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작소컬(작고 소중한 컬렉션)’ 두번째 이야기
이수경은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작가이다. 그녀의 작업은 대영미술관뿐 아니라 보스턴 뮤지엄, 필라델피아 미술관,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홍콩 M+까지 전세계 유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가장 ‘한국적’인 도자의 파편을 도구로 글로벌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글 : 김예지 (널위한문화예술 시니어 아트 디렉터)
2025.02.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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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미술사를 공부하고 미술품 경매회사의 신입으로 입사한 직후 컬렉팅을 시작했습니다. ‘컬렉터가 되어야지!’ 목적을 갖고 시작한 것은 아닙니다. 작가와 작업이 내뿜는 에너지에 매료되어 나의 세계에 들이다 보니 어느새 작고 소중한 컬렉션이 만들어졌더군요. 이후 100% 재택근무를 하는 미국회사에 입사 이후 개인사업, 이직한 현 직장에서까지 집에서 근무하게 된 지 4년 차. 집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다 보니, 일할 때도 밥 먹을 때도 나와 함께하는 이 작품들이 나의 단조로운 일상에 부어주는 이 상큼하고 따스한 에너지를 새삼 더 깊이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미술시장에 몸담고 있다 보니, 미술품을 시장 관점으로 바라보고 설명하고 구매하는 경우도 많습니다. 실제로 구매 후 가치가 올랐을 때 다시 재판매한 작품도 많습니다. 그러나 한두 푼이 아니기에 투자를 생각하며 소장하게 된 작품이라도, 집에 걸어두게 된 작품들은 결국 제 일상에 스며들고 깊은 정이 들어버려 ‘내 새끼’가 되고 마는 경우가 많습니다. 내 희노애락을 조용히 다 바라보고 있는, 작가의 숨결이 담겨있는 그 작품들과 매번 대화를 나누고 있다는 느낌이 듭니다. 이 연재에서는, 나의 작고 소중한 컬렉션의 ‘내 새끼들’ 이야기를 나눠보고자 합니다. 제 ‘작소컬’의 시작과 현재를 사적이지만 누구나 쉽게 따라 해볼 수 있는 이야기들로 녹여 공유해보겠습니다. 


깨져서 더 아름답지, 이수경의 번역된 도자기 


이수경이라는 이름을 가장 처음 접했던 때는 학부 미술사 복수전공 수업에서 ‘한국현대미술의 이해’ 개론을 들었을 때였다. 이수경의 작업을 소개하며, 교수님은 ‘세계 유수 박물관 소장’ ‘올해의 작가상 수상’ 등의 작가 앞에 붙는 수식어들이 아닌 그녀의 작업에 담긴 의미와 상징을 설명해 주셨었다. 깨진 도자기의 ‘금(crack)’을 반짝이는 ‘금(gold)’으로 이어 붙여, 깨진 파편들이 모여 더 빛나는 하나의 존재로 재탄생되는 ‘번역된 도자’ 시리즈. 

 

고미술 수업을 들을 때도 한국 도자사를 가장 좋아하고 열심히 덕질 (?) 했던 터라, 고려청자와 조선백자 분청의 파편을 현대로 소환해 다시 생명을 불어넣는 이수경의 작품에 단번에 사랑에 빠졌고 작품을 내 눈으로 보고싶은 마음에 당시 열리고 있던 리움 10주년 기념전에 혼자 찾아갔었던 기억이 난다. 


당시 리움미술관 국보 도자기들 사이에 전시되었던 이수경의 작업 ‘달의 표면’. 출처 : 이수경작가 웹사이트


그렇게 그녀의 작품들과 한번 면을 튼 후에는 전 세계 곳곳에서 이수경의 도자를 마주했었다. 미술사 석사 시절 학교 바로 옆 대영박물관 필드트립을 갔을 때도 이수경의 도자기는 타국 유물의 바다를 끝없이 항해하다 만난 통역이 필요 없는 고향 친구처럼 조각조각 빛을 발하며 반갑게 나를 맞이해 주었고, 덴마크인 교수님이 아시아현대미술사 수업 중 기억해야 할 이름으로 그녀의 이름과 작품을 이야기할 때는 나 혼자 어깨가 으쓱하기도 했다. 

