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간지 기자이자 책덕후이기도 한 곽아람 작가는 최근작 『매 순간 흔들려도 매일 우아하게』에서 책읽기를 통해 지킬 수 있었던 삶의 품격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어린 시절, 스웨덴의 동화작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읽고 린드그렌의 이름뿐만 아니라 번역자의 이름까지 마음에 새겨 넣었던 곽아람 작가가 이 책을 국내에 처음 번역해 소개한 김경희 번역가와 편지를 주고받았다. ‘독서’와 ‘독서가’의 영역이 확장되는 기분이 들기도 한다. 참, 이들의 편지 속에는 깜짝 놀랄 만한 또 한 명의 작가가 등장한다.
김경희 선생님께
마지막으로 연락드린 지 두 달이 가까워 옵니다. 백신은 잘 맞으셨는지요? 선생님은 항상 제게 먼저 편지를 주시는 분이었는데 제가 이렇게 먼저 편지를 쓰게 되다니 어쩐지 어색합니다.
“사자왕 김경희입니다.”
선생님께서 제게 처음 주셨던 이메일의 제목이 아마도 이랬던 것 같습니다. 2010년 여름이었지요. 당시 저는 어린이책 담당 기자였고, 선생님께서 1983년 처음 우리말로 번역해 국내에 소개하셨던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책 『사자왕 형제의 모험』 개정판이 나왔길래 신문에 소개했습니다. 제가 어릴 적 무척 감명 깊게 읽었던 책이고, 린드그렌의 작품 중 가장 좋아하는 책이라 기사 마지막 구절에 이렇게 썼습니다.
“악의 무리를 소탕하는 과정에서 치명상을 입은 형을 업은 카알이 또 다른 사후세계 ‘낭길리마’를 찾아가는 마지막 장면을 읽는 순간 초등학생이었던 20여 년 전 이 책을 처음 읽었을 때와 마찬가지로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아동문학의 고전(古典)이란 이런 것이다.”
구절을 보신 선생님이 반가워하며 연락을 주셨지요. ‘사자왕’을 읽고 자란 어린이가 기자가 되어 서평을 쓰다니 보람 차다며 밥을 사주셨습니다. 역자 후기까지 모조리 읽어치우는, 글에 굶주린 어린이였던 저는 선생님의 역자 후기를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해외 유학이 드물었던 1980년대, 스톡홀름서 유학중이던 선생님이 우연히 『사자왕 형제의 모험』을 발견하고, 조카에게 읽히고 싶어 대학 노트에 무작정 번역하고, 1982년 마침내 린드그렌(제가 읽은 후기에는 ‘린그렌’이라 표기되어 있었던)을 찾아가 만나 『개구쟁이 에밀』 사인본을 선물받는 이야기. 그 번역가가 연락을 주시다니! 요즘 말로 ‘성덕(성공한 덕후)’이 된 셈이라 뛸 듯이 기뻤습니다. 그 날, 광화문의 한 타이식당에서 밥을 먹으며 언론계 대선배이기도 한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눴던 기억이 즐거운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두 번째 뵌 것이 그로부터 꼭 10년이 지난 작년이었지요. 선생님께서 번역하신 린드그렌 전기 『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을 당시 제가 진행하던 독서 팟캐스트에 소개한 직후였습니다. 선생님께서는 또 고맙다며 연락을 주셨고, 광화문에서 다시 만나 시간 가는 줄 모르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식사를 마친 후 서울시경 뒷골목 칵테일 바로 자리를 옮겨 다시 린드그렌과 사자왕에 대해 이야기했습니다. 덴마크 작가 옌스 안데르센이 쓴 전기의 한 구절을 선생님은 이렇게 번역하셨죠.
그렇지만 『사자왕 형제의 모험』이 외로움에 관한 책이기도 하다는 작가의 말을 많은 이들이 간과했다. 외로움이라는 주제가 이야기의 전면에 등장하는 것은 마지막 장에서 스코르판이 결심하는 부분이다. “그 누구도 혼자 남아 슬피 울면서 두려움에 떨 필요가 없어.”
