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승리, 나의 어둠이 작은 빛이 되기를 [예스24]
상실을 안고 세계의 균열을 느끼며 성장하는 소녀의 이야기. 조승리 작가의 첫 소설 『나의 어린 어둠』.
글 : 이참슬 사진 : 다산책방
2025.07.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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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로 장애와 일상을 유쾌하면서도 뼈 있는 언어로 벼려내며 주목받는 신인으로 등장한 조승리 작가의 첫 소설 『나의 어린 어둠』이 출간되었습니다. 네 편의 연작 소설과 한 편의 에세이로 구성된 이 책은 시력을 잃어가며 사랑, 진로, 자존감 등 세계의 균열을 느끼는 소녀의 성장기를 담았습니다. 때로 애정이 증오로 바뀌고, 참을 수 없는 무기력을 느끼며 바깥보다 안에서부터 깜깜해지는 마음에 어찌할 줄 모르더라도, 그저 어둠에 잠식당하지만은 않고 정면으로 세상을 마주하는 단단한 이들이 나옵니다. 조승리로부터 시작되었지만, 조승리만의 이야기는 아닌 이야기. 조승리 작가가 앞으로 걸어갈 이정표 없는 더 먼 길을 상상하며, 소설의 작업기를 서면으로 전해 들었습니다. 


 

첫 소설 출간을 축하합니다. “현실 파악이 빠르”던 소녀는 마침내 꿈을 이루었습니다. 

독자들께 작가라는 호칭으로 불릴 때마다 목덜미며 귓가가 새빨갛게 달아오릅니다. 아직은 부끄럽고 어색한 단어입니다. 제 이름이 적힌 소설책을 받은 날 저는 오래오래 책의 향기를 맡으며 다짐했습니다. ‘부끄럽지 않은 작가가 되자! 작가라는 호칭이 어울리는 사람이 되겠다.’ 소설가가 되었지만 저의 꿈은 아직 진행 중입니다.

 

『나의 어린 어둠』은 작가님의 이야기가 많이 반영된 소설 같다고 느껴졌어요. 소설을 쓰게 된 시작점은 무엇이었나요? 

수필 원고를 퇴고하다가 몇몇 원고는 서사를 촘촘히 엮어 더 긴 호흡으로 그리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마침 제 원고를 피드백해 주시던 은사님도 원고를 보시고 단편소설로 고쳐 써 보는 게 어떻겠냐고 권하셨습니다. 그렇게 표제작인 「나의 어린 어둠」을 시작으로 여러 수필을 단편소설로 개고를 했습니다. 그래서 인지 원고가 수필과 소설 경계에 걸쳐 있는 것 같습니다.

 

작가님의 지난 에세이를 읽은 독자들이라면 세계관이 연결된 시리즈물처럼 자연스럽게 익숙한 인물들을 떠올릴 것 같아요. 

『나의 어린 어둠』은 자전 소설입니다. 수필로 쓴 원고를 소설로 고쳐 쓰며 약간의 허구를 더했습니다. 화자는 다른 인물이지만 모두 제 모습이 투영되어 있습니다. 에피소드도 제가 겪거나 주변 상황을 많이 대입했습니다. 

 

각 소설의 주인공에게 드리워진 어둠이 감당하기에는 분명 너무 큰 두려움이지만, 그것을 마주하는 과정이 마냥 차갑게만 느껴지지는 않았습니다. 그들의 주변에 엄마나 첫사랑 소년처럼 다정한 사람들이 있었기 때문인 것 같아요. 「브라자는 왜 해야 해?」에서는 주인공의 다정함의 주체가 되어 힘을 발휘하기도 하죠. 작가님께 다정함, 함께 살아감이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합니다. 

최근 새로운 취미에 도전하고 싶어서 집 근처 복싱 클럽을 방문했습니다. 입구에서 신발을 갈아 신기도 전에 거절 의사가 저를 주저 앉혔습니다. 분한 마음으로 집으로 돌아오는 길, 작은 피티숍을 발견했습니다. 거절 당할 각오로 문을 열고 들어섰습니다. 트레이너는 조금 난감해하더니 우선 해보자고 말했습니다. 첫날의 수업은 엉망이었습니다. 그도 나 역시도 서로를 알지 못하니 당연한 결과였습니다. 

