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핫 스팟>
넷플릭스
후지산이 보이는 어느 마을, 호텔리어로 근무하는 주인공은 우연한 기회로 함께 근무하는 선배가 외계인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다. 절대 다른 사람에게 얘기하지 말라는 외계인 선배와의 약속을 한나절 만에 저버리고 절친한 친구 둘에게 그 사실을 털어놓는 주인공. 주인공을 포함한 세 친구와 한 명의 외계인은 도란도란 함께 밥을 먹고 휴대폰에 보호필름을 붙여 주는 사이가 된다... 이것이 이 드라마의 전부는 아니지만, 점점 가까워지는 세 친구와 외계인 선배의 사이를 구경하는 일은 무척 좋다. 무례한 말을 뱉어놓고 아, 미안합니다, 라고 거듭 사과하지만 하나도 안 미안해 보이는 사이가 괜히 부러웠다.
『미시마 유키오의 편지 교실』
미시마 유키오 | 현대문학
이 소설은 다소 특이한데, 시작에 앞서 작가가 등장해 편지를 주고받을 다섯 명의 등장 인물의 외양과 성격에 대해 설명해 준다. 그리고 ‘육체적 사랑을 요청하는 편지’, ‘돈을 빌려줄 것을 요청하는 편지’ 등 장 제목으로 편지의 목적을 일러준다. 목적에 충실한 (남의) 편지를 읽는 일은 즐거웠다. 각 장마다 이야깃거리는 다르지만 편지의 성격은 일관되게 속되고 뻔뻔하며 그리하여 수치스러운 웃음을 자아내는데, 인물들이 수치스러움을 모른다는 점이 좋다. 읽으면서 이런 소설을 쓸 때 작가는 얼마나 재밌었을까... 하고 부러워했는데 다시 생각해 보니 미시마 유키오라... 그렇게 재밌어하지 않았을지도? (아닌가?)
『집오리와 들오리의 코인로커』
이사카 고타로 | 현대문학
읽기 시작한 순간부터 나는 이 소설을 좋아하게 되리라고 예감했다. “한 가지 배운 게 있다. 서점을 털 정도의 각오 없이는, 옆집에 인사를 가면 안 된다.”라는 어느 장의 마지막 문장과, “한 가지 배운 게 있다. 위험을 감수할 각오 없이는, 출입 금지 장소에는 들어가면 안 된다.”라는 다른 장의 마지막 문장을 읽을 때 벌써 그런 생각이 들었다. 두 문장의 화자는 서로 다른 사람이고 다른 사람이 다른 시간과 다른 상황에서 내뱉는 문장은 아귀가 딱 들어맞는 톱니바퀴처럼 서로 상관한다. 혹은 상관하지 않지만 연관이 있을 거라는 암시를 준다. 돌고 도는 쳇바퀴 같기도, 회전목마 같기도, 윤회 같기도 한 소설을 지금 만나서 무척 다행이다.
『해변의 스토브』
오시로 고가니 | 문학동네
단편만화를 좋아한다. 단편소설을 좋아하는 이유와 아주 비슷한 이유로. 어디에서 시작해서 어디에서 끝날지 알 수 없다는 기대감, 걸음을 뗀 곳과 멈춘 곳 사이의 거리가 아주 멀어져도, 여기가 거기 아닌가? 싶을 정도로 가까워도 작가의 개성으로 빛나는 부분을 보게 되기만 한다면 전부 괜찮아지는 마법 같은 짜릿함. <해변의 스토브>에는 콘센트를 꽂지 않아도 켜지는 스토브, 자기 팔을 뚝 잘라내 미니 설녀를 만들어 내는 설녀 같은 두근거리는 상상 존재와 함께 현실의 사람이 지닌 곤란함이 사이좋은 비율로 배합되어 있다. 깜짝 놀란 뒤 반드시 슬퍼지는 사람. 우리 모두 조금씩 그렇구나, 생각하며 이 단편만화집을 토닥토닥 읽었다.
이 책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아주 멀리 가는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무더운 여름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 이 도시와 사람과 일에 짜증에 가까운 싫증을 느낀 두 남자 부바르와 페퀴셰가 만나며 모든 일은 시작된다. 비슷한 것도 다른 것도 많은 두 사람은 하필 “시골에 가서 살면 얼마나 좋을까!”라는 데에 의견 일치를 본다. 그리고... 진짜로 떠난다, 그들이 드디어 시골로 떠나는 책세상 판 1권 32쪽에 이르러 나는 이렇게 메모했다. “모든 것이 잘못되기 시작...” 시골에 정착한 그들은 책을 통해 세상의 모든 것을 배우기 시작한다. 원예, 농업, 화학, 의학, 문학... 그리고 도미노가 쓰러지듯 모든 것에 실패한다. 다만 그들은 지쳐도 지치지 않는다. 다음 책으로, 다음 도전 과제로 넘어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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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시마 유키오의 편지교실
출판사 | 현대문학
해변의 스토브
출판사 | 문학동네
アヒルと鴨のコインロッカ-
출판사 | 東京創元社
Bouvard y Pecuchet: Novela
출판사 | Createspace Independent Pub

김화진
2021년 문화일보 신춘문예에 단편소설 「나주에 대하여」가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나주에 대하여』, 연작소설 『공룡의 이동 경로』, 장편소설 『동경』, 단편소설 『개를 데리고 다니는 남자』, 『개구리가 되고 싶어』 등이 있다. 『나주에 대하여』로 제47회 오늘의작가상을 수상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