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완서에게 이별을, 무라카미 하루키에게 재회를 고하다
구들장에 붙어서 하는 독서, 옆으로 삐딱하게 누워서 더운 계절에는 차가운 방바닥에 추운 계절에는 뜨신 방바닥에 붙어서 하는 독서, 참으로 방구석의 방바닥이야말로 독서 잡식가가 있을 곳이다. 방구석의 방바닥이라니 폐소공포증 환자라면 단숨에 협심증에 걸릴 것 같은 지명이다. 그러면 11월 하반기의 방구석 독서 몇 권과 11월 방구석상을 수여해 보자.
글ㆍ사진 김현진(칼럼니스트)
2013.11.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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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 생각지 못하게 지방에 머물고 있다. 나그네 신세면 곤란한 것이 책이 없다는 것인데, 지역 주민에게는 한 번에 3권까지의 책을 빌려 주는 이 지역 대학의 고마운 방침으로 대학 도서관에서 책을 대출받기 시작했다. 도서관에서 책을 보는 우아한 습관의 독서가들도 있지만 나에게 책은 오로지 방구석이다. 구들장에 붙어서 하는 독서, 옆으로 삐딱하게 누워서 더운 계절에는 차가운 방바닥에 추운 계절에는 뜨신 방바닥에 붙어서 하는 독서, 참으로 방구석의 방바닥이야말로 독서 잡식가가 있을 곳이다. 방구석의 방바닥이라니 폐소공포증 환자라면 단숨에 협심증에 걸릴 것 같은 지명이다. 그러면 11월 하반기의 방구석 독서 몇 권과 11월 방구석상을 수여해 보자.

특별순서로 박완서 고별전도 있다. 당장 옆에 있는 책들을 돌아보니 다나베 세이코의 『서른 넘어 함박눈』, 오쿠다 히데오의 『소문의 여자』, 박완서의 『노란 집』, 영국문학과 작가를 다룬 『서지문의 소설 속 인생』 등등이 있는데 11월 방구석상은 웬디 웰치의 『빅스톤갭의 작은 책방』에 돌아간다. 이 책이야말로 방구석의 방바닥에서 하는 독서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물론 모든 독서가와 애서가의 사랑을 받을 만한 책이다. 책 뒤편의 김경 작가가 쓴 추천사에 낚여서 집어들었다가 엄마까지 읽게 하고 반납했는데, 책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이 책을 싫어할 수 없을 것이다.

무대뽀 용기로 헌책방 차린 이야기와 『클라리사』 같은 고전에 대한 정당한 험담(길이로 원고료로 받았을 거야!)까지 알토란처럼 꼭꼭 들어찬 이런 책을 어떻게 싫어할 수 있담. 지금 이 페이지에 들어온 분이라면 꼭 읽어 보시길. 별로 안 유명한 사람이 책에 대해서 이러쿵 저러쿵 떠들고 있는 이런 페이지를 클릭할 정도의 애서가시라면 당신은 틀림없이 이 책을 좋아할 것이다. 말해 뭘해, 입만 아프지. 그냥 읽으세요, 후회 안 하실 테니까. 짝짝짝. 웬디, 수고하셨어요. 오랜만에 읽고 있는 동안 책이 끝나지 않기를 바랐던 경험이었어요.


장원보다 내가 받은 이 달의 충격 중 하나는 박완서다. 아무래도 이제는 박완서를 그만 읽을 때가 된 것 같다. 나도 말하면서 이게 무슨 소린지 모르겠지만 『노란 집』을 읽고 나서 이제는 박완서를 떠나보내야 할 때가 왔다는 생각이 마침내 든 것이다. 어떤 생각인고 하니, ‘이제는 그만!’이라는 다섯 글자다. 박완서가 싫어졌냐고? 그럴 리가, 박완서의 글은 싫어하거나 좋아할 수 있는 종류의 것이 아니다. 남한 사람이 어떻게 박완서를 싫어할 수 있단 말인가? 그건 나는 우리 어머니를 싫어해요, 나는 우리 할머니를 싫어해요, 나는 우리 이웃들을 싫어해요, 우리 옆집 할머니 짜증나요, 이런 말과 비슷하다. 박완서를 싫어한다는 것은 일종의 신성모독이다. 열심히 살았던 어른들 이야기가 싫고 소박하게 살아가는 이웃집 이야기가 싫다고 공식적으로 밝히는 거나 마찬가지다. 이웃집에 착하고 음전하고 귀엽고 발랄한 할머니가 사는데 나는 저 할머니가 싫고 짜증난다는 말과 같다.

