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읽아웃] 평화로운 섬에 갑자기 찾아온 불청객
정치적 우화이기도 하고 환경과 자본주의에 대한 우화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러 메시지가 담겨 있지만, 저는 이 소설의 가장 분명한 메시지가 이 말이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어딘가에 악이 존재한다면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는 조금씩의 책임이 있다'
글ㆍ사진 임나리
2023.01.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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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황정은)의 선택

『마지막 섬』

쥴퓌 리바넬리 저 / 오진혁 역 | 호밀밭



예전에 제가 『행복 Mutluluk』이라는 소설을 소개한 적이 있는데, 그 책에는 소설가의 이름이 'O.Z.리반엘리'라고 적혀 있어요. 저는 사실 이 책을 받아보고서야 같은 소설가라는 걸 알았습니다. 

이야기의 배경은 육지에서 멀리 떨어진 작은 섬입니다. 이 섬이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회고하는 서술로 시작이 되는데요. 화자는 이 섬을 '낙원'이라고 묘사를 합니다. 주민은 총 40가구였는데요. 첫 번째로 지어진 집은 1호, 두 번째는 2호, 이런 식으로 해서 40호까지 있고, 섬에 사는 주민들이 서로를 부르는 호칭도 바로 이 번지수입니다. 화자를 비롯해서 이 섬에 사는 주민들은 섬 바깥과는 단절된 채로 여유롭게 살아가고 있습니다. 딱히 폐쇄는 아니고 들고나는 건 자유인데, 바깥의 소식을 굳이 알려고 하지 않는 거죠. 섬 바깥의 소식은 배편으로 일주일에 한 번 전달되는 신문을 통해서 알 수가 있는데요. 이 섬의 바깥은 군부독재의 상황이라서 크고 작은 분쟁으로 좀 심란합니다. 

이 섬은 사실 어느 재력가가 산 섬입니다. 노년에 이 섬에 집 한 채를 지어서 가족을 데리고 들어와 살다가 친구들한테 여기 와서 집을 지으라고 부추기기 시작을 한 거죠. 처음에 노인은 집을 지을 수 있는 집터를 무상으로 제공을 해요. 그렇게 섬에 하나 둘씩 집이 생겨나서 40가구가 됐을 때, 노인이 이제 더는 이 섬에 집을 짓지 말라고 합니다. 더 많은 사람이 살게 되면 섬이 파괴될 게 분명하기 때문에 섬을 닫아버리는데요. 노인이 죽은 뒤에는 그의 아들이 그 집에 들어와 살게 됩니다. 그도 아버지하고 성향이 비슷해요. 그래서 섬의 주민들은 이 섬의 주인이 누구라는 것도 잊어버린 채 사는 거예요. 

이 소설은 1인칭으로 서술이 됐는데요. '나'라고 지칭하는 화자가 있습니다. 이 화자가 '라라'라는 이름의 여성과 36호에 사는 인물입니다. 이 두 사람을 비롯해서 섬 주민들은 섬에 사는 생물들하고 서로 영역을 침범하지 않아요. 이 섬에 특히 갈매기가 많습니다. 한쪽 해안에 서식지를 이루며 살고 있는데, 인간은 갈매기 서식지를 침범하지 않아요. 그리고 갈매기도 딱히 인간에게 관심이 없습니다. 모두가 서로에게 약간은 무심한 채로 평화롭게 살아가고 있는 거죠. 

어느 날 40가구 중에 집 한 채가 팔립니다. 24호 노인이 심장 마비로 사망을 하면서 육지에 사는 그의 아들이 집에 와보지도 않고 매물로 내놓은 거예요. 그 집의 새로운 주인이 배를 타고 섬에 도착합니다. 이 사람이 누구냐면, 쿠데타로 정권을 잡고 오랜 기간 군부 독재를 하다가 은퇴한 전직 대통령입니다. 여생을 보내려고 이 섬에 내려오는데, 부인과 방학을 맞은 손녀가 같이 내려옵니다. 그리고 경호 인력으로 군인들이 함께 옵니다. 이 전 대통령이 그냥 귀엽고 순박해 보이는 노인의 얼굴을 하고 있어요. 그래서인지 섬 주민들은 그의 신분을 알고도 딱히 경계하지 않습니다. 화자도 그렇지만 섬 주민들도 사실은 이 전 대통령에 대해서 크게 반감은 없어요. 대통령이 늘 선전한 문구들이 있었거든요.

'나라를 내전에서 구하려고 정권을 내가 잡았다.'

