰 피아노를 만든 탓에, 자동차 공장에서는 너무 큰 자동차를 만든 탓에 쫓겨난다. 적당한 크기에 대한 감각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정해놓은 크기대로 똑같은 것을 만드는 일이 구룬파에게 맞지 않는 것이다. 이런 연유를 알 리 없는 구룬파는 눈물이 나려고 한다. 예전처럼 외롭고 처량한 절망의 수렁에 발을 내디디려 한다.
자동차에다 실패작을 싣고 떠나는 구룬파
그런데 뜻밖의 일이 생긴다. 아이 열둘을 입히고 먹이며 돌보느라 쩔쩔매는 한 엄마를 만나게 된 것이다. 엄마는 구룬파를 보자 대뜸 부탁한다. “미안하지만 아이들과 같이 놀아주겠니?” 그래서 구룬파는 절망을 향해 털털거리며 달리던 자동차를 멈추고 아이들과 함께 놀기로 한다. 자기가 만든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하자 열두 아이들이 즐거워하고, 우렁찬 연주와 노래를 듣고 어디선가 다른 아이들도 몰려든다. 꼭 구룬파 자기 같은 외톨이 아이들도 몰려든다. 너무 커다란 피아노로 신나게 노래하고 놀며, 아무도 사가지 않는 너무 커다란 비스킷을 넉넉하게 나눠먹는다. 그제야 구룬파는 자기가 하고싶은 일을, 해야 할 일을 깨닫는다. 자기 모습 그대로 아이들과 함께 노는 유치원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이제 아이들은 구룬파가 만든 너무 커다란 구두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너무 커다란 접시 수영장에서 헤엄치고 논다. 먹어도 먹어도 없어지지 않는 커다란 비스킷을 먹어가면서.
멋진 구룬파 유치원
니시우치 미나미가 만든 이야기의 구룬파와 그래픽디자이너 출신 화가 호리우치 세이치가 그려낸 구룬파는 한 사람이 만든 것 같다. 단순하면서도 비례감이며 디테일을 적절히 구사한 그림이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일이 구룬파에게 딱 맞는 것처럼. 사랑하는 내 후배도, 내 후배처럼 자기 길을 찾아 새로운 걸음을 내디딘 이들도, 구룬파가 이룬 낙원의 정경을 이루길 빈다.
※ 함께 건네고 싶은 책 ※
윌리엄 모리스 평전
박홍규 저 | 개마고원
‘노동의 즐거움’을 통해 삶을 예술처럼, 예술을 삶처럼 추구하며 실험했던 백 년 전의 선각자를 만날 수 있다.
[관련 기사]
-혼내고 야단친 아이에게 - 『오늘은 좋은 날』
-나눔과 베품을 배워야 하는 아이에게, 『돌멩이국』
-자기 힘으로 살아가야 할 때 『꼬마 다람쥐 얼』
-새 옷을 장만할 때
-나날이 지루하다는 절망에 사로잡힐 때
말이 떨어지기도 전에 커피 잔부터 부딪친다.
“잘했어!”
십 년 차 나는 후배라고 하지만 그도 이제 마흔 중반이다. 그룹 계열사로 한 번 자리를 옮겨 앉았을 뿐 거의 20년 넘게 다닌 일터에서 애면글면 정성을 쏟았으니 쉬이 사표가 수리될 리 없다. 그래도 과감하게 책상 정리중이란다. 스스로도 ‘심사숙고’가 지나쳐 ‘장고악수(長考惡手)’를 반복한다며 괴로워하는 처지이니, 그 준열한 결정에 무슨 말을 덧붙이랴. ‘잘했다’고 거듭 추임새 넣어가며 마음고생하는 얘기며 새로운 계획을 듣는 와중에 머릿속으로는 분주히 그림책 서가를 뒤진다. 무슨 책이더라? 코끼리가 여러 직장을 떠돌다 마침내 제 일을 찾고 행복해지는 그림책인데… 코끼리가 썼다는 글씨가 속표지에 나오는 일본 그림책인데!
구룬파가 처음 일하러 간 곳은 비스킷 가게. 그러나 구룬파가 힘껏 일해서 만든 비스킷은 너무 크고 비싸서 아무도 사지 않는다. 주인 아저씨가 말한다. “구룬파야, 이제 비스킷 만드는 일은 그만두어야겠다.”
