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송섬별 칼럼] 내 뼈를 보고 싶어 했을지가 궁금하다
이 삶을 계속 같이 살자 ① - 고양이 올리버에서 시작하는 이야기, 그러나 폴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한.
글 : 송섬별
2025.0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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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올리버와 함께 세 들어 살았지만, 아파트에 도착하는 우편물 대부분은 올리버가 받았다. 


몸이 튼튼하고 성품은 서글서글한 흰 고양이는 대도시에 혼자 살고 그 이유로 범죄의 표적이 되어본 여자보다는 여기저기 내세우기 좋은 존재다. 특히 우편물 수신자가 되기에도 좀 더 안전한 이름을 갖고 있었다. 마침, 덩치도 컸다. 그는 모든 것을 특대형이나 점보 사이즈로 사용하는 고양이였고, 갈팡질팡할 땐 중형견이 쓰는 것으로 사면 대개 잘 맞았다. 


네 이름으로 우편물을 받아도 되느냐고 허락을 구한 적은 없지만, 선뜻 그래도 좋다고 했을 게 틀림없다. 아예 현관문을 열고 택배를 직접 받아주었을지도 모른다.  

 

나는 우편물을 대신 받아주는 내 고양이가 좋은 나머지, 여기저기서 그의 이름으로 행세하기 시작한다. 이름을 써야 하지만 굳이 기억되고 싶지 않을 때마다 나는 내가 올리버인 척한다. 사용자 이름이 올리버로 설정된 앱으로 커피를 주문하고 기다린다. 올리버 고객님을 위한 커피는 희고 촘촘한 거품 위로 갈색 에스프레소 더블 샷을 조금, 말하자면 귀와 이마를 모자처럼 덮고, 등허리와 궁둥이 일부를 얼룩지게 할 만큼 부은 것으로, 따뜻하다. 밤에 베개처럼 베고 자고 싶을 만큼. 지도 앱을 사용하는 것도 올리버다. 올리버는 서울을 종횡무진 돌아다닌다. 처음 가보는 지하철역에 내린다. 화살표를 따라 민첩하게 환승역을 헤집고 지나간다. 자기 이름으로 등록된 이런저런 도구들을 잘 사용해 멀리, 예컨대 동해에 가기도 한다. 바다에 간 올리버는 올리버 님의 헤드폰으로 올리버 님의 전자책 서재에 저장된 오디오북을 들으면서, 김이 피어오르는 올리버 커피를 마신다. 나는 내가 고양이에게 지어준 올리버라는 이름이 썩 마음에 든 모양이다. 그것은 흰 고양이가 별안간 나타난 그날 밤 타계한 동성애자 작가한테서 얻어온 이름이다. 한 사람이 지구에서 사라지는 순간에 한 고양이가 나타나 이름을 달라며 빽빽 울었다. 그런 식으로, 올리버라는 이름은 아주 잠깐이라도 사라진 적이 없었다. 고양이가 온 그날은 무더운 날이었다. 그게 기억난다. 고양이만 빼고 모두 땀을 흘리고 있던 밤.  


추운 낮에 우리는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찾아간다. 올리버는 뒷좌석에 누워 있다. 좀처럼 끝나지 않는 긴 겨울 끝에 간신히 해가 난 날, 우리는 이 햇빛이 사그라지기 전에 너를 보내주고 싶다. 얼룩진 등허리에 조금이라도 해를 쬐어 주고 싶다. 사람들을 화장하는 곳과 마찬가지로 외진 데 있는 반려동물 장례식장을 찾아가기 위해 나는 너의 지도 앱을 켜고 달린다. 창밖을 지나가는 낯선 풍경들 속에 계속 기억하고 싶은 건 아무것도 없다. 가야 할 곳에 도착하자, 화단에 꽂힌 색색의 바람개비가 겨울바람을 맞으며 돌아가고 있다. 너는 빙빙 돌아가는 걸 뭐든지 좋아했으니 나쁘지 않은 광경이다. 건물 앞에 차를 세울 무렵 알림창이 나타난다. 올리버님! 총 1시간 40분 만에 목적지에 도착했어요!


