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모난 침대에서 일어나 눈을 떠보면
네모난 창문으로 보이는 똑같은 풍경
( 화이트 <네모의 꿈>)
도시에서의 생활은 네모난 일상에 맞춰 네모난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할 때가 있습니다. 가끔은 네모를 벗어나 울퉁불퉁 자유로운 모양으로 자연에 섞여버리고 싶은 충동이 들기도 하고요. 『주말엔 산사』는 네모난 사무실, 네모난 모니터와 함께 10년 넘게 대기업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해온 윤설희 작가가 주말마다 도시를 떠나 찾아간 산사 여행기를 담은 책입니다. 수년 동안 100여 곳의 산사를 방문하며 유독 각별했던 일곱 곳의 이야기를 섬세하고 감각적인 펜화로 마치 산책하듯이 들려줍니다. 도시의 속도와 모양에 조금 지쳤다면, 이번 주말엔 산사에 가보면 어떨까요? 오래된 건축에 담긴 삶의 지혜와 깊은 사유를 발견할 수 있는 『주말엔 산사』 작업 이야기를 전합니다.
『주말엔 산사』 작업을 마친 소감을 들려주세요.
늘 감사한 마음에 살고 있습니다. 서너 권의 책을 만들었지만, 출판사를 통해 서점에 납품되는 경험으로는 처음입니다. 더 많은 창구를 통해 독자의 반응을 알 수 있어서 새롭고 감사합니다. 이전에 독립 출판으로 산사 책을 진행했는데, 출판사를 만나 더 업그레이드되는 경험을 했습니다. 더 좋은 모습으로 독자와 만날 수 있도록 많은 도움을 준 편집자와 출판사에 감사드립니다.
책에는 만화와 산사의 자세한 그림 이외에도 사진, 그리고 방대한 정보가 담겨 있습니다. 2019년부터 5년 동안 백여 곳이 넘는 산사를 방문하셨는데, 어떻게 자료를 수집하고 기록하셨나요?
많이 읽고 많이 다녔습니다. 산사에 대해 쓰기 위해 40권 가까운 책을 구매했습니다. 답사하기 전, 책을 읽으면서 역사가 깊고 건축적 특징이 있는 절을 구십여 곳 꼽았습니다. 그리고 관련해서 책과 인터넷을 통해 정보를 모았습니다. 그 정보를 바탕으로 답사를 다니며 특징들을 노트에 수기로 정리해 나갔습니다. 답사를 다니며 만나는 스님이나 문화해설사, 템플스테이 담당자에게 절에 관해 묻는 과정에서 얻는 정보도 많았습니다. 절 앞에 적힌 표지판이나 설명은 지나치지 않고 모두 사진으로 찍어 정보로 남겼습니다. 이렇게 답사 후 얻은 정보 역시 노트에 추가해 나갑니다. 그리고 책을 쓰기 전 흥미 있는 정보만 하이라이트 하여 책으로 엮었습니다. 5년간 쓰다 보니 정보가 덧붙여질 기회가 많았습니다.
답사지에서 모은 정보들
소개해 주신 일곱 개의 산사는 비교적 덜 알려진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이곳이 각별한 이유는 무엇인가요?
(모든 것을 갖춘) 육각형 인재처럼 완벽한 산사도 있지만, 뾰족한 특징을 가진 곳들로 선정했습니다. 산사 건축의 다양한 면을 보여주고 싶었죠. 다양한 시퀀스를 가진 선암사, 기승전결의 이야기를 건축적으로 표현한 부석사, 궁궐 같은 느낌의 금산사, 휴식의 느낌을 주는 무량사, 조각공원의 느낌이 든 운주사가 그렇습니다. ‘한국 고건축에도 이러한 감상을 얻을 수 있구나’라는 경험을 독자에게 안내하고 싶었습니다. 정말 다 다른 성격을 가지고 있어서 답사하실 때마다 새로운 느낌을 받으실 수 있습니다.
책은 “도심 속 작고 네모난 공간이 아닌 의미 있는 나만의 집을 짓고 싶은” 마음에서 시작하지만, 마지막 도심 속 산사 '봉은사'를 지나며 “집이라는 것이 중요한가”라는 마음으로 맺어집니다. 산사 유람을 하면서 마음은 어떻게 달라졌나요?
5년이라는 긴 호흡으로 책을 쓰다 보니, 책을 처음 쓴 의도와 내용이 달라졌습니다. 회사에서 정서적으로 힘든 시간을 거칠 때 집을 비롯한 사물이 저에게 위로가 되지 않았습니다. 요즘은 '튼튼해야 든든하다'라는 생각을 합니다. 답사 중 지쳐 있을 때 도착한 곳은 큰 인상을 남기지 않지만, 에너지가 넘칠 때 다시 방문해 보면 또 좋은 곳이 있었죠. 내가 튼튼한 사람이면 어느 곳을 가던, 어떤 걸 가지든 즐겁지 않을까 결론에 이른 것 같습니다.
펜으로 그린 산사 안내서를 포함해 민화로 그린 홋카이도 여행서, 색연필로 그린 영화 소개서 등 다양한 주제를 여러가지 방법으로 표현해 오셨어요. 작가님의 다음 책은 어떤 재료로 무엇을 담게 될까요?