병약한 소년 카알(별명 스코르판)이 언제나 버팀목이 되어주던 형 요나탄을 따라 사후 세계 낭기열라로 떠나 악당들을 물리치고, ‘레욘(사자)’이라는 자신의 성(姓)처럼 용맹한 어린이로 거듭나는 이 이야기를 무척 좋아했던 건 어린 날 제 안에도 카알과 같은 두려움과 외로움이 웅크리고 있었기 때문일까요? 이 편지를 쓰며 문득 생각해봅니다. 린드그렌이 친구 루이제에게 보낸 편지에 썼듯 결국 우리 모두는 “다른 누구에게도 기댈 수 없는 작고 외로운 존재”인데, 때로 어떤 어린 영혼은 이야기의 길을 도움닫기해 고독과 공포를 뛰어넘어 더 높은 세계로 도약하는 게 아닌가, 하고요.
선생님. 선생님과 이야기를 나눌 때면 저는 선생님께서 제 어머니와 비슷한 연배라는 걸 잊어버립니다. 우리의 이야기 속에는 ‘사자왕’을 아끼는 두 마음만 오롯이 남습니다. 신기하게도 그 마음의 온도와 빛깔은 닮아 있어서, 저는 어느새 선생님을 ‘친구’라 여기게 됩니다. 이것이 린드그렌의 힘인지, 아니면 영화 <유브 갓 메일>에 나오는 말처럼, 감수성 예민한 어린 날 읽은 책은 자아의 일부가 되어버리기 때문인지 저는 궁금합니다. 선생님께서는 저와는 달리 성인이 되어 『사자왕』을 읽으셨지만, 『사자왕』의 어떤 부분이 선생님을 매혹시켰는지, 왜 린드그렌의 작품들을 번역하게 되셨는지, 그리고 나아가 선생님께 동화란 무엇인지도요.
불볕더위가 한 풀 꺾이고 이제 아침과 밤은 조금은 견딜 만합니다. 그렇지만 더위에 약한 저는 여전히 차가운 겨울을 그리워합니다. 겨울의 추억을 되짚어가다 보면 지난 겨울 선생님께서 (변비에 좋은^^;) 세나 티(tea) 한 통과 함께 회사 로비에 맡겨두고 가신 크리스마스카드에 생각이 이릅니다. 보라색 색연필로 “곽아람 씨의 몸도 마음도 한결 가볍고 따뜻해지는 겨울이 되길!”이라고 적은 유니세프 카드. 항상 파랑이나 검정 젤러펜만 고집하는 저는, 보라색 색연필로 글을 적을 수 있는 그 감수성에 놀랐습니다. ‘동화를 번역하시는 분이라 역시 다르구나’ 생각했지요. 다시 겨울이 오면, 선생님은 어떤 빛깔의 색연필을 골라 카드를 적으실지…. 더위와 코로나가 잠잠해질 때까지, 모쪼록 건강하시길 빕니다.
다시 뵐 날을 기다리며,
여전히 사자왕을 사랑하는 곽아람 드림.
곽아람 씨에게
사자왕 형제를 처음 만난 지 꼭 40년째 되는 이 여름에 곽아람 씨한테서 그 형제 이야기를 다시 들으니 얼마나 반가운지요. 1981년은 내 삶에서 아주 특별한 기억들이 아로새겨진 해입니다. 뭇별 중에도 한눈에 알아볼 수 있는 북두칠성처럼 또렷하게 빛나는 멋진 일들이 알알이 박혀있거든요. 그 중에서도 사자왕 형제를 처음 만난 사건(!)이 으뜸이죠.
