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뷰] 웹소설이라는 문화비평
웹소설이 가진 미디어로서의 가능성, 그리고 서사라는 형태의 놀라운 효능에 대하여.
글 : 이융희
2025.06.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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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지난 8개월 동안 웹소설이 가진 가능성을 다방면으로 이야기드리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웹소설에서 ‘환상성’이라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댓글이나 클리셰, 회빙환이나 유행하는 소재가 어떤 역할을 하는지, 그리고 소설 바깥에서 팬덤과 문화를 다루는 형태까지. 오늘 이야기드릴 부분은 웹소설이 가진 미디어로서의 가능성, 그리고 서사라는 형태의 놀라운 효능에 관련된 이야기입니다.

 

2018년 2월 무렵, 청와대 국민청원에서는 아이돌 ‘걸스데이’ 멤버 유라의 경구피임약 광고와 관련된 게시물이 하나 올라갑니다. 아이돌 그룹 멤버의 여성피임약 광고까지 공중파 채널이나 각종 미디어를 통해 나오는데 왜 피임약보다 부작용도 없고 성병 예방을 위해서도 필수적이며 85%의 높은 피임율을 보이는 콘돔 광고가 덜 송출되느냐, 콘돔사용을 국가가 장려해야 한다는 내용이었죠. 이런 논의는 2017년 동아제약이 국내 피임약 광고 역사에서 전무했던 아이돌을 메인 광고모델로 선정하며 촉발되었지요.

 

그런데 이런 논란 외에도 일각에서는 아이돌이 피임약 광고라니, 소속사 이미지는 생각 안 하냐는 목소리와 함께 이런 내용을 금기시하는 문화가 잘못되었으며 시대가 바뀐 만큼 피임약과 관련된 내용도 자연스럽게 문화로 받아들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맞붙기도 했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논란을 약 1~2년 전에 거의 정확히 예측한 소설이 있다면 믿으시겠습니까? 바로 뫼달 작가의 『영업사원 김유빈』입니다. 이 소설은 국내 중견제약회사인 백서제약의 영업사원 김유빈이 영업에 필요한 스승을 만나 영업에서 훌륭한 능력을 발휘하여 승승장구하는 내용을 다루고 있습니다. 바로 이 소설의 36편(E-book 기준 2권, 11장)에서 ‘피레논’이라는 여성 경구피임약이 소재로 등장합니다. 연재날짜가 2016년 2월 20일이니 광고가 막 송출된 2017년 8월보다 1년 6개월 정도 빠른 시기지요.


 

소설 속 피레논은 피임약이면서 호르몬 치료제입니다. 기존의 경구피임약이 가지고 있던 부작용을 치료하며 조금 더 효과가 좋은 의약으로 나왔다는 설정이지요. 하지만 이러한 경구피임약의 사회적 인식은 무척 미약합니다. 70편, 몰락(2)에서는 이런 대화가 나오거든요.

 

“인정하기 싫은 현실이지만 출산율 저하로 산부인과의 상황이 점점 열악해지는 것도 현실입니다. 산부인과 전공의도 지원자가 없어 미달이라고 하지 않습니까. 게다가 사업부 매출의 큰 비중을 차지하는 피임약을 복용하는 한국 여성의 비율이 3%를 못 넘고 있는 것도 이유 중 하나일 겁니다.

 

유빈의 날카로운 분석에 전무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제는 유빈의 이런 모습에 익숙해지고 있었다.

“마의 3%지. 1%라도 증가시켜 보려고 십 년 넘게 수많은 캠페인을 벌였지만 다 허사였네.” (뫼달, 『영업사원 김유빈』, 70. 몰락(2) , 2016.3.17)

 

주인공은 여성건강사업부에 속한 영업사원으로, 자신의 커리어를 쌓기 위해선 이 피레인 판매율을 6%까지 두 배가량 늘려야 합니다. 이것은 단순히 해당 제품의 매출이 두 배가 되는 것이 아니라 호르몬 시장 전체가 커진다는 것을 의미하거든요. 주인공은 이러한 매출을 달성하기 위해 프로젝트를 진행합니다. 그 중 하나가 바로 드라마 PPL이었습니다. 그리고 85화, 본격적인 행보(3)에서는 로맨틱 코미디의 여성 주인공의 입을 빌려 페레논의 광고가 진행됩니다.

 

“우리 언니, 꽃다운 스물두 살에 지윤이 낳아서 지금까지 미혼모로 살고 있어요. 대한민국에서 미혼모로 산다는 게 얼마나 힘든 건 줄 알아요? 아니, 당연히 모르겠죠. 상상도 못하겠죠. 승준 오빠도 남자니까.”(중략)“남자가 콘돔도 안 쓰고 관계에서 지윤이가 생기니까 바로 도망가 버렸어요. 물론 사랑하는 사이였죠. 그래서 전 남자 안 믿어요. (뫼달, 『영업사원 김유빈』, 85, 본격적인 행보(3), 2016.3.31.)


