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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읽아웃] "소설을 쓴다는 건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일" (G. 박선우 작가)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 (322회) 『햇빛 기다리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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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쓰기란 기다리기보다 기도하는 마음에 가깝다고 생각하는 소설가, 두 번째 소설집 『햇빛 기다리기』를 출간하신 박선우 작가님 나오셨습니다. (2023.01.05)


그렇지만 돌이켜보면 조금도 자연스럽지 않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때 우리는 분명히 하고 싶은 말을 삼키고 있었고, 하고 싶은 행동을 억누르고 있었다. 우리의 사랑을 은닉하고 있었다. 마치 이 세계에 그런 것이 존재하지 않는다는 것처럼. 누구를 위해서? 우리를 위해서. 그때는 그런 줄 알았다. 우리를 위해서! 하지만 그런 식의 경계와 단속이 누구를 위한 일도 아니었다는 걸 — 오히려 우리를 조금씩 상하게 만들었다는 걸 — 나는 한참 후에야 알게 되었다.

안녕하세요. <오은의 옹기종기> 오은입니다. 박선우 작가님의 두 번째 소설집 『햇빛 기다리기』에 수록된 단편 「사랑의 미래」에서 한 대목을 읽어드렸습니다. 사귄 지 365일이 되는 멋진 날을 기념해, 카페에서 조촐한 세리머니를 올리고, 이어 택시를 타고 예약해둔 호텔로 이동해 체크인을 하는 연인. 평범한 커플의 기념일은 그러나 이들이 동성의 연인이라는 이유로 은닉되어야 할 것, 경계되고 단속되어야 할 것이 되고 맙니다. 흘끔거리는 시선, 등을 돌리는 사람들. 

박선우 작가님의 소설에는 이렇듯 일상에 흩뿌려진 혐오와 차별을 기민하게 느끼는 목소리가 등장하는데요. 그 안에서 일상을, 사랑을, 희미한 희망을 말하죠. 오늘 <책읽아웃 – 오은의 옹기종기>에 『우리는 같은 곳에서』 이후 2년 만에 출간한 두 번째 소설집 『햇빛 기다리기』를 출간하신 박선우 작가님을 모시고, 그럼에도 희망하는 일에 대해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인터뷰 - 박선우 편> 

오은 : 오늘 방송은 <책읽아웃> 2023년 첫 방송이기도 합니다. 저희에게도, 그리고 작가님께도 특별한 방송이 아닐까 싶은데요. 2023년에 특별히 계획하고 있는 것이 있다면 말씀해주세요. 

박선우 : 제가 실제 생활에서 별로 침착하지를 못해서요. 지금보다 좀 더 침착하고 너그러운 사람이 되자는 다짐을 하려고 합니다. 

오은 : 작가님은 소설도 쓰시지만 문학 편집자로도 일하고 계시잖아요. 편집자이자 소설가로 활동하는 일이 어떤가요? 좋은 점도 있을 것 같지만, 활자에 종일 매몰되어 있다가 나의 글을 쓰기 위해 오는 시간이 쉽지 않을 것도 같아요. 장점과 단점에 대해서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박선우 : 좋은 점은 일단 자연스럽게 다른 작가 분들과 인연을 만들 수 있다는 점 같아요. 출판사에서 일을 하니까 일로 뵙고, 인사드리고 하면서 영향 같은 것도 받게 되고요. 그분들이 쓰신 글을 편집하는 과정에서도 그분에 대해 좀 더 깊게 생각하는 계기도 생기는 것 같아요. 그런 점이 되게 좋아요. 

아쉬운 점이 있다면 직장인이고, 어쩔 수 없이 9~6시 근무를 하니까 개인적으로 작업하는 시간을 확보하는 게 어렵다는 거예요. 이런 어려움에 의해서 내가 글쓰기에 온 힘을 다하고 있지 않는 것 같다는 아쉬움 같은 게 늘 있어요. 사실 전업으로 글을 쓴다고 해서 매일 열심히 쓰지는 않는다는 걸 알거든요.(웃음) 하지만 그 사실을 아는 것과는 상관없이, 출근하고 퇴근하는 지하철이나 버스 안에서 늘 오늘 하고 싶은 걸 못했다는 아쉬움을 조금씩은 항상 갖게 되는 것 같아요.

오은 : 박선우 작가님 소개를 하도록 하겠습니다. '198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 서사창작과를 졸업했다. 2018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수상하며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 소설집 『우리는 같은 곳에서』『햇빛 기다리기』가 있다. 지금껏 내가 아닌 존재가 되고 싶다는 바람으로 소설을 써왔는데 실제로 나를 변화시키는 건 곁의 소중한 사람들, 내가 잃어버리고 싶지 않은 사람들이라고 생각한다.' 작가님은 출판사 입사가 먼저였나요, 데뷔가 먼저였나요?

박선우 : 작가로 활동한 기간보다 편집자로 일한 기간이 더 길어요. 데뷔하기 전에는 더 열심히 썼던 것 같아요.(웃음)

오은 : 작가님께서 직접 『햇빛 기다리기』가 어떤 책인지 소개해 주시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어떤 책이죠? 

박선우 : 남성 동성애자의 삶과 사랑에 대한 이야기고요. 퀴어 인물이 가족 내에서 혹은 학교나 회사 같은 공적 공간에서 겪는 다양한 감정과 경험에 대해 다루고 있습니다. 게이 커플이 만나고, 잘 지내고, 약간 위기 같은 것도 겪고, 하는 등의 커플 이야기가 같이 들어있습니다.

오은 : 이 책에는 총 일곱편의 단편이 수록되어 있어요. 그런데 살펴보니까 2020년 1월부터 2022년 9월까지 발표한 순서대로 단편이 배치되어 있더라고요. 특별한 이유가 있었을까요?