아직 확실하진 않지만, 오일파스텔을 이용한 아이스크림 레시피 책이 될 것 같습니다. 이 레시피를 어떻게 하면 더 의미 있고, 재미있게 설명할 수 있을까 고민하고 있습니다. 저는 휴직 기간에 충북 청주에서 '사례월'이라는 아이스크림 카페를 운영했습니다. 여기서 얻은 아이스크림 제작 노하우가 반영될 것 같습니다.
새 책을 시작하기 전에 끝내고 싶은 일들도 많습니다. 산사와 홋카이도에 대한 내용을 영상으로 유튜브에 소개하고 있는데, 이 과정도 마무리하려 합니다. 또한 홋카이도 여행안내서 개정판 문의가 많아 정리하는 과정을 가질 것 같습니다.
작업실을 소개해 주세요.
저는 주로 집에서 작업합니다. 환기를 위해 카페를 가기도 합니다. 작업실의 책상은 방의 한가운데 있습니다. 책상이 벽에 가까이 있으면 기대고 싶은데, 섬처럼 한가운데 있으면 몸이 덜 흐트러지는 것 같습니다. 또한 천장 조명을 등지고 앉지 않게 됩니다.
의자에 앉으면 맞은편 창문을 통해 베란다의 식물이 들어오죠. 눈 건강을 위해 습관적으로 하늘을 보려고 합니다. 반드시 스탠드 조명을 두어 작업하는 곳이 가장 밝게 합니다. 집중력을 올리는 작은 팁입니다. 집에 인테리어를 하고 들어왔는데, 수납장을 많이 두었습니다. 작업 관련된 모든 용품을 수납장 안에 넣어두어 보이지 않게 합니다. 책장은 책상 바로 뒤에 두어 필요한 자료를 찾을 때 용이하게 배치했습니다.
작업을 하는 동안 가장 의지한 반려 [ _______ ]
작업을 하는 동안 가장 의지한 사물은 침대입니다. 작업이 기획되는 곳이자, 진행될 수 있도록 재충전하는 곳이며, 탈고 후 가장 돌아가고 싶은 곳이죠. 잠들기 전 머릿속으로 시뮬레이션했던 많은 생각들이 책으로 집대성됩니다.
하루 종일 작업을 하다 보면 집중력이 끝날 때가 많습니다. 지겨울 땐 먹는 것으로 재충전을 하고, 집중력이 끝났을 땐 낮잠을 통해 작업을 이어갑니다. 뇌를 쉬어주려고 일부러 50분 주기로 작업을 합니다. 쉴 때가 되면 항상 눕습니다. 책을 다 쓰고 나면 오랫동안 잠에 듭니다. 일부러 침실을 침대로 가득 채웠습니다. 잠에만 집중하기 위해서죠. 저에게 잠은 새로운 시작을 위해 너무 소중한 존재입니다.
마감 후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사람을 만나는 데 시간을 쓰고 싶습니다. 책을 왜 쓰게 됐냐는 질문을 받곤 하는데, 연애를 못 해서입니다. (웃음) 너무 사사로운 이유이긴 한데, 연애를 못 한 기간이 길다 보니 남는 여가시간을 의미 있게 쓰고 싶어 책 쓰는 취미를 갖게 되었습니다. 32살까지 모태 솔로였거든요. (웃음) 지금은 책을 쓰는 일과 사람을 만나는 것의 균형을 맞춰보고 있습니다.
할 일이 있을 땐 그것 빼고 모두 재밌게 느껴집니다. 책을 만드는 동안 특히 재밌게 본 남의 콘텐츠는 무엇인가요?
책으로는 『시모어 번스타인의 말』입니다. 인터뷰 시리즈 책이었는데, 이외에도 박완서, 키키 키린의 말을 읽었습니다. 개인적으로 에세이보다는 인터뷰 글을 좋아합니다. 에세이는 하고 싶은 말을 최대한 정돈된 채로 하다 보니 실생활과 멀어지는 부분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인터뷰는 좀 더 즉흥적이다 보니 좀 더 날것의, 실생활의 모습과 비슷한 말이 나옵니다. 그래서 더 진솔하고 사람다운 말을 들을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시모어 번스타인은 피아니스트인데, 같은 분야는 아니지만 창작에 대한 고민과 생각을 들으며 많이 공감한 것 같습니다. 가장 인상 깊던 내용은 좋은 사람이 좋은 걸 만들기도 하는데, 반대로 좋은 작품을 만들다 보면 좋은 사람이 된다는 이야기였습니다. 서로 영향을 끼친다는 것이죠. 무언가를 몰두해서 만든 경험과 생각은 성격과 인생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 같습니다. 더 좋은 걸 많이 만들어야겠다는 결의를 다지게 되었습니다.
책이 아닌 콘텐츠로는 닌텐도 게임 ‘젤다의 전설’과 영화 <헤어질 결심>, <에브리씽 에브리웨어 올 앳 원스>가 있습니다.
“절을 다니며 여러 깨달음을 얻지만, 깨달은 대로 살면 저는 부처가 되었겠죠. 저는 부처가 아니니 그저 이 깨달음이 제 것이 되길 기다리며, 부처님 사리를 모신 금산사를 찾아가봅니다.” (175쪽)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주말엔 산사
출판사 | 휴머니스트

이참슬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