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리버와 폴의 이야기를 읽던 우리의 친구 D가 얼마 전에 물었다. ‘그런데 이 친구가 퀴어 친구인 걸 글에 썼던가? 읽는 사람들이 ‘남사친’ 이야기로 오해하면 어쩌지?’
나도 잘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올리버가 2015년 수컷 치즈 고양이로 태어났고 쓰레기장에서 나타나 울며 나를 따라오는 바람에 우리 집에 살게 되었다… 라고 쓰는 것과, 내 친구 □□□은 19□□년 지정성별 □□으로 태어난 퀴어 사람이었다고 쓰는 것은 서로 다른 일이니까. 오해해도 어쩔 수가 없다.
2015년 수컷 치즈 고양이로 태어난 올리버가 올리버라는 이름을 얻기 전, 쓰레기장에서 나타나 울며 나를 따라왔을 때, 그래서 이 녀석을 일단 집으로 데려오기는 했지만, 가족이 되어달라고 해야 할지 말지 고민하던 때, 누군가 말했다.
- 키워.
- 왜?
- 퀴어의 삶에 가족은 많을수록 좋잖아.
그래서 나는 올리버와 같이 살기로 했다. 물론 우리 집에는 이미 나이 든 고양이가 있었지만, 미래가 오기 전에 그 고양이의 자연스러운 수명이 끝난다면, 분명 미래를 가득 메우고 있을 외로움이라는 것을 이 느긋한 어린 고양이가 막아줄 수 있을 것 같았다.
나는 외로움을 피하고 미래를 대비하기 위해 올리버를 데려왔고, 얼마 후에는 같은 이유로 폴이 사는 동네로 이사했다. 같은 아파트 단지로 이사할 생각이라고 말하자마자 폴은 크게 기뻐했고, 내가 꼭 알아야 할 것을 열심히 알려주기 시작했다. 역사적일 정도로 오래된 떡볶이 노점이 어디 있는지, 그곳의 떡볶이는 어떤 맛인지, 저녁에 간단히 맥주를 마시려면 어디에 가야 하는지, 풍경이 근사해 추천하는 자전거길은 어디인지, 동네 카페의 뛰어난 메뉴는 무엇이고 선택하지 말아야 하는 메뉴는 무엇인지. 마치 이 모든 걸 나눌 수 있는 이웃을 기다린 것 같았다. 마치 폴이 자신에게 밀려올 외로움의 방패 삼아 나를 얼른 집어든 것 같았다.
이사한 집 베란다에서는 폴의 집 현관문이 보였다. 거울 신호를 보내면 충분히 알아볼 수 있을 각도였다. 만약 실이 충분히 길기만 하다면 방해받지 않고 실 전화를 연결할 수 있을 만큼 가깝기도 했다. 우리는 그런 대안적이고 고전적인 통신 수단들에 대해 계속 농담했지만, 실제로 베란다로 거울을 가져온다거나 연기를 피운다거나 비둘기 다리에 편지를 묶어 보내는 일은 없었다. 그저 그런 일이 가능하다는 사실이 마음에 들었다. 우리는 마치 위기가 임박한 걸 아는 사람들처럼 극단적 상황에서 어떻게 서로에게 소식을 전할 수 있을지 연구했다. 구해 달라는 의미의 모스부호는 무엇인지, · · · - - - · · ·, 잘 익히고 있는지, 만약 말을 할 수 없는 상황이라면 어떤 비밀스러운 암호로 위험을 전할지, 조금 슬픈 것과 극도로 슬픈 것을 어떻게 구분할지, 사라지고 싶은 것과 가만히 있고 싶은 것은 어떻게 다른지. 우리는 하루의 기분을 1부터 10까지의 척도로 표시하는 데 이의가 없었다. 새벽에 잠에서 깨면, 침대에 누운 채로 전화를 걸어 인사도 없이 숫자를 말했다. 1에 가까울수록 위험에 처했다는 뜻이었다. 어서 구하러 가야 했다.
