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웹소설 특집] 웹소설은 왜 잘나가나
PC통신 게시판을 통해 연재했던 인터넷 소설이 웹소설이란 이름으로 시장을 장악하면서 한국의 장르 문학이 웹에서 꽃을 피워냈다.
글ㆍ사진 강상준(대중문화 칼럼니스트)
2018.0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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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에서 장르 문학의 입지는 늘 취약했다. 특히나 우리나라에서는 장르 문학이나 장르 소설이라는 용어를 대개 순문학과 구분하기 위해 사용한 탓에 장르 문학이라고 하면 어쩐지 순문학보다는 작품성이 떨어진다는 인식마저 강한 편이다. 그러나 한국 사회의 거의 모든 것이 인터넷 등장 이후 새로이 정립됐듯, 늘 뒷전에 머물던 장르 문학 역시 웹을 통해 그 위상을 다시 세우는 데 성공했다. 1990년대 중반 PC통신 게시판을 통해 연재됐던 인터넷 소설은 현재에 이르러 ‘웹소설’이란 이름으로 시장을 장악하면서 한국의 장르 문학은 마침내 웹에서 꽃을 피워낸 것이다.


이영도의 판타지 소설 <드래곤 라자>나 이우혁의 오컬트 판타지 <퇴마록>은 하이텔, 천리안 같은 PC통신 시대를 대표하는 작품이다. 각종 인터넷 용어는 물론이고 이모티콘을 사용하는 데도 주저하지 않았던 귀여니의 로맨스 소설이 십대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것도 바로 이때다. 이후 판타지와 로맨스 장르는 온라인을 발판 삼아 기존 출판 산업에까지 영향을 끼치는 새로운 허브로 발전했다. 하지만 딱 거기까지였다. 좋은 작가를 뒷받침하고 동시에 지속적으로 새로운 작가를 발굴하는 시스템을 만드는 데는 실패했기 때문이다. 기업은 확신을 갖지 못해 투자에 주저했고, 출판사 역시 이를 한때의 유행 정도로 치부하면서 각광의 시기는 그리 오래가지 못했다.


상황이 반전된 것은 또 다른 플랫폼인 모바일 매체의 등장에 기인한다. 단지 모바일로 환경을 바꾼 것만으로도 웹소설은 PC통신 시대부터 이어진 기존 온라인 소설과는 분명한 선을 그었다. 모바일 등장 이후 웹소설은 장소에 구애받지 않은 채 짧은 시간에 가볍게 즐길 수 있는 문화로 급부상했다. 웹소설은 소위 ‘스낵 컬처’의 특성을 앞세워 시장을 빠르게 재편한 것이다. 웹소설의 대표 플랫폼으로는 ‘조아라’, ‘문피아’, ‘북팔’ 등이 있다. 여기에 ‘네이버 웹소설’과 ‘카카오페이지’가 가세하면서 시장의 성장은 더욱 가속화했다. 2013년 100억 원 규모였던 시장은 2014년 199억 원, 2015년 597억 원, 2016년에는 991억 원으로 매년 배로 성장해 3년 사이 10배 가까운 성장을 이뤄냈다(현재는 약 2,000억 원 규모로 추산된다). 특히나 같은 스낵 컬처로 분류되는 웹툰은 여전히 무료라는 인식이 강한 데 반해 웹소설은 한 회당 보통 100원 정도의 소액을 유료 결제하여 읽는 것이 보편화되어 과금에 대한 거부감도 적은 편이다. 여전히 시장 확장에 대한 낙관이 계속되는 이유다.


경제적 성장은 작품의 양적 성장으로도 이어졌다. 2016년 웹소설 플랫폼의 평균 서비스 종수는 82,322종으로, 종이책 출판사의 신간 발행 평균 종수가 20.2종인 것과 비교하면 압도적으로 많은 작품이 웹소설이란 이름으로 공급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여기에 또 다른 장르 문학인 라이트노벨이 십대 독자 대상의 종이책 시장에서 의미 있는 성장을 보이고, 일본 작품 위주였던 기존 시장에 한국 작가들이 어깨를 견주게 되면서 출판 시장에도 새로운 축이 형성됐다. 바야흐로 한국에도 장르 문학의 탄탄한 토대가 마련된 것이다.


