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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41화 : 울 엄마 요새두 가끔 보이세요?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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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란 삼십 촉짜리 전등이 훤히 밝혀진 불빛 아래 헐렁한 왜바지에 고름 없는 저고리를 입은 풍채 좋은 여편네가 웃는 얼굴로 성큼 들어서더니 말을 걸었다. (2019. 08.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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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마루 끝에 마당을 향하여 등을 돌리고 앉은 퉁퉁한 몸집의 여편네가 보였던 것이다.

 

 “형님 오랜만에 오셨구려!”

 

했더니 주안댁이 고개를 돌리고 푸스스 웃기까지 하더란다.

 

 “으응 우리 두쇠가 온다구 그래서 내가 시방 기다리구 있지.”

 

 “에그 그러면 얼른 밥이라두 앉혀야겠네.”

 

주안댁은 일어나더니 꼭 생시처럼 천연덕스럽게 일어나 부엌으로 내려가는 것이었다. 그러고는 막음이 고모에게 물었다.

 

 “아가씨 쌀은 어딨구 거시키니 절구는 또 어디 있슴나?”

 

 “요즘은 다 정미소에서 기계루 찧어 나온 백미여. 내가 할게 내비두슈.”

 

막음이 고모의 말에 주안댁은 또 푸실푸실 웃으며 말하더란다.

 

 “두쇠가 장가 간다구 색시깜 델구 온다네. 떡해 줘야지.”

 

 “응 그려 떡두 하구 밥두 해주지 머.”

 

그리하여 고모는 항아리에 고이 모셔 두었던 찹쌀을 꺼내고 밥쌀 떡쌀을 가마솥에 부어 앉혔다. 고모가 된장찌개도 끓이고 밑반찬도 꺼내고 하는 사이에 찰밥이 완성되어 주안댁은 시키지 않았는데도 봉당 바닥에 쭈그리고 앉아 찰밥을 퍼서는 함지에 넣고 나무 떡메로 찰 지게 빻았다. 콩을 마른 솥에 덖어서 곱게 가루를 내어 네모반듯하게 펴놓은 찰떡 위에 골고루 뿌리고 각지고 모양 좋게 썰어내니 인절미 떡이 되었다. 인절미는 한쇠 두쇠 형제가 가장 좋아하는 군것질거리였다.

 

대충의 준비가 끝나고 시누이올케가 마루 끝에 나란히 앉아 한숨 돌리고 있던 바로 그 참에 대문 두드리는 소리가 들렸던 것이다. 막음이 고모는 얼른 뛰어나가 이철이와 한여옥을 맞아들였다. 그때에 신금이가 함께 있었더라면 아마도 주안댁을 알아보고 고모에게 속삭임으로 아는 체를 했을 테지만 두 사람의 눈에는 주안댁이 보이질 않았으니 막음이 고모는 시치미를 떼기가 어딘가 부자연스러웠다. 한여옥은 시댁 식구들과 친해진 뒤에야 시어머니 신금이와 막음이 고모에게서 주안댁의 헛것 이야기를 듣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쩐지 처음에 고모 댁에 들어설 때부터 누군가 자기네를 지켜보고 있는 듯하여 마당을 두리번거렸다고 했다. 그뿐 아니라 한여옥은 고모의 시선이 자기들에게 집중하지 못하고 자꾸만 방 한쪽 구석으로 향했다가는 돌아오곤 하여 거기에 누군가 있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고 말했다. 한여옥은 이렇게 묻기까지 했던 것이다.

 

 “저 옆방은 비어 있나요?”

 

 “응? 으응 우리 애들이 쓰는 방이구, 느이들 방은 저 아래 따로 있으니 걱정말어.”

 

고모는 여옥이 눈치를 챈 줄도 모르고 그렇게 얼버무리면서 우선 인절미와 나박김치를 얹은 소반을 먼저 내왔다. 웃목에 앉아 지켜보던 주안댁이 고모에게만 들리는 음성으로 말을 거들기까지 했다.

 

 “인절미는 물김치도 마셔가며 천천히 먹어야 속에 좋아.”

 

 “으응 형님은 나서지 말구.”

 

막음이 고모가 소반을 내려놓다가 뒷전으로 고개를 돌리고는 얼결에 한마디 했고 두쇠가 영문을 모르고 말했다.

 

 “에? 누가요, 나서지 말라니요.”