나는 그 할머니가 싫고 짜증나지는 않지만 이제 다른 길로 돌아가야 할 것 같다. 우리가 박완서를 싫어해서는 안 되고 싫어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가 ‘보통 사람’들의 대표였기 때문이다. 보통 사람들이 갖는 딱 그만큼의 악의, 그만큼의 현실 감각. 이게 박완서의 에세이에 자주 나타나는 것인데 나는 옛날부터 여기에 이상하게 어떤 독성이 느껴졌다. 누구에게는 독성이 아닐 것이다. 그런데 이게 나에게는 어쩐지 있는 그대로의 어떤 착함으로 받아들일 수가 없고, 나에게는 이게 독이라는 느낌을 받은 것이다. 다들 박완서를 사랑하는 이유는 그 무독성 때문인데, 『노란 집』을 읽은 후 그 동안 이십년 가까이 박완서를 읽으면서 나에게는 유독하다고 느꼈던 어느 지점을 느끼게 되었다고 할까. 박완서의 글을 읽고 나면 나도 그래봤자 거기서 거기다, 사람이 다 그렇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되는데 이게 사람이 돈독이나 성공에 대한 독이 오른 상태라면 그걸 바늘로 콕 찔러 바람이 좀 빠지게 해 주지만 그것과 전혀 정반대에 있을 때는 박완서가 말하는 지극히 보통 사람들조차 좀 겁이 난다. 돈이나 성공과 지금 내가 어쩌면 지나치게 거리가 먼 상태라서 그런지, 박완서의 글에서 보통의 상태라고 동의하고 시작하는 그 상태들을 도저히 보통이라고 생각할 수 없게 되고 자꾸 그걸 어정쩡하게 보통이라고 동의하게 되면 내가 살아가고 있는 삶이 돼지본드라도 들이킨 것처럼 이상하게 뒤틀리는 기분이 든다. 잘 표현할 수 없는 느낌이기 때문에 억지로 마음에 있는 몇 가지 단어들을 끄집어서 늘어놓아 나도 뭐가 뭔지 모르겠지만 하여튼 어떤 독서를 하다 보면 나 자신을 여기에서 보호해야 한다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한 마디로 이제는 그 세계의 가치에 동의할 수 없게 된 것이다. 그런데 동의할 수 없다고 말하기가 꽤나 애매한 것들이기 때문에, 내 안에서 뭔가가 이제 그만이라고 호루라기를 분 모양이다. 가족이나 피붙이에 대한 그 끈적끈적한 사랑 이야기 같은 것은 이제 나는 별로 보고 싶지 않다. 그 사랑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앞으로 나에게 주어지기 좀 어려운 것들이라 나를 좀 다른 곳에 옮겨 둘 필요가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인체에 무해한 재미가 좀 필요한데, 박완서의 에세이와는 별개의 문제로 무라카미 하루키의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를 읽고 나서 무라카미 하루키는 이제 됐어, 그만! 하고 외친 것과는 비슷해 보이지만 다르다. 단순히 취향의 문제다. 다자키 쓰쿠루의 순례인지 방황인지를 한참 따라가다가 내 머릿속의 뭔가가 하루키 소설은 이제 됐어, 지겨워, 그만! 이라고 외친 다음 나는 순순히 항복했다. 흐리멍텅한 걸 싫어하다 보니(그렇다, 이게 우아한 취향은 아니다. 늘 여운을 즐길 줄 모르는 독서를 한다고 지적을 받고 있다) 이 책의 앞뒤를 넘겨 보며 이거 1부 아니야? 하고 의심을 하다 말고 두 손 두 발 다 들었다. 그래, 『IQ84』 가 어떻게 됐는지 내가 아직 모르듯 다자키 쓰쿠루에게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도 나는 아마 앞으로 모르겠지, 그런데 알아? 이제 관심도 없어! 앞으로 뭔지 잘 모를 이야기들을 읽으려고 찡찡대는 남자애들이 찡찡대는 이야기들을 읽는 건 이제 딱 질색이야, 하고 결론을 내렸는데 의외로 얇은 에세이 『저녁 무렵에 면도하기』 를 읽고 나서 기분이 유쾌해졌다.

