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종진과 전태관의 팀 '봄여름가을겨울'은 처음으로 재즈 록을 가요에 이식하려 했고 연주곡으로 가요 영토의 확장을 꾀했던, 문화다양성의 실천주의자였다. 당시론 제작하기 까다로운 라이브 앨범에도 덤벼들었다. 그들의 이력 30년은 '실험과 돌파'였다. 드러머 전태관의 암투병소식을 전하면서도 그들은 끊임없이 젊은 세대와 소통하며 음악에 헌신했다. 고 전태관의 명복을 빌며 SSAW의 사시사철 명작 10곡을 뽑았다. (임진모)
헤어지긴 정말로 싫어 (1988)
봄을 청각화한 연주곡 '항상 기뻐하는 사람들'에 이은 두 번째 곡이다. 잔향을 머금은 신시사이저와 블루지한 일렉트릭 기타 선율이 봄의 새로움과 겨울의 끝, 즉 한 해의 종착에서 오는 아쉬움을 동시에 포착한다. 정규 1집 < 봄여름가을겨울 > 그중에서도 첫 시작을 밝고 긍정적인 기조로만 채우기보단 한 걸음 뒤에서 관망하고 관조한, 삶의 양가적 모습을 들려주는 이 트랙은 먼저 떠난 전태관과 밴드 봄여름가을겨울의 위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곡이 아닐까? “떠날 때는 아쉬움이, 보낼 때는 허전함이 남아” 당분간 놓지 못할 가사다. (박수진)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1988)
사람들은 모두 변한다. 변하지 않는 것들은 그래서 더욱 소중하다. 회한 가득한 목소리로 '변한 우리'를 가만히 곱씹으며 봄여름가을겨울은 노래한다. “사람들은 모두 변하나봐 / 너도나도 변했으니까.” 변해 본 사람만이 말할 수 있는 변치 않음의 소중함. 봄여름가을겨울이 우리에게 선물해준 건 그런 위안이었다. 우리는 이 노래와 함께 쓸쓸해했고, 이 노래와 함께 이겨냈다. 참 고맙고 따뜻한 사람. 변하지 않는 그곳에서 변함없이 행복하길.(조해람)
보고 싶은 친구 (1988)
정규 1집은 사계절을 특징으로 잡아 서술된다. 그중에서도 '보고 싶은 친구'는 어딘가 서글프고 향수 어린 선율만치나 가을을 담당한다. 담백한 피아노 반주 위로 재지한 베이스가 더해지며 확장되는 이 곡은 결성 당시 잠시나마 함께했던 故 유재하를 그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세대가 갈라선 요즘 대중음악 신에서, 혹은 퓨전 재즈가 완전히 자리 잡지 못했던 당대에 그룹이 뿌리내릴 수 있었던 건 바로 이 이유 때문이라고 생각한다. 누구의 감정이라도 사로잡을 수 있는 서정성과 곁을 내어주고 기대게 되는 노랫말. 더는 그들을 듀오로 만날 수 없지만, 음악은 계속 남아 기억될 터이다. 이 곡이 가진 생명력과 에너지처럼 말이다. (박수진)
어떤 이의 꿈 (1989)
따스한 미소를 지으며 '어떤 이의 꿈'을 연주하는 전태관의 모습은 누군가의 꿈이었으리라. 밴드의 이름을 널리 알린 '어떤 이의 꿈'은 현재까지도 끊임없이 리메이크되는 명곡. 섹시한 펑크(funk) 리듬, 김종진의 보컬이 뿜어내는 카리스마 등 곡의 이모저모가 모두 멋지지만 특히 귀에 강렬히 박히는 건 전태관의 드럼이다. 기본적이고 쉬운 리듬에 기반한 그의 연주는 드럼을 시작한 이들에게 한 번쯤 거쳐 가야만 하는 필수 코스가 되었다. 비록 그는 세상을 떠났지만, 누군가의 손에 드럼 스틱을 쥐여 주는 어떤 이로 영원히 살아갈 것이다. (이택용)
쓸쓸한 오후 (1989)
