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해 저 | 휴머니스트
지난겨울 광장에 가면, 문득 두려워지다가도 구름처럼 모인 동료 시민들을 보며 안심하곤 했다. 일상의 한편을 내어 목소리를 내던, 존재만으로 옆 사람에게 용기가 되어준, 결국에는 봄을 가져온 평범한 사람들의 얼굴을 지금도 종종 떠올린다. 자유와 권리를 박탈당한다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 일인지 실감한 겨울이었다. 일제강점기를 살던 사람들은 어땠을까? 후대에 이름을 남긴 이들도 있지만, 역사는 모든 사람의 이야기를 기억하지 않는다. 『꽃 떨어진 동산에서 호미와 괭이를 들자』는 광복 80주년을 맞아, 일제강점기 당시 작지만, 결연한 독립운동을 한 평범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여다본다. 강제 동원된 공사장에 게다를 신고 와 "이 일은 조선의 일이 아닌 보람 없는 일본의 일이니 열심히 할 필요 없다"라고 말해 징역 8개월을 받은 새댁 (사진도 만만치 않게 강렬하다), 조선총독부 화장실 벽면에 "불쌍한 동포여 일어나라 대한 독립 만세"라고 쓴 승강기 운전수... 일제감시대상인물카드에 기록된 이름 없는 영웅들의 이야기를 읽어나가며 "우리 사회는 평범한 사람들이 지탱하고 있는 것"이라는 김장하 선생의 말을 다시 되뇌어 본다. (이참슬 에디터)
수전 손택 저/김하현 역 | 윌북
작년 하반기에 『딕테』의 차학경이 우리를 찾아왔다면, 올해는 수전 손택의 방문이 예정되어 있다. 절판되어 독자들로 하여금 도서관, 헌책방, 중고 서점을 드나들게 했던 『해석에 반대한다』, 『은유로서의 질병』을 포함해 손택의 저서 5권이 윌북에서 출간 예정이다. 첫번째로 공개된 책은 손택의 에세이와 인터뷰 7편을 묶은 『여자에 관하여』다. 여성을 둘러싼 나이듦과 아름다움의 구조적인 속박에 관한 에세이부터 에이드리언 리치와 서면으로 주고받은 논쟁적인 대화까지, 손택의 문장은 반 세기가 지난 지금도 여전히 서늘하게 빛나며 읽는 이를 동요하게 한다. 남은 올해는 손택의 책을 기다리는 가을과 겨울이 될 것이다. (박소미 에디터)
임가영 저 | White River
거실의 쇼파보다 온라인 공간에 머무는 게 더 익숙하고 안락할 때가 있는지? 웹상에서 만난 타인에게 애착을 느껴본 적이 있는지? 이런 질문은 더 이상 낯설지 않고, 두 질문 모두에 아니라고 대답하기는 점점 더 어려워지고 있다. 임가영의 『연속 종이』는 온라인, 좀더 정확히는 퀴어 인디 게임의 세계에서 보낸 시간들, 만난 사람들, 맺은 관계들을 자전적으로 탐색하는 에세이 진(zine)이다. 현실과 온라인 공간이 건널 수 없는 철조망으로 분리된 세계가 아니라는 말은 진부하다. 그러나 추상적인 언어가 아니라, 구체적인 경험 속에 손을 집어넣어 현실과 가상 세계가 서로에게 적극적으로 틈입하는 순간을 건져 올리는 모습을 목격하는 일은 여전히 드물다. 퀴어 인디 게임 워크숍을 진행해 온 임가영의 첫 단독 저서다. (박소미 에디터)
송희지 저 | 문학과지성사
