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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를 믿는 것, 유용한 일일까?

『신뢰의 법칙』 누구를 믿는다는 것, 믿을만한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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집이 낡아 수리를 할 일이 생겼다. 비용이 꽤 드는 데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내 사정을 들은 동네 인테리어업자가 내게 아래와 같이 말한다면 어떤 판단을 하게 될까? (2019. 08.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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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스플래쉬

 

 

집이 낡아 수리를 할 일이 생겼다. 비용이 꽤 드는 데다, 처음 겪는 일이었다. 내 사정을 들은 동네 인테리어업자가 내게 아래와 같이 말한다면 어떤 판단을 하게 될까?

 

“저를 믿고 일을 맡겨 주십시오. 저 신뢰할만한 사람입니다.”

 

1) 저렇게 자신 있게 이야기하니 믿고 맡겨본다.
2) 동네 아는 사람에게 그의 평판을 알아본다.
3) 신뢰할만하다고 본인이 말하는 사람치고 믿을만한 사람 보지 못했다.
4) 시간은 걸리겠지만 다른 동네의 업체라도 몇 군데 더 알아보고 결정을 할 것이다.

 

아마도 본인의 성격과 경험에 따라, 사안의 경중에 따라 접근과 판단은 달라질 것이다. 여기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정말 그 업자가 믿을 만한 사람인지가 아닐까. 신뢰의 문제가 걸린다. 그래서 평판을 알아보고, 다른 곳과 비교를 해보는 것이다. 이런 식으로 하루 중에도 몇 번씩 신뢰와 관련한 의문을 갖는다. 하다못해 밥 한 끼 먹으러 식당에 갈 때 새로 생긴 식당보다는 여러 번 가 본 안정적 퀄리티를 유지하는 가게를 선호하는 이유도 신뢰성이 작동한 결과다. 사람과 사람 사이의 관계도 그렇다. 누가 급히 돈을 빌려 달라고 할 때, 무조건 돈을 빌려주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그 동안의 신뢰 관계에 기반해서 가능한 액수도 바로 판단이 선다. 만일 상대가 꽤 그 관계에 근접한 수준의 액수를 말한다면 쉽게 지갑을 열겠지만, 그것에서 한참 벗어나는 큰 액수라 편차가 크면 결정을 내리기 쉽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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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기적으로 더 큰 이득을 얻을 수 있다

 

우리는 하루에도 여러 번, 인테리어 업자와 같이 처음 보는 사람, 동네 식당과 같이 몇 번 가본 곳, 꽤 오래 알고 지내온 친구의 부탁과 같은 긴 관계에 기반한 것까지 다양한 종류의 신뢰에 대한 검증을 해야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뜻 ‘믿음’이 무엇인지에 대해서는 말하지 못한다. 한 번 깊이 공부를 해서 이해의 폭을 넓힐 필요가 있다. 데이비드 데스테노의  『신뢰의 법칙(The truth about trust)』  은 그런 의도에 딱 부합하는 믿을만한 책이었다. 저자는 미국 노스이스턴 대학에서 사회심리학을 전공하는 학자다. 이 책은 그의 전공인 심리학뿐 아니라 경제학, 사회학, 생리학, 로봇공학 등의 다양한 분야의 최신 학술 이론과 실험을 망라하면서 생존전략으로서 신뢰의 필요성, 진화론적으로 인간이 타인을 믿는게 이득이 되게 설계된 이유, 발달과정에 신뢰가 형성되는 과정, 사랑과 관계에서 신뢰가 작동하는 원리 등을 설명한다.

 

저자는 인간이 신뢰를 선호하는 가장 큰 이유는 ‘평균적으로 사람을 믿으면 장기적으로 더 큰 이득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다. 장기적으로 사람을 믿고 맡기는 상호작용이 잘못된 신뢰로 생길 수 있는 잠재적이고 개별적 손실보다 더 큰 이득을 준다고 오랜 기간 경험적으로 습득을 해온 것이다. 그런데 신뢰를 위해 주고받는 것들, 상대에 대한 검증은 시간차를 두고 일어난다는 것이 신뢰의 딜레마다. 상대를 믿고 뭔가를 주면 바로 상대가 내게 보답으로 이득을 주는 것이 아니라, 내가 믿고 도우면 언젠가 도와줄 것이라는 믿음을 내가 간직할 뿐이다. 결국 보상이 일어날 때 비로소 판단이 맞았다는 것을 확인할 수 있다.

