왜 어린이와 청소년 책을 다루는 서점을 하게 되었는지에 관한 질문을 자주 받는다. 이에 대한 대답은 때때로 달라지는데, 그건 명확한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좋아한다’라는 말로는 아무래도 설명이 어려운 모양이다. 어떤 답을 기대하는 사람들을 위해 곰곰이 생각했다. 그러니까 어린이, 청소년 책의 세계는 나에게는 아직 그려지지 않은 어떤 모양. 무엇이든 될 수 있고, 언제든지 바뀔 수 있는 유연한 세상, 그러한 가능성을 그려 나가는 이야기들이라서 좋다. 어른이 되면 꿈꾸는 일과 자꾸 멀어진다. 되고 싶은 게 없고, 하고 싶은 일은 현실의 우선순위에 밀린다. 가능성을 그리지 못한다는 일은 어쩐지 슬프다. 그럴 마음이 들 때면, 어린이책을 펼친다. 덕분에 조금씩 달라진다. 나의 세계가 넓어질수록, 잘 보이지 않던 다른 존재들이 보이기 시작했다. 작고 약하고 여린 존재들이 충분히 더 자라고 단단해지길 바란다. 그래서 생각한다. 좀 더 나은 사람이 되고 싶고, 더 괜찮은 미래를 만들어 가고 싶다고. 꿈꾸고, 믿고 싶은 마음으로 향하는 두 권의 그림책을 소개한다.
김개미 시/이수연 그림|문학동네
김개미 시인의 동시는 들여다보고 싶지 않은 어떤 마음을 마주하게 만드는 힘이 있다. 시로부터 시작된 『많은 사람들이 바다로 가』는 묵직한 주제를 쥐고 있다. 전쟁과 재난으로 인해 집과 가족을 잃은 난민들의 목소리. 영원히 텃새로 살아갈 어떤 이들의 삶. 우리는 오늘도 평범한 일상을 맞고 있지만, 여전히 어디선가 전쟁과 분쟁은 일어나고 있다. 어떤 파도는 삶을 바꾼다. 그런 파도로 이루어진 바다는 또 다른 세계를 잇는 길이 된다. 바다 앞에서 선 사람들. 모두 바다를 건널 수 있을까? “마침내 바다에 와서도 어떤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는 것처럼. 선택조차 할 수 없는 이들에게 어떻게 또 다른 길을 열릴 수 있을까? 이 책에서는 특정된 화자가 존재하지 않는다. 머무르지 못하고 떠나야 하는 비슷하면서도 다다른 텃새로 의인화된 목소리들을 겹겹이 쌓아 우리를 바다 앞으로 불러낸다.
“어떤 사람은 어깨에 멘 가방이 전부고
어떤 사람은 껴안은 아기가 전부야
어떤 사람은 두고 온 개가 전부고
어떤 사람은 죽은 이웃이 전부야”
문학은 우리에게 어떤 기회를 준다. 낯선 목소리를 통해 우리는 상상한다. 자신의 전부가 고작 가방인 사람, 껴안은 아기인 이를, 두고 온 개뿐이거나 죽은 이웃 밖에는 없는 이들을. 그렇게 내가 아닌 누군가가 된다. 누구나의 일이 된다. 그렇게 누군가의 마음을 감각할 때, 우리는 할 수 있는 선택과 행동을 향해 몸과 마음이 움직일 것이다. 연민이 아닌 진심으로, 낡고 작은 배를 한 번이라도 더 띄울 수 있는 연대를 실현할 수 있을 테다.
신순재 글/이영채 그림|위즈덤하우스
‘가장자리’는 사물의 둘레나 장소의 끝, 또는 테두리 부분을 일컫는 말로, 안보다는 바깥에 가까운 단어다. 가장자리는 중요하게 의미를 두거나 생각하지 않는 주변부의 자리다. 그런데 어린이책은 아무도 눈여겨보지 않는 세계의 틈들을 아주 잘 찾아낸다. 그런 면에서 『가장자리』는 단어와 위치의 의미를 다시금 발견하게 만든다. 속표지부터 시작되는 이야기를 보아 주인공 어린이는 낯선 동네로 이사 왔다. 동네를 돌아보며 자기 삶에 새로이 들어온 자리들을 혼자 조금씩 채워본다. 바다와 모래가 만드는 건 ‘가장 평화로운 자리’고, 할머니 얼굴의 길은 ‘가장 오래된 자리’다. 학교는 아직 ‘가장 심심한 자리’이지만, 눈앞에 나타난 다른 어린이와 검은 고양이와의 관계를 통해 새로운 단어를 채울 수 있다는 기대감이 든다. 이 책은 ‘가장’과 ‘사이’에 공간을 만들어 어린이가 느끼는 다양한 감정을 넣어, 주변부에 위치해 있던 ‘가장자리’를 내 세계의 중심으로 가져온다.
옆으로 긴 직사각의 판형으로 마을 곳곳의 전경이 펼쳐지는데, 빈 공간이나 여백으로 느껴질 수 있는 공간도 나의 자리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다. 둘레와 밖까지로도 나아갈 수 있다는 걸 깨달은 어린이는 자신이 존재하는 공간을 스스로 넓히며 적응하기 시작한다. 변화는 누구에게나 어렵고 서투를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세계를 넓혀 조금씩 “한 발 옆으로 한 발 가까이” 다가가는 용기는 “내가 가장 좋아하는 자리”를 만들어 낸다. 이렇게 조금 더 나아가는 이야기로, 한 가운데서는 보지 못하지만 볼 수 있는 가능성의 공간으로, ‘가장자리’는 새롭게 우리 삶에 들어온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많은 사람들이 바다로 가
출판사 | 문학동네
가장자리
출판사 | 위즈덤하우스
                    유지현
어린이청소년문학서점 ‘책방 사춘기’를 운영하며, 그림책과 동화, 청소년 소설을 소개한다. 본명보다 '춘기' 혹은 '춘기 이모'라 불리는 게 더 익숙한 사람. 앤솔러지 에세이 『좋아한다고 말할 수 없었어』에 참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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