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뮤지컬] <라이카> 한이박 트리오가 말하는 '인간다움'
최승연 평론가가 뮤지컬 <라이카> 한정석 작가, 김유철 프로듀서와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글 : 최승연 (뮤지컬 평론가) 사진 : 라이브러리컴퍼니
2025.03.3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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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신님이 보고 계셔>(2013), <레드북>(2018), <쇼맨>(2022)으로 명확한 작품 세계를 구축해 온 한이박 트리오가 신작 <라이카>(2025, 라이브러리컴퍼니)로 돌아왔다. 뮤지컬 <라이카>는 포스트 휴먼과 기후 위기 담론을 거점으로 ‘인간다움’이란 무엇인지 질문하는 작품이다. 냉전 시대 소련의 우주 개발을 이끌었던 인공위성 스푸트니크 신화와 앙투안 드 생텍쥐페리의 『어린왕자』(1943)를 결합한 <라이카>는 캐롤라인이 죄책감에 시달리다 꾸는 ‘꿈’을 그린다. 다큐멘터리와 판타지가 결합된 방식이다.

 

캐롤라인은 모스크바 항공의학연구소 소속 우주견 보조 관리인으로서, 실험체로 사용된 라이카의 비극을 눈앞에서 겪으면서도 막지 못한다. 1957년 10월 무인선이었던 스푸트니크 1호 발사에 성공한 이후 살아 있는 생명체(개)를 탑승시켜 한 달 만에 2호를 발사시킨 소련의 국가 프로젝트가 너무나 강력했던 탓이다. 예상할 수 있듯, 당시 기술로 라이카의 귀환은 불가능했다. 하지만 캐롤라인은 자신이 가장 좋아하는 책 『어린 왕자』를 자주 읽어줄 정도로 라이카와 특별한 애정을 나누었기 때문에, 라이카가 우주 어딘가에서 좋은 친구들과 함께 잘 지내기를 바란다. 그러니까 캐롤라인의 꿈은 인간의 죄책감과 희망이 뒤섞인 소박하지만 거대한 판타지라 할 수 있다.

 

작품이 동시대에 중요한 화두를 던지고 있는 만큼 제작 과정에 대한 보다 깊은 이해가 필요하다고 판단되어 <라이카> 제작을 선두에서 이끈 라이브러리컴퍼니 김유철 본부장과 한정석 작가를 만나 작품 전반에 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라이카> 초연을 축하합니다. 2021년 창작산실 대본 공모에 당선되면서 개발이 시작되었다고 들었어요. 작품 제작 과정은 어땠나요?

김유철 <라이카>는 한정석 작가님이 꽤 오랫동안 개발해 온 작품이었어요. 제가 2022년 라이브러리컴퍼니에 합류하고 나서 창작진을 섭외할 때 한정석 작가님과 신작을 한편 하기로 했는데, 2023년 초에 작가님이 올리고 싶은 공연이 있다고 저한테 직접 연락을 했어요. 원래 이야기했던 신작 개발을 <라이카>로 대체하겠다는 건 아니었고요, 검토 차원의 이야기였죠. 대본은 2021년 창작산실 대본 공모 당선 버전까지, 음악은 당시 제출했던 샘플까지 나와 있었어요. 제가 대본을 보고 나서 첫 미팅 때 <라이카>를 상업 뮤지컬로 쓰신 게 맞는지 질문한 기억이 나요. 지금 돌이켜 보면 (실제 라이카의 결말에 대한) 마지막 지문 때문이었던 것 같아요. 그 지문 때문에 공연이 다큐멘터리로 강조될 것 같은 느낌이 들었어요. 하지만 두 분이 <라이카>는 <쇼맨>보다 <레드북>에 가까운 상업 시리즈라고 설명을 해주셨고, 이 지점이 양자 간 합의가 되어 연강홀 대관을 진행했어요. 이때가 2023년 5월이었죠. 

