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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40화 : 약하고 외로운 개인들의 집합체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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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가들에게는 이십사 시간의 불문율이 있었다. 즉 체포된 자는 고문을 받기 마련이며 그가 알고 있는 다른 동지들의 도피를 위하여 하루를 버티어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다. (2019. 08. 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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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그의 직속상관인 일본인 형사에게 보고하니 다음에 접촉자가 나타나면 즉시 연락하여 체포하자는 의논이 정해졌다. 그날도 방우창을 찾아온 같은 청년을 보고 그는 미행했고 중국식당에 그들이 들어가자마자 전화하여 역 부근의 비상선에 연락했다. 십 분이 못 되어 달려온 것은 단 한 사람의 일본 형사와 보조원 둘이었다. 그들은 그냥 예비검속을 하는 기분으로 일단 잡아놓고 보자는 생각이어서 지원 요청은 생각도 않고 그대로 덮쳤던 것인데 김형신을 잡고 보니 거물이어서 온 경성의 치안망이 서로 연락하노라고 분주했다.

 

 방우창은 일단 뚝 넘어 샛강변의 풀숲에서 모기에 뜯기며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렸다. 그리고 그는 대담하게도 다시 신길정 방향으로 되돌아갔다. 그가 가는 곳은 이이철의 방이었다. 그가 살던 합숙소와 이이철의 신길정 동네는 이웃 동네였으나 구역도 다르고 거리가 제법 떨어져 있었다. 언덕 위로 작은 집들이 다닥다닥 붙은 서민 동네였다. 그가 이이철의 골목 쪽으로 난 창문 아래 이르러 유리창을 손으로 가볍게 두드리자 창문이 대번에 열렸다. 그는 어둠 속에서도 방의 얼굴을 확인하고 사태를 눈치 챘는지 조용히 일어나 대문을 열었다. 문간방이어서 안채에서는 대문으로 누가 드나들고 있는지도 모를 시각이었다.

 

 “무슨 일예요?”

 

방우창이 나직하게 자초지종을 간단히 설명했고 이이철은 긴장했다.

 

 “날 새기 전에 떠나셔야 하는데 어디루 가시게요?”

 

 “글쎄 인천으로 갈까 하네.”

 

 “비상을 걸어야 하잖아요?”

 

 “조영춘에게 전해 주게.”

 

그가 자기의 선이었던 방직공장의 오르그인 조를 지목했고 이철은 고개를 끄덕였다. 이철이 윗목의 장판을 살짝 들치고 꼬깃꼬깃하게 접은 비상금 이십 원을 꺼내어 그에게 내밀었다.

 

 “어서 일어나세요.”

 

방우창은 그냥 이철의 손만 꽉 잡았다가 놓고는 대문 앞에서 다시 속삭여 말했다.

 

 “당분간 활동 중지하게.”

 

그는 어둠 속으로 사라졌다. 인천까지 그는 칠십여 리 길을 걸어갈 것이다. 이철은 그날 날이 새자마자 노량진까지 걸어가 전차를 타고 동대문에 이르렀다. 마음은 조급했다. 이제부터 시간 싸움이 시작된다. 활동가들에게는 이십사 시간의 불문율이 있었다. 즉 체포된 자는 고문을 받기 마련이며 그가 알고 있는 다른 동지들의 도피를 위하여 하루를 버티어야 한다는 규칙이 있었다. 치안당국도 그런 점을 알고 있어서 검거 하자마자 최대한 많은 정보를 얻기 위하여 그들이 알고 있는 모든 방법의 고문을 가했다. 그 과정에서 무너진 자는 전향하여 적의 도구가 되거나 정신적인 불구가 되어 이탈자가 되었고 끝까지 버텨내고 견딘 자는 몸이 망가져 옥사하지 않으면 살아남아 더욱 단련된 활동가로 되돌아오기 마련이었다. 결국 조직이란 모든 약하고 외로운 개인들의 집합체였다.