 

두 번째 수업이 있던 날 트레이너가 제 앞에 자신의 팔을 내밀었습니다. 시각장애인의 안내 방법을 인터넷에 검색해 보았다고 합니다. 저는 이렇게 장애를 이해하려는 다정한 사람들 덕분에 세상이 발전해 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장애라는 장벽은 영원히 그 자리에 있겠지만 팔을 내밀어 주는 이들이 있기에 힘을 낼 수 있습니다.       

 

이번 소설을 통해 "캄캄한 눈으로 세상 가장 어두운 곳의 이야기를 밝은 세상에 내놓겠다고 다짐"(「소설가가 되었다」)하셨습니다. 이 소설이 독자에게 어떻게 닿기를 바라나요?

제 책을 읽고 나니 길에서 시각장애인들이 보인다는 독자님들의 이야기를 여러 번 들었습니다. 도로에 장애인 이동지원 차량이 지나다니는 게 눈에 띄더라는 이야기도 많이 하십니다. 우리는 늘 그 자리에 있었습니다. 다만 인식하지 못했던 거죠. 저는 계속 저와 제 동료들의 이야기를 할 겁니다. 캄캄한 세계의 이야기를 밝은 곳에 꺼내 놓으며 서로를 이해하는 가교의 역할을 하고 싶습니다.     


 

『이 지랄맞음이 쌓여 축제가 되겠지』가 굉장한 성공을 거두면서, 또 다른 목표나 사명감이 생기셨을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실제로 자신의 이야기를 써달라고 말한 독자도 있었다고요. 

저를 작가로 이끌어 주신 동화작가 박현경 선생님께서는 제게 글쓰기를 독려하시며 가슴 속 고여 있던 모든 이야기를 몽땅 쏟아내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래야만 비로소 진정한 글을 쓸 수 있다고 조언하셨습니다. 매해 원고지로 1000매 이상씩은 쓴 것 같습니다. 그렇게 나를 비워내자 주변이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내 눈먼 동료들의 삶, 비정한 사회의 시선, 그럼에도 살고 살아가려는 치열한 몸부림들. 저는 알리고 싶습니다. 우리도 함께 성장하고 경쟁하며 꿈꾸고 이뤄내며 살고 있음을요. 제가 글을 계속 써야 하는 이유입니다.    

   

어릴 적부터 책을 정말 많이 읽으셨다고 하셨는데요. 소설에서도 주인공이 도서관에 가서 시간을 보내는 모습이 나옵니다. 특히 좋아했던 작가는 누구인지, 어떤 책을 좋아하셨는지 궁금합니다. 

소설가 윤대녕 선생님을 특히 좋아했습니다. 선생님의 소설을 읽다 보면 무언가를 상실해 버린 듯한 기분이 듭니다. 시적인 문체도 매혹적입니다. 처음으로 소설을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은 것은 윤대녕 선생님의 소설 『사슴벌레 여자』『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를 읽으면서입니다. 소설 속 화자들은 무언가 고장 나 있거나 궤도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그 설정이 저의 모습 같아 더욱 열광했던 것 같습니다.

 

요즘은 어떤 책을 주로 읽으시나요? 

여전히 소설을 주로 읽습니다. 요사이 제가 푹 빠져 있는 소설가는 클레어 키건입니다. 그녀의 글은 짧지만 깊은 울림을 줍니다. 간결한 문장과 낭비 하나 없는 단어의 쓰임에 감탄합니다. 특히 제가 좋아하는 작품은 『맡겨진 소녀』입니다. 저는 이 소설을 귀로 듣고 다시 점자로 재독했습니다. 그녀의 글에 깃든 강렬한 여운은 저를 매번 감동시킵니다. 제가 가장 닮고 싶고 선망하는 소설가입니다.          

 

여행과 플라멩코가 취미라고 들었습니다. 

플라멩코는 현재 쉬고 있습니다. 플라멩코를 배워서 스페인에 가겠다는 목표는 달성했습니다. 최근 가장 기억에 남는 여행지는 세종시입니다. 도시 곳곳 공기에 밴 풀과 나무 냄새를 잊을 수가 없습니다. 최근 바쁘게 활동하다 느긋하게 산책하듯 도시를 유랑했는데 스페인 바로셀로나를 관광했던 것보다 더 아름답고 싱그러운 추억으로 남아 있습니다. 

 

작가님의 글은 현실의 벽을 인지하고 깨부수며 나가게 만드는 힘이 있다고 생각합니다. “겪어본 적 없는 새로운 장마”(「나의 어린 어둠」)를 마주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말이 있으실까요?