21세기 초반 무렵이니까 무라카미 하루키가 오십 무렵에 패션지 《앙앙》에 연재한 에세이들을 모아 놓은 책이다. 여성해방의 상징으로 불태워진 브래지어들을 떠올리며 브래지어들은 하루하루 자기 일을 했을 뿐인데, 하고 브래지어를 가엾게 여기거나 집안의 업소용 냉장고에 좋아하는 크로켓을 대량으로 만들어 냉동해 두었다가 수리기사를 부를 수 없는 주말, 오필리어처럼 슬프게 녹아가는 크로켓을 이틀에 걸쳐 장렬히 먹어치운 나머지 끝내 크로켓들에게 단체 폭행을 당하는 꿈을 꾸고 말았다는 이런 글들은 하루키 에세이의 정수다. 뭐랄까, 너무나도 인체에 무해한 재미가 있다. 그래서 다자키 쓰쿠루인지 뭔지 하는 놈 때문에 날뛰던 적대감을 순식간에 거두어들이고, ‘하루키는 이제 딱 질색이야’에서 ‘하루키 소설은 여전히 질색인데 에세이는 언제나 귀엽지 인체에 무해하고, 드문 재능이야’로 생각이 얼른 바뀌었다가 문득 궁금해졌다. 나는 소설가를 오랫동안 꿈꾸면서도 소설가가 못 되었으므로 그 기분을 모르는데, 그 사람 에세이는 좋아, 근데 소설은 별로야. 이런 소리를 듣는 작가는 기분이 어떨까? 그가 무엇을 더 중요하게 놓는지 하찮게 놓는지가 여기에서 그가 화를 내는지 아닌지에 따라 결정되지 않을까.


[관련 기사]

-한국 문학의 아름다운 산맥, 박완서를 만나다
-작가 박완서의 미발표 소설이 수록된 『노란집』
-故 박완서 작가의 삶과 작품
-무라카미 하루키 대표작 7
-하루키 소설 속, 색채를 읽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를 읽고



‘대한민국 No.1 문화웹진’ 예스24 채널예스

#박완서 #노란 집 #무라카미 하루키 #색채가 없는 다자키 쓰쿠루와 그가 순례를 떠난 해
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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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

2014.02.25

이번 내용은 생각할 거리가 정말 많네요.. 특히 무라카미에 대해서 느끼는 감성이 저랑 비슷한듯.. ㅎ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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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nee78

2013.11.26

이번 회 참 재밌네요. 공감했습니다~ 박완서 작가에 대한 묘사도, 하루키 소설과 에세이의 유머에 대한 내용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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kokoko111

2013.11.26

우리가 박완서를 싫어해서는 안 되고 싫어할 수 없었던 이유는, 그가 ‘보통 사람’들의 대표였기 때문이다. ___ 맞아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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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현진(칼럼니스트)

'개인적인 것이 정치적인 것'이라는 오래된 캐치프레이즈를 증명이라도 하듯 '88만 원 세대'이자 비주류인 자신의 계급과 사회구조적 모순과의 관계를 '특유의 삐딱한 건강함'으로 맛깔스럽게 풀어냈다 평가받으며 이십 대에서 칠십 대까지 폭넓은 독자들에게 사랑받는 에세이스트. 『네 멋대로 해라』, 『뜨겁게 안녕』, 『누구의 연인도 되지 마라』, 『그래도 언니는 간다』, 『불량 소녀 백서』 등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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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라카미 하루키

1949년 교토에서 태어나 와세다대학교 문학부를 졸업했다. 1979년 『바람의 노래를 들어라』로 군조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데뷔했고, 1982년 장편소설 『양을 쫓는 모험』으로 노마문예신인상을, 1985년에는 『세계의 끝과 하드보일드 원더랜드』로 다니자키 준이치로상을 수상했다. 1987년 『상실의 시대』(원제: 노르웨이의 숲)를 발표, 유례없는 베스트셀러 선풍과 함께 하루키 신드롬을 일으키며 세계적인 작가로 떠올랐다. 1994년 『태엽 감는 새』로 요미우리문학상을 수상했고, 2005년 『해변의 카프카』가 아시아 작가의 작품으로는 드물게 뉴욕타임스 ‘올해의 책’에 선정되었다. 그 밖에도 『스푸트니크의 연인』 『댄스 댄스 댄스』 『국경의 남쪽, 태양의 서쪽』 『먼 북소리』 『이윽고 슬픈 외국어』 『달리기를 말할 때 내가 하고 싶은 이야기』 『1Q84』 『기사단장 죽이기』 등 많은 소설과 에세이가 전 세계 독자들의 사랑을 받고 있다. 2006년에는 엘프리데 옐리네크와 해럴드 핀터 등의 노벨문학상 수상자를 배출한 바 있는 프란츠 카프카상을 수상했고, 2009년에는 이스라엘 최고의 문학상인 예루살렘상을, 2011년에는 스페인 카탈루냐 국제상을 수상했다. 또한 2012년 고바야시 히데오상, 2014년 독일 벨트문학상, 2016년 덴마크 안데르센문학상을 수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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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완서