 

막음이 고모는 이철에게만 눈을 끔벅끔벅 해보이면서 얼버무렸다.

 

 “요즈음 맨날 집만 보고 있자니 혼잣소리가 늘었지 뭐냐?”

 

이철이는 눈치를 채고 빙긋이 웃었다.

 

 “울 엄마 요새두 가끔 보이세요?”

 

 “아니다 원, 너하구 느이 아부지는 한통속이면서.”

 

막음이 고모의 말은 이철이와 오라버니 이백만이 자기의 말을 늘 믿지 않는다는 소리였고, 이철은 인절미 한 개를 얼른 집어서 호물호물 씹으며 다시 웃었다.

 

 “하하하 고모하구 형하구 형수는 셋이서 한통속이잖아요.”

 

저녁을 잘 먹고 뒷방에 들어간 이철이와 한여옥은 이부자리가 하나뿐인 것에 매우 당황했다.

 

 “이거 우리 고모가 뭔가 단단히 오해를 한 모양입니다.”

 

 “아니 괜찮아요. 변명하면 더 이상하잖아요. 저는 옷 입고 그냥 벽에 기대어 자겠어요.”

 

 “제가 아이들 방으로 가겠습니다.”

 

그때에 한여옥이 이철을 완강하게 말렸다.

 

 “우리는 오늘부터 부부입니다. 언제까지 이 집에 있을지 모르지만 흔히 아지트에서 부부 노릇을 하는 동무들을 많이 보았습니다. 그러다 자연스럽게 부부가 될 수도 있겠지요.”

 

이철은 우물쭈물하면서 방문 앞에 다시 주저앉았다.

 

 “자리에 누우세요. 저는 이쪽에서 쉬겠습니다.”

 

두 사람은 한동안 눕지 못하고 각자 엇갈려 앉아서 이야기를 주고받았다.

 

 “눈치를 못 채셨을 텐데요, 저희 고모는 돌아가신 엄마를 가끔 보신다고 합니다. 아까도 우리가 저녁을 먹을 때에 엄마가 옆에 계신 것처럼 행동하시더라구요.”

 

이철이 그냥 재미삼아 꺼낸 말에 한여옥의 반응은 예상외로 침착했다.

 

 “정말 그럴지도 모르잖아요? 어쩌면 자식들이 걱정되어서 나타나실 수도 있지요.”

 

 “저희 형과 형수는 저런 미신 같은 고모의 우스갯소리를 믿는다니까요.”

 

 “그럼 이철씨는 왜 안 믿으시는데요?”

 

이철은 계면쩍게 말했다.

 

 “우리는 과학하는 사람들이니까……”

 

그때에 한여옥은 소리를 내어 웃었다.

 

 “그냥 따뜻하게 받아주시면 돼요. 세상사란 우리가 모르는 게 훨씬 더 많잖아요?”

 

이철은 여옥의 어른스런 그 말에 감동을 받았다고 했다. 이철은 나중에 체포되어 형무소에서 청년기를 졸업하게 되었고, 이후에는 자기 인생의 변화를 형수 신금이에게 솔직하게 털어놓곤 했다고 한다. 그들이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다 전등을 껐는데 그때에 한여옥이 가볍게 탄성을 내질렀다.

 

 “어머나!”

 

이철이 그녀가 왜 그러는지 물었으나 여옥은 어둠 속에서 나직하게 소리 내어 웃기만 했다. 한여옥은 불이 꺼지는 그 순간에 열린 방문의 문턱을 넘어가는 여인의 뒷모습을 보았던 것이다. 그녀가 막음이 고모에게 은근히 말을 꺼내기를, 그분의 키가 남자처럼 크고 어깨도 떡 벌어지지 않았더냐 허리가 구분이 안 될 정도로 퉁퉁한 체격이 아니냐고 물어서 고모는 깜짝 놀랐다고 했다. 한여옥이 저희 시어머니짜리의 헛것을 분명히 알아보았다고 고모는 신금이에게 몇 번이고 다시 얘기하곤 하였다.