사자왕 형제와 아스트리드 린드그렌 덕분에 놀라운 일들이 지금껏 이어지고 있어요. 곽아람 씨와의 인연도 그런 셈이죠. 내가 처음 띄운 메일 제목이 아마도 ‘사자왕 형제 김경희입니다’였을지도 모릅니다. 워낙 흔한 이름이라서 신문사로 날아드는 수많은 메일에 묻혀버릴까 봐 바쁜 기자의 눈길을 잡고 싶었을 테니까요. 소심한 나 자신을 차마 ‘김경희=사자왕’이라고 느껴지게 쓰지는 못했을 것 같아요. 유난히 병약하고 두려움에 시달리는 동생 스코르판이 숱한 위기와 어려움을 헤쳐나가면서 용기와 자신감을 키우는 이야기가 짜릿했던 것도 스코르판에 대한 강렬한 감정이입 때문이었을 겁니다. 스코르판이 진정한 사자왕으로 거듭나도록 돕는 사람들 역시 참 부러웠어요.
곰곰 생각해보니 내게도 끝없는 위로와 응원으로 지금까지 이끌어준 고마운 사람들이 참 많습니다. 우선 내가 스톡홀름으로 공부하러 갈 수 있도록 도와준 언니를 꼽을 수 있어요. 엄마는 “결혼해야 될 나이에 까마득히 먼 나라로 유학이 웬말이냐”며 한사코 반대셨거든요. 하지만 그토록 간절히 원하는 일을 끝내 못하면 평생 한이 될 수도 있으니까 1년만 더 기다리자며 끝내 승낙을 얻어준 최고의 응원군이 언니였어요. 결국 엄마도 응원군으로 변하셨어요. 핀란드에서 온 어느 가난한 유학생에게 방을 내주고 음식도 차려주며 정성껏 보살피셨거든요. 먼 나라로 공부하러 간 당신의 딸도 누군가의 환대와 도움을 받으며 잘 지내기를 바라는 마음이셨대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도 물론 빼놓을 수 없죠. 결정하기 힘든 문제가 생길 때마다 “린드그렌이라면 어떻게 할까?” 궁리하면 대체로 가닥이 잡힙니다. 직접 여쭤볼 수는 없더라도 미오, 로냐, 삐삐, 에밀 등 린드그렌의 작품마다 생생하게 살아 숨 쉬는 아이들이 넌지시 말해주니까요.
스물여섯 살이던 신문기자 김경희가 곽아람 어린이를 매료시킨 사자왕 형제에게 대뜸 빠져들었다는 사실이 좀 어이없나요? 상상과 현실을 너무도 자연스럽게 넘나드는 이야기의 강렬한 흡인력과 메시지, 그리고 당시의 특별한 상황 때문이었을 겁니다.
“사람답게 살고 싶어서지. 그렇지 않으면 쓰레기와 다를 게 없으니까.”
요나탄의 말에 전율했던 기억이 생생합니다. 쓰레기처럼 보잘 것 없는 나 자신을 견디기가 얼마나 고역스러웠는지 새삼 절감했을 거예요. 그때가 1980년 5·18민주화운동 직후거든요. 당시의 엄혹한 언론 상황은 차마 기억하기도 싫습니다. 끔찍한 현장을 취재한 기사가 신문사 편집국에 도착해봤자 한 줄도 보도되지 못하던 시절이었어요. 윤전기로 신문을 인쇄하기 전에 축축한 대장(실제 인쇄할 것처럼 실물크기로 조판한 뒤 교정지와 대조하기 위해 간단히 찍어낸 일종의 견본 신문)을 가지고 시청으로 검열 받으러 가는 기자의 심정을 상상할 수 있나요? 분노와 절망… 다들 그 몸서리치는 일을 피하려고 했지만 불문곡직 정해진 당번을 어쩌겠어요. 검열 담당 장교가 빨간 사인펜으로 가위표를 치면 삭제하라는 뜻이었어요. 기사에다 사인펜으로 북북 그은 장교의 얼굴에다 대장을 구겨 내던지고 싶은 충동은 이내 무력감과 자괴감으로 돌변했습니다. 신문사로 돌아오는 길에 차라리 땅속으로 꺼져버리고 싶었어요. 대차게 따지지도 못하면서 무슨 언론이고 기자라고 하겠어요. 어쩌다 검열관의 질문에 나름 요령껏 대답해서 가까스로 가위표를 면하는 정도로는 도무지 위로할 길 없는 치욕의 나날이었죠. 광주 현장에서 올라온 기사를 일단 활자로 찍은 교정쇄를 최대한 여러 벌 만들어서 암암리에 이리저리 전하는 게 고작이었어요. 그나마 발각되면 엄청난 파장을 일으킬 게 뻔했으니 하루하루가 지옥 같았지요.