이런 말을 수시로 해왔고, 대통령 본인과 그의 동료들의 의도는 아무튼 좋았던 것이라는 선전을 계속 해왔기 때문에, 그냥 저냥 대강 믿었던 거죠. 

이 배가 도착한 날에 그저 예의를 갖춰야 한다는 생각에서 주민들이 선착장에 나가봅니다. 그런데 이 자리에서 전 대통령이 연설을 해요. 친애하는 주민 여러분, 이러면서. 그를 맞이하는 환영식이 되어버린 거예요. 그 자리의 주인공이 전 대통령과 그의 부인이 돼버린 거죠. 그런데 이 자리에 나타나지 않은 주민이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섬에 들어와 살고 있던 소설가인데, 이 사람에 대한 정황이 자세하게 언급이 되지는 않아요. 아마도 군부의 철권통치 하에서 구금을 당하고 고문을 당한 과거가 있는 것 같습니다. 이 소설가는 전 대통령의 섬 이주를 처음부터 아주 심각한 위기로 받아들인 유일한 사람입니다. 화자는 이 소설가의 친구인데, 소설가가 하는 경고의 말을 믿지 않아요. 

그러던 어느 밤, 전 대통령의 집 쪽에서 총성이 울립니다. 사람들이 깜짝 놀라서 그 집으로 몰려드는데, 전 대통령이 대단히 혼비백산한 모습으로 나타나서 우리 집 테라스에서 테러리스트가 걸어 다니고 있었다고 상황을 설명합니다. 이때 소설가가 나서서 그것이 사람이 아니었다고 이야기를 합니다. 갈매기였습니다. 그 섬 주민들은 갈매기가 이따금 테라스에 나타나서 걸어 다닌다는 걸 알고 있어요. 전 대통령은 사람들 앞에서 우스운 꼴이 돼버린 것 아니겠습니까. 이때까지만 해도 주민들은 우스운 해프닝 정도로 사건을 생각합니다만, 운영 위원회가 소집이 됩니다. 그러면서 그 자리에서 전 대통령이 갈매기와의 전쟁을 선포합니다. 

여기까지가 소설의 앞부분이에요. 초반의 사건일 뿐이에요. 처음부터 끝까지 사건이 연달아 벌어지고, 앞서 벌어진 사건은 또 다음 사건을 끌고 오는데, 그래서 대단히 흥미진진하게 읽을 수 있는 이야기이고요. 대단히 선명한 우화이고 좀 웃기는 이야기도 있지만, 전반적으로 대단히 섬뜩해요. 책의 뒤표지에 이런 글이 실려 있습니다.

'권위주의와 정치에 대한 무관심이 공동체를 어떻게 파괴하는지 보여주는 탁월한 정치적 우화.'

이 소개글 그대로 정치적 우화이기도 하고 환경과 자본주의에 대한 우화이기도 합니다. 그리고 여러 메시지가 담겨 있지만, 저는 이 소설의 가장 분명한 메시지가 이 말이었다고 생각을 합니다. '어딘가에 악이 존재한다면 그곳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는 조금씩의 책임이 있다'라는 내용이 소설에 나와요. 리바넬리는 이 소설을 튀르키예의 독재 정부를 비판할 목적으로 썼다고 하는데요. 2008년에 튀르키예의 정치 사회적 상황을 반영해서 쓴 소설에서 현재 한국을 연상하게 만드는 사건이나 삽화들도 계속 이어집니다. 그래서 빠르고 묵직하게 읽히는 책이기도 했습니다.



그냥의 선택

『머리숱 많은 아이』

이덕화 글·그림 | 위즈덤하우스



머리숱 많은 아이의 이름은 '잔디'예요. 이야기의 시작은 잔디가 태어나는 순간입니다. 잔디는 붉고 곱슬거리는 머리카락을 가지고 태어났는데, 엄마 아빠는 너무 놀라고 말았어요. 머리숱이 너무 많은 아이였던 거예요. 아이를 처음 만난 주변 어른들도 다 놀랐어요. 머리숱이 정말 풍성했던 거예요. 처음에는 엄마 아빠가 걱정을 했지만, 잔디는 너무나 해맑고 건강하고 밝은 아이입니다. 하루하루를 즐기면서 재밌게 잘 자라요. 엄마 아빠도 아이를 사랑하면서 시간을 보내는데, 한편으로는 좀 걱정되는 거예요. 혹시 주변 사람들의 시선 때문에 아이가 상처받지 않을까. 그래서 엄마는 자주 잔디의 머리를 잘라주었어요. 그런데 놀라운 점은, 엄마 아빠가 잔디의 머리카락을 신경 써서 관리하면 할수록 더 제멋대로 자라는 거예요. 결국, 엄마 아빠는 아이의 머리카락이 자연스럽게 자라도록 놔두는 게 가장 낫겠다고 판단을 하게 됩니다. 

