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개 작가의 작업실
함께 웃을 수 있는 '우리'의 경계 넓히기에 골몰해온 금개 작가의 본격 코미디 자기계발서, 『적정 코미디 기술』 작업 이야기.
글 : 채널예스
2025.07.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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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의 작업실

작가들의 작업 뒷이야기를 전해 듣습니다. 한 권의 책이 독자를 만나기까지, 작가들은 어떤 날들을 보냈을까요?



적정 코미디 기술』 작업을 마친 후기를 들려주세요.

계약일로부터 꼬박 4년이 걸렸네요. 학교 하나를 졸업한 것 같습니다. 시청자, 독자, 팬에서 작가가 되는 일이 얼마나 힘들었는지는 책에 지나칠 정도로 많이 써놓았으니 참고 부탁드립니다. 첫 책을 자기계발서 콘셉트로 만들겠다는 무리한 계획을… 어쨌든 해내고 나니까 좋습니다. 아주 산발적으로 흩날리던 삶의 에너지가 조금은 정렬되었다는 느낌이 듭니다. 해야 될 것 같아서’ 하는 일 말고, 하고 싶고 하면 좋을’ 일들 위주로 일상이 꾸려지고 있어요.

 

『적정 코미디 기술』의 부제인 우리만의 농담을 발명하자 작가님의 좌우명이기도 하죠우리 함께 웃는다 것은  중요할까요?

경계 없는 관계에 대한 집착이 있습니다. 그런데 관계에 실제로 경계가 없는 것은 불가능하고 위험하죠. 함께 있는 상황에서 웃음이 터져' 나올 때는 사람 사이의 경계가 허물어지는 듯한 착각이 듭니다. 그 순간이 주는 도파민이 좋아요. 함께 웃을 수 있는 우리의 범주와 맥락을 계속 늘려가고 싶어요. 거미줄처럼 뻗치고 바이러스처럼 퍼뜨리면서요. 이전에는 폐쇄적이고 편파적인 사랑에 훨씬 몰두했는데 지금은 더 넓은 의미의 사랑, 공동체의 감각 같은 것에 더욱 관심이 갑니다. 이렇게 쓰고 보니 좀 사이비 같은데, 제가 말하는 공동체는 일시적인 팝업스토어 같은 겁니다. 웃음의 맥락을 공유한 사이가 늘어날수록 대화가 가능한 동료가 많아질 거라는 믿음이 있습니다. 이게 저한테는 상당히 중요한 일인데 남에게도 중요해야 하는 일인지는 모르겠네요. 

 

책을 읽는 동안 작가님이 코미디만큼이나 친구-되기에도 재능이 있다고 느껴졌습니다친구-되기 기술이 있다면

외롭고 절박하면 됩니다. 그리고 사람을 좋아해야겠죠. 사이의 시간을 잘 견뎌야 합니다. 나 혼자만 친구라고 생각하는 시간, 친구가 나를 싫어할 거라고 생각하는 시간, 걔가 메시지를 읽지 않는 시간, 답장하지 않는 시간, 거절하고 거절당하고 어색해진 시간 같은 거요. 그 시간에 하고 있을 딴짓들을 많이 마련해 두면 좋습니다. 우리 모두 각자의 문제가 있고 서로가 온전히 책임질 수 있는 일은 없으며 그 와중에 잠깐이라도 만나서 시간을 보내는 것이 아예 만나지 않는 것보다는 좋다는 생각으로요. 

 

다양한 일들을 해오셨어요팟캐스트 운영자대안학교 교사각종 퀴어 인권 행사의 진행자이자 스탠드업 코미디언퀴어퍼레이드 사회자그리고 작가새로운 일은 새로운 근육을 필요로 하곤 합니다 책을 내며 작가에게 가장 필요하다고 느낀 근육은 무엇인가요?

혼자서 내려가는 근육입니다. 잠수하는 것과 비슷한 느낌이에요. 아무리 다른 사람들과 함께 방방 떠 있고 싶어도, 글을 쓰기 위해서는 모두의 손을 놓고 혼자 내려가야만 하는 구간이 있었습니다. 내려가기 전에는 죽을 만큼 무서웠는데, 막상 다녀와 보니 죽지도 않았고 친구들이 기다리면서 응원해 주고 있었어요. 