그런데 간악한 독재자 텡일의 횡포에 신음하는 들장미 골짜기에 자유를 선사하는 사자왕 형제를 스톡홀름에서 만난 겁니다! 눈물겨운 형제애, 진정한 용기와 지혜, 뜻을 함께 하는 사람들의 아름다운 연대와 인내… 참으로 눈부시고도 부러웠어요.
사자왕 형제가 자살을 미화한다며 비난한 어른 독자들도 있었다고 하네요. 그 모든 이야기가 형을 잃은 동생의 상상 속에서 벌어진다는 흐름을 놓친 채 ‘죽음너머의 세계 낭길리마’로 형을 업고 뛰어내리는 장면을 걱정한 거죠. 정작 어린이 독자들은 동생이 혼자 남지 않고 형과 함께 낭길리마로 갈 수 있는 행복에 환호했고요. 죽음을 두려워하던 수많은 어린이와 그 가족들이 든든하게 위로해준 작가에게 감사 편지를 보냈답니다. 요즘도 불치병에 걸린 어린이 환자에게 사자왕 형제를 소개하는 의사들이 많대요. 곽아람 어린이와 스물여섯 살의 나는 ‘어린이다운’ 마음으로 사자왕 형제 이야기를 즐기지 않았을까요? 어른의 눈높이에서 어린이를 내려다보지 않고 어린이의 안에서 밖을 내다보는 동화에 풍덩 빠져드는 감수성을 공유했다는 건 아주 멋진 일이죠.
스톡홀름 시립도서관에서 대출증을 만들자마자 사서의 추천으로 처음 빌린 책이 『사자왕 형제의 모험』입니다. 한국의 숨 막히는 혼돈과 억압에 시달린 나에게 최고의 선물이었죠. 내 마음을 온통 뒤흔든 그 이야기를 차마 혼자만 읽을 수는 없었습니다. 유난히 사랑하는 조카 현중한테라도 꼭 들려주고 싶었어요. 먼 길 떠나는 이모를 배웅하러 공항까지 따라왔다가 “이모 대신 엄마가 비행기 타면 안 돼?”하며 매달리던 조카거든요. 그 현중이도 사자왕 형제를 분명 나 못지않게 좋아할 것 같아서 대학노트에다 한글로 옮겨 적었어요. 연필로 휘갈기지 않고는 견딜 수 없는 기분이었으니까요.
이토록 놀라운 작품을 쓴 작가를 만나고 싶었습니다. 뭘 어쩌자는 계획도 없으면서 그냥 만나고 싶은 간절한 마음에 출판사로 편지를 보냈어요. 막상 집으로 오라는 아스트리드 린드그렌의 편지를 받고는 얼마나 놀랐던지요. (린드그렌이 수많은 독자편지에 직접 답장하려고 무진 애썼다는 사실을 평전을 번역하면서 알았어요.) 스톡홀름 달라가탄 46번지로 찾아가기 전에 미리 길을 알아 두며 무슨 말을 할까 온갖 궁리를 한 게 다 무슨 소용이겠어요. 현관에 들어서자마자 어린 손녀를 보듬듯 반갑게 안아주는 린드그렌의 품에서 모든 걸 잊은 걸요. 그저 평온하고 따사로운 느낌뿐… 까닭모를 눈물만 흘러내린 것 같아요.
