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양자역학의 결정적 순간들
2025년, 양자역학 탄생 100주년. 양자역학은 무엇인지, 역사 속에서 어떻게 발전해 왔는지 알아봅니다.
글ㆍ사진 곽재식(작가)
2025.0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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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자역학의 역사』

데이비드 카이저 저/조은영 역 | 동아시아 


전국 각지에는 선바위, 갓바위, 입암 같은 이름이 붙어 있는 장소가 있다. 이런 장소에는 예로부터 커다란 돌이 기이한 모습으로 자리 잡고 있었다. 그리고 그런 바위를 신령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들도 과거에는 흔했다. 조선 시대 선비들은 잡다한 신령을 섬기는 것을 무척 경계한 편이었다고 하지만, 그런 선비들이 남긴 기록 중에서도 큰 바위를 숭배했다는 이야기는 쉽게 찾아볼 수 있다. 조선 중기의 선비인 이수광이 동네의 갓바위를 향해 기우제를 지낸 기록이 남아 있는가 하면, 비슷한 시기의 장현광이 선바위의 영험함을 칭송하는 글을 쓴 기록도 있다.

 

평소 동네 입구에 길쭉한 모양으로 우뚝하니 서 있어서 사람들에게 “선바위”라고 불리며 영험하다는 이야기를 듣던 바위가 하나 있었다고 상상해 보자.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그 서 있던 바위가 옆으로 쓰러졌다고 치자. 마침 바위가 쓰러지면서 지나가던 어떤 양반을 덮쳤고 그 때문에 그 양반이 다리가 부러졌다고 상상해 보자. 그런데 그 양반은 지난 번 정치 다툼에서 반대파를 너무 심하게 공격했다는 평을 듣고 있었다면? 그러면 영험한 바위가 그 양반이 너무 악한 사람이라서 그를 벌하기 위해 쓰러져서 공격했다는 소문이 돌지 않을까?

 

실제로 옛날에는 이런 식으로 엉뚱하게 이유를 갖다 붙여서 어떤 사람이 죄를 지었기 때문에 날씨가 나빠졌다거나 사악한 사람이 정치를 하고 있어서 나라에 자연 재해가 생겼다는 따위의 이야기들을 사람들이 많이 만들어 냈다. 그 가운데 온갖 물건에 혼령이 깃들어 있다든가, 별 대단찮은 물건이 사람의 운명을 좌우할 수 있는 신통력을 갖고 있다는 주술적인 생각도 같이 퍼져 나갔다.

 

현대의 우리가 본다면, 쓰러진 바위에 어느 양반이 깔린 사건과 영험한 바위가 그 양반의 악함을 알아보았다는 상상 사이에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 아마 분명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그 양반이 지나갈 때 마침 바람이 세게 불어서 위태롭게 서 있던 바위가 넘어진 것일 수도 있고, 그 양반이 너무 요란하게 쿵쾅거리면서 지나가는 바람에 강한 진동이 생겨서 바위가 넘어진 것일 수도 있다. 하다 못해 바위 밑에서 살고 있던 개미들이 점점 집을 넓혀 가다 보니 땅 속의 개미굴이 너무 커졌고 그것이 무너지면서 어느 날 바위가 쓰러졌다는 이유를 생각해 볼 수도 있을 것이다.

 

그런데 바위가 쓰러진 이유로 성격이 아주 다른 현상을 생각해 볼 수가 있다. 바로 양자론적인 확률에 따른 사건이다. 이런 현상은 바위가 쓰러지는 별것 아닌 일을 완전히 다른 느낌으로 돌아보게 해 준다.

 

세상의 바위 속에는 대개 아주 조금이지만 방사능 물질이 포함되어 있다. 방사능 물질이라고 하니까 무섭게 느껴질 수 있는데, 그냥 평범한 돌에도 아주 약간의 방사능 물질은 다들 조금씩 들어있기 마련이다. 그 양이 너무 적어서 사람의 건강에 별 해가 되지 않을 뿐이다. 한국의 바위에는 방사능 물질이 조금 더 많은 편이라고 말해 볼 수도 있다. 한국에 많은 돌인 화강암에는 대개 우라늄이 약간 더 많이 들어 있기 때문이다. 우라늄이 아니라고 요즘에는 포타슘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칼륨 같은 원소만 해도 아주 적은 비율이지만 방사능을 띄고 있는 경우가 있다. 칼륨은 농작물을 뿌릴 때 비료로 뿌리기도 하는 성분이고 사람 몸에도 필요한 영양소다. 그러므로 방사능이 전혀 없는 돌은 극히 드물다고 할 수 있을 만큼 어느 돌에든 방사능 물질이 아주 조금은 포함되어 있다고 봐야 한다.

