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시대를 생생하게 묘사하는 ‘도시 기록자’ 정이현 작가가 9년 만에 새 소설집으로 돌아왔습니다. ‘노 피플 존’이라는 제목이 은유하는 것처럼, 타인이 침범하지 못하도록 선을 그으면서도 완전한 단절과 고립은 불안해하는 현대인의 모순적인 심리를 아홉 편의 단편 소설로 펼쳐냅니다. 현대사회의 세대, 계층, 돌봄의 틈새에서 흘러나오는 불안과 욕망을 섬세하게 포착한 『노 피플 존』의 작업 이야기를 전합니다.

『노 피플 존』 작업을 마친 후기를 들려주세요.
담담하고 고요하면서도 기쁩니다. 그동안엔 출간 때마다 이런저런 부담감과 불안감 때문에 마음껏 즐거워하지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러나 이번에는 좀 다릅니다. 긴 시간 동안 서두르지 않고 차곡차곡 준비해왔기 때문일까요. 최선을 다했으니 그걸로 충분하다는 생각도 들고요. 무엇보다 그동안 새 소설집 언제 나오는지, 소설을 쓰고 있기는 한 건지 궁금해하고 걱정도 해주신 독자님들께 이렇게 안부를 전하게 되어 각별한 마음입니다.
‘작가의 말’에서 소설을 치실에 비유하며 “보이지 않는 틈새에 숨겨진 것을 기어이 끄집어내겠다”라고 하셨습니다. 이번 소설집을 통해 끄집어내고 싶었던 것과, 그 틈을 들여다보는 일은 작가님께 어떤 의미인가요?
제 소설이 관심을 두는 것은 어쩌면 ‘틈새 그 자체’가 아닐까 생각합니다. 틈새에는 분명히 어떤 것이 존재합니다. 우리에게 이물감을 주지만 명명되지 않은 것, 혹은 너무나 익숙하거나 굳이 확인하고 싶지 않다는 이유로 드러내지 않고 넘겨버린 것들이요. 그것이 정확히 무엇인지는 저도 모릅니다. 끄집어 내봐야 비로소 정체에 대한 실마리를 잡을 수 있겠지요. 그러기 위해 전열을 가다듬고 그 좁고 깊은 틈을 오래 들여다보는 일이 제겐 단편을 쓰는 일입니다. 이 소설들을 쓰는 동안, 저 역시 제 안의 숨겨진 불안이나 결핍, 애써 외면해 온 일상의 균열 같은 것을 깨닫곤 했습니다. 그런 의미에서 제게 ‘끄집어냄’은 이 세계가 어떤 모습인지, 또 구조는 어떻게 얽혀있는지 더 깊게 탐색하려는 시도에 가깝습니다.
「실패담 크루」 「사는 사람」에서는 상류층, 부동산, 학군 등 한국 사회의 계급 구조가 인물들의 욕망과 불안을 결정짓는 장치로 등장합니다. 이러한 ‘계급’이 현대인의 사적인 관계를 어떻게 형성하고, 또 파괴한다고 느끼셨나요?
저는 어쩌면 ‘계급’이나 ‘계층’이라기 보다 그로 인해 영향받아 형성된 개인의 모습과 취향-아비투스라고 불러도 될-등에 관심이 많습니다. 한 사람이 지닌 너무나 개인적인 취향이나 삶의 태도가 실제로는 특정한 사회적 배경과 맥락, 경험의 축적 등에 의해 형성된 결과일지도 모른다는 것. 그런 지점을 관찰하고 상상하여 소설로 형상화하는 것이 제 일관된 관심입니다.
이번 책의 첫 소설, 첫 문장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페이스트리는 뜻밖에 정치적인 빵이다”. 크루아상 같은 페이스트리에는 결 사이마다 아주 얇은 틈(레이어)들이 존재하는데요. 구조적으로 겹과 결, 층위들로 나뉘어 있고, 베어먹는 순간 쏟아지며 흩어지는 그 부스러기들까지 그 모습을 감각화하고 싶었습니다. 질문하신 사적인 관계 역시 이 레이어의 작용 아래 있지 않나 생각합니다. 사람들은 저마다 자신도 모르는 내면의 겹과 결을 통해 상대를 인식하니까요. 자신이 어떤 기준으로 타인을 인식하고 해석하는지 의식하지 못한 채 관계를 맺고 또 어긋나는 경우도 많은 듯합니다.
「선의 감정」 「단 하나의 아이」 「이모에 관하여」에서는 여성에게 지워지는 과도한 돌봄 노동에서 비롯한 불균형과 죄책감이 반복됩니다. 돌봄의 이야기를 통해 전하고자 한 모순은 어떤 것일까요?
저는 돌봄의 감정보다 돌봄의 구조에 대해 많이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돌봄은 흔히 사랑과 책임의 영역으로 간주되지만, 실제로는 매우 구체적이고 반복되는 노동 행위입니다. 그리고 우리 사회에는 다른 관계들처럼 돌봄의 문제에도 여러 모순들이 겹쳐져 있는데요. 그 논의에서도 정작 돌봄 일을 하는 당사자는 소외되곤 하는 것 같습니다. 돌봄은 누군가를 지키는 일이지만 동시에 누군가를 소모시키거나 희생시키는 일이기도 합니다. 오늘날 우리 사회의 돌봄은 여전히 가정의 영역 내에 머무는 듯하면서도 동시에 빠른 속도로 비즈니스화, 외주화가 이루어지는 중입니다. 그 이 모순과 역설의 장을 들여다보는 건 결국 한국사회를 들여다보는 일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노 피플 존』에는 사회가 규정한 ‘자연스러운 역할’에 순응하는 듯 보이지만, 예상치 못한 순간에 선을 넘어서는 여성들이 등장합니다. 갑질, 성폭력, 돌봄노동 강요 등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흔들리고, 죄책감을 느끼면서도 때론 ‘급발진’하며 주체적으로 반응하는 인물들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이들을 통해 보여주고 싶은, 넘고 부수고 싶은 선은 무엇이었나요?
소설의 인물이 순응과 저항, 책임과 욕망 사이에서 갈등하고 흔들리다가 예기치 못한 방식으로 선을 넘게 되어 버리는 이야기를 좋아합니다. 저의 인물들은 여전히 머뭇거리고 흔들립니다. 당연하다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현실에서 그렇듯이요. 하지만 그 과정 속에서 자신이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진심으로 가고자 하는 길이 어디인지에 대해 보다 분명하게 알게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세상은 변했고, 변하고 있으며, 저의 인물들은 2020년대를 살아가는 사람들이니까요. 그 변화가 인물들의 욕망과 선택에 스며들어 있지 않을까요. 저는 제 소설이 선을 넘고 부술만한 힘이 있다고 생각해본 적은 없습니다. 그렇지만 여전히 버티고 있는 ‘선’의 존재를 명료하게 인식하고 그에 맞서는 힘은 가질 수 있다고 믿으려고 합니다.
『사는 사람』 출간 당시 SNS를 통해 이제 재미있는 작업만 하겠다고 말씀하신 적이 있는데요, 앞으로의 작업이 궁금합니다.
그 이야기는 선택과 집중을 하겠다는 뜻이었습니다. 글쓰기는 생각보다 많은 에너지와 시간이 필요한 일입니다. 문득 이제 일할 시간이 그렇게 많지 않다는 데에 조바심이 났는데요. ‘재미’에는 여러 의미가 있겠지만 저에게 재미있는 작업이란 ‘내가 하고 싶은 일’과 ‘가장 잘하는 일’이라는 두 조건이 함께 충족되는 일인 것 같아요. 다음 계획은 내년에 장편을 출간하는 것입니다. 아주 오랫동안, 몇 번이나 고쳐 쓰고 있는 소설인데요. 올해 가을, 겨울에는 정말 마지막이라는 각오로 작업할 예정입니다.