 

그가 창신동 이관수의 집에 도착한 것은 아침 일곱 시 반쯤 되어서였다. 그가 마당 안쪽 이관수의 판자 방문을 두드리자 그도 벌떡 일어나 긴장한 얼굴로 그를 맞았다. 그는 김형신이 검거된 것과 방우창의 도피를 그에게 알렸고 두 사람은 지체 없이 일어나 집을 나섰다. 이관수는 류재익의 동숭동 아지트를 즉시 옮길 책무가 있었던 것이다. 이는 낙산을 넘어갈 것이고 이이철은 한여옥을 챙겨야 했다. 두 사람은 마지막 레포 임무를 끝내고 헤어지기 전에 여러 시간 동안을 걷고 다리쉬임도 하면서 함께 이야기했다. 그러고는 막상 헤어지게 되었을 때 이철이 그녀에게 비상시에는 어떻게 연락을 했으면 좋겠느냐고 물었다. 그리고는 그녀가 경계할까 하여 자신의 연락선도 알려주었다. 자기가 잘 아는 방우창이 그쪽 선에 닿으니 연락해 달라고 말했고 한여옥은 종로의 어느 카페를 가르쳐 주었다. 지금 이이철은 조바심이 나서 견딜 수가 없었다. 이러한 위급한 때에 그녀가 혹시나 자기에게 닿기 위하여 마루보시 합숙소의 방에게 찾아갈까 해서였다.

 

이이철은 동대문에서 종로 우미관 부근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어갔다. 카페를 찾았지만 아직 이른 아침이어서 열 시가 넘어서야 문을 열게 될 것 같았다. 그가 뒷골목으로 들어가 설렁탕으로 요기를 하고 시간을 충분히 보낸 다음 카페로 찾아가니 아직 점심시간 전이라 실내는 한가했고 양복쟁이 젊은 남자 한 사람뿐이었다. 그는 출입문 가까운 구석자리에 앉았다. 여급이 하품을 하며 그에게 다가왔다.

 

 “머 드시겠어요?”

 

이철은 기억나는 대로 가만히 말했다.

 

 “이모 계시죠? 저는 그이 고향사람입니다.”

 

 “무슨 일로……”

 

 하면서 그녀가 한 사람뿐인 다른 손님 쪽을 힐끗 보고는 저도 가만히 물었다.

 

 “어머님이 위독하셔서 그럽니다.”

 

그녀는 고개를 까딱하고는 얼른 카운터로 돌아가 전화를 걸었다. 삼십분쯤 지나서 한여옥이 문을 열고 들어섰다. 그녀는 땡땡 가라의 여름 원피스 차림이었다. 그녀는 실내를 한번 둘러보고는 자리를 지키고 있던 여급과는 눈인사만 하고 다시 밖으로 나갔고 이철은 그 뒤를 따라 나갔다. 그녀는 큰길로 나가지 않고 길게 이어진 피맛골 골목길을 걸어갔다. 이철은 얼마쯤 거리를 두고 걷다가 걸음을 재게 놀려 나란히 걸었다. 한여옥이 물었다.

 

 “무슨 일 있어요?”

 

 “김선생이 지난밤에 영등포에서 체포되었습니다.”

 

 한여옥은 놀라서 제자리에 멈춰 섰다.

 

 “시간이 별로 없네요. 저두 주변 정리를 해야지요.”

 

 “일단 연락만 하고 지금 거처는 떠나야 될 겁니다. 그쪽 레포 동무가 함께 체포되었다니.”

 

 “다행이 그는 저의 집을 몰라요. 하지만 어느 동네 부근인지는 알죠. 먼저 가세요. 그쪽도 정리할 곳이 있잖아요. 오후 다섯 시 그전에 만났던 방하곶에서 만나죠.”

 

두 사람은 일단 헤어졌고 이철은 전차를 탔다. 그는 영등포에 가자마자 그의 오르그로 남은 박선옥과 조영춘을 만날 것을 궁리해 보았다. 지금 염려되는 것은 조영춘이며 박선옥은 그가 방우창 선인줄 모르고 있었다. 그러나 조영춘이 드러난다면 그녀도 위험하다고 생각했다. 그는 다른 전기공장의 오르그를 생각했고 비교적 작은 일터인 그곳이 길가에 있어서 지나다 누군가를 불러내기에 맞춤하다고 생각했다. 역시 여름이어서 길가의 공장은 창문마다 열렸고 앞뒤의 문은 좌우로 활짝 열려 있었다. 안에서 기계 돌아가는 소리가 요란했으며 뜨거운 열기가 길 밖에까지 훅훅 끼쳐왔다. 그가 기웃거리자 바로 아는 얼굴이 뛰어 나왔다. 예전에 안대길 방우창 등과 샛강으로 천렵을 함께 나갔던 지씨였다.

 

 “무슨 일 생겼어?”