그 당시 우리는 3이나 4정 도면 그럭저럭 하루를 살아갈 수 있었다. 때로 우리 둘 중 하나가 위기에 빠지고는 했다. 하지만 언제나 나머지 한 사람이 좀 더 큰 숫자를 갖고 있었다. 상대방에게 괜찮은 기분을 조금 나누어 줄 수 있었다. 나누어 주는 방법만 알면 되었다. 쉬운 산수였다.
새벽에 폴이 전화한다. 잠긴 목소리로 그저 “1” 이라고만 말한다.
잠에서 깬 나는 곰곰이 생각하다가 말한다. 나는 오늘 3이니까 1을 나눠 주겠다고.
폴은 1만큼 기분이 괜찮아지고, 우리는 둘 다 2가 되어 엇비슷한 기분으로 하루를 시작한다.
우리는 서로의 전화를 반드시 받았다.
안락하다는 기분을 자주 느꼈다. 우리 집은 늘 폴에게 열려 있었고, 폴은 수시로 찾아왔다. 때로 D가 놀러 오기도 했다. 그런 모임이 이루어지면 뭔가 특별한 음식을 먹거나, 나가서 영화를 보거나, 둘이 하던 일을 셋이서 했다. 한밤중에 편의점에 가서 2+1 아이스크림을 샀다. 땅콩집을 짓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가끔 우리는 한 명이 더 있어도 되지 않을까? 땅콩집을 짓는다면? 그런 이야기를 나눴다. 마치 아이가 하나 더 있어도 되지 않을까? 생각하기 시작하는 가족처럼. 우리의 안락함이 한 사람 몫만큼의 외로움을 더 덜어줄 수 있을 것 같은 순간들이 있었다. 울고 있는 고양이를 한 마리 더 주워 와 깨끗이 씻기고 잘 먹여 길렀더니 모두 조금씩 더 든든해져서, 이제는 미래를 맞이해도 되지 않을까 생각했다.
나는 우리가 맞서 싸워야 하는 미래가 좀비 아포칼립스처럼 찾아올 거라고 상상했던 모양이다. 살아남고 연결되기 위한 기술들을 연마하면, 문을 단단히 잠그면, 심신을 단련하면, 서로 사랑하면 감염되지 않을 수 있을 거라고. 아무래도 우리 같은 사람들의 삶에 가족이라는 것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으니까. 또 한 명의 가족을 더 찾아 나서자. 그 사람을 찾아 땅콩집으로, 벙커로 데려오자. 그리고 매일 서로에게 공평하게 숫자를 나눠 주며 엇비슷한 날씨를 만들자.
그러나 미래가 오기 전에, 폴은 거울 신호를 보내지 않았다. 실전화를 끌어당겨 한없이 0에 가까워진 숫자를 불러주지도 않았다. 벽과 문을 · · · - - - · · ·로 두드리지도 않았다. 그는 전화기를 버렸다. 문을 잠갔다. 내가 전화를 반드시 받는다는 걸 기억하고 있었을까? 그래서 아예 전화를 걸지 않았던 걸까? 다른 누구에게 전화했을까? 내게 전화한 건 D였다. 마구 떨리는 목소리로 ‘들었어?’ 물었다. 어떤 전조도 없었는데도 누구의 일인지, 무슨 일인지 알 수 있었다. 나도 마구 떨리는 목소리로 대답했을 것이다. ‘얘기해.’