한정석 2021년 창작산실 대본 공모 버전은 지금보다 설명이 많았어요. 자잘한 디테일도 많았고요. 넘버는 8개가 나와 있었어요. 개발 과정에서는 내부 리딩 작업을 두 번 했어요. 저랑 선영씨, 라이브러리컴퍼니 직원들이 참여했고 김유철 본부장님이 장미 역을 맡았죠.(웃음) 선영씨가 노래를 불러주었고요. 6개월 뒤에는 배우 리딩을 했어요. 당시 나하나, 윤나무, 서동진, 한보라 배우가 참여해 주었어요. 앙상블 역할로는 두 사람 빼고 현재 공연 중인 분들이 전부 들어와 주었고요. 넘버가 어렵고, 많았기 때문에 배우들이 열심히 연습해서 장면을 연결해 주었어요. 

김유철 연습이 시작된 후에는 저는 연습실도 거의 안 갔어요. 한이박 트리오가 어떻게 작업하는지 너무 잘 알고 있었고, 그 작업 과정에 대한 믿음이 컸기 때문에요. 

 

신뢰와 믿음이 이번 프로덕션의 바탕에 있었군요. 이제 극 안으로 들어가 볼게요. 라이카의 서사를 거칠게 정리하면 다음과 같아요. 라이카는 로켓 안에서 죽지 않고 왕자와 장미를 만나 ‘존재’가 됩니다. 이후 왕자가 만든 로케보트와 함께하며 자신을 둘러싼 ‘비밀’을 알게 되고요. 자신이 왜 B612에 던져졌는지, 왜 로켓에 타게 되었는지 알게 되죠. 그리고 이미 지구에서 사망 처리된 라이카는 캐롤라인이 더 이상 자신을 기다리지 않는다는 것도 깨닫게 됩니다. 하지만 이런 배신감에도 불구하고 라이카는 왕자의 지구 멸망 프로젝트에 동참하지 않고 결국 캐롤라인을 만나기 위해 지구로 갑니다. 이러한 흐름을 통해 작가님이 하고 싶으셨던 이야기가 있었을 것 같아요. 

한정석 저한테 라이카는 처음부터 이타적인 존재였어요. 8번 넘버 ‘길들여’에 보면, 라이카가 떠돌이 시절 유리창을 통해 한 아이가 개의 등에 누워 자고 있는 모습을 보는 장면이 있어요. 라이카는 그 개처럼 누군가에게 무언가를 해주고 싶어 하는 인물입니다. 그래서 라이카는 캐롤라인한테 “도망갈까?”라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정말 갈까?’라고 생각해요. 왜냐하면 이건 캐롤라인이 원하는 거니까요. 극 후반부에 라이카가 다른 개들의 목소리를 들으면서 본능적으로는 캐롤라인과 함께 하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실제로는 다른 생물들, 다른 존재들을 챙기는 마음을 갖게 되죠. 이것을 라이카의 초월적인 모습이라 생각했어요. 제가 생각하는 ‘인간다움’이 여기에 있습니다. 인간 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지점에서 인간다움을 말할 수 있길 바랐어요. ‘눈에는 눈, 이에는 이’의 정신보다 그 너머를 추구하는 것이 인간다움이기를 바라고 있거든요. 이것이 라이카를 통해 그려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래서 라이카는 진짜 영웅으로 그려지기를 바랐어요. 영웅이 되기 위해서는 자기희생이 필요해요. 스스로 선택한 희생을 통해서 뭔가를 이루려 했을 때, 주변 사람들이 그를 실속도 못 차리는 사람이라 비난하지 않고 그 사람의 원초적인 지향점을 알아주면 그 사람은 대의를 실천할 수 있겠죠. 주변은 그를 통해 무언가를 나눌 수 있게 될 거구요. 그래서 왕자가 이렇게 반응하죠. “라이카 너처럼은 못 하지만 네가 원하는 것들을 내가 이뤄줄게, 너의 마음이 뭔지는 다 알지 못 하지만 그 마음이 다치지 않게 지켜줄게”라고요. 왕자는 이를 실천해요. 왕자가 라이카를 지구로 보내주는 건 이러한 이유였습니다. 이런 측면에서 라이카가 진짜 영웅으로 그려지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런데 지금 이 시대에는 이런 영웅-되기가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닌가요? 특히 본질적인 층위에서 자기희생이 가능한 이타적인 영웅이 지금 우리 시대에는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한정석 우주에서는 가능하지 않을까요? 현실에서 저는 이 이야기를 통해서 제가 추구하는 캐릭터성이 가치 있음을 증명하고 싶었어요. 저는 이걸 계속 해야 하는 것 같아요. 이런 사람의 멋있음도 있다, 제가 이렇게 한다고 해서 원하는 영웅이 탄생되는 건 아니지만, 이런 사람도 있구나 하는 측면을 이야기하는 거죠.