“멀고도 낯선 나라에서 온 이 유학생이 어쩐지 아주 가깝고도 낯익은 느낌이네요.”
내 얼굴을 가만히 들여다보던 그 맑고 다정한 눈동자. 방금 제부가 숨졌다는 부음을 들었기 때문에 곧 떠나야 한다며 린드그렌은 좀더 함께 하지 못하는 걸 아쉬워했어요.
“한국에도 내 이야기를 듣고 싶어하는 어린이가 있거든 나 대신 얼마든지 들려줘요.”
수많은 작품들 가운데 린드그렌 자신은 특히 에밀을 좋아한다면서 『수프 단지를 뒤집어쓴 에밀』 표지 안쪽에다 멋진 서명도 해주셨어요.
온 세상이라도 얻은 듯 둥둥 뜬 기분으로 기숙사에 돌아왔더니 스웨덴 친구들은 다들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이더군요.
“정말 린드그렌을 만났다고?”
“집에서? 단 둘이서?”
스웨덴 국민들의 엄청난 사랑과 존경을 받는 유명 작가가 조그만 나라의 유학생과 만나는 모습을 상상하기 어려웠나봅니다. 린드그렌이 서명해준 그 책이 없다면 1982년 1월 어느 오후에 정말 그런 일이 있었다는 사실을 나 자신도 믿기 어려울 것 같아요.
귀국 후 출판인들과 우연히 만난 자리에서 옆에 앉았던 누군가에게 물었어요.
“왜 한국 아이들은 노상 안데르센 동화랑 그림 형제 동화만 읽어야 하나요?”
해외에 어떤 좋은 작품이 있는지 통 알 수 없기 때문이라더군요. 스웨덴에도 참 좋은 동화책이 많더라며 스톡홀름 도서관에서 읽은 책들에 대해 말했어요. 창비 편집자는 당장 그걸 보여달라고 했지만 정말 출판하게 될 줄이야… 1983년 7월 『사자왕 형제의 모험』이 한국에 상륙(!)했어요. 잇따라 번역한 『개구쟁이 에밀』도 출판됐고요. 퇴근 후 한밤중과 주말이면 동화에 푹 빠져서 한낮의 갈등과 시름을 잊던 나날이 꿈만 같네요.
린드그렌은 어린이를 ‘영혼에 바르는 연고’라고 했죠. 동화는 쉽게 상처받는 내 영혼에 바르는 연고같아요. 사실 아무 생각없이 그냥 좋아하는 동화를 읽노라면 구겨진 마음이 다림질한 옷처럼 펴지는 느낌이거든요. 내킬 때마다 간식으로 즐기는 요구르트가 건강에도 좋은 것처럼… 어린이 청소년 문학작품에 끌리는 것도 내 입맛을 닮았나 봐요. 얼큰 씁쓰름한 것보다 새콤달콤한 음식을 찾는 아이스런 입맛. 내 독서 취향이 너무 유치한가 싶기도 했어요. 최근 린드그렌 작품을 함께 읽는 모임에 들어가서 다양한 색깔로 탐닉하는 열성 독자들을 만나고 보니 한결 든든합니다. 마음을 뒤흔드는 작품이라면야 동화든 소설이든 무슨 상관이겠어요.
자신의 외로움을 인정해야 비로소 강해진다는 린드그렌의 말을 새록새록 실감합니다. 혼자가 되는 법을 익히는데 동화는 아주 친절한 길라잡이가 되기도 하죠. 곽아람 씨가 “이야기의 길을 도움닫기해 고독과 공포를 뛰어넘어 더 높은 세계로 도약하는” 어린 영혼을 이야기한 것처럼 말이죠.