경기도 개풍(현 황해북도 개풍군) 출생으로, 세살 때 아버지를 여의고 서울로 이주했다. 1944년 숙명여자고등학교에 입학한 뒤 교사였던 소설가 박노갑에게 영향을 받았으며, 작가 한말숙과 동창이다. 1950년 서울대학 국문과에 입학했으나 전쟁으로 중퇴하게 되었다. 개성에서 어린 시절을 보내고 서울에서 학창시절을 보낸 박완서에게 한국전쟁은 평생 잊을 수 없을 없는 기억이다. 의용군으로 나갔다가 부상을 입고 거의 폐인이 되어 돌아온 `똑똑했던` 오빠가 `이제는 배부른 돼지로 살겠다`던 다짐을 뒤로 하고 여덟 달 만에 죽음을 맞이하고, 그후 그의 가족은 남의 물건에까지 손을 대게 되는 등 심각한 가난을 겪는다. 그후 미8군의 PX 초상화부에 취직하여 일하다가 그곳에서 박수근 화백을 알게 된다. 1953년 직장에서 만난 호영진과 결혼하고 살림에 묻혀 지내다가 훗날 1970년 불혹의 나이가 되던 해에 [여성동아] 여류 장편소설 공모에 『나목(裸木)』이 당선되어 등단했다. 그 이후 우리의 일상을 세심하게 관찰하여 그 이면에 숨겨진 진실까지 뼈아프게 드러내는 소설들을 발표하며 한국 문학의 한 획을 긋고 있다. 박완서는 평범하고 일상적인 소재에 적절한 서사적 리듬과 입체적인 의미를 부여함으로써 다채로우면서도 품격 높은 문학적 결정체를 탄생시켰다는 평을 받고 있다. 작가는 우리 문학사에서 그 유례가 없을 만큼 풍요로운 언어의 보고를 쌓아올리는 원동력이 되어왔다. 그녀는 능란한 이야기꾼이자 뛰어난 풍속화가로서 시대의 거울 역할을 충실히 해왔을 뿐 아니라 삶의 비의를 향해 진지하게 접근하는 구도자의 길을 꾸준히 걸어왔다. 한국 전쟁과 분단의 아픔을 다룬 데뷔작 『나목』과 『목마른 계절』, 『세상에서 제일 무거운 틀니』, 『아저씨의 훈장』, 『겨울 나들이』, 『그해 겨울은 따뜻했네』 등을 비롯하여 70년대 당시의 사회적 풍경을 그린 『도둑맞은 가난』, 『도시의 흉년』, 『휘청거리는 오후』까지 저자는 사회적 아픔에 주목하여 글을 썼다. 『살아있는 날의 시작』부터 여성문제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한 작가는 행복한 결혼은 어떤 형태인가를 되묻게 하는 소설인 『서 있는 여자』, 『그대 아직도 꿈꾸고 있는가』, 등 점점 독특한 시각으로 여성문제를 조명하기 시작한다. 또 장편 『미망』, 『그 많던 싱아를 누가 다 먹었을까』, 『그 산이 정말 거기 있었을까』 등에서는 개인사와 가족사를 치밀하게 조명하여 사회를 재조명하기도 한다. 『배반의 여름』은 1975년 9월에서 1978년 9월까지 발표했던 작품들을 수록하고 있다. 「조그만 체험기」, 「흑과부黑寡婦」, 「그 살벌했던 날의 할미꽃」등에서 볼 수 있듯이 박완서가 그리는 모성의 힘은 실로 놀랍다. 성균관대에서 열린 ‘2006 호암상 수상자(예술상) 초청 강연회’에서 박완서는 이렇게 말했다. “내 문학의 뿌리는 어머니”라고. 박완서 특유의 수다스러움으로 풀어내는 모성의 힘은 힘센 것들만이 권력을 쥐고 판을 치는 현대산업사회에서 뒤로 처진 자들의 아픔을 진정으로 위무해준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에는 1987년 1월에서 1994년 4월까지 발표되었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여기에서는 가족의 죽음을 다루고 있는 작품이 네 개나 있는데 그중「여덟 개의 모자로 남은 당신」은 남편의 죽음을,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아들의 죽음을 담고 있다. 