 

이처럼, 이수경은 세계를 무대로 활동하는 작가이다. 그녀의 작업은 대영미술관뿐 아니라 보스턴 뮤지엄, 필라델피아 미술관, 시카고 아트 인스티튜트, 홍콩 M+까지 전세계 유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가장 ‘한국적’인 도자의 파편을 도구로 글로벌한 공감대를 형성하고 작품성을 인정받고 있는 셈이다. 

 

‘번역된 도자’ 시리즈의 시작도 이태리에서부터였다고 작가는 이야기한다. 2001년, 피카소, 폰타나 등의 작가가 도자 작업을 하기도 한 지역인 ‘알비솔라’ 에서 열리는 비엔날레에 참여했던 작가. 현대미술 작가를 현지의 도자 공방과 일대일로 연결해 작업한 후 결과물을 전시하는 이 비엔날레에서 만난 현지 도공에게 작가는 조선백자에 대한 김상옥의 시조 ‘백자부(1947作)’와 조선도자에 관련된 설화를 들려줬다고 한다. 

 

“조선백자를 한 번도 본 적 없는 도공이 상상과 제 이야기만으로 18세기 조선백자 스타일의 도자기 12점을 제작했죠. 이 과정에서 이탈리아와 한국의 지역적 문화 특성을 혼합한 ‘번역된 도자기’ 작품이 탄생했어요. 현재 잘 알려진 ‘번역된 도자기’ 시리즈와는 시각적으로 매우 달라요. 아주 개념적인 작업이죠.” (노블레스 매거진 작가 인터뷰 중 발췌) 

 

이후 작가는 조선백자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고, 여러 공방들을 찾다가 도예가가 망치로 도자기를 깨트리는 모습을 보고 파편 두 개를 집어 이어 붙여 만드는 현재와 같은 도상의 작업을 시작하게 된다. 파편은 주로 도자 가마들이 모여있는 이천, 여주, 강진과 중국 단둥에서 들여오는 북한에서 생산된 도자의 파편들을 구해 쓴다고 한다. 이러한 작가의 작업 속에는 모든 깨진 것들의 통합이 나타나는데, 북한 땅에서 난 도자의 파편과 남한의 파편을 이어 붙인 측면에서는 남과 북의 통합까지 구현된 셈이기도 하다. 

 

이쯤에서 다시, 나의 컬렉션 이야기로 돌아가 본다. 옥션에서 일을 시작한 이후 이수경의 작업을 시장에서 마주할 기회는 있었지만, 당시 경매에 나왔던 큰 조각 작품들은 나 같은 사회 초년의 예산을 초과하는 것이었고, 그것을 둘 공간도 없었기에 내 컬렉션과는 조금 먼 작품이라 생각했었다. 그러던 중, 2021년 대안 아트페어로 생겼던 기획 중심의 아트페어 “솔로 쇼”에 시장조사 차 외근을 갔다가 ‘스페이스 윌링 앤 딜링’ 갤러리 부스에서 이수경의 소품들을 만났다! 


컬렉팅을 생각하고 간 페어가 아니었기에 작품을 구매하거나 할 생각은 전혀 없었는데..이수경의 소품을 보자마자 단숨에 반한 나는 한숨 크게 헙, 하고 부스에 계셨던 스페이스 윌링앤딜링 김인선 대표님께 작품가를 문의했다. 

 

작품가를 듣고선, 우선 한 바퀴 돌아보고 온다고 말씀드린 후 생각을 정리해 봤다. 대영박물관, 보스턴 뮤지엄과 리움 소장된 작가님이자 미술사적 의미가 있는 작가님의 작업을 소장하는 의미와 오랜 기간 좋아해 온 작업이라는 나의 취향, 소장하면 가치는 계속 올라갈 것이며 이 작품은 내 밑의 대대손손 보여줄 만하지 않나?라는 확신이 ‘쓰리 콤보’로 동시에 떠오르자 바로 발을 돌려 다시 부스로 향했다. 

“대표님, (저 이수경은 이제 제 이수경입니다 - 속으로만) 인보이스 부탁드려요”. 

 

이후 노련한 대표님의 어레인지로 작품은 우리 집으로 왔고, 가까이 마주 보니 더욱 반짝이는 이 뮤지엄 피스를 어떻게 감상할까? 하다가 동그랗고 얇은 이 작품만을 위한 좌대를 만들어주자. 라는 생각에 당도했다. 친한 도예 작가님이 소개해 준 목공방 좌대 제작 업체에 동그란 좌대를 주문 제작했고 좁은 벽면에 배치했을 때 (보는 사람마다 떨어질까 봐 아슬아슬하다 했으나) 내 맘에 딱 맞아떨어지는 이 작품은 나의 공간을 빛내주었다. 


