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로 장애와 일상을 유쾌하면서도 뼈 있는 언어로 벼려내며 주목받는 신인으로 등장한 조승리 작가의 첫 소설 『나의 어린 어둠』이 출간되었습니다. 네 편의 연작 소설과 한 편의 에세이로 구성된 이 책은 시력을 잃어가며 사랑, 진로, 자존감 등 세계의 균열을 느끼는 소녀의 성장기를 담았습니다. 때로 애정이 증오로 바뀌고, 참을 수 없는 무기력을 느끼며 바깥보다 안에서부터 깜깜해지는 마음에 어찌할 줄 모르더라도, 그저 어둠에 잠식당하지만은 않고 정면으로 세상을 마주하는 단단한 이들이 나옵니다. 조승리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조승리만의 이야기는 아닌 이야기. 조승리 작가가 앞으로 걸어갈 이정표 없는 더 먼 길을 상상하며, 소설의 작업기를 서면으로 전해 들었습니다.
첫 소설 출간을 축하합니다. “현실 파악이 빠르”던 소녀는 마침내 꿈을 이루었습니다.
독자들께 작가라는 호칭으로 불릴 때마다 목덜미며 귓가가 새빨갛게 달아오릅니다. 아직은 부끄럽고 어색한 단어입니다. 제 이름이 적힌 소설책을 받은 날 저는 오래오래 책의 향기를 맡으며 다짐했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작가가 되자! 작가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사람이 되겠다.’ 소설가가 되었지만 저의 꿈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나의 어린 어둠』은 작가님의 이야기가 많이 반영된 소설 같다고 느껴졌어요. 소설을 쓰게 된 시작점은 무엇이었나요?
수필 원고를 퇴고하다가 몇몇 원고는 서사를 촘촘히 엮어 더 긴 호흡으로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제 원고를 피드백해 주시던 은사님도 원고를 보시고 단편소설로 고쳐 써 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하셨습니다. 그렇게 표제작인 「나의 어린 어둠」을 시작으로 여러 수필을 단편소설로 개고를 했습니다. 그래서 인지 원고가 수필과 소설 경계에 걸쳐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의 지난 에세이를 읽은 독자들이라면 세계관이 연결된 시리즈물처럼 자연스럽게 익숙한 인물들을 떠올릴 것 같아요.
『나의 어린 어둠』은 자전 소설입니다. 수필로 쓴 원고를 소설로 고쳐 쓰며 약간의 허구를 더했습니다. 화자는 다른 인물이지만 모두 제 모습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에피소드도 제가 겪거나 주변 상황을 많이 대입했습니다.
각 소설의 주인공에게 드리워진 어둠이 감당하기에는 분명 너무 큰 두려움이지만, 그것을 마주하는 과정이 마냥 차갑게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의 주변에 엄마나 첫사랑 소년처럼 다정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브라자는 왜 해야 해?」에서는 주인공의 다정함의 주체가 되어 힘을 발휘하기도 하죠. 작가님께 다정함, 함께 살아감이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최근 새로운 취미에 도전하고 싶어서 집 근처 복싱 클럽을 방문했습니다. 입구에서 신발을 갈아 신기도 전에 거절 의사가 저를 주저 앉혔습니다. 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작은 피티숍을 발견했습니다. 거절 당할 각오로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트레이너는 조금 난감해하더니 우선 해보자고 말했습니다. 첫날의 수업은 엉망이었습니다. 그도 나 역시도 서로를 알지 못하니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두 번째 수업이 있던 날 트레이너가 제 앞에 자신의 팔을 내밀었습니다. 시각장애인의 안내 방법을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다고 합니다. 저는 이렇게 장애를 이해하려는 다정한 사람들 덕분에 세상이 발전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애라는 장벽은 영원히 그 자리에 있겠지만 팔을 내밀어 주는 이들이 있기에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이번 소설을 통해 "캄캄한 눈으로 세상 가장 어두운 곳의 이야기를 밝은 세상에 내놓겠다고 다짐"(「소설가가 되었다」)하셨습니다. 이 소설이 독자에게 어떻게 닿기를 바라나요?