반려동물을 위한 장례지도사를 만나자 기묘하게 마음이 놓인다. 고요하고 정중한 이 건물 어딘가에 분명 올리버가 들어가고도 남을 화로가 있을 것이라는 생각, 지붕 위로 다른 고양이나 개가 타는 연기가 뿜어져 나오는 중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에서 잠깐 벗어날 수 있다. 게다가 장례지도사는 나의 슬픔을 이해하는 것 같다. 올리버가 병치레하는 동안 만난 수많은 수의사보다 더. 덕분에 나는 아주 비싼 유골함을 결제하고 만다. 또 하마터면 리넨으로 된 고급 수의를 입힐 뻔 한다. 올리버가 살아 있을 때 옷 입는 걸 모욕적으로 느꼈다고 상기시켜준 가족이 없었더라면 거의 그럴 뻔했다. 결국 올리버는 지나치게 번들번들한 광택이 도는 수의에 감싸인 채 삼나무 관에 눕혀져 태워질 준비를 했다. 점보 사이즈 올리버가 고양이용 관에 들어가지 않아 5만 원을 추가하고 관 크기를 키워야 한다. 


화장이 끝난 뒤 뼈를 보시겠습니까? 장례지도사가 묻고, 나는 못 볼 것 같다고 답한다. 볼 수 없을 것 같다. 조금 전까지 털과 조직으로 감싸여 있었던 올리버가 그것들을 잃어버린 모습을 견딜 수 있을 리 없다. 올리버를 다시 보는 건 그의 뼈가 다시 한번 고온에서의 압축과 성형을 견딘 뒤 희고, 둥글고, 엄청나게 많은 돌의 형태로 변하고 난 뒤다. 분명히 올리버를 연상시키면서도 정말로 그 고양이는 아니라는 점에서, 그러니까 내가 쓰다듬길 좋아하던 머리와 힘차게 휘두르던 꼬리는 어디인지, 혹시 자잘한 뼈들은 털과 함께 타 버린 것인지 확인할 수 없다는 점에서, 그러나 희고, 둥글고, 또 무엇보다 엄청나게 많다는, 그 고양이의 중요한 특성을 여전히 지니고 있다는 점에서, 이것은 내가 올리버의 몸을 불에 태우기로 결정한 뒤로 내게 남은 유일한 재회의 형식이다. 장례지도사는 곤란한 표정으로 올리버의 뼈로 만든 돌이 유골함에 다 들어가지 않을 만큼 많이 만들어졌다고 알려온다. 올리버의 일부만을 호두나무 유골함에 양껏 담은 뒤 나머지는 대강 비닐봉지에 담아갈 수는 없는 노릇이다. 나는 5만 원을 또 추가하고 유골함의 크기 역시 키운다. 그게 딱 하나 웃긴 일이다. 우편물을 대신 받을 만큼 큰 고양이는 죽는다고 해서 새삼스레 작아지지 않는다는 것. 

  

고양이의 뼈는 볼 수 없었지만 우리 모두 폴의 뼈는 보았다. 만져보기까지 했다. 폴의 장례식에서였다. 분명 누군가가, 그러니까 사람을 위한 장례지도사가, 분골 전에 우리에게 물어보았을 것이다. 자살한 친구의 뼈를 만져보시겠습니까? 내가 동의했기 때문에 그의 뼈를 만져볼 수 있었던 것이겠지만, 사실 그 장례식을 둘러싼 대부분의 일과 마찬가지로 그 순간은 거의 기억나지 않는다. 완전한 흰색이 아니고, 생각보다 큰 뼈에 손끝을 살짝 가져가면서 나는 다리뼈인가, 생각했다. 그러고 보니 폴의 다리와 닮은 것 같기도 했다. 