 

이후 한여옥이 두쇠의 아낙이고 틀림없는 제 식구라고 굳게 믿게 된 막음이 고모는 며칠 후에 그녀를 이끌고 신금이를 찾아갔던 터였다. 이일철 신금이 부부와 고모의 도움으로 이철과 여옥은 살림집을 얻어 들었다. 역시 사람이 많은 데가 오히려 한적한 곳보다 안전하다 하여 샛말로 들어가는 철로연변의 새로 생긴 가게들이 늘어선 동네 뒷골목에 방 두 칸짜리 셋집을 얻었다. 한식도 일식도 아닌 맞배지붕의 상자갑 같은 단층집으로 당시의 집장사들이 짓던 도시형 서민 주택이었다. 앞에는 세를 놓을 수 있도록 거리 쪽으로 출입구와 유리문이 달린 공간이었고 그 뒤에 딸린 방 한 칸, 그리고 문 하나를 사이에 두고 부엌과 마루방과 방이 한 칸 더 있었다.

 

직업 없는 두 부부만 달랑 살기에는 주위의 눈도 있어서 앞에는 어쨌든 전을 벌여 놓는 것이 유리할 것 같았다. 가족이 논의하여 박선옥이네 떡집에서 떡을 받아다 팔기로 하였다. 이철은 중고 화물자전거를 한 대 샀고 아침마다 떡판 상자를 잔뜩 싣고 시장 웃동네 뚝방마을까지 달려가곤 하였다. 이철이 박선옥이네 외조부모가 새벽부터 만든 시루떡 백설기 절편 가래떡 바람떡 술떡 송편 등속을 골고루 받아오면 점포에 늘어놓고 한여옥이 팔았다. 처음에는 받아온 떡이 남으면 두 사람은 그걸로 저녁밥 대신 또는 이튿날까지 끼니로 때우더니 한두 달 지나면서 안정이 되어 단골도 생기고 밥벌이에 대한 근심이 사라지게 되었다. 막음이 고모는 두 형제가 지들 에미 주안댁을 닮아서 원체 떡보인데다 먹을 복까지 타고났다고 치하를 해주곤 하였다. 그리고 일요일에는 가게 방에서 남녀 직공들의 독서회 모임을 가졌다. 여러 공장의 오르그들은 저마다 여러 곳에서 대여섯 명씩 모여서 독서회를 가졌고 이철이 이들에게 중앙에서 받아온 유인물이나 성명서를 돌리고 각 모임을 연결해 나갔다.

 

이이철과 한여옥이 명목상의 아지트 부부에서 언제 속궁합까지 맞추게 되었는지는 식구들도 어림짐작으로 남녀가 한 방에서 살다가 자연스레 한 몸이 되었거니 여길 뿐이었다. 그들이 식구들의 도움으로 전셋집을 얻어 살림을 나게 되었어도 처음 몇 달 동안은 따로 기거했다. 이철은 점포에 딸린 방에 그리고 여옥은 안쪽 부엌이 있는 방에서 각각 헤어져 잤다. 하루는 저녁나절에 점포를 닫고 이철은 모임 때문에 나가고 한여옥 혼자 집을 지키고 있었다. 여옥은 저녁상을 치우고 바깥방과 안방에 각각 잠자리를 펴고 안방에서 문건을 필사하는 일을 하고 있었다. 뒷전에서 부스럭거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안방 문이 열리며 이부자리가 먼저 들어왔다. 언젠가 어둠 속에서 보았던 여자가 이부자리를 품 안에 안고 방으로 상반신을 내밀었던 것이다. 노란 삼십 촉짜리 전등이 훤히 밝혀진 불빛 아래 헐렁한 왜바지에 고름 없는 저고리를 입은 풍채 좋은 여편네가 웃는 얼굴로 성큼 들어서더니 말을 걸었다.

 

 “거시키니 니들은 어째 각방을 쓰구 그러느냐? 부부가 됐씨믄 같이 자야지.”

 

한여옥은 이철과 그이 일로 말을 나눈 적도 있어서 아무렇지도 않게 대답했다.

 

 “네 어머니 저희는 아직 부부가 아닙니다. 피치 못한 일로 행세만 하고 있을 뿐이지요.”

 

주안댁은 푸시시 웃고는 아예 안방에 깔아놓은 이부자리 위에 털썩 퍼질러 앉아버리는 것이었다.

 

 “그래설라무네 내가 이케 이부자릴 들구 왔다. 너희는 오늘부터 합방해라 그 말이야 내 말은. 그러니깐 손주나 하나 낳아 주려무나.”

 

한여옥이 문득 머리를 흔들고 나서 다시 살펴보니 방안에는 이부자리만 놓였고 주안댁은 홀연히 사라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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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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