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스플래쉬
산책할 때 생각한다. 우리를 둘러싼 소소한 오해들에 대해서.
원주에 있는 창작 레지던스에 머물 때, 시골 생활이 처음이라 내내 들떠있었다. 저녁을 먹고 작가들과 산책할 때 웬 새소리가 들렸다. “새가 우네. 선배, 이거 무슨 새가 우는 거예요?” 선배의 일갈. “개구리야!” 사람들이 와르르 웃었다. 개구리와 새 울음도 구별 못하다니 오해했다. (무식했나?) 서울에서 자란 나는 자연의 무자비함이나, 농사의 고됨, 순서에 맞게 꽃이 피고 지는 자연의 섭리에 무지했다. 시골 생활이 낭만적으로 보였다. 시골에서 자란 친구에게 농부들의 정직ㆍ성실한 생활을 찬미했더니 그의 대답. “농사는 형벌이야.” 오해했다.
산책할 때 생각한다.
얼마 전, 남편과 산책하는데 개구리 소리가 들렸다. 드디어 개구리군. ‘이제 좀 아는’ 나는 외쳤다. “우와, 개구리 우는 소리 좀 들어봐!” 나직이 건너오는 대꾸. “맹꽁이야.” 과연, 맹꽁이는 개구리와 달랐다. 좀 더 “매앵꼬옹― 매앵꼬옹”(?), 하고 울었다. 개구리를 새로, 맹꽁이를 개구리로, 오해했다. 이런 적도 있다. 일전에 남편이 뱉어놓은 곶감 씨앗을 아몬드인 줄 알고 냉큼 깨물어먹으려다… 이가 부러질 뻔 했다. 오해했다.
산책할 때 생각한다.
종일 소파에 누워 텔레비전 앞을 지키는 당신에게 게으르다고 핀잔을 주었다. “몸이 무거워. 참 무력하네.” 말하는 당신. 소파에 녹아 든 당신을 뒤로 하고 홀로 산책하는 길. 개구리도, 맹꽁이도, 새도 울지 않았다. 여름도 끝인가, 고개를 수그리고 걷다 깨달았다. 종일 소파에 파묻혀 일어나지 못하는 당신은 몸이 좋지 않은 게 아니라, 마음이 좋지 않았던 게 아닐까? 그러고 보니 얼굴에 우울의 그림자가 드리워져 있었다. 오해했다. 당신과 우울과 여름의 끝과 맹꽁이에 대해 생각하며 걷는데, 중년 남자 둘이 떠들며 걸어왔다. “그러니까 내 요지는, 돈이면 해결 안 되는 게 없다는 거야! 돈이면 대부분 문제가 다 해결돼. 돈이 다야. 정말이라니까?” 돈, 돈, 돈. 세 번의 ‘돈’ 소리가 나를 스쳐갔다. 잠깐 돈 생각(정확히, 돈 걱정)을 조금 하다, 돈이면 정말 다 해결이 될까 의심해 보았다. 아무래도… 아저씨? 오해하셨습니다.
산책할 때 생각한다.
밖에서 보면, 오해하기 좋은 일에 대해. 방랑하는 자는 따뜻한 불빛 아래 사는 정주자가 좋아 보이고, 정주자는 방랑자의 분방한 생활이 좋아 보인다. 회사원은 시간을 자유롭게 쓰는 프리랜서가 좋아 보이고, 프리랜서는 정기적으로 월급을 받는 회사원이 좋아 보인다. 남자는 여자가 여자는 남자가, 아이는 어른이 어른은 아이가 좋아 보인다. 사장님은 직원이 직원은 사장님이 좋아 보인다. 도시생활자는 전원생활이, 전원생활자는 도시생활이 좋아 보인다. 오해다. 좋아 ‘보인다’는 것에 주목하자. 보이는 것은 실제와 다르다. 오해는 나 편하자고 하는 것, 생각이 가는대로 가보자고 떠나는 이기적인 산책이다. 실체를 보지 못하고, 테두리만 볼 때 일어나는 ‘작은 비극’이다. 테두리만 본다는 것― 그것은 쉽고 편하고, 자신만만하게 일어나는 실수다.
걷다 보면 마음은 정말이지 ‘마음대로’ 간다. 돈이나 사랑, 여름의 끝, 우울, 맹꽁이 소리 같은 것을 이끌고 간다. 종국엔 어디에 도착할까? 나만 있고, 나만 좋은 곳? 아니다. 실은 나도, 당신도 없는, 이상한 바다에 도착한다. 오해(海)? (썰렁해서 미안합니다)
박연준(시인)
1980년 서울에서 태어나 동덕여대 문예창작과를 졸업했다. 2004년 중앙신인문학상에 시 '얼음을 주세요'가 당선되어 문단에 나왔다. 시집『속눈썹이 지르는 비명』『아버지는 나를 처제, 하고 불렀다』가 있고, 산문집『소란』을 냈다.
2019.08.2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