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장바구니] 『파도관찰자를 위한 가이드』 『여자에 관하여』 외
기다리던 수전 손택의 신간부터 파도를 관찰하는 과학 책까지. 서점 직원의 신간 장바구니를 소개합니다.
글 : 채널예스
2025.08.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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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떨어진 동산에서 호미와 괭이를 들자』

이동해 저 | 휴머니스트


지난겨울 광장에 가면, 문득 두려워지다가도 구름처럼 모인 동료 시민들을 보며 안심하곤 했다. 일상의 한편을 내어 목소리를 내던, 존재만으로 옆 사람에게 용기가 되어준, 결국에는 봄을 가져온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을 지금도 종종 떠올린다.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실감한 겨울이었다. 일제강점기를 살던 사람들은 어땠을까? 후대에 이름을 남긴 이들도 있지만, 역사는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기억하지 않는다. 『꽃 떨어진 동산에서 호미와 괭이를 들자』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 당시 작지만, 결연한 독립운동을 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강제 동원된 공사장에 게다를 신고 와 "이 일은 조선의 일이 아닌 보람 없는 일본의 일이니 열심히 할 필요 없다"라고 말해 징역 8개월을 받은 새댁 (사진도 만만치 않게 강렬하다), 조선총독부 화장실 벽면에 "불쌍한 동포여 일어나라 대한 독립 만세"라고 쓴 승강기 운전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 기록된 이름 없는 영웅들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며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것"이라는 김장하 선생의 말을 다시 되뇌어 본다. (이참슬 에디터)

 


『여자에 관하여』

수전 손택 저/김하현 역 | 윌북


작년 하반기에 『딕테』의 차학경이 우리를 찾아왔다면, 올해는 수전 손택의 방문이 예정되어 있다. 절판되어 독자들로 하여금 도서관, 헌책방, 중고 서점을 드나들게 했던 『해석에 반대한다』, 『은유로서의 질병』을 포함해 손택의 저서 5권이 윌북에서 출간 예정이다. 첫번째로 공개된 책은 손택의 에세이와 인터뷰 7편을 묶은 『여자에 관하여』다. 여성을 둘러싼 나이듦과 아름다움의 구조적인 속박에 관한 에세이부터 에이드리언 리치와 서면으로 주고받은 논쟁적인 대화까지, 손택의 문장은 반 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서늘하게 빛나며 읽는 이를 동요하게 한다. 남은 올해는 손택의 책을 기다리는 가을과 겨울이 될 것이다. (박소미 에디터)


 

『연속 종이』

임가영 저 | White River


거실의 쇼파보다 온라인 공간에 머무는 게 더 익숙하고 안락할 때가 있는지? 웹상에서 만난 타인에게 애착을 느껴본 적이 있는지? 이런 질문은 더 이상 낯설지 않고, 두 질문 모두에 아니라고 대답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임가영의 『연속 종이』는 온라인, 좀더 정확히는 퀴어 인디 게임의 세계에서 보낸 시간들, 만난 사람들, 맺은 관계들을 자전적으로 탐색하는 에세이 진(zine)이다. 현실과 온라인 공간이 건널 수 없는 철조망으로 분리된 세계가 아니라는 말은 진부하다. 그러나 추상적인 언어가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 속에 손을 집어넣어 현실과 가상 세계가 서로에게 적극적으로 틈입하는 순간을 건져 올리는 모습을 목격하는 일은 여전히 드물다. 퀴어 인디 게임 워크숍을 진행해 온 임가영의 첫 단독 저서다. (박소미 에디터)

 


