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나욱 “절대적으로 현대적일 것”
조선 후기의 문인 ‘자하 신위’를 통해 이야기하는 현대성.
글 : 출판사 제공 사진 : 출판사 제공
2025.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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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시대의 인물을 다룰 때 ‘현대적’이라는 표현은 생경하다. 그렇지만 ‘현대성’이란 시대를 뛰어넘는 가치를 가리킨다. 아감벤은 “자기 시대에 완전히 속하지 못하는 자는 어둠을 직시하고, 시대 너머를 보는 현대성”을 지닌다고 말했는데, 신위가 바로 그런 인물이다. 신위는 당대에 시서화 삼절로 손꼽히는 문인이었지만, 어느 당파에 속하거나 주변의 인정을 구하기보다는 역사를 뛰어넘는 저만의 문예를 닦고자 노력했다.

 

최신성에 경도되어 유행이 빠르게 뒤바뀌고 구태의연해지기를 반복하는 오늘날, 지난 역사의 인물을 통해 현대성을 살피는 것이야말로 시의적절해 보인다. 『자하 신위』는 역사를 박제시켜 회고하는 방식 대신, 지금 시대와의 연결고리를 찾고, 나아가 시대구분을 넘어서는 가치를 찾으려는 목적을 지닌다.



현대미술과 현대건축에 대한 평론상을 받으셨고현대문화에 대한 글을 주로 써왔습니다어쩌다가 지난 역사에 대한 관심을 가지게 되었는지 궁금합니다.

현대예술이 생긴 지 한 세기가 채 되지 않았습니다. 현실적 가치와 구별되는 예술적 가치를 주장하지만, 과연 고전과 마찬가지로 영원한 울림을 줄 것인지, 절대적으로 좋은 것인지는 아직 증명 단계인 거죠. 더군다나 현대예술이 유행과 밀접해지면서 예술적 가치라는 것도 마케팅 문구처럼 이용되는 상황이니, 이를 역사의 범주에서 살필 필요가 있습니다. 지금 당장 내가 좀 잘 나가고, 작품이 잘 팔리는 것과 같은 일시적 욕망을 넘어서서요. 물론 이것도 영리한 직업 활동이겠지만, 사회 전체가 여기에 초점을 두고 있는 상황에서 이 분야까지 그래야 하나 싶어요.

한국처럼 급변하는 사회에서 더 필요한 고민이기도 합니다. 더군다나 우리는 반만년 역사를 자랑하지만,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으로 인해 유산이 제대로 남아있지 않습니다. 무언가를 물리적으로 지키거나, 추상적으로 기념해 본 적이 없는 채로 그저 발 빠른 유행의 공회전만 있었죠. 지난 역사를 지칭하는 ‘보존’은 굉장히 현대적인 개념입니다. 사회가 변화할 때, 현대의 관점에서 지난 역사의 무엇을 남길 것인지 선택하는 일이니까요. 저는 지난 역사를 다루는 이 책이 현재의 문제와 거리가 멀지 않다고 봅니다.

 

책에서 다루고 있는 자하 신위라는 인물에 대해서 소개해 주세요.

‘시서화 삼절’이라 불리기는 했지만 잘 알려진 인물은 아닙니다. 서울대학교 자하연의 자하가 신위의 호인데, 이 사실을 아는 학생들도 드물고, 여전히 연구도 부족합니다. 솔직히 말해 조선 후기를 대표하는 인물로 조명하기에, 신위가 정치적으로나 예술적으로나 일가를 이룬 것도 아니라는 생각입니다.

대신 괜찮은 배경과 재능을 토대로 자신만의 인간적인 고민을 많이 한 사람이었던 건 분명합니다. 신위는 가문이 최우선이었던 사회에 걸맞지 않게 서얼 자식, 딸과 아내를 끔찍이 아꼈고, 사람들이 좋아할 만한 문예를 따르거나 당파에 속하기보다는 저만의 고민에 집중했습니다. 그러니 신위가 성공한 인물이냐고 물으면 잘 모르겠다고 답하겠지만, 제 삶에 충실한 인물이냐는 질문에는 맞다고 할 것 같습니다. 현대사회에 가치가 다양해졌다고는 하지만, 성공이라는 미명 아래 사람들의 가치 판단은 특정 기준에 매몰된 상황입니다. 이런 사회에서 신위의 족적을 살피는 건 유의미하다고 생각합니다.