장르문학은 이 사회에서 살아가는 우리, 대중의 모습을 포착한 뒤 긴 장편으로 이야기를 풀어냅니다. 그렇다보니 이처럼 우리 사회의 이슈화 될 법한 소재들을 적극적으로 다루는 경우를 종종 찾아볼 수 있습니다. 앞서 소개해드렸던 소설 『요리의 신』 같은 경우도 요리와 요리평론가, 비평에 대한 소재를 적극적으로 다루고 있지요. 윤광은 평론가가 <한국 힙합의 장르적 로컬라이징과 우원재>라는 비평을 진행하기 2년 전. 2015년 7월부터 2016년 5월까지 연재된 샤이나크 작가의 『더 랩스타』는 힙합과 로컬라이징에 대한 주제를 긴 서사로 풀어내고 있습니다. 아주 오래전, 2005년에 출간된 『레이센』에서는 26살 청년들의 취업난과 경제난을 해결하기 위한 청년임대주택의 모델이 소개되기도 하죠. 이렇게 긴 이야기를 통해 전달된 문화비평은 일반적인 비평보다 더욱 강한 기억과 메시지를 전달합니다.

 

옛 유대인 교훈 중에선 이야기와 관련된 한 우화가 있습니다. ‘진실’이라는 소녀가 혹독한 추위와 굶주림에 떨며 한 마을 안으로 들어섭니다. 그러나 가혹하게도 마을 사람들은 소녀를 가차없이 문전박대 했지요. 사람들은 벌거벗은 소녀의 모습에 놀랐던 것입니다. 때마침 지나가던 ‘우화’라는 이름의 소년이 소녀를 발견하곤 자신의 집으로 초대해 방안을 따뜻하게 데워 소녀의 얼어붙은 몸을 녹여주고 따뜻한 식사를 마련해 줍니다. 그 다음 소녀의 몸 위에 ‘이야기’라는 황금빛 망토를 입혀 다시 마을로 돌려보냈습니다. 그러자 마을 사람들은 기꺼이 소녀를 집안으로 초대해 식사를 대접하고 따뜻한 화롯불을 쬐게 해줍니다. 아네트 시몬스의 저서 『대화와 협상의 마이더스 스토리텔링』이라는 책에서 소개된 일화입니다.

 

웹소설은 대중에 만연된 다양한 소재와 주제를 포착합니다. 그리고 주인공의 여정을 통해 한 편의 이야기로 대중에게 전달하죠. 웹소설은 그 자체로 서사화된 비평이자 텍스트를 전달하는 효과적인 미디어로 작동합니다. 웹소설의 세계가 넓어지고 그 안에서 다양한 직업과 캐릭터를 대상으로 삼으면 삼을수록 우리는 비평의 영역과 그 대상이 기존의 독자를 벗어나 세대와 성별을 가로지르며 더욱 다양하게 확장될 기회를 포착할 수 있을지 모릅니다.

 

그러니 이 글을 읽는 여러분들도 여러분의 목소리를 내기 위해 웹소설 한 편 추천해주시는 건 어떨까요?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1의 댓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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glorylsw

2025.06.27

좋은 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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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업사원 김유빈

<뫼달>

출판사 | 제이플러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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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융희

장르 비평가, 문화 연구자, 작가. 한양대학교 국문학 박사 과정을 수료하고 2006년 『마왕성 앞 무기점』으로 데뷔한 이래 현재까지 꾸준히 장르문학을 창작하고 있다. 청강문화산업대학교 웹소설 창작학과 조교수로 재직했으며 장르 비평 동인 텍스트릿의 창단 멤버이자 팀장으로 다양한 창작, 연구, 교육 활동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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뫼달

1인 콘텐츠 크리에이터. 다들 전망이 좋다고 하기에 큰 고민 없이 수의학과를 전공했다. 들어가서야 알았다. 전공이 적성에 맞지 않는다는 것을. 오랜 방황 끝에 수의사 면허를 취득했지만 외국계 제약회사에 취직했다. 이 또한 어디든 취직해야 한다는 초조함에 이끌린 선택이었다. 한 번의 이직과 함께 7년간 직장 생활을 했다. 소심하고 예민하고 무엇보다 집에 있기를 좋아하는 내성적인 사람인데 직장 생활이 잘 맞았을 리 만무하다. 내 적성과 성향을 파악하며 본격적으로 내가 원하는 삶을 찾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 일기조차 제대로 써본 적이 없지만, 성향에 맞는 일을 찾기 위해 판타지 소설 쓰기에 도전했다. 마침내 내가 가고 싶은 길을 찾은 것이다. 제약회사에서의 경험을 바탕으로 쓴 『영업사원 김유빈』으로 웹소설가로 등단했고, 퇴사 후 의학물인 『퍼펙트 써전』을 연재했다. 첫 번째 유료 연재 소설 『영업사원 김유빈』은 리디북스 장르소설에서 월간 베스트셀러 1위에 올랐으며, 『퍼펙트 써전』은 네이버 엔스토어 장르소설 분야에서 월간 TOP100 2위, 교보문고 톡소다, 리디북스 판타지 단행본 분야에서 월간 1위에 올랐다. 현재는 새로운 소설을 집필 중이다. 취미, 경험, 지식, 고민 등 무엇이든 콘텐츠가 될 수 있고, 그것이 돈이 되는 시대다. 적성에 맞지 않는 일과 직장 생활로 힘들다면 1인 크리에이터로서 홀로서기를 고민해보자. 나도 했으니 당신도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