『잉걸 설탕』

송희지 저 | 문학과지성사


송희지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제목 『잉걸 설탕』은 어쩐지 자꾸만 입으로 소리 내어 발음해보게 된다. 잉걸 설탕, 잉걸 설탕하고 말이다. 핸드폰으로 사전을 찾아보면 ‘잉걸’은 순우리말로 “불이 이글이글하게 핀 숯덩이”라고 하는데, 바로 밑에 영어로도 ‘ingle’은 “화롯불”이라고 나온다. 어떤 단어는 사전을 찾아도 여전히 낯설고 묘연하다. 시집을 읽다 보면 찾아보게 되는 단어가 또 있는데 금정포와 후쯔이다. 「금정포」는 3개의 연작이고, 「그해, 후쯔에서」는 10개 연작으로 5부 전체를 채우고 있다. 두 곳은 모두 현실에 없는 가상의 공간이지만, 읽는 이에게도 가본 적 없는 곳을 향한 향수가 전염된다. ‘나’와 함께 동행하는 ‘형’이 “내가 이곳의 주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묻고 화자가 “그건 우리가 외지인이기에 가능한 허영이야”라고 답한다. 강동호 평론가가 말한 “퀴어 노스탤지어의 미래”라는 단어를 쥐고 금정포와 후쯔, 그리고 잉걸 설탕 속을 거닐어 본다. (박소미 에디터)


 

『챔피언들의 아침식사』

커트 보니것 저/황유원 역 | 문학동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풍자한 블랙 코미디의 대가 커트 보니것의 『챔피언들의 아침식사』가 황유원 작가 번역으로 복간되었다. 의심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잘 수행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황금을 얻기 위해서라면 뺏고 죽이는 세계. 시간이 흘러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곳에서도 왜인지 모르게 공감되는 물질주의가 만연한 세계의 이야기가 왜인지 모르게 책을 덮어도 계속된다. 돈을 향한 끝없는 욕망과 우스운 삶을 살지 않고 싶다는 생각 사이에서 고통받는 현대인들. 이런 세상에서 미치지 않고 사는 것이 가능할까? 실마리는 소설 속에서 찾아볼 수도 있겠다. "그러니 우리가 한때 황금과 팬티에 퍼부었던 열광을 이제 이타심에 퍼붓는다면 이타적인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겁니다." (이참슬 에디터)


 

『파도관찰자를 위한 가이드』

개빈 프레터피니 저/홍한결 역 | 김영사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기분 좋아지는 몇 가지 방법을 안다. 이를테면 하늘 구경하기, 바람결 만지기, 창문에 빗방울이 부딪히는 소리 듣기처럼. 인간도 자연의 일부여서일까. 자연과 맞닿아있다는 감각만으로 괜히 편안해지는 기분이 든다. 영국의 과학 저술가 개빈 프레터피니도 나랑 비슷한 부류의 사람인 것 같다. 이 독특한 사람은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맞서는 지독한 구름 덕후로서, '구름감상협회'를 만들어 회장을 맡고 있다. 『파도 관찰자를 위한 가이드』는 개빈이 구름만큼 좋아하는 파도를 하염없이 감상하며 생긴 질문을 따라가는 과학 책이다. 파도의 시작점을 따라가다 보니 파도의 정체가 파동이라는 걸 깨닫고, 저자는 우리의 삶 곳곳에서 작동하고 있는 파동의 세계로 빠져들어 간다. 시적이면서도 유쾌한 이 과학책을 읽다 보면 불현듯 저 먼바다에서부터 달려온, 철썩이는 파도와 심장을 맞대고 싶어진다. (이참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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꽃 떨어진 동산에서 호미와 괭이를 들자

<이동해>

출판사 | 휴머니스트

여자에 관하여

<수전 손택> 저/<김하현> 역

출판사 | 윌북(willbook)

잉걸 설탕

<송희지>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챔피언들의 아침식사

<커트 보니것> 저/<황유원> 역

출판사 | 문학동네

파도관찰자를 위한 가이드

<개빈 프레터피니> 저/<홍한결> 역

출판사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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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전 손택