박선우 : 수록작 중 네 편 정도가 게이 커플 이야기가 주된 것인데요. 연작은 아니지만 이 커플의 이야기 흐름이 제가 글을 쓰고 발표했던 순서들이랑 비슷했어요. 그래서 그런 흐름을 지켜주고 싶었고요. 그밖에도 수록된 소설들에 2020년부터 2022년까지 제가 실제로 생각하고 느꼈던 것들이 좀 많이 들어가 있어서요. 글과 글 사이의 어떤 시간성 같은 것을 생각하게 됐어요. 그것을 막 드러내고 있지는 않지만, 제가 읽기에는 이야기들이 유기적으로 연결되어 있다고 느꼈기 때문에 책을 묶을 때 인위적으로 뒤섞는 건 안 해도 되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습니다. 

오은 : 출판사가 배경으로 등장하는 작품도 많고, 마포구 일대의 어떤 풍경들이 그려지기도 하잖아요. 또 소설을 창작하는 이가 주인공인 작품도 있습니다. 이를 읽고 독자 중에 몇몇은 편집자로 일하기도 하는 박선우 작가님과 겹쳐서 인물을 바라볼 것 같다는 생각을 했어요. 혹시 쓰면서 작품의 화자를 작가인 나와 동일시하면 어떡하지, 라는 걱정 같은 것도 있었을 듯 싶은데 어떤가요? 

박선우 : 그런 걱정을 아주 안 한 건 아닌데요. 저 역시도 동시대 작가분들이 발표하시는 글 뿐 아니라 고전을 읽을 때도 이 작가의 이야기이지 않을까, 생각하면서 읽거든요. 실제 작가와 여러 설정이 다르더라도 말이에요. 그러니까 작가가 직접 경험했거나 느꼈던 바가 분명하게 들어가 있지 않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읽어요. 그런 면에서 작가와의 동일시는 독자로서는 피할 수 없는 부분이 있긴 한 것 같아요. 동일시를 하는 건 어쩔 수 없다고 생각하는데요. 그렇지만 작가에게 직접 가서 이게 당신의 실제 경험이냐고 묻는 건 좀 다른 일인 것 같아요. 그러는 건 실수거나 실례에 해당한다고 생각하고요. 그래서 제가 어떻게 쓰든 동일시 할 사람은 하고 안 할 사람은 안 할 거라고 생각을 했어요. 그런 이유로 너무 부주의한 어떤 것을 하지 않는 선에서는 좀 자유롭게 쓰는 게 좋겠다고 생각을 하기도 했습니다. 

오은 : 첫 번째 소설집 『우리는 같은 곳에서』는 초점 화자가 다양하잖아요. 이성애자 남성도 있고, 여성도 있고, 동성애자도 등장하고요. 한편, 『햇빛 기다리기』는 모든 화자가 게이이자 남성이에요. 『햇빛 기다리기』가 출간된 이후 "습작 시절과 첫 책에 실린 단편들을 쓸 때에는 글을 통해 저 자신을 얼마나 드러낼지에 대한 고민이 있었습니다. 그 고민이 매번 좀 걸리적거리는 느낌을 주었기에 두번째 책에 수록될 단편을 쓸 때에는 일부러 저 자신에 가까운, 어떤 부분은 명백하게 교차되는 글을 쓰려고 노력했습니다"라고 하셨거든요. 여기에 대한 생각을 조금 자세히 듣고 싶습니다.

박선우 : 첫 번째 소설집을 쓰는 내내 나 자신을 얼마나 드러낼 것인가를 계속 고민했어요. 그래서 첫 소설집 묶으면서 이걸 좀 털고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던 것 같고요. 사실 소설을 쓴다는 건 뭐랄까, 다른 사람이 되어보는 행위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근데 제 경우에는 다른 사람이 되는 것뿐 아니라 글쓰기를 통해서 나 자신이 되는 경험도 좀 필요했던 것 같아요. 소설 안에서 나라는 사람을 발명해내는 식으로, 이러한 나도 만들어보고 저러한 나도 만들어보는 경험이 저한테는 필요했던 것 같고요. 그래서 약간 이번 소설집을 묶는 동안에는 좀 나를 더 많이 투영해보자고 생각을 했습니다. 

오은 : 이제 <오은의 옹기종기> 공식 질문 드리도록 하겠습니다. <책읽아웃> 청취자 분들에게 추천하고 싶은 단 한 권의 책을 소개해 주세요. 

박선우 : 『2146, 529』라는 제목의 책인데요. 부제가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노동자의 죽음'이에요. 이 책의 존재를 이렇게 말씀드리고 청취자 분들이 아시는 것만으로도 좋지 않을까 싶어서 추천을 드리고 싶었어요. 책 제목에 담긴 2146은 2021년 한 해 동안 산업 재해로 사망한 노동자 수라고 하고, 529는 이 앞의 숫자 중에서 사고로 사망한 노동자 수라고 합니다. 그리고 책머리를 보면 사망자 숫자를 이렇게 숫자로만 나타내는 것에 한계도 있고, 아쉬움이 있다는 내용이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렇게 노동자의 죽음을 구체적으로 복원하고 싶었다는 글귀가 있었어요. 그게 저에게는 되게 오래 남았고요. 새해이지만 시작을 하기에 앞서 과거에 이런 일이 있었다는 걸 곱씹어보면 좋을 것 같아서 추천을 드리고 싶습니다.



*박선우

1986년 서울에서 태어났다. 한국예술종합학교 대학원 서사창작과를 졸업했다. 2018년 자음과모음 신인문학상을 통해 소설을 발표하기 시작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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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선우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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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신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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