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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터 2-10] 39화 : 조직의 레포에서 개인의 얼굴로

『마터 2-10』 연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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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는 방이 만나는 자가 거리의 노동자가 아님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는데 사찰계의 속어대로 이르자면 어딘가 ‘인텔리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표정에서 ‘책 읽은 눈빛’이 보인다는 말도 있었다. (2019. 08.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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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채널예스>에서 황석영 소설가의 신작 『마터 2-10』을 매주 월/수요일 연재합니다.

 

 

 

한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내용을 잘 파악하는 사람의 글이나 말은 쉽고 간단명료한데요. 이건 너무 어렵고 외래어가 많고 한자투성이입니다.”

 

이철도 웃으면서 동의를 했다.

 

 “그런 팸플릿이 오면 우리는 무시하고 배포하지 않거나 요약하고 풀어서 다시 등사합니다. 그런데 괜찮겠습니까? 저희 쪽에서 일하셔도.”

 

 “어느 쪽이든 조국과 노동계급의 해방을 위하여 싸우는 일인데 머 입신양명하는 사업두 아니잖아요? 아, 남자들은 헤게모니에 집착하니까. 그런데 현장에 가보면 노동자들이 이해를 못해요. 왜 별 차이도 없는 노선을 가지고 다투냐구요. 우리는 양쪽 다 우리를 응원해주면 일본과 싸우겠다고 그러지요. 저두 그 사람들과 뜻을 같이하려 합니다. 옳은 노선은 접수하고 비현실적인 지침은 모른 척 하는 것이지요.”

 “저두 원칙적으론 한 동무와 같습니다. 그렇지만 지도부가 조직적인 논의를 통해서 결정한 사항은 끝까지 해내야겠지요.”

 

이철은 그때에 자신의 이름을 밝혔다.

 

 “저는 이이철입니다. 집에서는 어려서부터 두쇠라구 불렀어요.”

 

한이 먼저 입을 가리며 웃었다.

 

 “그러면 첫쇠나 한쇠가 있겠네요.”

 

 “예 한쇠가 우리 형입니다.”

 

 “제 이름은 한여옥이라구 합니다.”

 

그녀가 이름을 말했을 때 이철은 가슴이 찌릿하면서 어깨가 떨릴 정도였다고 한여옥 본인에게도 말했고 나중에 형수 신금이에게도 고백한 적이 있었다. 그들은 그때에 조직의 레포에서 개인의 얼굴로 되돌아 왔던 것이다.

 

파고다 공원에서 만난 김형신과 류재익은 낙원동의 미로 같은 뒷골목을 돌아다니며 토론했다. 지난번의 만남에서 자신의 뜻이 정면으로 비판 받고 거절당했던 김형신은 굳은 얼굴로 헤어졌지만 다시 만났을 때에는 류재익을 반갑게 대하고 있었다.

 

 “우리는 류 동무의 의견을 받아들이기로 하였습니다. 그러면 해외에서 들어오는 기관지 말고 조선 내에서 출판할 수 있는 조직이나 활동가들을 소개할 수는 있겠지요?”

 

김형신의 말에 류재익은 쾌히 응낙했다.

 

 “좋습니다. 그런 일은 저희도 이미 실행 중에 있었습니다.”

 

하고 나서 류재익이 김형신에게 물었다.

 

 “신문에 보도된 바로는 상해에서 극동반제대회가 열릴 예정이라던데요, 여기에 대하여 상해의 그룹은 어떤 방침을 갖고 있습니까?”

 

 “그야 상해에 있는 동지들이 알아서 결정하겠지요.”

 

 “우선 반제대회가 상해에서 개최 된다는 사실을 선전 선동하여 대중에게 인식 시켜야 하겠습니다. 이런 노력이 전제되지 않고 상해에서 누가 파견되든 아무런 의미가 없을 것입니다.”

 

김형신은 다시 류에게 함경도로 갈 것을 타진했지만 그는 이번에도 한마디로 거절했다. 자신을 필요로 하는 곳은 운동이 활발하게 진전된 함경도가 아니라 이제 시작하고 있는 경성이며, 이 지역의 노동운동이 성숙한 이후에 다시 생각해 보겠다고 류재익은 말했다. 김형신은 자신들의 결정에 따르지 않는 류재익이 못마땅했지만 그를 강제로 떠나게 할 수는 없었고 결국은 국내에서 자체적으로 기관지를 만드는 일만 합의한 셈이었다. 그러나 어쨌든 이들의 협의는 더 이상 진행할 수 없게 되었다.