 

신뢰란 이렇게 불확실성의 위험을 감수해야만 형성되는 행위다. 이런 본질적 위험도를 감수하고도 신뢰 행위를 하는 이유는 그만큼 장기적으로 이득이 되고, 혼자서만 살아가기에는 어려움이 많은 것이 이 세상이기 때문이다. 그래서 신뢰감은 장기적 이익보다 단기적 이익을 선호하고 싶은 욕망을 억누르도록 설계되어있다. 의식의 수면아래에서 장기적 이득을 더 소중하게 여기게 하고 살짝 희생을 한다 해도 일단은 받아들이도록 동기를 부여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상대가 양해를 하고, 희생을 한 것을 보면 더 큰 신뢰감을 거꾸로 느끼기도 한다.

 

 

맞대응 전략을 만들자

 

믿음과 배신의 측면에서, 기대와 보답의 측면에서 가장 효과적인 전략은 무엇일까? 게임 이론에서 검증된 바에 따르면 반복적 게임에서 가장 효율적인 전략은 ‘맞대응 전략(tit-for-tat)’이다. 처음에는 신뢰에 기반해 호의적으로 반응을 하며 배신하지 않는다. 그런데 상대가 신뢰할 수 없는 행동(배신)을 하면 바로 적극적으로 같은 방식으로 대응을 하는 것이다. 그것이 전체 승률을 보면 가장 효율적이었다. ‘네가 공정하면, 나도 공정하게, 네가 배신을 하면 나도 배신을 할 거야’ 여기에 반대도 가능하다. 상대가 다시 공정하게 나오면, 나도 공정하게 대응하면 되는 것이다. 이는 소극적으로 보이는 전략이지만, 반복적 게임에서 전체 승률은 가장 나았다. 문제는 실제 인간 세상은 ‘실수’의 영역이 불가피하게 존재한다는 것이다. 상대가 실수로 한 행동을 ‘배반’으로 인식하고 맞대응을 바로 하고, 상대도 적극적 맞대응을 하면 결국 둘 다 망하는 공멸의 위험이 발생한다.

 

그래서 이후의 연구자들은 ‘실수’의 가능성을 시스템에 넣어서 새로운 전략을 개발했다. 이런 실수를 유연하게 받아들이고 이후에 맞대응을 하는 ‘관대한 맞대응’ 전략을 만들자, 이것이 ‘적극적 맞대응’보다 나은 결과를 가져왔다. 실제 인간사회에서 발생할 실수라는 잡음을 극복하는 기능을 한 것이다. 즉, 한 두 번까지 상대가 이기적 선택을 하는 것, 혹은 배반을 하는 것은 받아들이지만, 그걸 넘어서면 이때부터는 전략을 바꿔서 맞대응을 하자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우리도 이미 하고 있다. 친구가 부탁을 해서 들어주고 보답을 전혀 하지 않으면 두 번 정도까지는 그런가 보다 하고 넘어가지만, 3번 이상 반복된다면 신뢰에 대한 근본적 의문을 갖게 되고, 이후로는 상대를 대하는 관계의 기본 태도에 수정을 갖게 된다. 즉 그 친구는 나를 호구로 보고 있다는 판단을 하고, 거리를 두고 부탁을 들어주지 않고, 분명하고 즉각적인 거래만 하겠다는 의사를 보이는 것이다.

 

그러면 어떤 사람들이 쉽게 신뢰를 저버리고 배신을 할까? 타고난 성격이 존재하는 것일까? 이런 물음에 대해서 저자는 재미있는 몇 개의 실험을 소개한다. 캘리포니아대학 폴 피프 등이 한 연구인데 샌프란시스코의 사거리에서 횡단보도에서 길을 건너는 사람이 있을 때 그가 건널 수 있도록 차를 멈추는지, 아니면 속도를 높여서 지나쳐버려 자기 갈 길을 더 빨리 가는 이득을 취하는지를 관찰했다. 그러면서 차의 종류를 5가지로 나눴는데, 가장 위에는 페라리를 가장 낮은 5분위로 현대차를 놓았다. (현대차 의문의 1패) 관찰 결과 부자로 추정되는 페라리를 모는 사람은 50%가 법규를 어기고 횡단보도를 패스해서 자신의 이익을 앞세웠고, 5분위의 현대차를 포함한 저렴한 차를 모는 사람은 모두 차량을 멈췄다.

