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완선 SF 칼럼니스트가 일상에서 벗어난 딴생각을 풀어내는 칼럼을 연재합니다. 격주 화요일 연재. |
언스플래쉬
야외 관광지에서 화장실을 찾을 때 내심 불안했던 경험, 많이들 있지 않을까? 사람이 바글거리는 구역의 화장실은 빠르게 더러워진다. 과연 안심하고 발을 디뎌도 될 만큼 바닥이 멀끔한지, 수세식 변기가 충분히 하얀색일지, 물이 제대로 내려갈지, 휴지가 갖춰져 있을지, 혹은 줄 선 사람들 틈바구니에서 돌이킬 수 없는 불상사가 발생하기 전에 빈칸을 차지할 수 있을지 걱정스럽다. 그래도 사람이 화장실에 안 갈 수는 없다. 밖을 돌아다니다 보면 자신이 놓인 여건을 직면하는 순간이 필히 닥치기 마련이다. 소설 주인공과 달리 우리는 나날이 먹고 자고 싸는 존재다.
최근에는 경주에 갈 일이 있어 불국사에 들렀다. 마침 곳곳에 단풍이 든 모습이 매우 아름다웠다. 버드나무가 드리운 연못이나 색색깔의 단청과 연등도 구경하기에 좋았다. 아름다움에 걸맞게 사람이 심각하게 많기도 했다. 그리고 나는 화장실에 가야만 했다. 옆에서 내내 국사 지식을 일러주던 친구가 농담조로 한마디 했다. “화장실도 신라시대 식인 거 아니야?”
나는 아늑한 화장실에 익숙해진 나약한 현대인이다. 좋은 화장실이라면 모름지기 사방이 깨끗하고 향긋한 냄새가 풍기는 따뜻하고 밝은 공간이어야 한다. 다행히 불국사 화장실은 평범하게 수세식 좌변기와 두루마리 휴지를 갖춘 곳이었다. 그런데 화장실 밖으로 나오니 바로 근처에 신라시대 화장실 유구가 있었다. 그것은 화장실이라는 팻말 때문인지 확실히 변기로밖에 보이지 않는 돌덩이 여섯 개였다(어쩌면 다섯, 내가 무의식적인 거부감에 착각했을지도 모른다). 돌은 납작하고 편평한 사각형 아니면 둥그런 바구니 모양이었는데, 하나같이 가운데가 오목하게 파여 있었다. 어떤 어린애가 그 위에 올라가 변기를 사용하는 시늉을 했다. 가족으로 보이는 일행이 당황하며 아이를 말렸다. 누구나 무슨 시늉인지 알 만큼 그것의 모양새는 노골적이고 직관적이었다. 나는 또 쓸데없는 걱정을 했다. 시간여행에 휘말려 과거에 떨어지면 저런 변기를 쓰는 건가? 펄프가 지금만큼 흔치 않던 시절에는 이파리 같은 걸로 뒤처리 했겠지? 만약 물자가 부족한 포스트 아포칼립스 미래로 가면 어떡하지? 휴지 써도 되나?
문명이 붕괴한 멸망 이후를 그리는 포스트 아포칼립스 장르에서는 등장인물이 보급품을 챙기는 모습이 자주 등장한다. 예를 들어 존 윈덤의 『트리피드의 날』에서는 녹색 유성우가 내린 다음부터 갑자기 전 세계 인구 대다수가 시력을 상실한다. 그들은 패닉에 빠진다. 평소처럼 일할 수 있는 사람은 없다. 물자는 갈수록 부족해진다. 식량이나 무기를 비축하는 일이 급선무가 된다. 남자 주인공을 비롯해 운 좋게 시력을 온존한 소수의 사람들은 앞장서서 원정을 다닌다. 이웃 도시의 창고에서 비스킷 상자를 발견하고 트럭에 싣는 식이다. 튼튼한 공구 상자, 괴물의 공격을 막을 마스크, 총기와 화염방사기도 중요하다. 그런데 화장실에 둘 두루마리 휴지를 보충한다는 언급은 없다. 나는 세상이 멸망하는 소설을 숱하게 보았지만 생존자들이 화장실을 어떻게 사용하는지는 거의 모른다. 하지만 한번 생각하기 시작하면 신경 쓰여서 견딜 수가 없다. 저기 말인데, 휴지, 없어도 괜찮아?