 

김형신은 영등포의 조직 점검을 하는 것이 시급하다고 생각했다. 그것은 국내 운동의 기반이 아직 취약했던 그로서는 류재익과 합의했던 대로 경성에 기관지를 살포할 조직의 구성을 자신도 어느 정도는 해놓아야만 연합운동이 가능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남경성이라고 부르는 영등포 공장지대와 인천 지역을 가장 가능성이 큰 곳이라고 생각했다. 영등포의 방우창을 연결해 준 것은 먼저 감옥에 갔다가 기소유예로 나온 상해 시절의 공청 회원이었던 장이라는 청년이었다. 그가 방우창과 같은 방에서 옥살이를 하면서 의기투합 했던 바가 있었다. 문건으로 연결된 조직은 경성 안에 이십여 명이 있었고 장은 한여옥과 같은 조의 성원이었다. 장과 한은 번갈아 김형신과 연락하며 레포 역할을 담당했다.

 

김형신이 장을 데리고 영등포로 방우창을 만나러 온 것이 칠월 중순이었으니 류재익과 세 번째 회합을 가진지 이주 정도 지난 다음이었다. 김형신은 먼저 레포 장을 방우창에게 보내 거처에서 갑자기 그를 데리고 나오도록 했다. 때는 저녁 여덟 시경이어서 이미 밥 때도 지났고 주위가 어두워졌다. 장은 몇 차례 그의 합숙 집을 드나든 적이 있어서 노동자들이 씻고 환담하며 오가는 마당 안으로 서슴지 않고 들어가 곧장 그의 방으로 찾아갔다. 한창 더운 여름이라 방마다 속옷 바람의 노동자들이 문을 열어 놓고 있었다. 방우창이 웃통을 벗고 누워 있다가 방문 앞에 그가 나타난 것을 보자 황망히 일어나 셔츠를 걸치고 그를 재촉하여 밖으로 나섰다.

 

 “소식도 없이 불쑥 찾아오면 어떡해?”

 

 “이게 더 안전하지 않겠어요?”

 

사실 그들의 정기 접선은 한 달에 두 번 매달 첫 번째 화요일과 마지막 화요일 저녁이었다. 그때에 특이사항이 있으면 미리 통보하여 날짜와 시각을 변경하는 것이 원칙이었다. 방우창은 늘 그러했듯이 동네를 벗어나 인적이 드문 곳으로 산책을 나가듯 하는 게 자신의 회합 방식이었다. 앞장서 걸으며 장이 말했다.

 

 “그분이 오셨습니다. 저를 따라 오시죠.”

 

방우창은 그가 누구를 말하는지 대번 알아들었다. 상부 선이라면 국제당의 파견자가 분명했기 때문이었다. 방우창은 묵묵히 장을 따라서 마루보시 뒷길로 들어섰다. 홍등가 입구의 그 중국집이었다. 경험이 있는 자라면 그런 거리의 후미진 곳에 있는 중국집이 맞춤한 장소임을 알아보았을 터였다. 언젠가 이이철이 이관수를 만났던 장소도 아마 그곳이었을 것이다. 그들은 평일 밥 때가 지난 청요릿집에 손님이 드문 것도 알고 있었고 좌석마다 칸막이가 되어 있어서 더욱 안전하다고 생각했다. 김형신이 식당 안쪽의 칸막이에 앉았다가 커튼을 열어젖히자 일어났다. 두 사람이 앉은 뒤에 차분하고 은밀하게 장이 방우창과 김형신을 각자에게 소개했다. 그들은 음식과 술을 시키고 안부 인사를 주고받았다. 이야기가 한창 무르익을 즈음에 누군가가 갑자기 커튼을 열어젖히며 상반신을 내밀었다.

 

 “어이구 이게 누구요? 청요리를 다 자시구.”

 

하는 순간 방우창이 벌떡 일어나 사내의 면상을 들이받았고 장이 칸막이 밖으로 나가면서 그 자를 한 번 더 발로 찼다. 장은 얼결에 정면 통로로 밖을 향하여 달려 나갔고 김형신도 그 뒤를 따랐다. 이때 방우창은 몸을 돌려 식당의 주방과 변소가 있는 반대편 안쪽으로 뛰었다. 그가 주방을 통과하여 놀란 조리사들을 젖히고 뒷골목으로 빠져 나오니 호루라기 소리가 날카롭게 들렸다. 방우창은 막다른 골목의 담을 턱걸이하여 뛰어넘고 그 집 마당을 지나 어두운 철도 연변으로 나왔다. 아직도 서로 외치는 고함 소리가 요란한 가운데 그는 철도를 넘어 익숙한 샛강의 뚝방 쪽으로 뛰었다. 이제 그는 합숙소로 돌아가서는 안 되며 영등포에 머물 수도 없게 되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중국식당 문밖에는 서너 명의 사복 경찰들이 기다리고 있었고 장이 김형신을 도망시키기 위하여 그들을 가로막으며 달려들었다. 그들을 체포하기 위해 노리고 있던 형사들은 물론 준비가 되어 있었다. 형사가 달려드는 장의 머리를 곤봉으로 후려갈기자 그는 혼절하여 무너져 버렸고 김은 꼼짝 못하고 제압당하여 땅바닥에 쓰러졌다. 그들은 김형신의 두 팔을 돌려 수갑을 채웠다.

