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나나피시』
요시다 아키미 글그림/김수정 역 | 문학동네
2025년 올해 연재 40주년을 맞이하는 뉴욕 배경의 하드보일드 작품. 지금은 서점을 통해 해외 원서도 쉽게 접할 수 있지만 내가 이 작품을 처음 만난 것은 일본 대중문화 개방 전, 보따리상들의 수입품점에서였다. 샛노란 바탕의 심플한 표지에 이끌려 호기심에 구매했지만, 고등학교에서 일본어를 막 배우기 시작했을 때라 내용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하고 선생님께 가져가서 물어봤는데, 하필 범죄 관련 대사였던 탓에 부적절한 콘텐츠를 본다고 오해한 선생님께 야단을 맞았고, 혼자 읽을 수 있도록 일본어를 제대로 공부해 봐야겠다고 결심했다.
애시와 에이지, 두 주인공의 관계성이 유명한 작품이지만 마피아로부터 착취당해 온 애시가 자유를 찾기 위해 분투하면서 파고들게 되는 마피아, 정계, 군이 얽힌 어두운 음모는 작금의 국제사회 어느 국가에서나 있을 법한 이야기라 세월을 타지 않는 명작의 조건은 역시 보편성에 있음을 다시금 느꼈다.
뉴욕 | 도시
좋아하는 작품을 보면 그 배경으로 쓰인 곳을 찾아가 보고 싶다. 노린 건 아니지만 1985년 5월 『바나나피시』 연재 시작으로부터 꼬박 40년이 흐른 올해 5월에 뉴욕을 찾게 되었다. 빠르게 모습을 바꾸어가는 아시아권 도시들과 달리 뉴욕은 과거라는 뼈대에 계속 살을 덧발라가는 인상이었다. 뉴욕공립도서관 열람실의 의자, 센트럴파크의 벤치……. 도시 곳곳에서 개인이 기부한 자원들이 살아 숨 쉬며 사람들을 맞이해준다. 멈출 수 없는 변화 속에서 영원히 존재하는 방법을 찾아낸 도시가 아닐까.
『무한도시 NO.6』
아사노 아쓰코 저/양억관 역 | 까멜레옹
아동소설이지만 내용은 지배와 저항, 조화의 이야기다. 완벽한 이상향으로 보이는 과학 도시 no.6의 시민들은 첨단기술로 관리되는 벽 안쪽의 도시에서 풍요롭게 생활하지만 그 안에도 계급은 있다. 2세 때 최고 랭크의 지능을 기록, 엘리트 시민으로 살아가던 시온은 12세 생일날, 폭풍우 치는 밤에 정체를 알 수 없는 소년 ‘생쥐’를 만난다. 생쥐는 체제에 순응하며 살아가던 시온의 호기심을 강하게 자극한다. 그러나 그를 만나 알게 된 no.6의 과거와 현재의 참모습은 피비린내 나는 약탈과 위선으로 얼룩져 있다. no.6의 중추부를 파괴한 후 생쥐는 시온에게 재회를 약속하며 떠나는데, 올해 일본에서 작품 완결 14년 만에 본편 2년 후를 배경으로 하는 신작이 발표되었다.
요네자와 호노부와의 인연은 조금 늦게 시작되었는데 하필 스타트가 좋지 않았다. 『빙과』로 국내에 알려진 요네자와 호노부의 작품 중 『인사이트밀』을 가장 처음 읽었고, 사람 목숨을 게임처럼 다루는 영악한 내용에 거부감이 너무 커서 계속 피해 다녔다. 처음 의뢰받은 작품은 『야경』이었는데 이때만 해도 여러 핑계를 대며 고사하려 했다. 그래도 거듭 설득해서 나를 붙들어준 당시 편집자께는 지금도 고마운 마음뿐이다. 고전부 시리즈는 물론이고 얼마 전 너무나 만족스럽게 대단원의 막을 내린 소시민 시리즈, 베루프 시리즈 등을 통해 작품 속에 드러나는 작가의 성실하면서도 올곧은 인성에 경의를 표하게 되었고 한두 개의 작품으로 작가를 판단한다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 일인지 뼈저리게 느끼게 되었다.
<크리미널 마인드> | 드라마
미스터리를 좋아하는 사람치고 프로파일링에 흥미를 느끼지 않는 사람이 있을까? 범죄 행태를 통해 연쇄살인범을 체포하는 FBI 행동 분석팀의 이야기로, 최근 시즌 18이 나왔다. 각 에피소드마다 내용과 관련된 격언이 나오는 것이 특징이다. 관찰을 통한 가설과 이를 뒷받침하는 증거 수집으로 범죄자의 정체에 다가가는 구조라 드라마 속 프로파일러는 누구보다도 상대를 잘 관찰하고 주변인들과 적절한 커뮤니케이션을 취할 줄 안다. 드라마이기에 가능하겠지만 이 시리즈의 가장 큰 미덕은 사건을 해결하기 위해서, 생명을 구하기 위해서 손익을 재지 않는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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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영
번역가. 『가공범』, 『흑뢰성』, 『고백』, 『야경』, 『쌍두의 악마』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일본 미스터리 문학에서 왕성한 활동을 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