가끔 엄마 아빠가 잔디를 데리고 길을 갈 때, 지나가는 아이들이 머리가 풍성한 잔디를 보고 깔깔깔 웃기도 해요. 그리고 잔디가 반려견하고 같이 길에 있으면, 잔디는 키가 작고 머리는 풍성해서 멀리서 보면 그냥 털 뭉치처럼 보이기도 하거든요, 그러니까 어떤 노부부는 "어머, 커다란 개가 목줄도 하지 않고 돌아다녀서 큰일이에요"라며 오해하기도 합니다. 

하지만 우리 잔디는 그런 거 신경 쓰지 않아요. 이 아이는 하루하루가 너무 즐거워요. 개미보다 느리게 걸어보고, 햇빛이 닿지 않은 차가운 흙 속에 손을 넣어보고, 물웅덩이에서 숨은 그림 찾기를 하고, 나무 그늘 안에서 햇빛이 닿는 지점에만 발을 디디며 걸어보고, 그렇게 다양한 놀이를 하면서 자연 속에서 행복하게 자라요. 

그러던 어느 날 한 아이를 만나게 되는데, 이 아이의 이름은 '소소'예요. 소소가 잔디를 처음 봤을 때, 잔디는 머리에 나뭇잎을 하나 올려놓은 상태였어요. '나뭇잎 떨어뜨리지 않고 버티기 놀이'를 하고 있었던 거예요. 소소가 봤을 때 조금 특이해 보였겠죠? 소소가 다가가서 이렇게 얘기합니다. 

"너 이상해." 

그러자 잔디가 조금 놀라는 듯하더니 바로 이렇게 얘기합니다.

"원래 살아있는 것들은 다 이상해."

잔디가 너무 아무렇지 않게 말해서 소소가 당황해요. 그러면서 얘기합니다.

"아니야. 다른 사람들은 안 이상해."

잔디가 잠시 생각을 하다가 말합니다.

"봐 봐 사슴벌레는 뿔같이 생긴 큰 턱을 가졌어. 벌은 꽁무니에 침을 숨기고 있고, 거미는 작은 몸에서 줄이 계속 나와. 나비는 꿈틀거리는 애벌레였고. 살아있는 것들은 다 이상해."

소소가 또 조금 당황해요. 그런데 계속 아무렇지 않게 잔디가 이야기를 하니까 어쩌면 그 말이 맞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을 합니다.

그 뒤로 소소가 자꾸 잔디를 찾아와요 다음 날도 다다음 날도 찾아와서 자연 속에서 놀고 있는 잔디 곁을 맴돕니다. 그러면서 두 아이들은 친구가 되어갑니다. 

저는 잔디라는 아이가 너무 사랑스러웠어요. 소소가 "너 이상해"라고 했을 때 "원래 살아있는 것들은 다 이상해"라고 답하는 걸 듣고, 이 아이와 사랑에 빠져 버렸어요. 이렇게 사랑스러운 아이를 보면서 새해의 첫 독서를 시작하는 게 좋았고요. 어떻게 보면 뻔뻔할 수도 있는데, 올해는 남들이 나를 이상하게 보든 말든 해맑게 즐겁게 티 없이 하루하루 즐겁게 지냈으면 좋겠어요. 청취자 분들도 남의 눈에 비치는 나를 조금 덜 신경 쓰시면서 올 한 해를 보내셨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서 이 책을 가지고 왔습니다.