미국 최고의 에세이스트이자 평론가, 소설가로 1933년 1월 뉴욕에서 태어났다. 첫 소설 『은인The Benefactor』(1963)과 에세이 「‘캠프’에 대한 단상Notes on 'Camp'」(1964)을 발표하면서 문단과 학계의 주목을 받기 시작했다. 1966년 평론집 『해석에 반대한다』에서 서구 미학의 전통을 이루던 내용과 형식의 구별, 고급문화와 대중문화의 구별에 반기를 들며 화려한 명성을 얻었다. 그 뒤 극작가, 영화감독, 연극연출가, 문화비평가, 사회운동가 등 끊임없이 변신을 거듭한 손택은 ‘새로운 감수성의 사제’이자 ‘뉴욕 지성계의 여왕’, 그리고 ‘대중문화의 퍼스트레이디’로 미국 문화의 중심에 우뚝 섰다. 미국 펜클럽 회장을 역임하는 동안(1987~1989)에는 한국을 방문해 구속 문인의 석방을 촉구했고, 1993년에는 사라예보 내전 현장에 가서 <고도를 기다리며>를 상연하는 등 행동하는 지식인으로서의 면모도 아낌없이 보여 줬다. 2003년 프랑크푸르트 국제도서전에서 ‘독일출판협회 평화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저서로는 ‘전미도서비평가협회상’을 수상한 『사진에 관하여』(1977)와 ‘전미도서상’ 소설 부분 수상작인 『인 아메리카』(1999)를 비롯해 네 권의 평론집과 여섯 권의 소설, 네 권의 에세이, 네 편의 영화 시나리오와 두 편의 희곡이 있으며 현재 32개국의 언어로 번역되어 널리 읽히고 있다. 2004년 12월, 골수성 백혈병으로 사망했다. 유해는 파리의 몽파르나스 공동묘지에 안장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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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트 보니것

1922년 미국 인디애나주 인디애나폴리스의 독일계 미국인 가정에서 태어났다. 인디애나폴리스의 쇼트리지고등학교에 다니며 교지 [데일리 에코] 편집자로 활동했다. 이후 코넬대학교에 진학하며 보니것 자신은 아버지처럼 건축을 공부하거나 인류학을 전공하고 싶어했으나, 집안의 반대로 생화학을 택한 후 전공 공부보다는 대학 신문 [코넬 데일리 선]에서 일하며 글을 쓰는 데 더 열중했다. 제2차세계대전이 발발했고, 좋지 않은 성적과 평화주의를 옹호하는 신문 기고로 인해 징계를 받은 후 대학을 그만두고 군에 입대한다. 1944년 전쟁이 막바지에 이를 즈음 유럽으로 보내졌고, 전선에서 낙오해 드레스덴 포로수용소에서 지내게 된다. 1945년 미영 연합군의 폭격으로 13만 명의 드레스덴 시민들이 몰살당하는 비극적 사건 한가운데 서게 됐던 이때의 체험은 이후 그의 문학세계에 큰 영향을 미친다. 전쟁이 끝나고 미국으로 송환된 후 시카고대학교 대학원 인류학과에 입학했지만 부양해야 할 가족이 있었던 그는 학위를 포기하고 생업에 뛰어들었다. 소방수, 영어교사, 자동차 영업사원 등의 일을 병행하며 글쓰기를 계속했고 [새터데이 이브닝 포스트], [콜리어스], [아거시] 같은 잡지에 단편소설을 정기적으로 기고했다. 1952년 『자동 피아노』를 출간하며 등단한 그는 『고양이 요람』(1963) 『제5도살장』(1969) 등을 세상에 선보이며 미국 문학사에 한 획을 그은 반전反戰 작가로 거듭났다. 이후 소설과 에세이 집필은 물론 대학 졸업식 연사 등으로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다 1997년 『타임퀘이크』를 마지막으로 소설가로서 은퇴를 선언했다. 2007년 맨해튼 자택 계단에서 굴러떨어져 머리를 크게 다쳐 몇 주 후 사망했다. 커트 보니것은 블랙유머의 대가 마크 트웨인의 계승자로 평가받으며, 리처드 브라우티건, 무라카미 하루키, 더글러스 애덤스 등 많은 작가들에게 지대한 영향을 미쳤다. 그 밖의 대표작으로 『마더 나이트』 『나라 없는 사람』 『세상이 잠든 동안』 『그래, 이 맛에 사는 거지』 『아마겟돈을 회상하며』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