송희지 시인의 두 번째 시집 제목 『잉걸 설탕』은 어쩐지 자꾸만 입으로 소리 내어 발음해보게 된다. 잉걸 설탕, 잉걸 설탕하고 말이다. 핸드폰으로 사전을 찾아보면 ‘잉걸’은 순우리말로 “불이 이글이글하게 핀 숯덩이”라고 하는데, 바로 밑에 영어로도 ‘ingle’은 “화롯불”이라고 나온다. 어떤 단어는 사전을 찾아도 여전히 낯설고 묘연하다. 시집을 읽다 보면 찾아보게 되는 단어가 또 있는데 금정포와 후쯔이다. 「금정포」는 3개의 연작이고, 「그해, 후쯔에서」는 10개 연작으로 5부 전체를 채우고 있다. 두 곳은 모두 현실에 없는 가상의 공간이지만, 읽는 이에게도 가본 적 없는 곳을 향한 향수가 전염된다. ‘나’와 함께 동행하는 ‘형’이 “내가 이곳의 주민이라면 얼마나 좋을까?”라고 묻고 화자가 “그건 우리가 외지인이기에 가능한 허영이야”라고 답한다. 강동호 평론가가 말한 “퀴어 노스탤지어의 미래”라는 단어를 쥐고 금정포와 후쯔, 그리고 잉걸 설탕 속을 거닐어 본다. (박소미 에디터)
커트 보니것 저/황유원 역 | 문학동네
제2차 세계대전 이후 미국 사회를 신랄하게 비판하고 풍자한 블랙 코미디의 대가 커트 보니것의 『챔피언들의 아침식사』가 황유원 작가 번역으로 복간되었다. 의심하지 않고 생각하지 않고 시키는 것은 무엇이든 잘 수행하는 사람들이 사는 세계,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황금을 얻기 위해서라면 뺏고 죽이는 세계. 시간이 흘러 전혀 다른 언어를 사용하는 곳에서도 왜인지 모르게 공감되는 물질주의가 만연한 세계의 이야기가 왜인지 모르게 책을 덮어도 계속된다. 돈을 향한 끝없는 욕망과 우스운 삶을 살지 않고 싶다는 생각 사이에서 고통받는 현대인들. 이런 세상에서 미치지 않고 사는 것이 가능할까? 실마리는 소설 속에서 찾아볼 수도 있겠다. "그러니 우리가 한때 황금과 팬티에 퍼부었던 열광을 이제 이타심에 퍼붓는다면 이타적인 사회를 건설할 수 있을 겁니다." (이참슬 에디터)
개빈 프레터피니 저/홍한결 역 | 김영사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서 기분 좋아지는 몇 가지 방법을 안다. 이를테면 하늘 구경하기, 바람결 만지기, 창문에 빗방울이 부딪히는 소리 듣기처럼. 인간도 자연의 일부여서일까. 자연과 맞닿아있다는 감각만으로 괜히 편안해지는 기분이 든다. 영국의 과학 저술가 개빈 프레터피니도 나랑 비슷한 부류의 사람인 것 같다. 이 독특한 사람은 '구름 한 점 없는 파란 하늘'에 맞서는 지독한 구름 덕후로서, '구름감상협회'를 만들어 회장을 맡고 있다. 『파도 관찰자를 위한 가이드』는 개빈이 구름만큼 좋아하는 파도를 하염없이 감상하며 생긴 질문을 따라가는 과학 책이다. 파도의 시작점을 따라가다 보니 파도의 정체가 파동이라는 걸 깨닫고, 저자는 우리의 삶 곳곳에서 작동하고 있는 파동의 세계로 빠져들어 간다. 시적이면서도 유쾌한 이 과학책을 읽다 보면 불현듯 저 먼바다에서부터 달려온, 철썩이는 파도와 심장을 맞대고 싶어진다. (이참슬 에디터)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꽃 떨어진 동산에서 호미와 괭이를 들자
출판사 | 휴머니스트
여자에 관하여
출판사 | 윌북(willbook)
연속 종이 : 비디오 게임의 죽음
출판사 | White River
잉걸 설탕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챔피언들의 아침식사
출판사 | 문학동네
파도관찰자를 위한 가이드
출판사 | 김영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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