 

그런데 이런 방사능 물질은 방사선을 내뿜을 때 다른 물질로 변화한다. 그리고 그렇게 물질이 변화하다 보면 가끔은 기체 상태가 되려는 경향이 강한 물질로 변할 때도 생긴다. 예를 들어, 알파 붕괴라는 방사능 반응을 일으키는 물질 중에는 변화하다 보면 라돈이라는 물질이 되는 것이 있다. 또 베타 붕괴라는 방사능 반응을 일으키는 물질 중에는 변화하다 보면 아르곤이라는 물질이 되는 것들이 있다. 그리고 바로 라돈이나 아르곤이 어지간한 경우에는 항상 기체 상태가 되려고 하는 물질이다. 그렇다는 말은 돌 속에 있는 약간의 방사능 물질이 저절로 변화하다 보면, 어느 순간 그 부위가 기체로 변하는 수가 생긴다는 뜻이다. 돌 내부의 아주 작디작은 한 조각이 문득 연기처럼 흩어진다고 생각해도 좋다.

 

그렇다면, 방사능 물질이 방사선을 내뿜으며 변화하는 알파 붕괴, 베타 붕괴 같은 현상 때문에 어느 날 돌의 한 부분이 살짝 약해지면서 부서지는 현상이 발생할 가능성이 있다. 그리고 그 때문에 수 백 년, 수천 년 동안 잘 서 있던 바위가 갑자기 쓰러지는 일도 생길 수 있을 것이다.

 

묘하게도, 양자 이론에서는 알파 붕괴나 베타 붕괴가 언제 일어나느냐 하는 문제가 완전히 확률에 달려 있다고 본다. 알파 붕괴나 베타 붕괴가 1년에 10번 일어나야 한다는 식의 확률은 명확히 정해져 있다. 그런데 1년 중에 언제 마다 10번 방사선을 내뿜으며 변화하는지, 그 구체적인 시점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정해진 것이 없다. 

 

양자 이론에서는 그 시점을 정확히 아는 것이 불가능하며 시점이 언제냐는 문제에 대해서는 더 이상 이유를 찾을 수조차 없다고 본다. 작은 돌 알갱이 속에 어떤 성분이 점점 열을 받다가 열이 한계를 넘는 순간 그 부분이 방사선을 내뿜는다는 식의 이유나 원리 같은 것을 전혀 찾을 수 없다는 이야기다. 이유는 모르지만 결과를 놓고 보면 확률을 지켰을 뿐이다. 돌의 한 조각이 다른 어떠한 까닭도 없이 그저 제멋대로 언제든 방사선을 내뿜으며 변하는 것이다. 마치 돌이 혼자 가만히 있다가 문득 “지금이다!”라고 하면서 방사능을 내뿜고 변화하는 듯한 모습이다.

 

여기서 상상력을 좀 발휘한다면, 이렇게 돌의 어느 한 부분이 갑작스레 방사능으로 변화하는 현상을 두고 돌이 자기 마음대로 변화하는 것 같다고 말할 수도 있지 않을까? 돌이 마음을 갖고 있어서 자기 마음 내킬 때, 그 때 방사선을 내뿜는 것 같지 않은가? 그리고 그 결과로 돌이 쓰러진다면 마치 돌이 자기 마음에 따라 나쁜 양반에게 벌을 주었다고 상상해 볼 수도 있지 않을까?

 

방사능 물질을 약간 갖고 있는 물체는 돌 말고도 많다. 공기, 나무, 자동차, 벽돌 등등 온갖 물질 속에 약간의 방사능 물질은 포함되어 있다. 그러면 이런 물질들도 이렇게 무엇인가 제멋대로 하는 듯한 일을 할 수 있을까? 게다가 양자 이론은 세상의 모든 물질에 적용될 수 있는 이론이다. 그러므로 꼭 방사능 물질이 아니더라도 온갖 물질 속에서 양자 이론에 따라 아무도 알 수 없는 우연에 의한 현상은 자주 일어난다. 그렇다면, 세상의 모든 물질에는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는 부분이 있으며, 그렇기에 만물에는 각기 저마다 마음이 깃들어 있다고 봐야 할까?

