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럼 클라스 헤다, <블랙베리 파이가 있는 아침식사 테이블>, 1631년
<티파니에서 아침을>은 ‘티파니에서 아침식사를Breakfast at Tiffany's’이다. 오드리 헵번이 연기한 홀리 골라이틀리는 뉴욕의 5번가 티파니 본점 앞에서 유리 진열장을 들여다 보며 매일 아침을 먹는다. 검은 원피스를 입고 번쩍이는 보석을 두른 채 한 손에는 커피, 한 손에는 크로아상을 들고 티파니 매장을 들여다보는 장면은 유명하다. 그는 티파니의 보석을 동경하듯이 대놓고 상류사회를 동경한다. 어쩌면 홀리 골라이틀리는 ‘원조 된장녀’일지도 모른다.
11월 10일 바로 오드리 헵번이 매일 아침 식사를 하던 이 뉴욕의 티파니 본점에 카페가 생겼다. 매장 4층에 마련된 티파니의 상징인 연한 푸른색으로 인테리어가 된 ‘블루 박스 카페’에서 홀리 골라이틀리처럼 커피에 크로아상을 먹을 수도 있고, 아니면 ‘된장력’을 높여서 얼마든지 더 화려한 식사도 할 수 있다. 접시와 테이블도 ‘티파니 색’으로 디자인되어있다. 오늘날 소비 형태는 구매보다는 체험형이 늘어나고 있기에 이를 겨냥한 마케팅으로 보인다. 맛과 장소를 즐기며 먹기에 돈을 쓰는 경향도 경험을 소비하는 태도이다. 물론 29불을 주고 크루아상과 커피를 마신 사람들이 티파니에서 보석 구매까지 하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가끔 오래된 저택을 가면 ‘아침 식사’ 전용 공간을 본다. 끼니마다 밥 먹는 장소가 다르다니. 오, 이건 정말 내가 바라는 삶이잖아. 치우는 걱정만 안 하다면! 주로 토요일 아침에 늦게 일어나 밥을 먹으러 ‘나간다’.
이번에는 어디를 갈까. 대도시에 살 때는 이집 저집 찾아다니는 재미가 쏠쏠했다. 얼마 전 작은 마을로 이사를 온 뒤로는 바닥이 너무 뻔해서 그 재미가 1/5로 줄었다. 홀란데이즈 소스가 올라간 에그 베네딕트나 에그 플로렌틴을 먹을 때 느끼는 편안함은 포기하기 싫은 일상의 기쁨이다. 금요일 저녁에 맥주 한 두잔 걸치고 영화 보고 잔 뒤 토요일 느지막하게 일어나 계란 노른자와 버터가 섞인 진한 소스 맛을 보러 나간다. 때로는 외국 음식이 미국에 들어와서 현지화 되는 모습도 재미있다. 예를 들어 아침을 가볍게 먹는 프랑스에서는 아침 식사 메뉴가 아니지만 미국에서는 계란이 많이 들어간 키쉬 로렌이 아침 식사 메뉴로 놓여있다. 한국 음식의 영향을 받은 식당에 갔더니 김치가 들어간 핫케이크도 아침식사 메뉴였다. 거의 김치전 맛이었다.
“브런치 먹으러 다니는 아줌마들 재수없어”라는 말을 직접 들은 적이 있다. 브런치 먹으면 된장녀라고 하더라. 내가 그 ‘브런치 먹으러 다니는 아줌마’다. 왜 재수가 없을까. ‘브런치 먹는 여자’에 대한 감정은 서구문화에 오염된 여자라는 인식과 가정을 내팽개친 불량주부의 이미지가 한몫한다. 브런치 먹으러 ‘나가는’ 여자는 집안에서의 전통적인 성 역할에 걸맞지 않기에 그’녀’들을 못마땅하게 바라본다. 밖에 나와 아침도 점심도 아닌 밥을 먹는다는 것은 곧 집에 처박혀 있지 않는다는 뜻으로 받아들여지기 때문이다. 남자는 밖에 나와서 ‘여자 끼고’ 술을 마셔도 근무의 연장이지만 여자는 밖에서 밥만 먹어도 노는 여자다. 아침 해장국은 노동자 서민의 밥상이고 브런치는 사치한 된장녀의 밥상이다. 노동자의 남성적 이미지와 소비의 여성적 이미지라는 편파적인 구도가 이런 관념을 만든다.
역사상 식당은 여성에게 관대하지 않았다. 초기 여성운동에서 여성들은 ‘혼자 식당에서 저녁 식사 할 권리’를 얻기 위해서도 싸워야 했다. 남성 보호자를 동반하지 않고 여성이 ‘밖에서 밥을 먹기’는 어려웠다. 식당에서 밥을 먹는 행동은 정숙하지 않은 태도였다. 여성들은 주로 집에서 집으로 방문하며 차를 마시거나 가족을 동반한 저녁 초대에 참석하는 정도였다. 여성이 남자 없이 식당에서 밥을 먹으면 ‘소문의 대상’이 된다. 수군수군.