작업실을 소개해 주세요.
이 책은 9년여에 걸쳐 썼기 때문에, 그사이 저의 작업 공간도 여러 차례 바뀌었습니다. 공유 오피스 몇 곳을 오갔고 최근 몇 해는 작은 작업실을 얻어 출퇴근했습니다. 넓은 창이 있어서, 멀리 대학 캠퍼스까지 보이는 곳이었는데요. 일하는 시간보다 창밖을 멍하니 바라보는 시간이 더 많았던 것 같습니다.
최근, 소설집의 교정을 보는 동안, 자의 반 타의 반 그 공간을 정리하게 됐어요. 당분간 출퇴근 없이 집에 머물면서 쓰려고 합니다. 작업실에 나갈까 말까 망설이는 시간, 오고 가는 시간 등을 줄이고 이제는 보다 효율적으로 지내봐야겠다는 생각도 들고요. 그렇지만 작업실의 (몇 없던) 짐을 다 빼던 날, 휑하니 드러난 공간을 보니 어쩔 수 없이 마음 한쪽이 저릿했습니다.

작업을 하는 동안 가장 의지한 반려 [ _______ ]
저의 어린 개, 루돌이입니다. 지난봄 펴낸 에세이 『어린 개가 왔다』의 주인공, 맞습니다. 제가 작업실 대신 집에서 일하기를 선택하게 된 결정적 이유 중 하나이기도 해요. 작업을 하는 동안 때론 책상 밑 발치에, 때론 서재의 열린 문 바깥에 루돌이가 늘 있었습니다. 개와 함께 살기 전에는 털뭉치 동물이 인간에게 이렇게 안정감을 주는지 몰랐습니다. 루돌이 덕분에 규칙적인 산책도 할 수 있었습니다.
마감 후 하고 싶었던 일은 무엇인가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기분, 자유롭다(?)는 기분을 마음껏 느끼고 싶었어요. 글자로 된 것은 하나도 읽지 않고 온종일 누워서 쇼츠만 봐야지, 하기도 했고요. 그런데 사실은 소설을 한 편 한 편 다시 읽고 수정하는 과정이 정말로 행복하고 충만했기 때문에 이 마감이 끝나지 않았으면 하고 바랐습니다.
할 일이 있을 땐 그것 빼고 모두 재밌게 느껴집니다. 책을 만드는 동안 특히 재밌게 본 남의 콘텐츠는 무엇인가요?
시리즈물은 새로 시작하지 못했습니다. 그것 때문에 일정에 차질이 있을까봐서요. 제 경우에는 소설을 집중적으로 쓰거나 수정하는 동안, 다른 소설들은 잘 읽게 되지 않습니다. 호흡이 흐트러질 것 같다는 이유 때문이에요. 그래서 이번에 책을 묶는 작업을 할 때에도 소설 아닌 다른 책을 주로 읽었습니다. 에세이 중에서 임솔아의 『다시, 뒷면에게』, 유진목의 『재능이란 뭘까?』, 홍한별 『흰 고래의 흼에 대하여』 등이 인상적으로 떠오릅니다.

가느다란 실 같은 불안으로 우리는 이어져 있다. 이런 것도 연결감이라고 할 수 있을까. (「선의 감정」 중에서)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노 피플 존
출판사 | 문학동네
이참슬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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