제 책을 읽고 나니 길에서 시각장애인들이 보인다는 독자님들의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도로에 장애인 이동지원 차량이 지나다니는 게 눈에 띄더라는 이야기도 많이 하십니다. 우리는 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다만 인식하지 못했던 거죠. 저는 계속 저와 제 동료들의 이야기를 할 겁니다. 캄캄한 세계의 이야기를 밝은 곳에 꺼내 놓으며 서로를 이해하는 가교의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가 굉장한 성공을 거두면서, 또 다른 목표나 사명감이 생기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실제로 자신의 이야기를 써달라고 말한 독자도 있었다고요.
저를 작가로 이끌어 주신 동화작가 박현경 선생님께서는 제게 글쓰기를 독려하시며 가슴 속 고여 있던 모든 이야기를 몽땅 쏟아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진정한 글을 쓸 수 있다고 조언하셨습니다. 매해 원고지로 1000매 이상씩은 쓴 것 같습니다. 그렇게 나를 비워내자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내 눈먼 동료들의 삶, 비정한 사회의 시선, 그럼에도 살고 살아가려는 치열한 몸부림들. 저는 알리고 싶습니다. 우리도 함께 성장하고 경쟁하며 꿈꾸고 이뤄내며 살고 있음을요. 제가 글을 계속 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어릴 적부터 책을 정말 많이 읽으셨다고 하셨는데요. 소설에서도 주인공이 도서관에 가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나옵니다. 특히 좋아했던 작가는 누구인지, 어떤 책을 좋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소설가 윤대녕 선생님을 특히 좋아했습니다. 선생님의 소설을 읽다 보면 무언가를 상실해 버린 듯한 기분이 듭니다. 시적인 문체도 매혹적입니다. 처음으로 소설을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은 윤대녕 선생님의 소설 『사슴벌레 여자』와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를 읽으면서입니다. 소설 속 화자들은 무언가 고장 나 있거나 궤도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그 설정이 저의 모습 같아 더욱 열광했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어떤 책을 주로 읽으시나요?
여전히 소설을 주로 읽습니다. 요사이 제가 푹 빠져 있는 소설가는 클레어 키건입니다. 그녀의 글은 짧지만 깊은 울림을 줍니다. 간결한 문장과 낭비 하나 없는 단어의 쓰임에 감탄합니다. 특히 제가 좋아하는 작품은 『맡겨진 소녀』입니다. 저는 이 소설을 귀로 듣고 다시 점자로 재독했습니다. 그녀의 글에 깃든 강렬한 여운은 저를 매번 감동시킵니다. 제가 가장 닮고 싶고 선망하는 소설가입니다.
여행과 플라멩코가 취미라고 들었습니다.
플라멩코는 현재 쉬고 있습니다. 플라멩코를 배워서 스페인에 가겠다는 목표는 달성했습니다.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는 세종시입니다. 도시 곳곳 공기에 밴 풀과 나무 냄새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최근 바쁘게 활동하다 느긋하게 산책하듯 도시를 유랑했는데 스페인 바로셀로나를 관광했던 것보다 더 아름답고 싱그러운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작가님의 글은 현실의 벽을 인지하고 깨부수며 나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겪어본 적 없는 새로운 장마”(「나의 어린 어둠」)를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으실까요?
첫 소설은 저의 성장통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고통스럽고 아팠지만 결코 희망을 놓지 않는 삶의 의지를 담고 싶었습니다. 지금 어린 어둠의 순간을 지나는 누군가에게 저의 어둠이 작은 빛이 되었으면 합니다. 어둠을 건너올 작은 단서가 되길 바랍니다.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계획을 살짝 소개해 주세요.
음식에 관한 에세이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또 르포르타주를 써보고 싶어서 자료 조사와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한계가 없는 자유로운 글쓰기가 저의 목표입니다.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나의 어린 어둠
출판사 | 다산책방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
출판사 | 달
사슴벌레 여자
출판사 | 이룸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
출판사 | 문학동네
맡겨진 소녀
출판사 | 다산책방

이참슬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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