비스킷 공장
자기가 만든 비스킷을 코에 얹고 다시 길을 떠난 구룬파는 접시 가게에서도 너무 큰 접시를 만드는 바람에 쫓겨나고, 구두 가게에서는 너무 큰 구두를 만든 탓에, 피아노 공장에서는 너무 큰 피아노를 만든 탓에, 자동차 공장에서는 너무 큰 자동차를 만든 탓에 쫓겨난다. 적당한 크기에 대한 감각이 없어서라기보다는, 정해놓은 크기대로 똑같은 것을 만드는 일이 구룬파에게 맞지 않는 것이다. 이런 연유를 알 리 없는 구룬파는 눈물이 나려고 한다. 예전처럼 외롭고 처량한 절망의 수렁에 발을 내디디려 한다.
자동차에다 실패작을 싣고 떠나는 구룬파
그런데 뜻밖의 일이 생긴다. 아이 열둘을 입히고 먹이며 돌보느라 쩔쩔매는 한 엄마를 만나게 된 것이다. 엄마는 구룬파를 보자 대뜸 부탁한다. “미안하지만 아이들과 같이 놀아주겠니?” 그래서 구룬파는 절망을 향해 털털거리며 달리던 자동차를 멈추고 아이들과 함께 놀기로 한다. 자기가 만든 피아노를 연주하며 노래하자 열두 아이들이 즐거워하고, 우렁찬 연주와 노래를 듣고 어디선가 다른 아이들도 몰려든다. 꼭 구룬파 자기 같은 외톨이 아이들도 몰려든다. 너무 커다란 피아노로 신나게 노래하고 놀며, 아무도 사가지 않는 너무 커다란 비스킷을 넉넉하게 나눠먹는다. 그제야 구룬파는 자기가 하고싶은 일을, 해야 할 일을 깨닫는다. 자기 모습 그대로 아이들과 함께 노는 유치원을 만들기로 한 것이다. 이제 아이들은 구룬파가 만든 너무 커다란 구두에서 숨바꼭질을 하고, 너무 커다란 접시 수영장에서 헤엄치고 논다. 먹어도 먹어도 없어지지 않는 커다란 비스킷을 먹어가면서.
멋진 구룬파 유치원
니시우치 미나미가 만든 이야기의 구룬파와 그래픽디자이너 출신 화가 호리우치 세이치가 그려낸 구룬파는 한 사람이 만든 것 같다. 단순하면서도 비례감이며 디테일을 적절히 구사한 그림이 모자라지도 않고 넘치지도 않는다. 아이들과 함께 지내는 일이 구룬파에게 딱 맞는 것처럼. 사랑하는 내 후배도, 내 후배처럼 자기 길을 찾아 새로운 걸음을 내디딘 이들도, 구룬파가 이룬 낙원의 정경을 이루길 빈다.
※ 함께 건네고 싶은 책 ※
박홍규 저 | 개마고원
‘노동의 즐거움’을 통해 삶을 예술처럼, 예술을 삶처럼 추구하며 실험했던 백 년 전의 선각자를 만날 수 있다.
[관련 기사]
-혼내고 야단친 아이에게 - 『오늘은 좋은 날』
-나눔과 베품을 배워야 하는 아이에게, 『돌멩이국』
-자기 힘으로 살아가야 할 때 『꼬마 다람쥐 얼』
-새 옷을 장만할 때
-나날이 지루하다는 절망에 사로잡힐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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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개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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필자
이상희
시인ㆍ그림책 작가, 그림책 번역가로 그림책 전문 어린이 도서관 '패랭이꽃 그림책 버스'와 그림책작가 양성코스‘이상희의 그림책워크샵’을 운영하면서, 그림책 전문 도서관 건립과 그림책도시 건설을 꿈꾸고 있다. 『소 찾는 아이』 『낳으실 제 괴로움 다 잊으시고』『은혜 갚은 꿩이야기』『봄의 여신 수로부인』등에 글을 썼고, 『심프』『바구니 달』『작은 기차』『마법 침대』등을 번역했으며, 그림책 이론서 『그림책쓰기』, 『그림책, 한국의 작가들』(공저)를 펴냈다.
94jina
2014.08.21
앙ㅋ
2014.07.10
별B612호
2014.03.26
어린이용 그림책이지만 코끼리 구룬파를 만나 저도 너무 행복했어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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