 

지난 시대를 다루는 동시에 현대사회를 언급하는 서술 방식이 흥미롭습니다여기에서 기대하는 효과가 있으실까요?

지금 시대에 ‘책’은 만 원짜리 커피나 한 끼 식사에 불과한 상품입니다. 이런 관점에서 책을 목숨보다 소중히 아끼고 의미를 부여하는 문인들의 모습은 터무니없어 보입니다. 그런데 그때 당시 책이 한 권으로 몇 달 생활비를 충당할 수 있는 사치품이라는 점을 고려한다면 시각이 완전히 달라집니다. 시대상을 오가는 서술 방식의 첫번째 이유는, 지금과 다른 맥락을 입체적으로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나아가 이로부터 우리가 떠올리는 대부분의 개념들이 부정확하고, 합의돼 있지 않다는 사실을 도출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책에서도 썼지만, 오늘날 일어나는 대부분의 문제는 ‘같은 대상을 가리킨다고 생각하지만 정작 각자 그리는 의미는 다르다’는 사실에 기인하니까요. 적어도 과거에는 비슷한 집단끼리 모여 살면서 유사한 개념을 그리고 살았던 반면, 모든 게 연결되어있는 요즘은 각자의 개념은 다르면서 서로를 이해한다는 착각을 하고 있습니다.

 

책에서는 그것이 도시의 특성이라고 설명합니다건축가로서 도시에 대한 관심이 많으실  같아요.

살아가는 방식이 비슷비슷한 마을과 달리, 도시에는 각기 다른 방식으로 나고 자란 사람들이 모입니다. 이 과정에서 다양성을 어떻게 포용하고 관리하냐가 도시의 주요한 문제가 됩니다. 집단마다 가치관이 다른 만큼, 하나의 기준을 강제하는 것보다는 다양성과 이질성을 고려하는 게 도시를 관찰하는 데 있어 핵심인 이유입니다. 한민족으로서 균질한 문화를 지향하는 한국에서는 부족한 상상력이지만요.

신위가 활동하는 조선 후기는 서울이 본격적으로 도시로 발전하는 시기였습니다. 지방의 인구들이 서울로 몰려들었고, 대외 교역도 급증했습니다. 같은 양반이라도 서울에서 활동하냐 아니냐를 따지면서, ‘서울에 사는 양반’을 가리키는 ‘경화사족’이 출현하기도 했고요. 이 가운데 신위는 특정 지역, 신분, 직업, 종교를 넘어서는 다양성을 파악하려고 했습니다. 변화하는 도시를 보여주는 데 적격인 인물인 거죠.

 

작가님이 이전에 쓰신 책은 『클럽 아레나』입니다  역시 도시의 필요충분조건으로 클럽을 제시했다는 점에서 연관성이 있어 보입니다.

이전 책은 일시적 문화에서, 이번 책은 이전의 문화에서 현대성을 찾는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앞서 말했듯 현대성이란 시대를 초월하는 개념이니, 서로 다른 시간 범주에서 접근을 하려고 했던 것이지요. 또 다른 공통점은 도시의 다양성을 수용하고 관리하는 프로그램으로서 현대의 클럽과 조선시대의 저잣거리가 기능한다는 점입니다. 

다만 이들은 일탈 문화인 탓에 기록되지 않는다는 문제가 있습니다. 향유하는 이들은 기록하는 능력과 거리가 멀거나, 숨겨야만 하기 때문이죠. 하지만 신위는 저잣거리의 천한 문화들을 적극적으로 기록해 후대에 남겼습니다. 허구가 보여주는 진실이 있는 한편, 기록이라는 의지를 통해서만 드러나는 진실이 있습니다.

 

수많은 직능을 가진 문인 대한 책답게다양한 챕터로 이루어져 있습니다그중에서도 작가님 개인적으로 특히 마음에 와닿는 부분을 꼽을  있을까요?

