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데없이 동네책방의 영어 원서 북클럽을 시작했다. 오래전부터 좋아했던 작가의 작품을 읽는다길래 앞뒤 생각 없이 시작한 것. 한 달 동안 읽고 마지막 날 온라인에 모여 감상을 나누었다. 참가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어린이책이라고 믿을 수 없을 만큼 감동적”이라고 했다. 오랫동안 어린이책을 읽어왔는데 이유는 간단했다. 좋은 어린이문학은 어린이뿐 아니라 어른에게도 울림이 크기 때문이다. 어린이의 읽기를 고민한다면 어린이문학 함께 읽기를 권한다. 같은 책을 읽는다는 것은 동일한 언어로 대화할 수 있다는 뜻이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읽은 책이 있을 때 어린이의 읽기는 비약적으로 성장할 수 있다. 특히 어린이가 아직 책에 재미를 느끼지 못했다면, 하루에 한 두 챕터씩 소리내어 읽어주는 방법도 좋다. 어린이가 자발적으로 읽지 못하는 작품들, 다시 말해 서정적이고 깊이 있는 책을 골라 읽어준다. 부모와 자녀가 함께 책을 읽을 수 있는 좋은 방법이다. 어쩌면 자녀보다 부모가 먼저 어린이책에 감동할지도 모른다.
케이트 디카밀로 지음 | 시공주니어
영어 원서 북클럽에서 읽은 책은 케이트 디카밀로의 『내 친구 윈딕시』였다. 케이트 디카밀로는 감정을 능수능란하게 다루는 작가다. 『내 친구 윈딕시』는 작가의 작품 중 가장 밝아 입문용으로 적합하다. 부모라면 작가가 보여주는 통찰력에 거듭 놀라게 될 테다. 엄마 없이 아빠와 사는 오팔은 우연히 주인 없는 개 윈딕시를 키우게 된다. 윈딕시가 웃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반했고, 윈딕시 덕분에 오팔은 많은 사람들을 만났다. 낡은 도서관을 관리하는 프래니 할머니 그리고 혼자 사는 글로리아 할머니와도 친구가 된다. 한데 알고 보니 사람들은 저마다 아픔이 있었다. 오티스 아저씨는 감옥에 갔다 왔고, 엄마아빠와 손잡고 다니는 아만다도 상처가 있었다. 동화의 압권은 프래니 할머니의 조부가 만들었다는 사탕 이야기다. 신기하게도 슬픔이 있는 사람들은 이 사탕의 슬픈 맛을 알아차린다. 오팔은 엄마 생각이, 아만다는 동생 생각이 난다. 그 사탕처럼 이 책은 독자에게 슬픔을 마주하게 한다. 설마 어린이에게 슬픔이 없다고 생각하지는 말아주기를. 슬픔이 꼭 나쁜 건 아니다. 슬픔에 귀를 기울여주면 가장 정직하게 자신을 만날 수 있다. 특히 어른이라면 자신의 슬픔을 들여다볼 수 있는 거울이 될 책이다.
김양미 글/김효은 그림 | 문학과지성사
김양미 작가의 단편집 『잘 헤어졌어』는 꼭꼭 음미하며 읽어야 할 책이다. 어른이라고 잘난 척하며 읽다가는 큰코다친다. 동화 속 어린이들은 가까웠던 사람 혹은 사물들과 헤어지고 있다. 오랜 친구와 다정하고 호기심이 많던 할머니와 이별하고, 오래 살았던 집과도 헤어지는 중이다. 어린이책에서 우정이 아니라 이별을 정면으로 다룬다는 것도 놀랍거니와 관계 속에서 빚어지는 작은 틈을 세밀하게 살피고 들려주는 방식도 귀하다. 솔직히 말해 어른이라고 잘 헤어지는 법을 아는 건 아니다. 온갖 시행착오를 거치고 나서야 간신히 삶은 이별이며, 이별이 단지 슬픔만은 아니라는 걸 알게 된다. 작가는 특히 속이 깊고, 자신의 공간이 필요하며, 속마음을 쉽게 드러내지 못하는 어린이의 이야기를 세심하게 들려준다. 사람이란 똑같지 않다. 누구는 지상 7층쯤에서 노래를 부르며 살지만, 또 다른 이는 지하 1층에 있어야 편안해지는 법이다. 사람은 누구나 다르며 이 다름을 배우는 가장 좋은 법이 이별임을 서정적으로 들려준다.
우신영 글/서영 그림 | 비룡소
만약 부모도 문학의 서정성이 벽처럼 느껴진다면 처음에는 다정한 책부터 시작해도 좋다. 호흡법을 익히고 발차기를 배우며 수영을 배우듯 읽기도 천천히 몸으로 익히는 일이다. 『언제나 다정한 죽집』은 부모와 어린이가 읽고 나면 몸이 훈훈해지는 이야기다. 팥죽 하나만을 정성스레 만들던 ‘다정 죽집’을 살려내는 따뜻한 판타지다. 죽집을 홀로 지키는 할머니가 어려움에 부닥치자 죽집 친구들이 나선다. 친구란 다름 아닌 죽을 만드는 데 필요한 가마솥, 주걱, 사발, 인두, 홍두깨 그리고 고양이 팥냥이다. 일상의 공간에서 일어나는 판타지는 독자에게 치유의 감각을 제공한다. 동화 속‘오래된 죽집’도 그런 장소였다. “배가 아니라 마음이 고프고 추운” 사람들에게 할머니는 팥죽만이 아니라 다정함도 건넸다. 할머니 말처럼 “죽은 몸을 돌보는 음식이고 빵은 마음을 돌보는 음식”이 아닌가. 동화는 여기에 일종의 미스터리를 더해 마지막 열쇠를 꼭꼭 숨겨둔 채 호기심을 자극한다. 물론 강렬하고 자극적인 사건은 없다. 하지만 읽다 보면 이상하게 따뜻한 팥죽 한 그릇 먹은 것처럼 마음속이 후끈 뜨거워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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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미화(어린이책·출판 평론가)
어린이책 평론가이자 출판평론가. 독서운동가, 사서, 현직 교사 사이에서 ‘책으로 아이와 소통하는 법을 가장 잘 아는 어린이책 전문가’로 손꼽힌다. 웅진출판과 한국출판마케팅연구소 등에서 일하며 25년 넘게 어린이책을 다루었고, 출판 잡지에 기사를 쓰고 인터뷰를 하며 글쓰기를 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