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노동에 지친 사람들을 위한 필독서
일하는 것은 인간의 숙명입니다. 인간관계부터 생활 전반을 좌우하는 아주 중요한 문제죠. 기쁨과 슬픔의 원천인 일에 지친 분들을 위해 서유미 소설가가 세 권의 소설을 추천합니다.
글ㆍ사진 서유미(소설가)
2024.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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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업을 준비하는 데 계속 실패하는 사람과 직장에서 과중하고 반복되는 업무에 시달리는 사람 중에 누가 더 고달플까. 나는 두 과정을 다 겪어본 뒤에 작가가 되었고, 프리랜서로 살게 된 뒤에는 소설을 써야 하는 마감이 계속 이어지는 것과 마감이 없는 것 중에 무엇이 더 고통스러운지에 대해 종종 생각해 보곤 한다.

 

일하는 것은 인간의 숙명이고 그가 하는 노동의 형태와 특성은 인생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끼친다. 직업에 대한 고민은 이 일을 하며 먹고살 만한가, 얼마나 오랫동안 할 수 있고 오랫동안 하고 싶은가, 하는 근원적인 것부터 그 업무만이 가지고 있는 특성과 그에 따른 인간관계, 생활 패턴(먹고 자고 일어나고 쉬는)의 변화에 대한 것까지 이어진다. 그 안에서 고통과 보람이 모두 나온다.

 


『청소부 매뉴얼』

루시아 벌린 저/공진호 역 | 웅진지식하우스


루시아 벌린의 소설집 『청소부 매뉴얼』에 수록되어 있는 단편소설 「청소부 매뉴얼」에는 다른 사람의 집안일을 도와주는 청소부가 나온다. 어떤 집의 부인은 자꾸 깜박하면서 차비도 주지 않아서, 어떤 집은 항상 이사하는 중인 집처럼 어수선하고 불결해서 주인공은 일하는 것이 힘들다.

 

“매주 수요일, 나는 시시포스처럼 계단을 올라 그들의 거실로 들어간다. ……그 집 청소로는 돈도 별로 벌지 못한다.

 

지저분한 집을 치워야 하는 일이 반복되고 돈도 많이 벌지 못한다는 것은 청소 노동에서 큰 고통일 것이다. 그런데 이 노동의 방해꾼이 지저분하고 돈을 적게 주는 것만은 아니다.

 

“오늘은 버크 부인의 집. 여기도 그만두어야 한다. 언제나 변함이 없다. 무엇 하나 더러운 적이 없다. 난 내가 왜 거기에 가야 하는지 알 수가 없다.

 

자신의 존재 이유를 방해하는 청결도 청소 노동자를 힘들게 한다. 그런데도 이 노동을 이어갈 수 있는 건 카펫 청소를 하며 직소 퍼즐 한 조각을 찾아낸 뒤 함께 기뻐할 수 있고, 그만둔 집의 부인을 보고 싶다는 마음이 있기 때문이다.

 

 

『필경사 바틀비·선원 빌리 버드』

허먼 멜빌 저/이삼출 역 | 민음사


허먼 멜빌의 소설 『필경사 바틀비』에는 월가에 위치한 변호사 사무실에서 부동산 관련 서류를 필사하는 필경사들이 나온다. 새로 고용된 필경사 바틀비는 처음에 문서를 먹어 치우듯 엄청난 양의 필사를 해낸다. 그런데 변호사가 분량이 얼마 안 되는 서류를 함께 검토하자고 제안하자 온화하면서도 단호한 목소리로 그렇게 안 하고 싶다고, 그렇게 하지 않기를 원한다고 대답한다. 바틀비의 ‘안 하고 싶음’은 다른 분야로 번져나가고 급기야 그는 더 이상 필사를 하지 않겠다고 선언하기에 이른다. 소설을 다 읽고 나면 “그렇게 안 하고 싶습니다.”라는 문장이 귓가에서 울리는 기분이다.

 

우리가 이 말에서 자유로울 수 없는 것은 노동 현장에서 원래 주어진 업무가 아닌 것을 요구받는 경우도 많고 회사의 상황이나 자신의 직급에 따라 팀원에게 어떤 제안을 해야 할 때도 있기 때문이다. 그리고 보통의 사람들은 그렇게 안 하고 싶다고 말하지 못한 채 속으로 삼키고 만다. 그런데 바틀비는 지독하다 싶을 정도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해 나간다. 그것이 많은 사람들이 『필경사 바틀비』를 읽은 뒤 감동받은 이유일 것이다.  

 

 

『할머니의 저녁 식사』

M. B. 고프스타인 글그림/이수지 역 | 미디어창비


그럼 인간의 노동이라는 것은 모욕적이기만 한 것일까. M.B.고프스타인의 『할머니의 저녁 식사』는 아주 얇은 그림책이다. 그림책이라 유아, 그림책으로 분류되어 있지만 아이들은 이 그림책에 재미를 느끼지 못할 것 같다. 몇 페이지 되지 않는 책에는 할머니의 일상이 단순한 펜화와 간결한 문장으로 기록되어 있다. 해야 할 일들이 복잡하게 얽혀있어 너무 많은 선과 색이 칠해진 그림을 보고 있는 것 같을 때, 비슷한 하루가 반복될 뿐 앞으로 나아가지 않는다고 생각될 때 나는 이 책을 꺼내 한 장 한 장 천천히 넘겨보곤 한다. 여백과 생략이 많은 페이지를 보고 있으면 마음이 고요해진다. 그림과 문장 모두 좋지만 옮긴이의 말은 이 책의 미덕을 더 잘 드러낸다.

 

“세상은 고요하고, 일상은 명료하고, 할머니는 오늘도 어김없이 낚시를 나갑니다. 작가는 따뜻한 눈으로 이렇게 말하는 것 같아요. 이걸로 충분해. 지금, 여기, 빛나는 것을 봐.

 

방 전체가 밝을 때보다 어두운 곳에서 손전등을 켤 때 그 한줄기 빛이 더 강렬하게 느껴지는 것처럼 ‘어김없이’ 이어지는 노동 속에서 자신만의 작은 기쁨이나 보람을 발견할 때 그것은 더욱 빛나고 귀하다. 우리를 살 만하게 만들어 준다. 그런데 우리는 좋은 직업을 갖기를 원하면서도 노동을 징벌처럼 여기는 시대적 분위기 속에서 살고 있다. 부모에게 물려받은 것이 없고 가진 것이 없고 은퇴하지 못한 사람들만이 힘들게 일하는 거라는 자조가 패배의식처럼 번져나가고 있다.

 

그러나 자신을 먹고 살게 하고 자신으로 존재하게 만드는 순정한 움직임, 그것이 바로 노동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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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미(소설가)

2007년 문학수첩 작가상을 받으며 등단. 같은 해 창비 장편소설상을 탔다. 장편소설 『판타스틱 개미지옥』 『쿨하게 한걸음』 『당신의 몬스터』를 썼고 소설집으로 『당분간 인간』이 있다. 에세이 『소울 푸드』에 참여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