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주 출신 싱어송라이터 시아(Sia)는 독특한 개성으로 2010년대에 들면서부터 최고의 전성기를 누리고 있다. RCA에서 애틀란틱(Atlantic)으로 레이블을 옮기며 발표하는 첫 앨범이자 그의 첫 번째 크리스마스 앨범인
음반 타이틀과 동명인 「Everyday is Christmas」가 대표적이다. “그대 곁이라면 날마다 크리스마스”라는 가사와 달리, 음악은 마냥 달콤하지 않다. 마치 그가 리아나(Rihanna)에게 선사했던 「Diamonds」처럼 아름다운 러브 스토리를 비장한 음악에 담았다. 강렬한 전개, 금세 귓가에 맺히는 후렴이 과연 시아답다. “당신과 나, 여기 겨우살이 아래서”를 노래하는 「Underneath the mistletoe」 역시 비슷한 모양새다. 특유의 서정적 멜로디에 첼레스타, 글로켄슈필 등의 악기로 성탄의 색을 강조하며 남다른 캐럴을 만들었다. 기존의 시아 음악을 사랑했던 팬이라면 두 팔을 벌려 환영할 스타일이다.
노래 속 독특한 내러티브도 눈에 띈다. 소재 선정과 스토리 구성에 탁월한 그는 겨울과 크리스마스 풍경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것들로 아기자기한 동화를 꾸렸다. 「Snowman」, 「Snowflake」에는 각각 눈사람과 눈송이가 사라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을 앙증맞은 표현으로 그렸고, 「Underneath the Christmas lights」에선 “울고 있는 유령들을 위해 선물을 포장해요, 죽기 전까지 행복은 우리 것이니까요.”라며 발상의 전환을 내보인다. 흔한 얘깃거리를 그만의 시선으로 풀어내는 재능은 여기서도 빛을 발한다. 사람은 물론 개(「Puppies are forever」)와 눈사람, 심지어 유령까지 세심하게 챙기는 이러한 이야기는 보통의 시즌 앨범에선 좀처럼 찾기 힘든 것임이 분명하다.
음반의 성취에는 빼어난 가창도 한몫을 한다. 유니크한 음색과 창법, 너른 음역과 안정적인 발성으로 정평이 나 있는 그는 노래에 어울리는 해석으로 완성도를 높였다. 「Santa’s coming for us」와 「Candy cane lane」, 「Puppies are forever」와 「Ho ho ho」 같은 곡에선 통통 튀는 캐릭터를 부각했고, 「Snowflake」와 「Sunshine」 등의 발라드에선 섬세한 표현력을 내세웠다. 「Snowman」에서의 숨 조절, 「Underneath the Christmas lights」의 단단한 팔세토는 감탄스러울 정도다. 명암이 공존하는 보이스 컬러와 흉내 낼 수 없는 테크닉이 듣는 이를 빨아들이는 「Underneath the mistletoe」와 「Everyday is Christmas」는 그 정점이다.
매해 연말이 다가오면 수십, 수백 장의 캐럴 앨범이 쏟아진다. 그중 단발성 기획을 넘어 고전의 반열에 오르는 작품은 극소수다. 대부분이 그저 그런 리메이크, 뻔한 클리셰에서 벗어나지 못하기 때문이다. 본 앨범은 그러한 맹점의 정반대에 위치한다. 캐럴이라면 마땅히 가져야 할 요건들을 모두 갖춘 동시에 몹시 독창적이다. 오리지널 신곡만으로 앨범을 구성하면서도 잘 들리는 멜로디와 색다른 스토리텔링, 뛰어난 보컬 퍼포먼스를 놓치지 않은 것이 포인트다. 시아의 디스코그래피 사상 첫 시즌 앨범이라는 의미를 차치하고 작품성만을 고려해도 기념비적인 앨범이다.
정민재(minjaej92@gmail.com)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