 

<라이카>를 시작하셨던 동기가 여기에 있는 것 같네요. 작가님 작품을 보면 관통하는 것이 있어요. ‘나 자신으로 살기’ 혹은 ‘나를 찾기’라는 테마가 느껴집니다. 수없이 많은 작품들이 다루고 있는 테마이긴 한데요, 작가님만의 스타일이 있어요. 가령, <여신님이 보고 계셔>에서의 ‘여신님’ 역시 인물 각자의 ‘진짜 자신’을 일깨우는 존재로 해석될 수 있어요. 그럼으로써 현실을 살아 나갈 에너지를 얻게 되니까요. 이번 <라이카>에서는 이 테마를 좀 더 본질적인 차원으로 다루고 있는 것 같아요.

한정석 맞습니다. <라이카>에서는 인간 이상의 것을 추구하는 존재를 쓰고 싶었어요. 그럼 왜 그것이 개여야 하는가? 라는 질문을 할 수 있겠죠. 저는 개가 인간 이상의 것을 추구할 때 더 큰 울림이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개는 한국에서 보통 부정적인 대상을 말하거나 폄하되는 대상을 가리킬 때 사용되잖아요? 저는 이 아이러니를 활용하고 싶었어요. 그래서 사실 선영씨는 라이카가 최종 선택 때문에 너무 성자처럼 보일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했는데, 저는 성인을 그리려면 그 역할을 라이카한테 주고 싶었어요.

김유철 저는 <라이카>의 1막은 그동안 제가 경험한 공연의 75분 중에 가장 빨리 간다고 느꼈어요. 그만큼 좋았습니다. 공연이 가진 미덕으로 봤을 때 1막의 캐릭터, 상황, 비주얼적 요소가 던져주는 선택들이 좋았어요. 우리가 외국에서 뮤지컬을 볼 때 백 퍼센트 알아듣지 못해도 공연의 가치만으로 작품을 이해하는 경우가 있잖아요? 작가님의 생각이 대본에 은유적으로 쓰인 것도 많고, 가사와 장면의 합이 약간은 낯설게 느껴지는 순간도 있었지만 이런 부분을 포착하여 분석하고 싶은 심리가 다음 단계에 찾아올 거라고 생각했어요.

 

 

하지만 분명히 크리티컬하게 보이는 지점도 있어요. 먼저 왕자가 전작의 캐릭터들에 비해 매력이 좀 덜해요. 왕자의 욕망과 목적이 보이기는 하지만, 전체적으로 다소 추상적으로 느껴지는 구간들이 있습니다. 특히 리페르트 장면과 관련된 왕자의 심리가 궁금하더라고요.

한정석 리페르트가 2차 대전 당시 생텍쥐페리를 죽인 사건을 기사로 접하고 저는 전쟁에 대한 환멸이 생겼어요. 소시민들이 겪는 비극을 왜 그냥 내버려두는지 반감이 생기더라고요. 왕자 역시 이러한 상황을 거시적으로 보다 보면 진짜 비뚤어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겨우겨우 뱀구멍, 그러니까 웜홀을 통해 힘들게 지구에 갔는데 작가가 허무하게 죽는 경험을 하게 되면서 왕자는 극단적인 상황에 직면하게 됩니다. 그러면서 환멸과 부정적인 감정 안에 매몰됩니다. 특히 왕자가 생텍쥐페리의 죽음을 경험한 나이는 극 중에서 십 대 중후반 정도였기 때문에 더욱 그럴 수밖에 없었을 겁니다. 청소년기에 이런 경험을 하다 보니 인간에 대한 원망과 아쉬움에 사로잡히게 되고, 그러면서 아집과 편견, 혐오에 빠져 그 상태에서 더 자라지 못한 채 성인이 되었다고 생각했어요.

 

왕자에게 가장 중요한 키워드는 환멸이잖아요. 왕자는 처음부터 라이카가 자신과 같은 생각을 할 것이라 생각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동반자처럼요. 