당시 인스타그램에 올렸던 좌대와 함께 있는 작품 사진. 이사하면서 좌대는 버려서 남아있는 사진은 이것밖에 없다.


좌대와 작품의 조합을 맘껏 누리며 감상한지 6개월 차 정도 되었으려나. 결국 사단이 났다. 얇디얇은 좌대 위에 업계 언어로 ‘껌’이라고 부르는 접착 고무를 붙인 채 고정해 두었던 작품이, 청소 중에 막대걸래 뒷부분에 닿으면서 바닥으로 헤딩. 작품이 부분적으로 손상되고 만 것이다. 너무나도 다행히 작가님께서 단단하고 안전히 작업을 해두셨기에 산산조각 나지 않았으나 이어진 파편의 한 조각이 아예 떨어졌고 그 떨어지는 3초간의 시간이 내겐 마치 3년과 같았다. 

 

상심&자책 만발한 채로 어떻게 하지, 내가 붙여야 하나, 하다가 이런 건 갤러리스트에게 물어봐야지! 라고 정인선 대표님께 상황을 공유드렸고, “이쁘게 고쳐주신다고 부스레기도 다 가져와 달라십니다” 라는 답변에 그저 날아갈 것만 같았다. 작가와 작품의 관계는 품을 떠나간 자식이라도 아플때 찾으면 넓은 팔로 안아주고 거두어주는 어머니와 자식 같은 거겠다, 라는 생각도 들었다. (물론 컬렉터의 잘못으로 손상된 작품을 작가가 모두 고쳐주는 것은 아니다! 나의 경우는 내가 정말 럭키하고 감사히 생각하고 있다. 전문 복원가에게 찾아가거나 작가에게 수리비를 드리고 정식 의뢰할 수 있다.) 


더페이지 갤러리 이수경 개인전 <이상한 나라의 아홉 용> 전시 전경


올해 이사를 온 후, 이수경의 작품은 거울 옆에 두었다. 산산조각 난 것 같단 생각이 드는 마음들도, 관계들도, 생각들도 모두 그대로 몽땅 버려버리지 않고 조각조각 주워 시간의 틈을 인내로 채워가다 보면 - 상상치 못한 새로운 형태를 가진 더 반짝이고 온전한 모양의 내가 된다 - 는 생각. ‘나의 작은 이수경 도자’를 마주할 때마다 되새기게 되는 생각이다. 앞으로 (이젠 아크릴 박스에 안전히 씌운) 이수경의 번역된 도자기는 나와 또 우리 가족과 함께 늙어갈 것이다. 우리 가족만의 뮤지엄 피스, 가족이 함께 향유하는 유물이 될 것이다. 

 

✔️컬렉팅 팁 : Kiaf, Frieze 등의 대형 아트페어는 ‘대형 백화점’ 느낌이라면, 그 사이사이 열리는 아트 오앤오, 더프리뷰 아트페어 같은 기획 위주의 대안 아트페어들은 ‘편집샵’의 느낌으로도 즐겨볼 수 있다. 새로운 작가들을 발견하는 재미와, (나의 경우처럼) 잘 선보여지지 않았던 대가들의 소품 /실험적 작품들을 만나볼 수 있는 소규모 아트페어들을 참새방앗간 드나들듯이 가보면서 공부하는 것을 추천한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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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예지 (널위한문화예술 시니어 아트 디렉터)

이화여대에서 사회학과 미술사학을 전공한 뒤 영국 런던대 SOAS에서 동양미술사학 석사과정을 마친 김예지 씨는 서울옥션 홍콩 경매팀과 글로벌 사업팀, 세계 최대 글로벌 온라인 미술작품 거래 플랫폼 ‘아트시(ARTSY)’의 아시아 비즈니스팀 서울 담당 디렉터로 재직하며 전시 기획, 국내외 갤러리, 기관, 작가들과 협업을 통해 글로벌 미술 시장에 대한 전문성을 쌓았다. 현재는 문화예술전문미디어 널위한문화예술에서 시니어 아트 디렉터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