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은 은퇴한 남성이 삶을 다시 설계하도록 돕는 책이다. 직장에서 산전수전 다 겪으며 버티던 이들은 갑갑한 양복에서 해방된 순간, 새로운 고민을 안게 된다. 회사라는 익숙한 환경에서 벗어나 전혀 다른 사회 속으로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다. 앞으로도 인생은 몇 십 년이 더 남아있다. 연륜을 쌓은 지금에서야 가능한 일을 찾아보거나 젊었을 때 못 이룬 꿈에 도전할 수도 있다. 시작할 수 있는 용기, 『양복을 벗고, 다시 인생의 절반을 시작합니다』는 그 첫 걸음을 정리에서 찾는다.
일본에서 먼저 출간된 이 책의 원제는 『퇴직한 남성을 위한 노전정리』다. ‘노전정리(老前整理)’는 정리 컨설턴트인 저자가 만든 단어다. 퇴직처럼 중년 이후에 맞이하는 큰 전환기에 물질과 마음을 정리한다는 뜻이 담겨있다. 미니멀라이프와도 맥락이 닿아있는데 정리는 과정일 뿐, 핵심은 앞으로 필요한 물건을 남기기다. 이를 위해서는 먼저 어떤 삶을 살 것인지 결정해야 한다. 하고 싶은 것, 소중해서 간직하고 싶은 것 등 몇 가지 기준을 세운 뒤 물건을 바라보면 남길 것과 버릴 것이 명확해진다.
책에는 직장생활을 하며 입었던 양복 15벌을 그대로 가지고 있는 80대 남성이나, 돌아가신 아버지가 꼬박꼬박 쓰던 일기장을 열어 볼 수도 없고 버릴 수도 없어 고민하는 여성의 이야기가 나온다. 이렇게 물건이 언제 불편해지는지에 대한 구체적인 사례와 더불어 가족의 물건은 동의 없이 손 대지 말라는 조언, 정리를 위해 체크해야 할 다양한 리스트 등 꼼꼼한 팁을 소개한다. 은퇴를 앞둔 아버지를 떠올리며 읽기 시작했는데 집에 아직 쓸만하다는 이유로 버리지 않는 물건들, 갑자기 내 손을 떠났을 때 곤란해 질 물건들은 없는지 생각해 보니 나와 먼 이야기가 아니어서 놀랐다.
짐을 정리하며 홀가분해졌다면, 이제는 남은 시간을 어떻게 쓸지 궁리할 때다. 저자는 그 동안 만나 온 여러 사람을 떠올리며, 금전적인 여유가 줄고 거동이 불편해지더라도 새로 사회에 공헌하고 보람을 느낄 일은 아직 많다고 응원한다. 노후대비 이면에는 공포가 있다. 사람들은 돈 없는 노후가 두려워서 자산 계획을 세우고, 건강을 잃을까 염려되어 각종 영양제를 챙기고 운동을 시작한다. 하지만 이 책을 읽고 나면 더 이상 노년이 무섭지 않다. 우리는 모든 변수를 대비할 수 없지만, 삶의 중심을 스스로 다잡을 수 있기 때문이다.
양찬(도서MD)
언젠가는 ‘안녕히 그리고 책들은 감사했어요’ 예스24 M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