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끔 엉뚱한 고집을 부릴 때가 있다. 남들이 좋다고 하는 것은 최대한 피할 수 있을 때까지 피한다. 유행에 휩쓸리지 않는 사람이라는 것을 말하고 싶었던 걸까? 그렇게 나만의 법칙을 만들었다.
『연금술사』의 유명세는 오래전부터 들어왔었다. 어떤 이에게는 인생 책으로 칭송받았지만, 나에겐 그저 읽고 싶지 않은 책일 뿐이었다. 입소문 대신 스스로 찾아낸 보석 같은 책을 좋아했던 이유도 있었고, 제목이 '연금술사'인 것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사물을 금으로 바꾼다고? 허무맹랑한 이야기구나.' 지극히 현실주의자였던 나에게 『연금술사』는 가까이하기엔 너무 먼 당신이었다. 그렇게 20년이라는 세월을 이 책을 아는 듯 모르는 듯 스쳐 지나갔다.
'한 번 읽어볼까?'라는 생각이 든 것은 두 아이의 엄마가 된 후였다. 생각과는 다르게 흘러가는 육아 때문에 아이들과의 하루가 전쟁 같았고, 매일 밤 잠든 아이들을 보면서 자책과 후회, 연민의 감정이 뒤죽박죽된 채로 버티던 시절이었다. 며칠 동안 방치된 바게트처럼 거칠고 꺼끌꺼끌한 마음을 안고 살았다. 하루에도 수십 번 아이들을 향해 휘몰아치던 감정은 피아노 건반 위를 무섭게 날뛰는 손가락처럼 요란한 소리를 냈다. 엄마로 지낸 5년이라는 세월은 내가 얼마나 형편없는 사람일 수 있는지 알아가기에 충분했다.
탈출구가 필요했다. 바닥이 보이지 않을 만큼 낮아진 자존감을 다시 일으켜 세우기 위한 무언가가 필요했다. 어느 날 글 한 편을 보았고, 육아를 하면서 겪었던 글쓴이의 감정과 울부짖음이 고스란히 내게로 스며들었다. 『연금술사』를 자신의 인생 책이라고 말하던 그녀는 새해가 될 때마다 책을 다시 읽으며 마음을 다잡는다고 했다. 호기심이 생겼다. 그녀의 인생 책이 어쩌면 내게도 의미 있게 다가오지 않을까 기대했다. 20년 이상 눈길조차 주지 않았지만, 나의 선택으로 다시 찾게 된 책이었다. 양치기 청년 산티아고가 자신의 마음에 귀를 기울이고 꿈에서 본 보물을 찾아가는 여정을 그린 책이었다. 어렵지 않았고, 책의 구성과 흐름이 매끄러웠다.
그날도 친정으로 가는 차 안에서 평소대로 책을 펼쳤다. 차 안에서의 독서는 약간의 울렁거림을 주었지만 읽는 동작을 멈출 수 없었다. 무심코 페이지를 넘기다가 독한 마늘 100개를 먹은 것과 같은 찌릿함이 온몸을 휘감았다. 코끝이 찡했다. 예상치 못한 반응에 나의 감각기관은 심하게 요동쳤다. 눈빛은 흔들렸고, 호흡은 거칠어졌다. 글썽이는 눈물은 도로 위의 과속 방지턱을 넘을 때마다 무릎 위로 또르르 떨어질 것만 같았다. 높은 산을 오른 것처럼 귀는 멍해졌고, 눈물인지 콧물인지 모를 액체가 연신 흘러내렸다. 무방비 상태로 책의 한 구절에 무장해제 된 나는 더욱더 깊숙이 고개를 숙였다. 눈물과 콧물로 범벅이 된 얼굴을 차마 들키고 싶지 않았다. 40대 아줌마의 주책맞음으로 보일까 봐 두려웠다. 왼쪽 집게손가락은 조금 전 읽었던 문장 위에 그대로 멈춰있었다. 친정에 도착하려면 아직 1시간 이상 남았지만 더는 읽을 수 없었다. 조금 전 읽었던 문장이 입안에서 계속 맴돌았다.
"자네의 삶이 자네가 자아의 신화를 이루며 살아가기를 원하기 때문일세."
그동안 나처럼 형편없는 사람이 또 있겠냐고 생각했었다. 출산 후 불어난 체중과 볼품없이 늘어진 옷, 수면 부족으로 언제나 부스스한 모습, 매일 감정이 소진되는 삶을 사는 내가 싫었다. 그렇게 나 자신조차도 돌보지 않던 나를, 나의 삶이 온 힘을 다해서 응원해 주고 있다고 했다. 내 인생의 주인공은 나라는 것, 내게도 꿈이 있었다는 것을 떠올리게 했다. 다시 나로 살고 싶어졌다. '흐읍~' 폐 깊은 곳까지 닿을 수 있도록 숨을 크게 몰아쉬었다. 『연금술사』는 꿈을 잃고 멈춰있던 내 심장이 다시 뛸 수 있게 해주었다. 아이의 꿈을 키우듯이 엄마인 나 자신의 꿈도 소중하게 키워가라고 말해주는 것만 같았다.
지금도 유난히 마음이 시리고 힘든 날이면 가만히 책장으로 다가가 깊숙이 꽂아 두었던 책을 꺼낸다. '딩동, 삶의 에너지가 충전되었습니다.' 책이 주는 마음의 신호를 들으며 그제야 좀 더 가벼워진 발걸음으로 다시 일터와 아이들에게로 향한다.
*손서윤 일상이 빛나는 글을 씁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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손서윤(나도, 에세이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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