 

물론 과학에서 이런 이야기를 하지는 않는다. 만일 선바위가 나쁜 양반과 착한 양반을 구분하고 나쁜 양반일 때 방사능 붕괴를 일으켜서 쓰러졌다면, 그 말은 오히려 선바위가 그 나름대로 어떤 이유에 따라 움직여서 방사능 붕괴를 일으켰다는 뜻이 된다. 그러므로 어떤 다른 이유도 없이 오직 무작위 확률에 따라야 한다는 양자 이론과는 도리어 어긋난다. 그러나 이런 이야기를 살펴보는 것은 어떻게 양자 이론이 갖가지 신비주의의 주장과 자주 연결되곤 하는 지 살펴볼 때 도움이 될 괜찮은 예시다.

 

데이비드 카이저의 『양자역학의 역사』는 이렇게 현대 물리학의 발전 과정과 그 시대의 사회상, 그 시대의 문화가 닿아 있는 분야의 이야기들을 소재 별로 묶어 소개한 책이다. 예를 들어 이 책에는 1970년대에 나온 프리초프 카프라의 과학 책이 어떻게 수많은 신비주의 신봉자들에게 인용되며 인기를 끌었는지 풍부하게 정황을 설명하고 있다. 그렇기에 짧은 내용 속에서도 카프라가 의외로 상당히 깊게 과학을 연구한 학자였다는 점도 잘 짚고 있다. 그러면서도 이런 책이 주목을 받은 배경에는 그 시절 물리학 전공자가 줄어 드는 상황에서 젊은이들에게 관심을 얻기 위한 방편을 찾자는 학계의 움직임도 같이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도 이야기해 준다. 그런 식으로 과학, 사상, 사회의 변화가 갖고 있는 관계에 대해 여러 가지 생각을 해 볼 기회를 줄 수 있는 책이다.

 

제목이 『양자역학의 역사』인데 비해 양자 이론에 관한 내용만을 다루고 있는 책은 아니다. 또한 보통 역사 이야기처럼 시대 순으로 변화 과정을 서술한 책도 아니다. 양자 이론, 상대성 이론, 현대 천문학과 입자 이론을 아우르는 다양한 현대 물리학 소재들을 두루 다루면서, 소재 별로 사연을 소개하는 형식이다. 그렇게 해서 왜 어떤 수십 조 원짜리 실험 기구는 건설할 예산을 얻었고, 어떤 정치 상황의 변화 속에서 다른 수십 조 원짜리 실험 기구는 취소되었는가 하는 등의 다양한 면모를 지닌 이야기 거리 들을 주제 별로 이야기한다. 그리고 그런 이야기 속에서 예산 문제라던가 시대에 따라 바뀌는 연구의 유행, 과학 분야의 인기와 같은 과학자들이 연구 과정에서 만나는 현실적인 문제들을 같이 잘 다루고 있다. 

 

그렇기에 누가 읽어도 될 책이지만, 아마도 한 때 과학을 전공해 본 적이 있거나 혹은 근래에 현대 과학에 관한 서적을 재미있게 읽은 사람이라면 더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책일 것이다. 기이한 일화와 전설적인 천재들의 사연을 따라 가며 책장을 넘기는 가운데, 과학과 사이비 과학의 차이는 무엇인지, 진지한 연구를 위한 투자와 무의미한 예산 낭비를 어떻게 구분해야 할 지, 어떻게 해야 그럴 듯한 과학 용어를 내세워 사람을 현혹하는 이야기를 피해갈 수 있을 지, 고민해 볼 시간을 가질 수 있다면 이 책의 제 맛을 느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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곽재식(작가)

작가이자 숭실사이버대학교 환경안전공학과 교수. KAIST에서 원자력 및 양자 공학 학사 학위와 화학 석사 학위를, 연세대학교에서 공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각종 대중매체에서 과학 지식으로 사회 현상을 해석하는 패널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