코스코폴리탄 편집자였던 헬렌 걸리 브라운은 1969년에 <독신 여성의 요리책>에 이렇게 썼다. “브런치는 독신 여성들이 삶을 즐기는 아주 좋은 방식이다” 브런치가 뭐길래? 미국에서는 1930년대부터 브런치 문화가 번성하기 시작했다. 보통 오전 11시에서 오후 3시까지 가능한 이 브런치 식사는 여성이 ‘밖에서 밥을 먹기’를 통해 ‘해방된 여성’임을 드러낼 수 있는 수단이었다. 또한 푸짐한 식사를 꼭 저녁이 아니더라도 가능하게 만드는 브런치 메뉴는 돈과 시간을 절약하여 여성이 밖에서 밥을 먹는 데 일조했다. 오늘날도 어머니의 날에 브런치 특별 메뉴를 내놓는 식당들이 많은 이유다.
미국의 가장 풍요로운 시절의 상징인 1950년대를 배경으로 하는 영화 <캐롤>에서 테레즈와 캐롤이 함께 하는 첫 식사는 브런치다. 브런치 메뉴에 익숙하지 않은 듯 테레즈는 머뭇거리고 캐롤은 자연스럽게 마티니와 함께 에그 플로렌틴을 주문한다. 데친 시금치 위에 수란이 올라가고 홀란데이즈 소스가 얹혀진 요리다. 이 장면은 캐롤의 경제적, 문화적 위치를 보여준다.
브런치 먹는 여자는 재수 없지만, 아침 식사 얻어먹지 못해서 요즘 남자들 불쌍하다고 한다. (왜 이렇게 남자들은 수시로 불쌍한가) 어떤 연예인은 남자라면, 결혼 후 아내에게 아침밥 얻어먹는 ‘로망’이 있다고 했다. 편의점에서 아침 사 먹고 길에서 토스트를 먹고 있는 요즘 남자들 보면 안쓰럽다고 한다. 결혼에 대한 동상이몽. 많은 여성들은 함께 장을 보고 함께 식사 준비를 원한다면 남성은 밥상 받을 생각부터 하고 있다.
남자들은 ‘국 있는 아침밥’에 왜 이리 집착할까. 하루 세끼 중에서 유난히 ‘아침밥’에 목을 매는 이유는 그들이 집에서 먹는 밥이 아침밥이기 때문이다. 많은 직장인들이 일주일에 한 두 번만 집에서 가족과 저녁 식사를 한다. 하지만 ‘탁현민식으로 말하자면’ 아내는 엄마니까 원나잇을 해도 새벽에 들어와야 한다. 그리고는 아침밥을 요구한다. 아내가 차려주는 아침밥을 통해 남편으로서 ‘대접받는다’고 느끼고 심지어 어떤 이는 이를 ‘가장의 자존심’이라고까지 한다. 이러한 현상은 어느 정도 미디어가 주도한다. 미디어는 젠더에 대해 현실보다 한 발짝 앞서나가기는커녕, 오히려 반동적인 면이 있다.
많은 미디어에서 앞치마를 두르고 따뜻한 국을 끓이며 정갈하게 아침 식사를 준비하는 여자와 면도하고 넥타이를 매며 밖으로 출근할 준비를 하는 분주한 남자의 모습이 전형적인 가정의 모습으로 그려진다. 출근할 때 여자가 남편의 옷 입기를 도와주고 넥타이를 매만져주면서 사랑스럽고 순한 표정으로 배웅하는 모습까지 있어야 완벽하다. 이러한 그림은 ‘일하는 남자’와 집에서 ‘기다리는 여자’라는 구도를 설정한다. 여자가 ‘역할’을 제대로 잘 하는지 못 하는지 검증하는 대표적인 질문이 남편에게 “아침밥은 차려주냐”이다. 집 밖으로 출근하는 여성들도 이 아침밥을 꼭 챙겨주고 나오는 경우가 많다. 아침 식사 챙기기는 돌봄의 상징이다. 식구들보다 일찍 일어나 건강한 아침 식사를 챙겨주는 부지런한 ‘우리 어머니들’의 모습을 아름답게 그린다.
아침밥을 꼭 먹어야 한다면 꼭 먹으면 된다. 아무도 말리지 않는다. 나도 아침밥을 꼭 먹어야 해서 아무리 늦게 일어나도 뭐라도 입에 넣는다. 제 손으로 차려 먹으면 된다. 누군가 차려주면, 고마운 것이지 당연하게 요구할 일은 아니다. 여자에게 평생 먹을 밥을 적금 들어놓은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이라영(예술사회학 연구자)
프랑스에서 예술사회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미국에 거주하며 예술과 정치에 대한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 『여자 사람, 여자』(전자책),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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