단호박의 선택 

『밥 챙겨 먹어요, 행복하세요』

마포농수산쎈타 저 | 세미콜론



표지를 보시면 초록색 배경에 한 아저씨가 그려져 있습니다. 새마을 모자 같은 걸 쓰고 선글라스를 끼고 한 손에는 술병과 다른 한 손에는 커다란 잔을 들고 장갑을 낀 채로 흐뭇한 미소를 짓고 있는 일러스트레이션이 있는데요. 어디선가 보신 적이 있을 겁니다. 이 책의 지은이는 '마포농수산쎈타'인데, 트위터에서 '마포농수산쎈타'라는 이름으로 계정을 운영하고 있는 분이고요. 이 계정에서 자기가 먹은 요리들, 자기가 요리한 것들을 올리고 있었는데 그중에 하나가 크게 사람들의 이목을 끌면서 이 이름과 표지의 그림도 덩달아 유명해지게 되었습니다. 그 레시피는 '순두부 열라면'이었어요. 레시피는 아주 간단해요. 열라면이라는 라면 브랜드가 있는데 좀 매운 라면입니다. 그 라면의 면을 반만 넣고 대신에 순두부를 넣어서 순두부찌개처럼 먹는 레시피예요. 그것이 매우 유행을 타서 유명인들도 따라서 먹어보고 사람들도 먹고 유튜브에 올리고 "맛있다, 속이 편하고 든든하다, 다이어트식으로 제격이다"라는 찬사를 쏟아내면서 다른 레시피도 유명해지게 되었습니다. 

이 책의 또 다른 미덕이라면 저자의 콘셉트가 중년 남성처럼 이야기하기예요. 그래서 이분의 SNS에 들어가 보면 말투가 약간 특이합니다. 어떤 식으로 말하냐면 "요리 못하는 사람을 보면 꼭 레시피를 지키지 않는다고들 합니다.. 이런 말을 해도 될지 모르겠지만 이 책을 읽는 분들은 오히려 레시피를 지키지 않아주었으면 하는 마음도 드네요.. 이렇게 하니까 너무 짠데? 소금을 줄여볼까.. 나한텐 단맛이 부족한데? 설탕을 조금 더 넣어볼까? 너무 푹 익은 거 아닌가? 5분이 아니라 3분만 익혀볼까.. 밥 챙겨 먹어요.. 행복하세요,. 저도 행복할게요.." 이게 마포농수산쎈타 쎈타장의 말투예요. 말투를 창작해낸 형식이라고 보시면 될 것 같습니다. 중간중간 '..'으로 표기되어 있는 것을 단순히 마침표로 하지 않고 쉼표를 섞었어요. 중년 남성이 글을 쓸 때의 특징이라고 여겨지는 부분인데, 그런 말투로 이야기를 하는 레시피 책이고요. 

그 말투에 맞춰서 디자인이 약간 복고풍으로 나왔습니다. 이것을 어떻게 표현하면 좋을지 모르겠는데 예전의 피아노 소곡집을 모티프로 한 것처럼 보이기도 하고, 모든 글씨가 굴림체 같은 느낌으로 되어 있어요. 투박한 폰트체에 글씨 색깔도 굉장히 투박합니다. 레트로라고 하죠. 레트로도 극단으로 가면 어떤 예술미가 생기게 됩니다. 

그리고 이 책에 나와 있는 대부분의 레시피는 그렇게 어려운 내용이 아니에요. 자취생이 하면 좋을 요리라고 생각을 하는데 재료 자체도 그렇게 어려운 게 없고요. 재료가 한 번에 세 가지 이상 들어가는 것도 별로 없어요. 지금 제가 펼친 페이지에는 '표고버섯구이'가 나와 있는데 '표고버섯 기둥을 뗀 뒤에 먼지를 털어내고, 오목한 안쪽 부분이 위로 오도록 마른 판에 올려서 굽고, 그 다음에 간장을 넣고 허브 솔트를 살짝 뿌린다'가 끝이에요. 20분 카레도 있고 양배추 간단 절임, 단무지 무침, 10분이면 할 수 있는 요리들이 굉장히 많이 나와 있습니다. 

저는 요리책을 사는 이유가 이제는 좀 달라졌다고 생각을 하는데, 예전에는 요리법을 알 수 있는 게 사실 책밖에 없었잖아요. 그런데 이제 우리에게는 인터넷이 생겼고 블로그도 생겼고 유튜브도 생겼단 말이에요. 정보성의 측면에서는 이제 요리책을 사는 것이 별 의미가 없어지지 않았나, 라는 생각을 하게 되는데요. 마포농수산쎈타가 어떤 인터뷰에서 "결국 자기 입맛에 맞는 걸 먹으려면 자기가 요리를 할 수밖에 없었다"는 이야기를 했더라고요. 집밥의 장점이 그건 것 같아요. 내 시간에 맞춰서 내 재료에 맞춰서 내 입맛대로 만들 수 있다는 것. 그게 큰 장점이라고 생각하고, 이 책은 그런 종류의 요리를 하기에 아주 적절한 정보들을 담고 있다고 생각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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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나리

그저 우리 사는 이야기면 족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