항상 듣던 음악도 기분에 따라 매번 달라진다. 지금처럼 말이다. 다시 찾아 듣는 '쓸쓸한 오후'는 쓸쓸하다 못해 우울함이 넘쳐흐른다. 전주부터 구슬픈 트럼펫과 애잔한 기타 연주가 흐르더니 이내 담담한 목소리가 퍼진다. 귀에 들려오는 음악을 따라 우리 곁을 떠나간 그의 뒷모습을 떠올려본다. '지금은 텅 빈 마음과 / 슬픈 추억들 고독만 남았네'라는 가사가 진하게 다가온다. (임동엽)
내 품에 안기어 (1989)
밴드 같지 않게 참 신사답고 젠틀한 팀이라 생각했다. 유쾌하고 희망적인 노래 'Bravo, My Life!'의 영향도 있었지만 두 사람의 인자한 인상, 특히 드러머의 무뚝뚝함과 먼 전태관의 선한 웃음이 기억난다. '내 품의 안기어'는 봄여름가을겨울의 부드럽고 감성적인 면이 담긴 발라드이자 느릿한 리듬 속에서도 전태관의 연주를 명확히 들을 수 있다. 후렴이 아닌 비가 오는 날이면 창밖을 바라보며 행여 내 님 오실까 이 도입부를 더 좋아한다. (정유나)
1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 (1992)
어렴풋하게 기억나는 10년 전 일기를 펼쳐본다는 건 참 설레는 일이다. 전태관의 드럼 연주를 들을 때도 그렇다. 은은히 퍼지는 신시사이저를 드럼으로 섬세히 감쌀 때면 음악을 대하는 상냥함이 묻어 나온다. 세상은 그리 어둡지 않고, 어제의 힘든 일은 모두 지나갈 뿐이라 말하는 낙천적 외침은 그의 미소와 닮아있다. 미국으로 직접 나가 공들여 작업한 앨범에 수록된 '10년 전의 일기를 꺼내어'는 특유의 소박한 온기로 많은 이의 마음을 지금도 위로해주고 있다. 기뻐하며 사는 삶이 무엇인지를 알게 해 준 그에게 이 곡을 부친다. (정효범)
안녕, 또 다른 안녕 (1992)
30년이 넘도록 한국 음악의 한 축을 묵묵히 떠받쳐 왔다. 봄여름가을겨울의 두 멤버는 가족이나 다름없는 평생의 동지다. 남은 이의 크나큰 슬픔 앞에 감히 어떤 말도 놓을 수 없는 이유다. 다만 오래전 가없는 쓸쓸함을 들려준 어느 노래의 한 구절을 떠올려본다. “헤어져도 소중하니까.” 김종진에게 더없이 소중했던 친구 전태관. 우리에게도 그는 '헤어져도 소중한 사람'으로 영원히 기억될 것이다.(조해람)
그대를 위하여 (1992)
'친구라는 이름이 너무 거창하기 때문에
나는 그대에게 그저 평범한 한 사람으로 남고 싶어'
봄여름가을겨울의 실험이 절정에 달했던 네 번째 정규 앨범 < I Photograph To Remember >의 수록곡이다. 7분에 달하는 재즈 넘버로, '노래여 퍼져라'나 '영원에 대하여'만큼의 인기를 얻은 곡은 아니었다. 이 곡을 선정한 이유는 유려한 색소폰 연주나 비유로 가득한 가사 때문이 아니다. 소중한 친구를 떠나보낸 한 남자가 '소중한 그대여 다시 내게로 돌아와 / ... / 영원한 축복 함께 하기를'이라 노래하는 장면이 그려졌고, 많이 서글펐던 탓이었다. (김도헌)
Bravo, my life (2002)
학창 시절 내 담임 선생님은 항상 조례시간에 '브라보 마이 라이프'를 틀어놓으셨다.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밴드의 가장 좋아하는 노래라며. 짧지 않은 시간을 달려왔고, 또 앞으로 달려야 할 우리를 위해 기꺼이 말씀을 아끼시고 노래로 그 마음을 대신하곤 하셨다. 드러머 전태관. 그는 30년의 마라톤을 완주했다. 그리고 그의 바통은 이제 다른 누군가에게 전해질 것이다. 삶의 굴곡이 담긴 거친 손으로 등을 떠밀어준 그 덕분에 나 또한 이 긴 여로에 오를 용기를 얻었으므로. 전태관은 그렇게 새로운 시작을 남기고 자신의 여정을 마쳤다. (정연경)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