 

 “방우창이를 놓쳤습니다.”

 

코피가 터져 셔츠가 피투성이인 사내가 식당에서 나오더니 홧김에 쓰러진 장을 몇 번이나 짓밟아서 다른 형사들이 말릴 정도였다. 그중의 상관인 듯 한 자가 늘어져 있는 장의 얼굴을 구둣발로 젖혀 들여다보고는 말했다.

 

 “방가를 놓친 게 큰 실수로군.”

 

그들이 방우창을 사찰하기 시작한 것은 몇 주 전부터였다. 총독부 경무국에서는 작년부터 전국적으로 일어난 파업 사태가 한바탕 휩쓸고 지난 다음 물밑에서 처음부터 차근차근 재조사를 시작했다. 경무국 고등계가 각 경찰서에 특파되어 파업과 연관된 자들을 내사했고 근래의 동향을 살피는 중에 이미 다른 사건으로 검거 되었다가 석방된 자들에게는 미행이나 잠복 등으로 일상을 재점검하기 시작했다. 파업 건으로 검거 되었다가 삼 개월의 옥살이를 하고 나온 방우창이 가두노동자로 노동자 밀집지역에서 기거하는 것은 주요한 혐의 사항이었다. 그가 경성 문안 출입이 잦으며 영등포에서도 공장 노동자들을 자주 만나는 것도 확인 되었다.

 

중국식당의 커튼을 젖히고 방우창에게 아는 체 했던 젊은이는 사실 순사보조였다. 나머지 셋 중에 한 사람이 정식 일본인 형사였고 나머지 둘은 모두 조선인 보조원들이었다. 일제는 합방 초기부터 헌병과 경찰력을 늘려오면서 조선인 보조원 제도를 시행하였다. 삼일운동이 일어나고 다섯 해 동안의 지원자는 이대일 또는 삼대일 정도의 경쟁률이었으나 이십 년대 중반에 십대일을 넘고 삼십 년대에 들어서면서 모집인원이 증원 되었는데도 이십대 일 이상의 경쟁률을 유지했다. 이들은 대개 밀정의 역할을 하면서 조선인을 사찰하는 앞잡이의 노릇을 하게 된다. 보통학교를 나오고 일본어를 할 줄 아는 자는 거주지의 신원조회를 거친 뒤에 시험을 치르게 하여 일정기간 교육을 받고 나서 헌병대나 경찰서에 배치되었다. 그러나 때로는 헌병과 경찰이 사건에 따라 임시정보원으로 쓰다가 믿을만하고 유능하면 특채를 했다. 일제강점기의 후반기로 갈수록 정식 채용자들 보다는 그러한 정보원 출신들이 더 많아지게 된다.

 

그날 김형신의 체포는 사실은 그들에게 우연히 걸려든 대어나 마찬가지였다. 치안 전과가 있는 방우창을 사찰하기 위해서 보조원이 노동자로 변장하고 같은 합숙소에 기거하며 방의 곁에 가까이 기어들어 갔던 터였다. 그는 장이 한번 그를 방문하여 나가는 것을 보고 미행했던 적이 있었고 방우창이 외출하여 문안에 들어가 장을 만나는 것을 재차 확인했던 적도 있었다. 그는 방이 만나는 자가 거리의 노동자가 아님을 직감적으로 알아차렸는데 사찰계의 속어대로 이르자면 어딘가 ‘인텔리 냄새’가 난다는 것이었다. 표정에서 ‘책 읽은 눈빛’이 보인다는 말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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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황석영(소설가)

「객지」 「삼포 가는 길」 『무기의 그늘』 『장길산』… 소설의 제목만 들어도 역사가 그려지는 한국의 대표 작가. 1943년 만주에서 태어나 4.19와 5.18, 방북과 망명, 수감을 거쳐 한국의 현대사를 온 몸으로 받아낸 시대의 증인이다. 2000년대 이후 장편소설 『오래된 정원』 『손님』 『바리데기』 『개밥바라기별』 『강남몽』 『낯익은 세상』 『여울물 소리』 『해질 무렵』 등과 자전 『수인』을 잇달아 펴내고 왕성한 활동을 이어가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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