「나의 가장 나종 지니인 것」은 특이하게도 처음부터 끝까지 대화체로 되어 있는데 담담하게 이어가는 주인공의 목소리에서 가슴이 메어지는 슬픔을 느낄 수 있다. 『저녁의 해후』에는 1984년 1월부터 1986년 8월까지 발표했던 작품들이 수록되어 있다. 「지 알고 내 알고 하늘이 알건만, 「해산바가지」, 「애 보기가 쉽다고?」 등에서 볼 수 있듯이 여기에서 나타나는 하층민들의 인간애는 가진 자들의 야만성과 대비되어 더욱 빛을 발한다. 『그의 외롭고 쓸쓸한 밤』은 1979년 3월에서부터 1983년 8월까지 발표한 작품들을 수록했다. 이 책에서는 특히 속물성과 위선이 난무하는 현실에 대한 비판이 두드러진다. 젊은 것들의 무관심과 조롱 속에서 외롭게 늙어가는 노인들의 모습을 담아낸 「황혼」, 「천변풍경泉邊風景」과, 출세한 자들의 허위를 그린 「내가 놓친 화합(和合)」, 「그의 외롭고 쓸쓸한 밤」 등이 그것이다. 『미망』은 조선조 말기에서 6ㆍ25 전쟁 직후까지 그 파란만장했던 시대를 한 개성 상인의 가족사를 통하여 재창조한 대하소설이다. 민족의 수난사와 더불어 고난과 격동의 시대를 험준한 산을 넘듯 숨가쁘게 살아온 우리 모두의 이야기로, 박완서 소설 문체가 도달한 궁극적인 경지를 보여 주고 있다. “아직도 글을 쓸 수 있는 기력이 있어서 행복하다.”는 작가는 사람과 자연을 한없이 따뜻한 시선으로 바라보며 느낀 기쁨과 경탄, 감사와 애정을 담아 산문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펴냈다. 「친절한 책읽기」라는 제목으로 신문에 연재했던 글도 함께 실어 노작가의 연륜과 성찰이 돋보이는 글을 선보였다. 1993년부터 국제연합아동기금 친선대사로 활동하며, 1994년부터 공연윤리위원회 위원, 1988년부터 제2건국 범국민추진위원회 위원으로 활동한 바 있다. 『그 가을의 사흘 동안』으로 한국문학작가상, 『엄마의 말뚝』으로 제5회 이상문학상, 『미망』으로 대한민국문학과 제3회 이상문학상, 『꿈꾸는 인큐베이터』로 제38회 현대문학상 등을 받았다. 2006년, 문화예술인으로서 처음이자 여성으로서도 처음으로 서울대학교 명예문학박사학위를 받았다. 평소 입버릇처럼 "전쟁의 상처로 작가가 됐다."고 고백해왔던 그녀는 전쟁의 아픔을 온몸으로 겪은 경험으로 글을 써왔다. 여러 편의 장편소설과 수필집, 동화집을 발표하고, 2010년 8월 수필집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를 마지막으로 2011년 1월 22일, 담낭암 투병 중 별세했다. 경기 구리시에는 '박완서 문학마을'이 조성될 예정이다. 한국문학작가상, 이상문학상, 대한민국문학상, 이상문학상, 현대문학상, 동인문학상, 한무숙문학상, 대산문학상 만해문학상, 황순원문학상, 호암예술상 등을 수상했고, 2006년 서울대학교에서 명예문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타계 이후 문학적 업적을 기려 금관문화훈장이 추서되었다. 그 외 작품으로는 장편소설 『아주 오래된 농담』 『그 남자네 집』, 소설집 『부끄러움을 가르칩니다』, 『저문 날의 삽화』, 『너무도 쓸쓸한 당신』, 『친절한 복희씨』,『기나긴 하루』, 산문집 『꼴찌에게 보내는 갈채』, 『한 길 사람 속』, 『못 가본 길이 더 아름답다』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