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훌륭한 책이라도 독자가 준비되지 않았다면 재미는커녕 읽어내기도 힘듭니다. 그래서 어린이에게 재미있는 책부터 읽기를 권합니다. 물론 재미는 사람마다 차이가 있습니다. 누구는 역사가 재미있고 누구는 추리가 재미있지요. 다만 인생의 어느 시기를 사느냐에 따라 궁금하고 알고 싶고 경험하고 있는 일들이 있습니다. 이런 경험이 맞아떨어지면 의외로 흥미롭게 읽을 수 있는 책들이 있습니다.
초등 고학년이 되면 이성에 관한 관심이 높아집니다. 누가 누구를 좋아한다는 소문이 파다하게 돌고, 서로 사귀는 커플도 생겨납니다. 당연히 연애 감정을 다룬 책은 잘 읽어낼 수 있습니다. 십 대가 되면 자기주장도 강해지고 다른 미디어에 관한 관심도 높아집니다. 잘 읽는다면야 상관없지만 읽기에 흥미가 없다면 경험으로 읽어낼 책부터 골라보면 좋습니다. 연애 감정을 다룬 동화가 그중 하나입니다. 유튜브와 인공지능이 있으니 책은 필요 없다는 생각도 문제지만, 책을 엄숙하게 여길 필요도 없습니다.
사랑을 주제로 삼은 동화가 귀하던 시절, 크리스티앙 그르니에의 『내 남자 친구 이야기』, 『내 여자 친구 이야기』를 재미있게 읽었더랍니다. 그 기억만 가지고 이 책으로 가족 북토크를 진행한 적이 있습니다. 저와 비슷한 세대인 아빠는 공감했지만 정작 독자인 자녀는 시큰둥한 반응이었습니다. 세대가 달라지면 사랑에 다가가는 법도 변하기 마련이지요. 다행히 젊은 작가들이 쓴, 연애 감정을 다룬 동화들이 여럿 있습니다. 오늘은 그 동화를 같이 읽어보겠습니다.
사랑의 품은 크고 깊다
강인송 글/오묘 그림 | 창비
초등 고학년 어린이가 처음 겪는 감정과 혼란을 다룬 일곱 편의 단편을 담았습니다. 처음 친구들과 멀리 가본 경험, 함께 살게 된 이모를 보호자로 받아들이는 순간들입니다. 처음이라 혼란스러웠지만, 훗날 돌아보면 성장점이 될 찰나였겠지요. 이 중에서도 단편 「굴러가, 사랑!」과 「너에게 넘어가」는 사랑이 다가오려는 순간의 미묘한 마음을 담았습니다.
누군가가 내 마음에 들어오면, 아무리 시끄러워도 그 아이의 목소리가 또렷하게 들리지요. 보지 않아도 그 아이의 몸짓을 느낄 수 있고요. 나의 온 감각이 그를 향해 뻗어갑니다. 그런 마음이 「굴러가, 사랑!」에 나옵니다. 서현이는 혼자 설렜다, 혼자 실망했다 하며 상대의 마음을 추측하느라 전전긍긍합니다. 상대가 나를 어떻게 생각하는지 알고 싶은 조마조마한 마음이 잘 그려진 작품입니다. 「너에게 넘어가」도 사랑이 오는 순간을 담았습니다. 상대를 위해서라면 뭐든 하고 싶은 마음이 그려집니다. 팔씨름에서 져줘야겠다는 미나의 의도가 실패하고 사랑이 글렀다고 생각했던 순간, 끝이 아니라 시작이라는 깨닫게 되지요. 이 순간 미나가 얼마나 울렁거렸을지를 상상해 보세요. 서현이나 미나가 생각했던 것보다 사랑은 품이 넓답니다.
존중하고 존중받는 사랑
유영소 글/남수 그림 | 문학동네
초등 고학년의 가족과 친구 관계를 다룬 6편의 작품을 담았습니다. 고학년이 되면 친구 관계가 좀 복잡해집니다. 친구가 더없이 소중해지는 시기라 친구 때문에 좌절하고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고 힘들어합니다. 이 과정을 통해 친구 사이란 어때야 하는지, 나는 어떤 친구를 원하는지를 배우는 됩니다. 『박하네 분짜』는 이런 이야기를 담은 단편집입니다. 이 중에서 「하필이면 까망」과 「박하네 분짜」는 둘 다 진실로 좋아한다는 감정이 무엇인지를 그리고 있습니다. 왜 그럴 때 있지요. 누군가가 나를 좋아한다고 하면 나도 좋아해 줘야 할 것 같은 마음이 들어요. 그래서 사귀기로 하자마자 친구와 남자 친구가 되는 건 다른 차원의 일이라는 걸 깨닫게 됩니다. 「하필이면 까망」에서 해린이가 바로 이런 경험을 합니다. 「박하네 분짜」는 사랑을 과시하려고 하는 어린이의 이야기를 들려줍니다. 나를 먼저 사랑해야 상대도 건강하게 사랑할 수 있는 거지요.
다섯 가지 색깔의 사랑
김다노 글/남수현 그림 | 다산어린이
이른 봄부터 다음 해 봄까지 6학년 1반 아이들의 이야기를 다섯 편의 단편에 담았습니다. 독립적이지만 또 이어지는 연작의 형태를 띠고 있어요. 6학년 1반의 무지, 수인, 준구, 명지, 대한이가 각각 단편의 주인공입니다. 독립된 단편이지만 이들의 관계가 얽혀들어가 마치 장편을 읽는 듯한 재미가 있습니다. 특히 단편마다 각기 다른 사랑의 얼굴을 보여주고 있는 점이 색다릅니다. 단편을 하나씩 읽을 때마다 작가가 건넨 사랑에 대한 질문을 받아드는 기분이 듭니다. 단편들은 “두 사람이 사귈 때 남자가 여자보다 키가 커야 할까요?”, “연하의 남자와 사귀면 부끄러운 일인가요?” 같은 질문을 품고 있습니다. 마지막으로 다리가 불편한 진아와 그런 진아를 좋아하는 대한이의 이야기는 특히나 감동적입니다. 작품 어디에서도 진아가 다리가 불편하다는 이야기를 하지 않아요. 사랑을 말할 때 중요한 건 사랑이라는 뜻이겠지요. 작가가 장애인과 비장애인의 사랑을 어떻게 바라보는지를 느낄 수 있는 지점입니다. 다섯 편의 단편을 읽고 나니 어린이 독자는 이 중에서 어떤 얼굴의 사랑을 만나고 있을까 궁금해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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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화(어린이책·출판 평론가)
어린이책 평론가이자 출판평론가. 독서운동가, 사서, 현직 교사 사이에서 ‘책으로 아이와 소통하는 법을 가장 잘 아는 어린이책 전문가’로 손꼽힌다. 웅진출판과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등에서 일하며 25년 넘게 어린이책을 다루었고, 출판 잡지에 기사를 쓰고 인터뷰를 하며 글쓰기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