작업을 하는 동안 가장 의지한 반려 [ _______ ] 

저는 혼자서 작업을 시작하는 것이 정말 힘들어요. 그래서 반려 모임을 만들었습니다. 이름은 미줌모, 미라클 줌 모닝’ 혹은 미모의 줌마 모임입니다. 동료 프리랜서들을 단체 채팅방에 모아 가둬두는 걸로 시작했어요. 합의된 플레이였으니 너무 걱정마시길. 가장 먼저 작업하러 앉은 사람이 온라인 회의실을 열고 링크를 공유합니다. 그러면 하나둘씩 접속해 화면 안에서 간단히 인사를 나누고, 음소거 후 각자 할 일을 해요. 마치 코로나 시절 온라인 교실의 자습 시간 같아요. 공유 문서에 작업 일지를 기록하고, 서로 응원 댓글도 달아줍니다. 저는 누가 저를 감시하고 평가하는 환경에서 생산성이 높아진다고 생각해 왔거든요. 미줌모와 함께 일을 해나가면서 알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그냥 같이 있어 주는 것, 응원해 주는 것이 저에게 훨씬 필요했다는 걸요. 

 

나무모임도 소개하고 싶습니다. 천천히 걸으며 나무와 풀들의 이름과 특징을 공부하는 모임이에요. 거의 10년 전에 다니던 회사에서 목요일 점심 시간마다 효창공원을 산책하던 모임을 이어가고 있습니다. 전직 언론인이자 현재는 나무 의사 활동을 하고 계시는 선배가 오랫동안 꾸려온 모임이에요. 선배가 은퇴하신 후에는 제가 사는 동네에서 월 1회 정도 만나고 있습니다. 숲길을 걸으며 나무와 풀들의 이름을 부르다 보면, 산만하던 머릿속이 조금 정돈됩니다. 눈 뜨자마자 나무모임에 다녀와서 씻고 낮잠 자고 일어나면 책 읽기나 글 쓰기가 수월해졌던 기억이 있습니다. 



작업실을 소개해 주세요.

프리랜서인 룸메이트들과 한집에 살고 있어요. 층별로 한 명씩 생활하는 인간 캣타워 구조의 집입니다. 저의 방과 작업 공간은 1층에 있는데, 여기로 이사하면서 큰맘 먹고 모션데스크를 장만했어요. 목 디스크와 오십견 초기 증상 때문에 바른 자세를 돕는 여러 도구들을 마련했습니다. 차량용 목 쿠션과 여자 친구가 선물해 준 대형 모니터가 특히 도움이 됩니다. 

 

뽀모도로 타이머도 자주 사용합니다. 작업 시작 직전에는 늘 겁이 나지만 타이머 맞추는 건 덜 무섭습니다. 10분만 해보자!라며 이효리 선배의 텐미닛 정신으로 타이머를 맞춥니다. 뭐라도 쓰기 시작하면 막상 원래 계획보다 좀 더 긴 시간 집중하게 됩니다. 그래 봐야 한 번에 20-25분 정도지만요. ADHD 완화 효과가 있다는 백색소음도 자주 틀어놓습니다. 

 

마감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일을 실제로 하셨나요?

집필 중에도 출간보다는 북토크를 기대하며 썼습니다. 글은 너무 어려운데 말하는 건 쉬워서요. 7월 중순부터 차근차근 행사 일정을 소화할 예정이라 설렙니다. 사실 가장 원하던 것은 출퇴근과 단행본 마감이 없는 일상이었어요. 드디어 그것을 가지게 되어 기쁩니다. 물론 그래서 돈이 없긴 합니다. 먼 나라로 여행도 가보고 싶었는데 역시 어렵게 되었습니다. 이 책을 통해 여러 기회가 생기고 돈도 생기면 떠날 수도 있겠지요. 저를 단기로 고용할 수 있는 사회 각계각층의 훌륭한 분들께 영업용 미소와 인사를 보냅니다. 뭐든지 잘 부탁드립니다. 

 

 일이 있을  그것 빼고 모두 재밌게 느껴집니다작업  특히 재밌게  남의 콘텐츠는 무엇인가요?

남의 콘텐츠 보는 일만 평생 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끝까지 본 콘텐츠는 제목만 메모해 두는데, 올해 상반기만 해도 70개가 넘어가네요. 인풋:아웃풋 비율이 9:1정도인 것 같습니다. 책 작업 중에는 똑똑한 백인 여성들의 에세이를 읽고 괴로워하거나 글쓰기에 관한 자기계발서를 이상하리만치 많이 읽었습니다. 무아지경으로 빠져들었던 것을 꼽자면 오이도 작가님의 포스타입 만화들과 영화 <씨너스>입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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적정 코미디 기술

<금개>

출판사 | 오월의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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