 

그러면, 이런 의문이 다시 생긴다. 원래 이기적인 사람들이라 부자가 된 것이라, 그들은 타인의 신뢰를 저버리기 일쑤라고. 여기에 대해서 하버드비즈니스스쿨의 프란체스코 지노의 연구를 소개한다. 눈앞에 돈을 쌓아놓고 문제를 풀게 한 후, 맞힌 만큼의 상금을 가져가는 게임을 하는 실험을 했다. 이때 수천 달러의 돈이 테이블 위에 놓은 그룹이 철자 맞추기 게임을 하는데 속임수를 더 많이 썼다. 즉, 돈이 눈앞에 보이면 그 사람의 평소 성향과 관계없이 신뢰를 저버릴 행위를 하는 것이지, 타고난 성격이 아닌 것이었다. 바로 이득을 얻을 수 있고, 눈 앞에 바로 쓸 수 있는 자원이 풍부하다면 굳이 미래의 불확실한 보답을 기대하면 신뢰에 기반한 판단을 할 필요가 없다고 판단하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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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뢰는 유용하고, 강력한 생존의 방식

 

이에 대해서 저자는 사회경제적 계층이 높은 것을 ‘자원이 풍부한 상황’으로 설명한다. 신뢰는 역동적인 개념으로 지속적으로 갱신이 되면서 사람의 판단에 영향을 미치는데, 자신이 갖고 있는 자원이 충분하다고 여겨지면 굳이 타인의 입장을 이해할 필요가 없다. 또 서로 지켜야할 도덕을 위해, 내 이익을 뒤로 미룰 필요도 없다고 생각한다. 신뢰라는 것은 기본적으로 ‘내가 언젠가는 상대의 도움이 필요할 것’이라는 전제를 깔고 있는 것인데 내 자원이 충분하다고 느낄수록 그럴 필요성은 거꾸로 줄어들기 때문이다. 모든 상황을 나 혼자 다 처리할 수 있다면 굳이 ‘신뢰를 바탕으로 한 거래’를 할 필요가 없는 것이다. 이는 타고난 성격이 아니라, 자신이 있는 곳에서 주변 사람과 비교할 때 상대적 지위에 기반한 판단이라고 저자는 설명한다. 저소득층이 사는 동네에서 건물을 임대하고 있는 조금 더 돈이 많은 사람이거나, 커뮤니티의 권력을 쥐고 있다면 더 이기적인 행동을 하고 신뢰를 저버릴 가능성이 높다. 이는 상황적 변수인 것이다. 그래서 순간적 권력의 지위도 규범 위반에 대해서 타인에게는 엄격하고, 자신에게는 관대한 판단을 하는 것도 관찰되었다.

 

이 책은 이와 같이 우리가 대략 짐작하고 있는 신뢰의 특징에 대해서 풍부한 실험과 이론적 토대를 바탕으로 설명한다. 신뢰란 성격과 같이 굳어진 것이 아니라, 역동적이고 상호의존적인 관계 안에서 변화무쌍한 것이라는 걸 알 수 있었다. 저자는 6가지 신뢰 법칙을 제시하는데, 신뢰는 어느 정도 위험을 감수하는 면이 있지만, 필수적이고 유용하고, 강력한 생존의 방식이라는 것이다.

 

신뢰는 꼭 계약을 할 때뿐 아니라 우리 삶 여기저기에 스며들어 있다. 직관에 주목하고, 평판이 아닌 동기를 살피고, 신뢰의 원칙을 받아들이며 다른 사람에 대한 공감을 높이는 방법을 갖기 위해 노력을 하라고 조언하고 있다. 신뢰에 깊은 이해를 하는데 꽤 신뢰할 만한 책이었다. 
 


 

 

신뢰의 법칙데이비드 데스테노 저/박세연 역 | 웅진지식하우스
신뢰성’이란 우리가 흔히 생각하는 것과 달리 선악의 문제가 아니라고 주장한다. 나아가 일관적으로 신뢰할 만한 사람이란 애초에 존재하지 않는다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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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하지현(정신과 전문의)

어릴 때부터 무엇이든 읽는 것을 좋아했다. 덕분에 지금은 독서가인지 애장가인지 정체성이 모호해져버린 정신과 의사. 건국대 의대에서 치료하고, 가르치고, 글을 쓰며 지내고 있다. 쓴 책으로는 '심야치유식당', '도시심리학', '소통과 공감'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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