나중에 나는 내가 네, 만져보고 싶습니다, 냉큼 대답하고 유골을 만지러 가는 장면을 여러 번 상상했다. 분명 있었겠지만 기억에는 없는 장면으로 자꾸 돌아갔다. 기억나지만 나중에야 의미를 이해할 수 있는 장면들도 있다. 그중 하나는 폴에게서 내가 답하지 않은 마지막 문자를 받은 순간이다. 

 

폴은 2018년 5월 첫주에 죽었다. 우리가 2018년 4월 마지막 주에 싸웠다. 폴이 죽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그 싸움 역시 잊어버렸을 것이다. 싸웠다는 사실이 중요치 않은 건 물론, 우리를 영원히 절교하게 만든 그 일이 대체 무엇이었는지를 그 뒤로 몇 년간 곱씹을 필요도 없었을 것이다. 


폴의 문자메시지를 받은 것은 싸운 지 이틀 뒤였다. 내게서 빌려 갔던 전동 드릴을 1층 경비실에 맡겨 두었으니 가져가라는 것이었다. 우리는 같은 아파트 단지에 살았기 때문에—정확히는 폴이 여기 살고 있었고, 나는 대도시에 혼자 살고, 그 이유로 범죄의 표적이 되어본 뒤, 친구와 가까운 곳에 살아야겠다고 마음먹고 이곳으로 이사했다, 고양이를 데리고—책이라든지, 주방 살림이라든지, 식재료나 옷 같은 걸 빌렸다. 보통은 빌려준 물건이 필요해질 때 돌려받고는 했다. 크게 다투고 전화를 끊은 지 이틀 뒤에 당장 내게 필요하지 않은 무거운 물건을 돌려주면서, 엘리베이터를 타고 올라와 문을 두드릴 성의도 없다는 건 무슨 뜻일까? 현관문 비밀번호도 알면서? 무슨 뜻이었건 간에, 실제 일어난 일만큼 최종적이고 완전한 단절을 뜻하는 건 아니었겠지만, 그때는 알 수 없었다. 


당장 복도로 나가 창밖을 내려다보면 빈손으로 집으로 돌아가는 폴이 보일 것 같았다. 우리는 위에서 내려다본 서로의 정수리를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는 잘 아는 사이였다. 하지만 나는 그렇게 하지 않았다. 답장하지도 않았다. 그저 우리 집에 있는 그의 물건들을 생각하며—예컨대 봄맞이 옷장 정리를 하다가 그에게서 물려받은 흰색 점퍼, 싸운 날에도 나는 그 점퍼를 입고 있었다—그것들을 남김없이 하나의 신경 쓰이는 커다란 짐으로 꾸려서, 쓸데없이 불편한 곳에 부려놓고 가져가라고 불쑥 연락하는 장면만 상상했다. 


우리는 자살하는 사람들이 신호를 보낸다고 한다. 죽어가는 고양이의 신호는, 슬프게도, 알기 쉽다. 특발성이나 급성이라는 표시가 붙은 질병들이 자꾸 생겨나고, 알 수 없는 이유로 어떤 치료도 듣지 않는다. 먹지 않는다. 물을 마시려고 애쓰지만 물 또한 먹히지 않는 모양이다. 아무리 쓰다듬어 주어도 기분 좋은 골골 소리를 내지 않는다. 종종 숨는다. 그러다가 수의사가 죄송하다고 말한다. 또는 공격적인 치료를 해보자고 한다. 힘겹게 숨을 쉬는 고양이의 눈을 들여다보면서 너는 그만하고 싶은지, 버티고 싶은지, 내가 이해한 것이 맞는지, 고양이가 딱 한 번만 알려 주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한다. 


자살하는 친구가 보내는 신호는 선명해 보이지만 그건 훗날에야 내릴 수 있는 평가다. 우리는 원래 한밤중에 전화하고, 말없이 울고, 가끔 이상한 행동을 하고, 상대방을 슬프게 하는 이야기를 했고 그게 진짜 신호인 적은 한 번도 없었다. 폴이 성공하기 전까지는. 