신위는 당대의 유행을 뛰어넘고 싶었던 만큼, 어느 집단에 소속하지 않았고 주변의 인정에 만족하지 않았습니다. 이때 그가 살핀 것은 ‘소동파’라는 송나라의 문인이었습니다. 몇 세기 전에 살던 소동파도 신위와 마찬가지 고독을 버텼는데, 소동파는 제 고민의 보상을 주변에서 찾는 대신, 같은 고민을 하는 이들이 모이는 시적 공간을 제시했습니다. 신위가 청나라 연행에서 만난 옹방강과도 얘기하는 ‘청풍오백간’입니다. 청풍오백간은 주변의 인정과 무관하게, 자신이 인정하고 좋아하는 이들과 시공간을 뛰어넘는 공동체를 이룰 수 있는 곳인 것이죠.

저 역시 이 책이 현대사회와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말은 했지만, 사실 인기 없는 내용이라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저도 사람으로서 인정받고 싶은 욕심이 있으니 외로운 일입니다. 그렇지만 수 세기 전의 이 사람들도 그런 고독을 느꼈고, 그 와중에 이런 반가움을 느꼈다는 사실을 보면서 위안이 됐습니다.

추천사를 써주신 유종호 선생님께서도 당신의 책에 “읽기는 낙이었으나 동시에 내게 고독의 의미를 가르쳐 주었다”는 문장을 쓴 적이 있습니다. 그걸 읽던 저도 ‘혼자 골몰하는 건 외로운 일이구나’라는 생각을 했는데, 동시에 같은 생각을 하는 사람이 있다는 반가움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유종호 선생님께 고독의 공감대를 이뤄서 반갑다고 말씀드렸죠. 이 책을 쓰면서 느낀 큰 보람입니다. 같은 마음을 가진 사람들을 발견하고, 그들에게 발견이 되기도 하는 거요. 

 

한국 문학의 거목이자, 90살이 넘으신 어르신인 유종호 선생님의 추천사가 책을  열어줍니다얼마 전에는 김창완 선생님의 라디오에서도 소개가 됐지요『자하 신위』라는  권의 책에서 다양한 시간대의 인물들이 뒤섞이는  같습니다출간  사람들의 후기가 궁금합니다.

90살이 넘는 삶의 사이클을 보낸 유종호 선생님과, 제가 시대를 바라보는 눈은 다를 수밖에 없습니다. 시대를 뛰어넘는 고민을 하는 데 있어 선생님과의 오랜 수다는 큰 도움이 됐죠. 책이 나온 뒤에는 선생님 댁을 찾아 추천사와 서문을 소리 내 읽어드렸습니다. 추천사를 받았던 2년 전과 달리, 선생님의 시력이 많이 악화되셔서요. 지금 쓰라면 다시 못 쓸 것 같은 좋은 추천사 같다는 농담과 함께, 고생 많았고, 더 공부하라며 서재에서 책 몇 권을 또 내어주셨습니다.

김창완 선생님은 책이 출간되고 며칠 뒤에 문자로 독후감을 보내주셨습니다. 시대를 뛰어넘는 연결을 해냈다는 격려인데, 그 자체로 현대성을 증명하시는 분이 말씀해주시니 감사할 수밖에요. 선생님은 어린아이 정서를 유지하면서도 어른의 역할을 보여주시고, 음악, 연기, 그림, 글쓰기까지 아우르는 지금 시대의 삼절이잖아요. 시간, 교육 등 정말 다양한 화두로 이야기를 던지시는데 따라가느라 바빠요.

그러니 책의 후기라기보다는 제가 책을 쓰는 데까지 읽고 배운 것들을 되뇐다고 말하는 게 맞을 것 같습니다. 책의 말미에 시대를 뛰어넘는 ‘고전’의 제작 원리란, 좋은 것을 알아본 이들이 제 해석을 덧붙여 계승시키는 것이라는 찰스 로젠의 주장을 인용했는데요. 서로 다른 시간대의 지혜를 들려주신 선생님들의 가치들을 어떻게든 간직해 고전으로 남기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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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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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kgustotquf

2025.06.20

현대예술에서 다양한 시도 속 좋은 취향이 뭘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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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하 신위

<최나욱>

출판사 | 그레파이트온핑크

클럽 아레나

<최나욱>

출판사 | 에이도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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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제공

출판사에서 제공한 자료로 작성한 기사입니다. <채널예스>에만 보내주시는 자료를 토대로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