한정석 왕자는 라이카를 우주로 발사시키려는 계획을 B612에서 계속 보고 있었어요. 그러면서 라이카가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억지로 우주에 왔을 거라 생각했던 거죠. 왕자는 혼자서 인간에 대한 반감을 드러내고 있었지만 장미로부터는 계속 외면받고 있었습니다. 장미는 왕자의 생각에 동의하지 않았을 거예요. 바오밥들도요. 그래서 왕자는 누군가가 자기를 이해하거나 뜻을 함께할 수 있다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장미와의 내기를 통해 라이카를 알게 되면서 너무 반가웠던 거죠. 자기와 똑같을 것이라는 기대도 갖게 되고요. 

 

근데 막상 데리고 왔더니 라이카는 왕자가 생각했던 것과 다르죠. 그런데 저는 이런 ‘차이를 발견하는 것’이 왕자한테는 성장의 모멘트가 될 수 있을 거라고 생각해요. 라이카가 자신과 똑같은 경험을 갖고 있다고 해서 똑같은 존재가 되는 건 아닌 거니까. 그래서 왕자한테 이런 심리들이 굵직하게 보이면 어떨까 생각했어요. 왕자의 아이엠송 ‘그 하찮은’ 넘버는 록 스타일의 음악이고 중간에 살짝 불협화음으로 들리는 진행도 있어요. 이런 것들이 왕자를 환멸과 혐오의 정서를 갖고 있는 존재로 두드러지게 만들어요. 

한정석 그럴 수 있어요. 사실 그 내기는 실패한 거죠. 두 인물이 같은 마음은 애초에 아니었고, 라이카가 같은 마음을 ‘갖도록’ 왕자와 장미가 만든 거죠. 라이카는 같은 마음을 잠깐 가지긴 하지만 결국 달라지거든요. 그래서 이런 것들을 조목조목 짚어주는 장면들이 사실 있었어요. 초연을 올리는 과정에서 조금 축약 되었지만요. 예를 들어 창작산실 대본 공모 버전에는 2막 3장의 라이카가 “우리 정말 인간 같네”라고 말할 때 왕자가 무너지는 장면이 있었어요. 더불어, 왕자의 이야기는 소설 기반이니 『어린 왕자』처럼 은유적으로 해석할 여지를 주고 싶다는 마음도 있었어요. 

 


‘라이카’라는 존재를 누구의 시선으로 볼 것인가라는 질문도 생기더라고요. 

한정석 저는 라이카 이야기를 쓰자고 마음먹었을 때부터 어떻게 해도 저의 관점, 달리 말해 인간 중심적 사고를 피할 수 없을 것이라고 판단했어요. 다른 한 편으로는 라이카를 비인간적 존재로 다루기보다는 오히려 더 적극적으로 라이카의 마음에 이입하고 공감할 수 있도록 만드는 설정이 인간이 비인간에 대해 생각하고 그들의 존재를 헤아리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 생각했어요. 그래서 앞부분은 판타지로, 뒷부분은 다큐멘터리적으로 만들어 현실로 돌아오는 구조를 만들었어요. 이를 통해 어쩔 수 없는 인간의 한계를 인정하자는 것이죠. 가령, 라이카를 죽여놓고 왜 동상을 세워 놓은 것인가? 라는 질문이 제가 던지고 싶은 질문 중 하나였어요. 발사 당일부터, 극 중 마지막 자막이 나오는 구간까지 현실로 돌아와 씁쓸하고 냉정하게 인간의 모습을 확인해 보자는 이야기를 하고 싶었어요. 

김유철 새삼스럽지만, 창작진의 생각과 의도가 관객 개개인의 생각과 만나는 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깨달음을 다시 한번 얻었어요. <라이카>는 심심한 한정식 같은 공연이라고 생각해요.

 

<라이카> 공연은 오는 5월까지 이어집니다. 이후의 계획을 알려주세요.

김유철 앞으로 <라이카>를 더욱 섬세하게 끌고 가는 것이 목표입니다. 이 작품이 지닌 가치와 스타일의 의미를 어떻게 하면 더 잘 전달할 수 있을지 고민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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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승연 (뮤지컬 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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