전동드릴을 돌려받은 일화는 우리가 커피 그라인더를 돌려주고, 집 앞에 간식을 두고 가고, 갑자기 이렇게 소중한 빌려준 것이 억울해 죽겠다는 듯이 지금 당장 레몬 짜는 도구를 돌려달라고 떼쓰던 일화와 하나도 다르지 않다.


전동 드릴이 우리 집에서 그의 집으로 이동할 때는 그저 이케아에서 산 간단한 가구를 조립하기 유용한 도구였지만, 다시 우리 집에 돌아올 때는 절교의 상징 또는 어떤 결심의 증표가 된 건 오로지 이번에는 폴이 성공했기 때문이었다. 폴의 성공 덕분에 전동드릴은 우리 집 다용도실 선반 위에서 빙빙 돌아갔다. 불빛을 뿜으며 요란하게 울리는 신호이고 경고였다. 그 물건이 있는 집에선 도저히 잠들 수 없었다. 결국 나는 당근마켓에 드릴을 팔아버렸다. 구매자를 만나러 가는 길에는 조금 후회했다. 드릴이 든 가방이 너무 무거워서였다. 폴은 후회한 적 없었을까?  


폴의 자살에는 아무런 수수께끼도 없었다. 우리가 마지막으로 연락한 날부터 폴이 죽었다는 전화를 받은 순간 사이에는 며칠의 시간이 있었다. 그사이에 폴을 만난 사람이 있었다. 죽기 전날 연락한 사람이 있었다. 경찰이 발견한 것. 가족이 알게 된 것. 모두가 유추한 것. 친구들이 듣고 전해준 것. 핸드폰이 버려진 장소. 폴이 발견된 장소. 우리는 그런 단서들을 모아서 말이 되는 이야기를 만들었다. 각별한 상상력이나 추리력이 있어야 꿰어맞출 만한 것은 아니었다. 그저 우리가 만든 이야기보다 더 지독한 일이 없기를 바랐다. 


수수께끼 비슷한 게 단 하나라도 있었다면 그것은 오히려 장례식장 앞에 걸려 있던 그의 영정사진이었다. 우리는 의아했다. 장례식장을 찾는 데는 아무런 문제가 없었지만, 폴의 죽음을 대표하는 그 사진에는 문제가 있었다. 퀴어 친구들의 장례를 치를 때 눈앞에 자꾸 모르는 사람의 얼굴이 나타난다. 다른 이름, 종종 다른 성별. 본인이 직접 고를 수 있었더라면 절대 쓰지 않았을 사진이 입구에 걸려 슬퍼하는 친구들을 맞이하고, 친구들은 낯선 사진에 대고 작별을 고한다. 우리가 아니라, 죽은 사람이 아니라, 죽은 사람과 공식적으로 가장 가까운, 그래서 사진을 고를 자격이 있는 사람의 눈에 가장 바람직했을 사진에.  

 

고양이의 영정사진은 공식적인 보호자인 내가 골랐다. 이제 없는 고양이의 사진 아래 그의 뼈였던 것이 있다. 죽은 동물들과 친구를 생각하다 보면 나도 언젠가 죽었을지, 그때 마지막까지 나를 지극히 돌보고 사랑했던 누군가가 있었을지, 그래서 내 뼈를 보고 싶어 했을지가 궁금하다.  그 사람은 내 뼈를 어떻게 했을까? 지금도 가지고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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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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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lyme24

2025.03.14

울었어요. 고마워요. ㅠ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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y

2025.03.12

큰 고양이 친구가 그려지네요. 많은 사람들에게 벅찬 마음을 주었을 올리버, 만나고 싶습니다. 또다른 세계로 간 소중한 친구들을 떠올리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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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nowlady

2025.03.12

잔잔하게 시작한 글이 쏘옥 빠져들게 하네요.
올리버와 함께한 시간도 앞으로 더 들려주실테니 기대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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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섬별

읽고 쓰고 옮긴다. 매일 일기를 쓰고 자주 시를 쓴다. 용감하게 살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다. 물루와 올리버라는 치즈 고양이의 식구다. 옮긴 책으로 <페이지보이>, <자미>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