망원동 끼니 사장님 부부와 서울 시스터즈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도 좋아』 북토크가 끝나고 뜻밖의 사람을 만났다.
작년 어느 날, 망원동 작은 분식점 ‘끼니’ 앞에 작은 입간판이 섰다. 국물 떡볶이 사진에 발이 알아서 안으로 들어갔다. 그렇게 시킨 떡볶이, 맛이 특별했다. 조미료 느낌이 거의 없이 깊은 맛이 나는 떡볶이라니. 이후, 망원동 ‘끼니’ 는 내 뮤즈가 됐다. 이번에 출간한 에세이에도 ‘먹고 쉬지 말고 돈 내고 나가라’, 즉 ‘먹쉬돈나’와 함께 이 집을 소개했고, 이곳을 배경으로 한 떡볶이 소설도 적을 예정이다. 제목은 벌써 정했다. ‘둘이 먹다 하나가 죽어도 모르는 떡볶이.’ 말 그대로 떡볶이 먹다가 사람이 죽는 이야기다. 이런 끼니에 최근 특별한 손님을 모시고 갔다.
작년 이맘 때 에세이를 계약했다. 이후, 1년간의 작업에 걸쳐 8월 초 인생 최초의 에세이를 출간했다. 연이은 북토크에서 무슨 이야기를 해야 할지 한참을 고민했다. 생각이 많았다. 연극반 이야기를 해야지, 최근 제주도에 다녀온 이야기로 시작해야지. 신이 났으나 막상 북토크를 시작하자 머릿속이 텅 비었다. 떠오른 건 오직 떡볶이뿐이었다.
결국 떡볶이로 말문을 열어버렸다. 지난 일 년간 떡볶이를 매일 먹은 이야기, 떡볶이를 너무 많이 먹어서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아지고, 몸무게가 10kg 늘어난 사연, 떡볶이 소설을 쓰기로 결심한 사연에 연이어 에세이도 낼 거라고 하질 않나, 북토크 시간의 상당 부분을 떡볶이에 할애하고 말았더니 북토크가 끝나고 한 여자분께 명함을 받았다. “혹시 아실지 모르겠지만 필리핀에서 떡볶이를 팔았는데”라는 말로 시작한 여자분의 자기 소개에 나는 눈이 번쩍 뜨였다. 세상에, 서울 시스터즈잖아!
10년 전, 우리 집에는 10인치 노트북 모니터 크기의 텔레비전이 있었다. 나는 아침에 일어나 잠들기 직전까지 텔레비전을 켜놓았다. 그 정도의 소음이 글을 쓰는 데 가장 좋은 리듬감을 주는 것 같았다. 이런 식으로 하루종일 켜놓은 텔레비전에서 어느 날 흥미로운 방송이 나왔다. 필리핀의 야시장, 한 포장마차에서 웬 20대 여자 두 명이 떡볶이를 팔고 있었다. 처음엔 뭘 잘못 본 건가 싶었다. 우리나라도 아니고 필리핀에서 무슨 떡볶이라니? 안태양, 찬양, 자매란다. 원룸 보증금 삼백만원을 빼서 무작정 필리핀으로 왔단다. 그렇게 시작한 떡볶이 장사가 현재는 월 매출 일억원에 달하는 떡볶이 체인점으로 발전했다고. 이 사연이 어지간히 충격적이었던 모양이다. 자기소개를 듣자마자 바로 서울 시스터즈를 떠올린 것을 보면.
그 서울 시스터즈가 내 책을 읽고 북토크에 오다니, 사인을 해달라며 자신이 누구라고 밝히다니, 이것이야말로 떡볶이로 성덕 인증 그 자체가 아닌가. 나는 덥석 손을 꽉 잡고 악수를 했다. 함께 떡볶이를 1점 먹자고 약속을 잡았다. 물론, 떠오른 장소는 망원동 ‘끼니’였다.
처음엔 좋은 아이디어 같았으나 막상 약속 날짜가 되니 북토크만큼 긴장됐다. 나는 지금 떡볶이 달인을 떡볶이 집으로 초대하는 게 아닌가! 이런 사람의 입에 안 맞으면 어쩌면 좋은가 염려했으나 괜한 걱정이었다. 서울 시스터즈는 너무나 맛있게 ‘끼니’의 떡볶이를 즐겼다. 얼마나 맛있게 먹었느냐면, 이번 칼럼에 실린 사진을 나보다 더 멋지게 찍을 정도였다!
떡볶이를 맛있게 먹는 사람은, 사진도 참 맛있게 잘 찍더라. 아마도 떡볶이를 그만큼 좋아한다는 증거겠지.
떡볶이 별책부록
이번 에세이에 떡볶이 이야기 “먹고 쉬지 말고 돈 내고 나가라”를 싣기도 했고, 지난 1년간 떡볶이를 거의 매일 먹기도 했으니, 겸사겸사 기념으로 내가 먹은 떡볶이집 중 그나마 세간에 잘 알려지지 않은 서울 및 경기 지역의 특색 있는 떡볶이집을 몇 군데 소개해 본다.
망원동 끼니 : 요즘 서울 시내에서 최고로 꼽는 떡볶이집이다. 전날 미리 우려낸 쇠고기국물로 떡볶이를 만들다 보니 맛이 깊고 진하다. 우동면발처럼 길게 뽑는 떡도 독특한 풍미를 자랑한다.
망원동 꽃추장 : 며칠씩 숙성한 소스로 맛을 내는 즉석떡볶이집이다. 가격대가 꽤 높고 양이 많다. 주류도 팔아서, 친구들과 함께 저녁 시간에 찾아 가볍게 한 잔 하며 먹기에 좋다.
숭실대 앞 손칼국수 : 이름이 손칼국수인데 즉석 떡볶이로 유명하다. 이곳 떡볶이의 가장 큰 특징은 칼국수 사리를 넣는다는 점이다. 20년 전에는 먹고 나면 꼭 야쿠르트를 줬었는데 지금도 그런지는 모르겠다.
선릉역 매운 떡볶이 : 손님이 붙여준 이름. 선릉역 앞 트럭에서 팔던 떡볶이가 소문이 나서 결국 점포까지 냈다. 예전엔 정말 너무 매워서 먹기 힘들었는데, 매장이 오픈하고 나서 가보니 순한 맛이 생겨서 안심했다.
수유역 깻잎 떡볶이 : 수유역에 있는 10년도 더 된 포장마차다. 떡볶이에 깻잎을 잔뜩 썰어 넣는 것이 매력 포인트다. 남양주로 귀촌하기 전, 근처 스타벅스에서 글을 쓴 후 이곳에서 떡볶이 2인분을 포장해서 집까지 걸어가곤 했다.
구리 고향 김밥 : 김밥집인데 떡볶이가 맛있다는 함정이 있다. 1호점은 구리시장 안에 있고, 2호점은 롯데백화점 맞은편에 있다. 1호점은 판에 한꺼번에 끓여놓고 파는 반면, 2호점은 그 때 그 때 만들기 때문에 맛의 차이가 있다. 실패 확률이 없는 1호점에서 먹을 것을 권한다.
-
좋아하는 게 너무 많아도 좋아조영주 저 | Lik-it(라이킷)
조금은 별나 보이는 덕후의 삶에 한걸음 가까워지는 것은 물론, 어릴 적부터 글쓰기를 동경하고 책을 가까이하며 ‘좋아하는 마음’을 지켜온 작가의 진심에 어느덧 빠져들게 된다.
조영주(소설가)
별명은 성덕(성공한 덕후). 소설가보다 만화가 딸내미로 산 세월이 더 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