모바일로 날개를 단 웹소설은 젊은 독자들에게 소구할 만한 요소를 잔뜩 갖추고 있다. 인터넷 시대에 이르러 창작자와 소비자의 경계가 희미해졌듯, 웹소설 역시 해당 장르의 열렬한 독자가 어느 순간 자신의 작품을 창작하게 되는 경우가 많다. 장르 애호가가 직접 소설을 쓰게 되면서 자연히 작가와 독자와의 거리는 대폭 줄어들었다. 또 실시간으로 반응이 오가기 때문에 독자의 의견이 작품에 반영되는 경우도 많다. 언제 어디서든 짬을 내서 빠르게 읽기 편하도록 문장은 짧고, 주요 캐릭터는 독자들이 쉽게 이해할 만한 전형성을 갖추고 있다. 라이트노벨처럼 일러스트를 통해 캐릭터의 이미지를 보여주는 방식은 작품에 더더욱 강한 인상을 심는다. 더욱이 최근에는 대사 옆에 해당 인물의 캐리커처를 심는 경우도 많아졌다. 무엇보다 연재 방식이지만 매 화가 기승전결을 갖추는 것이 보편적이다. 또 모든 연속극과 마찬가지로 독자들의 호기심을 유발해 다음을 기약하는 방식 역시 독자들을 계속해서 끌어들이는 요인 중 하나다.


현재 웹소설에서 가장 강세를 보이는 장르는 로맨스다. 국내 문화예술 시장에서 여성 소비자의 비율이 높은 것과 마찬가지로 웹소설 독자 중에도 여성 독자의 비율은 상당하다. 자연히 웹소설에서도 여성들이 선호하는 로맨스 장르가 선전 중이다. 한국출판문화산업진흥원에서 조사한 플랫폼 내 인기 장르에 대한 조사 결과에서도 1순위에 대한 응답으로는 로맨스가 56.3%로 가장 높고, 다음으로는 판타지가 25%로 1위 로맨스와는 큰 격차를 보인다. 실제로 네이버 웹소설에서 로맨스 장르가 차지하는 비율은 70% 이상이며, 조아라 역시 로맨스를 중심으로 성장해 현재는 판타지 장르에서도 성과를 내는 추세다. 반면 판타지와 무협 장르를 주력으로 삼던 문피아는 더더욱 남성 지향 웹소설 플랫폼으로 특화된 모양새다.


최근에는 웹소설의 주력 장르인 로맨스와 판타지가 점점 더 장르의 경계를 활발히 넘어서는 추세이기도 하다. 예컨대 현대인이 특정 시대로 회귀하는 이른바 ‘회귀물’이 모든 장르를 막론하고 활발히 창작되고 있는가 하면, 판타지 세계를 모험물이 아닌 남녀 간의 애정을 중심에 둔 로맨스 판타지 장르도 큰 인기를 얻고 있다. 팩션이나 각종 판타지 요소 역시 일반화되어 정통 판타지 장르보다는 현대 도시를 무대로 한 어번 판타지나 현대인이 이세계로 소환된 후의 이야기를 다룬 판타지 작품도 많다. 라이트노벨의 경우 레벨이나 마력 같은 수치를 체계화한 게임 판타지가 장르를 선도 중이다.


웹소설은 이제 한때의 유행으로 치부할 수 없을 만큼 거대한 시장으로 발전했다. 인기작이 종이책으로 출간되거나 드라마나 영화로 제작되는 것도 결코 낯선 광경이 아니다. 물론 가파르게 성장한 만큼 여전히 시스템의 불안정성을 경고하는 이도 적지 않다. 스낵 컬처의 선두 주자답게 많은 사람이 쉽고 재미있게 읽을 수 있는 소설인 만큼 이제 양은 물론 맛도 매년 성장하는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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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상준(대중문화 칼럼니스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