 

그는 시커멓게 기름이 묻은 얼굴을 가까이 들이대며 물었다. 그가 담배를 한 대 피워 물기에 이철은 말했다.

 

 “나도 한 대 줘봐.”

 

두 사람은 나란히 쭈그리고 앉아 담배를 피웠다. 누가 보기에도 일하는 짬에 한숨 돌리며 담배 한 대를 나눠 피는 자연스런 모습이었다. 이철이 아무렇지도 않게 웃으면서 말했다.

 

 “오늘 국제선의 간부가 연락원이랑 같이 체포됐우. 그리고 방우창 형이 현장에서 튀었고.”

 

 “저런, 그럼 우리 식구는 괜찮은 건가?”

 

 “형 조퇴할 수 있지?”

 

지씨는 인상을 잔뜩 찌푸리고 말했다.

 

 “좀 번거롭지만 나갈 수는 있네.”

 

이철은 지금 이 길로 방직공장으로 가서 조영춘에게 이 소식을 알리라고 일렀다. 아마도 조는 국제선과 직접 접촉한 적은 없으니 방우창이 검거되지 않는다면 안전할 수도 있었다. 다만 그가 하부 조직으로 다른 연결점이 있다면 미리 정리를 해둘 필요가 있을 것이다. 이철은 방하곶으로 가서 다섯 시에 한여옥을 만나 미루나무 숲에서 연애 청춘 시늉을 하며 어두워질 때까지 기다렸다. 그녀는 종로에서 만났을 때와는 다른 복장을 하고 있었는데 전혀 다른 사람처럼 보였다. 흰 무명 저고리에 검정 무명치마를 입고 작은 트렁크를 들고 있어서 어느 시골에서 직장이라도 얻으러 떠나온 수수한 시골여자처럼 보였다. 그런데 이철의 눈에는 그런 모습이 더욱 좋아 보였다. 저녁 땅거미가 어둑어둑 내릴 무렵에 그들은 뚝방을 넘어 시장 사거리를 지나 샛말 쪽으로 걸어갔다. 그가 찾아가는 곳은 막음이 고모네 집이었다. 이철은 고모 집 앞에 와서 한여옥을 세워두고 잠시 망설였다가 대문을 두드렸다. 안에서 누구요 하는 소리도 없이 기다렸다는 것처럼 대문이 빼꼼이 열렸다.

 

 “응 두쇠 오냐? 어서 들어오너라.”

 

두쇠는 조금 놀랐다. 뭐야 미리 알고 기다렸다는 듯이.

 

 “저어, 누구랑 함께 온 사람이 있는데요……”

 

막음이 고모는 아무렇지도 않게 대문을 조금 더 열면서 말했다.

 

 “글세 알았다구. 어서 들어오려므나.”

 

이철이 먼저 문 안으로 들어서고 한여옥이 뒤따라 들어서자 고모는 대문을 얼른 닫고 한여옥의 등에 손을 얹으면서 말했다.

 

 “아까부터 기다리구 있었다니까. 우리 집에 잘 왔다 잘 왔어.” 

 

나중에 막음이 고모가 신금이에게 넌지시 알려준 내막이 있었다.

 

강 목수는 그때 영등포 장로교회의 장로 되는 이가 문래동 제사공장 방직공장 제분공장 등이 몰려있는 곳에 오백 채의 영단주택을 짓는 사업에 하청을 받아 백 채를 짓는 공사의 현장감독으로 나가서 일을 다니고 있었다. 하청을 준 회사는 물론 일본 건설회사였고 주택은 네모반듯한 상자갑 같은 일본식 모단주택이었다. 강 목수는 그래서 일주일에 절반 이상은 현장 함바에서 자고 오는 날이 많았다. 막음이 고모는 그날도 남편이 현장에서 돌아오지 않는 날이라 점심 겸 저녁을 느지막히 찬밥으로 때우고는 심드렁하게 앉아 있었다. 남편이 들여다 준 하꼬 라디오를 머리맡에 놓고 당시에 유명짜한 신불출이라는 만담 광대가 풀어대는 우스갯소리를 깔깔대며 듣고 있었는데 뭔가 인기척이 들렸다고 한다. 뭔가 짚이는 데가 있어 막음이 고모는 미닫이 방문을 스르륵 열면서 중얼거렸다.

 

 “누가 왔나?”

 

속으로 에그머니 하면서 놀랐지만 고모는 침을 꿀꺽 삼키고는 마루를 내다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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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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