생리대 보급도 자주 생략된다. 『트리피드의 날』의 여자 주인공은 가임기이고 심지어 출산도 한다. 작가는 그녀가 매달 주룩주룩 흐르는 피를 어찌 처리했는지에 전혀 관심이 없는 듯하다. 현명한 여자라면 재난 상황에 처해도 센스 있게 처신하리라는, 그런 믿음이 있는 걸까. 내 몸에서 나오는 피를 보고 있으면 소설에 등장하지 않는 우스꽝스러운 상황을 상상하게 된다. 만약 내가 살인사건 용의자가 되어 경찰이 집에 찾아온다면, 그들은 내가 남편을 살해하고 욕실에서 토막 내지 않았는지 조사할 것이다(내겐 남편이 없는데, 어쩐지 이런 상상에서 피해자는 남편이다). 루미놀을 뿌려서 혈흔이 있는지 감식할 것이다. 나는 이렇게 변명한다. 생리 둘째 날이라 피가 좀 많이 나왔을 뿐이에요. 그게 남았나 보죠. 이런 식의 변명이 얼마나 터무니없는 소리인지는 잘 모르겠다. 범죄소설도 숱하게 읽었는데 핏자국에 대해 생리 핑계를 대는 용의자는 보지 못했다. 허튼소리이기 때문일까, 아니면 작가들이 인물의 생리적인 활동을 존재하지 않는 듯이 취급하기 때문일까?
만약 피 냄새를 감지하는 괴물이 쫓아오는데 내가 생리 중이라면? 이와는 조금 다르지만 타무라 유미의 만화 『세븐 시즈』에는 철에 반응하는 박테리아가 등장한다. 주인공들은 냉동 수면에 빠졌다가 지역별로 7명씩 미래에서 깨어난다. 살아남은 사람은 거의 없고 세상은 극히 척박해진 다음이다. 지역별 생존자 그룹에는 가임기 여성이 섞여 있다. 그들은 남자들과 달리 자기 몸의 변화에도 대처해야 한다. 좋든 싫든 그게 현실이다. 한번은 일행이 낡은 배를 탐색하는 동안 여자 주인공 한 명이 우연히 생리를 시작한다. 그런데 화장실에 버렸던 생리혈이 배에 잠들어 있던 박테리아를 깨운다. 박테리아는 그녀를 쫓아 무섭게 번식하며 배를 부식시킨다. 덕분에 나중에는 기적 같은 사건이 일어난다. 생리하는 몸은 성가시고 불편하지만 늘 나쁜 결과를 낳지는 않는다. 타무라 유미는 생명력 넘치는 강인한 여성 인물을 곧잘 그리는데, 그들은 여자의 몸을 갖고 생생하게 역경에 맞서곤 한다. 비슷한 몸을 지닌 사람으로서 참고가 된다. 혹시라도 포스트 아포칼립스에 떨어진다면 타무라 유미의 주인공처럼 되고 싶다. 이쪽 세상에는 먹고 자고 싸는 데다 피까지 흘리는 사람을 위한 자리가 있다.
물론 가능하면 최대한 안온한 삶을 살고 싶다. 되도록 화장실에서의 존엄성이 보장되는 환경이면 좋겠다. 생각해보면 사람이 머무는 공간이면 기차에도, 비행기에도, 하다못해 우주정거장에도 화장실은 있다. 우주정거장의 화장실 변기는 진공청소기처럼 대상을 빨아들인다고 한다. 무중력 상태에서 둥둥 떠다니는 물질을 처리하기 위해 고안된 방식이다. 그렇다면 우주에서는 진공흡입이 존엄성이다. 앞서 좋은 화장실의 요건을 말했는데, 최적의 화장실을 고민한다면 훨씬 다양한 상황에 대한 고려가 필요한 듯하다. 게다가 얼마 전에는 인공 항문인 장루를 이용하는 사람을 위한 변기를 알게 되었다. 장루 위치에 맞도록 일반 변기보다 높은 자리에 세면대처럼 설치되는 거였다. 장루를 쓰지 않는 나는 그런 변기가 필요한지조차 몰랐다. 이건 생리하지 않는 사람이 보급품에 생리대를 누락하는 경우와 다소 비슷한 일이다. 입장 바꿔 생각해보지 않으면 모른다. 포스트 아포칼립스를 상상하니 두루마리 휴지와 생리대가 새삼 소중하게 느껴지는데, 누군가는 지금의 화장실에서 포스트아포칼립스처럼 곤란을 겪는다. 내가 만족하는 지금의 화장실 형태가 누군가에겐 불편하고 불안한 구조다. 나를 비롯한 모든 사람이 휴지 없는 화장실을 피할 수 있길 바라는 동시에, 성별, 나이, 정체성에 상관없이 편안하게 쓸 수 있는 ‘모두를 위한 화장실’이라는 말을 되새겨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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심완선(SF 평론가)
책과 글쓰기와 장르문학에 관한 글을 쓴다. SF의 재미와 함께, 인간의 존엄성 및 사회적 평등과 문학의 연결 고리에 관심이 있다. 지은 책으로 『SF와 함께라면 어디든: 키워드로 여행하는 SF 세계』 『우리는 SF를 좋아해: 오늘을 쓰는 한국의 SF 작가 인터뷰집』 『SF는 정말 끝내주는데』가 있고, 『취미가』 『SF 거장과 걸작의 연대기』를 함께 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