일하는 엄마로서 아이와 늘 함께 지내지 못하는 마음의 짐을 크게 덜어준 것도 동화였어요. 밤마다 잠들기 전에 아이와 책 속으로 빠져드는 재미를 흠씬 즐겼으니까요. 아이가 손꼽아 기다린 동화 읽는 시간은 온종일 숨 가쁘게 일한 엄마에게도 아주 멋진 휴식이자 위로였습니다.
신문이 어린이책을 제대로 소개하지 않는 것은 부당하다고 생각했어요. 일반 도서를 위한 지면도 부족한데 어린이 책 기사를 어디에 싣겠냐며 외면하는 선배들이 야속했지요. 어른들은 스스로 가려볼 안목이라도 있지만 아이들은 그럴 수 없으니까 어린이 책은 더욱 세심하게 안내해야 한다고 아무리 주장해도 마이동풍. 그래도 틈만 나면 어린이책을 소개하자고 끈질기게 우겼죠. 마침내 우편엽서 크기의 고정란을 맡기더군요. 그래서 한국 최초로 중앙 일간지가 어린이책을 매주 소개하는 ‘아이 사랑 책 사랑’ 이 생겼어요. 지금이야 대수롭지 않은 일이겠지만, 1990년대에는 매우 파격적인 시도였어요. 요즘은 어린이책에 대한 우리 사회의 이해와 관심이 한결 높아진 듯해서 다행스럽습니다. 하지만 아이들이 신나게 뛰놀 수 있는 시간과 공간은 점점 더 사라지는 듯해서 안타까워요.
사자왕 형제를 사랑하는 독자들을 만 날 때마다 기쁨과 보람이 솟아납니다. 곽아람 씨는 애독자일뿐더러 그 책에 대한 기사까지 썼으니… 린드그렌 평전 『우리가 이토록 작고 외롭지 않다면』이 2020년 봄에 번역 출판된 후에도 한동안 나는 코로나 때문에 필리핀 작은 섬에 발이 묶였어요. 천신만고 끝에 귀국하자마자 곽아람 씨가 그 책을 팟캐스트로 자세히 소개했으니 보통 인연은 아니죠? 올여름에는 사자왕 형제에 대한 편지까지 주고받네요. 사자왕 형제와 린드그렌을 둘러싼 근사한 인연의 사슬이 멋지게 이어지는 이 느낌을 “진짜 살맛난다”고 하면 너무 호들갑스러운가요?
조만간 코로나 백신 2차 접종까지 마치면 편안한 마음으로 만날 수 있기를 고대하며…
사자왕 형제의 한국 길벗 김경희 드림
*곽아람(기자, 작가) 서울대학교 고고미술사학과를 졸업하고 같은 대학과 학과에서 석사학위를 받았다. 서울대 미술경영협동과정 박사과정을 수료한 후 NYU IFA(The Institute of Fine Arts) 미술사학과 방문연구원으로 있었으며 크리스티 에듀케이션 뉴욕의 아트비즈니스 서티피컷 과정을 마쳤다. 2003년부터 《조선일보》 기자로 일하고 있다. 독서 팟캐스트 <곽아람의 독서알람>을 진행했다. 『매 순간 흔들려도 매일 우아하게』 『결국 뉴요커는 되지 못했지만』 『바람과 함께, 스칼렛』 『어릴 적 그 책』 『그림이 그녀에게』 등을 썼다. *김경희(번역가) 1955년 충북 음성에서 태어나 서강대학교 신문방송학과, 미국 이스턴미시간 대학교 교육대학원을 졸업했으며 스웨덴 스톡홀름 대학교 국제대학원을 수료했다. 《동아일보》와 《중앙일보》 기자를 거쳐 유니세프(UNICEF) 한국위원회에서 일했다. 『사자왕 형제의 모험』 『요술 모자와 무민들』 『꼬마 보안관 밤쇠』, ‘개구쟁이 에밀’ 시리즈, 『트럼펫 부는 백조, 루이』(공동 번역) 등을 우리말로 옮겼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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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아람, 김경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