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금주의 책] 당장은 벗어나기 어렵더라도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라는 질문 아래 답을 조금 더 써 본다.
글ㆍ사진 이금주(서점 직원)
2018.06.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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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어린이날, 세 살 아이와 함께 어린이대공원을 찾았다. 목말을 태워 곰과 코끼리를 보여주고, 풍선도 하나 쥐어주고, 손잡고 같이 콩콩콩 걷고 싶었다. 그런데 현실은 주차만 1시간. 꽤 일찍 나섰는데도 500m 앞부터 자동차들이 길게 줄섰다. 50m 줄어드는데 10분 넘게 소요. 2시간 기다려야 한다는 계산에 아득해지며 일단 아이를 할아버지, 할머니, 엄마와 함께 내려주었다. 그리고 생각했다. 지금이라도 빠져서 다른 곳을 찾아야 하는 건 아닐까.

 

줄을 벗어나는 건 두려웠다. 섣불리 벗어났다가 주차할 곳을 찾지 못할 수 있으니 시간이 걸려도 기다리는 게 안전했다. 적어도 이 길 끝엔 주차장이 있는 게 확실하니까. 그렇게 기다리다가 나 없이 신났을 아이가 떠올랐다. 순간 핸들을 꺾고 주변 도로를 뒤졌다. 10여 분의 노력 끝에 주차장 발견. 차를 대고 합류했지만 아이는 이미 피카츄 풍선을 들고 있었고, 동물도 꽤 본 뒤였다. 무엇보다 생애 첫 아이스크림 먹는 장면을 놓쳤다.

 

경로를 못 벗어나 소중한 걸 잃는 건 사실 익숙하다. 출퇴근과 점심시간을 포함해 회사에 매인 시간이 하루 12시간. 하루의 절반, 깨어있는 시간의 70% 가량을 이렇게 쓰면 포기하는 것들이 당연히 많다. 다른 삶을 꿈꾸면서도, 여기서 풍족한 삶이 약속되진 않는데도, 끝내 두려움과 망설임을 넘어서지 못한다. 다만 늘 한쪽 귀는 열어둔다. 자발적으로 ‘경로 이탈’한 이들의 이야기를 향하여. 최근에 만난 귀한 책은 임승수 작가의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와 명인 작가의 『회사를 해고하다』 다.

 

『나는 행복한 불량품입니다』 는 ‘경로 이탈’의 손익에 대해 계산기 두드리듯 합리적으로 따져본다. “직업이란 돈을 벌기 위해 시간을 갖다 바치는 것”이라며 직장인이 포기하는 시간을 셈하고, 『원숭이도 이해하는 자본론』의 저자답게 갖다 바친 시간의 대가를 온전히 받을 수도 없음을 ‘원숭이도 알아 먹게’ 증명한다 “생의 마지막에 후회하는 것은 못 번 돈이 아니라 못 살아본 시간”이라며 “1만원보다 1시간이 중요하다”고 설파하고, “당신이 사는 시간이 당신 자신”이라 말한다. ‘시간 부자’인 작가 자신의 유쾌한 에피소드가 무한정 곁들여지는데, 돈보다 시간이 행복해 가깝다는 강력한 근거가 된다. 설득력 있는 책이다.

 

『회사를 해고하다』 는 직장과 학교를 때려치우고 서울에서 고흥으로 이주한 가족 이야기다. 떠나온 삶의 힘겨움과 새로운 삶의 충만함을 대조하지도, ‘생태주의’의 신념이나 ‘시골살이’의 로망으로 채색되지도 않았다. 도시의 자리에서 농촌을 바라보고, 농촌의 자리에서 도시를 바라보며 어느 자리에서든 간단치 않은 삶을 그려간다. 삶이란 옷을 벗듯 쏙 빠져나올 수 있는 게 아니고, 이 삶과(농촌) 저 삶이(도시) 무 자르듯 나눠지지도 않으며, 그저 어느 자리에서든 서로를 바라보고 길고 진중한 노력을 한 끝에야 우리의 삶이 새로워질 수 있지 않을까란 생각을 전한다. “농민들의 삶에 무지하고 무관심한 도시사람들에게 자주 화가 나지만, 도시노동자들의 삶에 대해 함부로 말하는 생태주의자들에게도 화가 날 때가 많다”고 말하는 이유다.

 

결이 다른 두 책을 읽으며 “이렇게 살아도 되는 걸까”라는 질문 아래 답을 조금 더 써 본다. 아마 조금 더 명쾌하면서도 진중해진 생각을. 당장은 벗어나기 어렵더라도 답은 준비할 필요가 있다. 세상의 복잡한 얽힘과 간단치 않은 삶을 염두하면서.

 

 

 


더 읽는다면…

 

월든
헨리 데이비드 소로우 저 | 열림원

『월든』 은 근대문명을 벗어나는 방면으로 선구적인 책이자 잘 알려진 베스트셀러. 문명사회를 벗어나 외딴 숲 속 호숫가에서 오두막을 짓고 살았던 소로의 경험에서 탄생했다. 소로가 숲 숲의 은거자로만 남지 않고 다시 세상과 얽히며 자신의 생각을 펼쳐간 것도 주목할 부분.

 

 

 

 

 

 

 

 

스토너
존 윌리엄스 저 | 알에이치코리아

세속의 기준을 따르지 않고, 자신만의 길을 걷는 한 남자의 삶이 감동적이다. 화려하지 않고, 대단할 것 없어도, 스스로의 길을 묵묵히 가는 모습만으로 아름답다.

 

 

 

 

 

 

 

 

 


일상기술 연구소
제현주, 금정연 저 | 어크로스

"삶의 질서를 완전히 바꾸어놓을 모험이 가능하지 않을 때. 우리가 기댈 수 있는 유일한 해법은 '오늘 하루를 잘 사는 기술'일지 모른다"란 말에 동의한다. 크게 바꾸기 힘들 때, 작게 바꾸는 기술을 전수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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