첫 소설은 저의 성장통을 이야기하고 싶었습니다. 고통스럽고 아팠지만 결코 희망을 놓지 않는 삶의 의지를 담고 싶었습니다. 지금 어린 어둠의 순간을 지나는 누군가에게 저의 어둠이 작은 빛이 되었으면 합니다. 어둠을 건너올 작은 단서가 되길 바랍니다.       

 

앞으로의 활동에 대한 계획을 살짝 소개해 주세요. 

음식에 관한 에세이를 기획하고 있습니다. 또 르포르타주를 써보고 싶어서 자료 조사와 취재를 시작했습니다. 한계가 없는 자유로운 글쓰기가 저의 목표입니다. 흥미롭고 재미있는 이야기로 다시 찾아 뵙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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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참슬

다양한 사람의 이야기가 궁금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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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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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대녕

1962년 충남 예산에서 태어나 대전에서 고등학교까지 마치고 단국대 불문과에 문예장학생으로 입학했다. 대학을 졸업하던 1988년 대전일보 신춘문예에 단편 「원」이 당선되었고, 1990년 [문학사상]에서 「어머니의 숲」으로 신인상을 받아 등단했다. 출판사와 기업체 홍보실에서 직장생활을 하다가 1994년 『은어낚시통신』을 발표하며 전업작가의 길에 들어섰다. 이 책을 통해 존재의 시원에 대한 천착을 통해 우수와 허무가 짙게 깔린 독특한 문학적 성취를 이루며 평단의 주목을 받았다. 그 후 90년대를 대표하는 작가로 떠오르며 '존재의 시원에 대한 그리움'을 그만의 독특한 문체로 그려나가고 있다. 오늘의 젊은예술가상(1994), 이상문학상(1996), 현대문학상(1998), 이효석문학상(2003), 김유정문학상(2007), 김준성문학상(2012)을 수상했다. 2019년 현재 동덕여대 문예창작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 여섯 살 이전의 기억은 전혀 뇌리에 남아 있지 않다는 그의 최초의 기억은 조모의 등에 업혀 천연두 예방 주사를 맞기 위해 초등학교에 가던 날이다. 주사 바늘이 몸에 박히는 순간 제대로 소리 한번 지르지 못하고 정신을 잃고 말았다. 일곱 살 때 조부가 교장으로 있던 학교에 들어갔다. 입학도 안 하고 1학년 2학기에 학교 소사에게 끌려가 교실이라는 낯선 공간에 내던져진다. 학교에서 돌아오면 할아버지에게 한자를 배웠다. 한자 공부가 끝나면 조부는 밤길에 막걸리 심부름이나 빈 대두병을 들려 석유를 받아 오게 했다. 오는 길이 무서워 주전가 꼭지에 입을 대고 찔끔찔끔 막걸리를 빨아먹거나 당근밭에 웅크리고 앉아 석유 냄새를 맡곤 했던 것이 서글프면서도 좋았던 기억으로 남아 있다. 중학교에 들어가면서부터 독서 취미가 다소 병적으로 변해, 학교 도서관에서 빌린 책들을 닥치는 대로 읽어 대기 시작한다. 그리고 고등학교에 들어가 우연히 '동맥'이라는 문학 동인회에 가입한다. 그때부터 치기와 겉멋이 무엇인지 알게 돼 선배들을 따라 술집을 전전하기도 하고 백일장이나 현상 문예에 투고하기도 했고 또 가끔 상을 받기도 했다. 고등학교 3년 동안 거의 한 달에 한 편씩 소설을 써대며 찬바람이 불면 벌써부터 신춘 문예 병이 들어 방안에 처박히기도 했다. 대학에 가서는 자취방에 처박혀 롤랑 바르트나 바슐라르, 프레이저, 융 같은 이들의 저작을 교과서 대신 읽었고 어찌다 학교에 가도 뭘 얻어들을 게 없나 싶어 국문과나 기웃거렸다. 1학년 때부터 매년 신춘 문예에 응모했지만 계속 낙선이어서 3학년을 마치고 화천에 있는 7사단으로 입대한다. 군에 있을 때에는 밖에서 우편으로 부쳐 온 시집들을 성경처럼 읽으며 제대할 날만 손꼽아 기다렸다. 그때 군복을 입고 100권쯤 읽은 시집들이 훗날 글쓰기에 많은 영향을 주었다. 제대 후 1주일 만에 공주의 조그만 암자에 들어가 유예의 시간을 보내면서 자신을 투명하게 보려고 몸부림쳤다. 이듬해 봄이 왔을 때도 산에서 내려가는 일을 자꾸 뒤로 미루고 있었다. 하지만 주위 사람들의 뻔한 현실론에 떠밀려 다시 복학했고 한 순간 번뜩, 자신이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문학이라는 것을 아프게 깨닫는다. 데뷔 이래 줄곧 시적 감수성이 뚝뚝 묻어나는 글쓰기로 주목을 받은 윤대녕은 ‘시적인 문체’를 지녔다는 찬사를 받는다. 그의 글에서는 누구도 흉내 내지 못하는 그만의 시적 색채가 느껴지는 문체가 있어서이다. 동시에 그의 글에서는 이 시대를 살아가는 젊은 세대의 일상을 마치 스냅사진을 찍듯 자연스럽게 포착하여 그려내는 뛰어난 서사의 힘이 느껴진다. 윤대녕은 고전적 감각을 견지하면서 동시에 동시대적 삶과 문화에 대한 예리한 감각을 지니고 있다. 그의 작품들을 지향점을 잃어버린 시대에 삶과 사랑의 의미를 찾아 헤매는 젊은 세대의 일상에 시적 묘사와 신화적 상징을 투사함으로서 삶의 근원적 비의를 탐색한다. 내성적 문체, 진지한 시선, 시적 상상력과 회화적인 감수성, 치밀한 이미지 구성으로 우리 소설의 새로운 표정을 만들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작품으로『남쪽 계단을 보라』,『많은 별들이 한 곳으로 흘러갔다』,『대설주의보』를 비롯해 장편소설 『옛날 영화를 보러 갔다』,『추억의 아주 먼 곳』,『달의 지평선』,『코카콜라 애인』, 『사슴벌레 여자』, 『미란』 등을 발표했다. 산문집 『그녀에게 얘기해 주고 싶은 것들』, 『누가 걸어간다』, 『어머니의 수저』,『이 모든 극적인 순간들』『사라진 공간들, 되살아나는 꿈들』을 펴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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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레어 키건