D와 나는 공식적인 장례식, 비공식적인 추모 모임을 모두 치르고, 그밖에도 둘만 만나 많이 울고, 두려워하고, 화내고, 한탄하고, 폴의 행적을 되짚어보고, 폴을 비난하고, 폴에게 전염되고, 폴이 아직 살아 있는 것이 아닌지 의심하고, 그러다가 이 모든 것이 다 폴이 우리를 엿먹이기 위해 꾸린 거짓말이라고 확신하고, 왜냐하면 폴은 분명히 살아 있을 생각이었기 때문에, 왜냐하면 우리와 땅콩집을 짓기로 했고, 그밖에 이런저런 것을 하려고 애썼고, 얼마 전에도 중요한 날을 위한 액세서리를 진지하게 함께 골랐고, 왜냐하면 곧 죽을 사람은 액세서리 같은 것에는 신경 쓰지 않지 않나? 아니 애초에, 폴은 이미 같은 일에 실패한 적 있지 않나? 그런데 하필 이번에 성공했다고? 역시 너무나 수상한 일 아닌가? 되살릴 방법이 있지 않나… 그런 모임을 여러 번 가진 뒤에, 나와 D는 한동안 서로를 만나지 않았다. 처음에는 폴이 없어진 지금이야말로 우리가 서로를 삶에 단단히 붙어 있도록 꽉 붙잡아야 한다고 생각했고, 나중에는 지금 같은 때에 우리가 서로를 폴이 있는 곳을 향해 끌어내리는 게 아닌가 의심했다. 둘 중 어느 것이 맞는 말이었는지는 아직 모른다. 우리가 다시 폴의 이야기를 할 수 있게 된 것은 아주 나중의 일이다.
그전까지 나는 혼자 남겨진다. 이제 우리의 모임에는 나뿐이다.
나는 고양이들과 소파에 앉아, 열한 개의 화분을 갖다 놓은 빈 벽을 쳐다본다. 함께 보던 TV를 치웠는데도 벽에 자꾸 이야기가 펼쳐진다. 그중 하나는 땅콩집의 풍경이다. 우리가 그곳에 사는 이야기를 너무 많이 했기 때문에, 나는 그 집이 어떻게 생겼으며, 마당에는 무엇이 있는지 다 안다. 우리가 다 같이 키우는 개의 얼굴을 안다. 있지도 않은 집에 너무 많은 걸 갖다 놔 버렸구나. 덕분에 주인 없는 물건들을 구경하며 종일이 지나간다.
어떤 날에는 폴이 그 일에 실패한, 그래서 모든 것이 여전히 안락하고 안전한 생활이, 빨리감기, 빨리감기, 2배속, 4배속으로 흘러가서, 마침내 우리가 충분한 돈을 모아 다 함께 그곳으로 가는, 전동 드릴 하나를 서로 빌려 쓰면서 원하는 삶을 조립하는 미래가 보이기도 한다.
나는 한밤중에 편의점에도 간다. 아이스크림을 계산하던 편의점 주인이 알은체한다.
- 친구들은요?
- 네?
- 자주 같이 다니던 남자 친구들.
이런 물음에는 대답할 이유가 없다. 나는 시간이 흘러 편의점이 자연스레 다른 가게로 바뀌기를 기다린다.
시간은 똑같은 빠르기로 지나간다. 그사이에 충분히 많은 사람들이 죽는다. 늙어서 죽기도 하고, 젊어서 죽기도 한다. 사람만 죽는 건 아니다. 나는 거울 신호를 기다리지 않는다. 대신 지독한 소식을 전하는 순서를 익힌다.
1) 지금 너는 어디에 있고, 어떤 상황이며, 주변에 너를 진정시켜 줄 수 있는 사람이 있니?
2) 만약 네가 안전하지 않다면, 나중에 다시 전화하거나, 메시지를 보내거나, 직접 찾아갈게.
3) 이야기하기 전에, 우선 따라 해 볼래? (그라운딩grounding 기법을 알려 준다)
4) 지금부터 내가 소식을 전할 거야. 놀라지 말고 들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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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섬별
읽고 쓰고 옮긴다. 매일 일기를 쓰고 자주 시를 쓴다. 용감하게 살아가는 일에 관심이 많다. 물루와 올리버라는 치즈 고양이의 식구다. 옮긴 책으로 <페이지보이>, <자미>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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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5.04.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