1968년 아일랜드 위클로에서 태어났다. 17세에 미국으로 건너가 로욜라대학교에서 영문학과 정치학을 공부했다. 이어서 웨일스대학교에서 문예창작 석사 학위를 받아 학부생을 가르쳤고, 더블린트리니티칼리지에서 철학 석사 학위를 취득했다. 《가디언》은 키건의 작품을 두고 “탄광 속의 다이아몬드처럼 희귀하고 진귀하다”라고 평한 바 있다. 이는 그가 24년간 활동하면서 단 4권의 책만을 냈는데 그 모든 작품들이 얇고 예리하고 우수하기 때문이다. 키건은 1999년 첫 단편집인 『남극(Antarctica)』으로 루니 아일랜드 문학상과 윌리엄 트레버상을 수상하며 화려하게 데뷔했다. 2007년 두 번째 작품 『푸른 들판을 걷다(Walk the Blue Fields)』를 출간해 영국과 아일랜드에서 출간된 가장 뛰어난 단편집에 수여하는 에지 힐상을 수상했다. 2009년 쓰인 『맡겨진 소녀』는 같은 해 데이비 번스 문학상을 수상했고 《타임스》에서 뽑은 ‘21세기 최고의 소설 50권’에 선정되었다. 최근작 『이처럼 사소한 것들』로 오웰상(소설 부문)을 수상하고, 2022년 부커상 최종후보에 올랐다. 자국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거장의 반열에 오른 키건에게 미국을 넘어 세계적인 명성을 안겨준 이 책은 ‘역대 부커상 후보에 오른 가장 짧은 소설’로도 알려져 있다. 18세기부터 20세기 말까지 아일랜드 정부의 협조하에 가톨릭 수녀원이 운영하며 불법적인 잔혹 행위를 저질렀던 ‘막달레나 세탁소’를 배경으로, 자칫 모든 것을 잃을 수 있는 선택 앞에서 고뇌하는 한 남자의 내면을 치밀하게 그려낸 소설이다. 이 작품은 현재 아일랜드 배우 킬리언 머피가 직접 주연과 제작을 맡아 영화로 제작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