푸드 디렉터 정리나, 한식과 와인이 만나면
『푸드 앤 와인 페어링 쿡북』으로 특별한 미식의 경험을 집에서 간편하게 즐겨 보세요.
글ㆍ사진 이참슬
2025.0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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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 표기식


잘 차려진 음식을 먹는다는 건, 때론 한 끼 식사 이상의 가치를 갖습니다. 누구나 쉽게 익숙한 한식 재료를 활용해 잘 어울리는 와인을 곁들여 근사한 식사를 할 수 있도록 안내하는 요리책, 『푸드 앤 와인 페어링 쿡북』의 저자 정리나 푸드 디렉터를 만났습니다. 특별한 미식의 경험을 집에서도 간편하게 즐겨 보세요. 


 

푸드 디렉터라는 직업이 생소한 분들도 많을 것 같아요. 어떤 일을 하시는지 소개 부탁드립니다. 

한국 F&B에는 푸드 디렉터라는 직업이 많이 없어요. 셰프나 스타일리스트와 다르게 F&B 업계의 기획자라고 생각하시면 돼요. 예를 들어, 제가 한국-이탈리아 140주년 공식 만찬의 총괄 디렉팅을 맡은 적이 있어요. 그러면 어떤 콘셉트로 행사를 기획할지 정하고 팀을 꾸려요. 셰프부터 플로리스트, 소믈리에 등 다양한 사람들과 팀을 꾸려 행사를 진행하는 전체 기획 업무를 하고 있습니다. 주로 이런 행사를 많이 진행하는 럭셔리 브랜드들과 함께 일을 하죠. 그리고 겸업으로 와인 다이닝 ‘비놀로지’를 운영하고 있고요. 

 

이력을 보니 굉장히 다양한 일을 하셨더라고요. 대기업 인사팀에서 근무를 하다 요리 분야로 방향을 틀어 르꼬르동 블루를 이수하고, 네이버에서 레시피 콘텐츠도 연재하셨어요. 

LG상사라는 종합상사를 다니면서 인사 교육과 관련한 일을 했어요. 사내 강연이나 교육콘텐츠를 만드는 게 주요 업무였죠. 종합상사에서 일을 하다 보니 사내 와인 수입 업무도 있었거든요. 거기서 와인 재고가 너무 많이 남으면 재고 털이도 하고, 명절 선물로 와인을 받을 때도 있고 하다 보니, 20대 초반 신입사원일 때부터 와인을 빨리 접하게 되었어요. 당시에는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사 먹는 게 너무 비쌌거든요. 그러다 보니까 제가 집에서 요리를 하게 된 거죠. 


혼자서 살 때라 친구들을 초대해서 대접하면 항상 맛있다고 했어요. 공짜니까 그랬겠지만요. (웃음) 요리에 소질이 있는 줄 알고 전향을 결심했어요. 하는 김에 제대로 배워야겠다는 생각에 7년 동안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르꼬르동 블루 숙명에 가서 조리 과정을 이수하고, 볼로냐 한 달 살기, 시칠리아 2주 살기 이런 식으로 전 세계를 다니면서 조금씩 배워나갔죠. 

 

첫 책 『Eat at home 오늘, 양식 하다』는 어떤 계기로 쓰게 되셨나요?

인사 교육 업무를 하면서 가장 많이 한 일이 교재를 만들고 강의하는 일이거든요. 그때의 경험을 살려서 용감하게 바로 책을 냈던 게 경력 전환에 중요한 계기가 되었어요. 아무래도 나이가 조금 있는 상황에서 전혀 다른 분야의 취업을 하려다 보니 쉽지 않았거든요. 요리학교도 다니고 전 세계를 다니면서 요리를 배우다 보니 집에서 하기 쉬운 요리는 따로 있더라고요. 셰프의 요리와는 다른 홈쿡을 쉽게 하는 방법을 고민하다 『Eat at home 오늘, 양식 하다』를 출간하게 되었어요. 제가 직접 음식 사진도 찍고 PPT까지 만들어서 열 군데가 넘는 출판사에 기획서를 썼는데 다 떨어졌어요. 감사하게도 저를 알아봐 준 출판사와 함께 작업을 하게 된 거죠. 

 

실행력이 정말 남다르시네요.

매우 추진력이 있는 편이죠. (웃음) 종합상사에서 일할 때 신입사원 때부터 맨땅에 헤딩하는 트레이닝을 많이 시켰어요. 그 시절의 영향이 있는 것 같아요. 원체 긍정적이고 두려움이 없는 편이기도 하고요. 처음 요리를 시작했을 때는 힘들기도 했어요. 어릴 때부터 요리를 해서 스킬이 좋고 좋은 미감을 가진 분들도 많았는데, 전 특별히 재능이 있는 편이 아니라 노력을 많이 하는 수밖에 없었으니까요. 경력을 전환하면서 간절함이 컸기 때문에 더 열심히 했던 것 같아요. 

 

요리에 능숙하지 않은 사람들도 그럴싸하게 차려 먹을 수 있다는 점이 작가님 레시피 책의 가장 큰 매력인 것 같아요. 『Eat at home 오늘, 양식 하다』는 대만에도 판권이 팔렸다고요. 

제가 직장인이었기 때문에 잘 알아요. 퇴근하고 요리해서 먹는 게 얼마나 피곤하고 귀찮은지. 하지만 예쁘게 차려 먹는 것은 누구나 좋아하거든요. 그런 니즈가 있다는 것을 잘 맞췄던 것 같아요. 이번에 나온 『푸드 앤 와인 페어링 쿡북』도 누구나 쉽게 요리와 와인을 페어링할 수 있도록 접근성이 좋은 재료와 참신한 조합, 다양한 응용을 염두에 두고 쓰게 되었어요. 

 

『푸드 앤 와인 페어링 쿡북』은 와인의 기초부터 설명하면서 시작하죠. 와인의 특징을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친절한 입문서가 될 수 있을 것 같아요. 

이 책의 공동 저자인 백은주 교수님은 제 와인 스승님이기도 해요. 책을 처음 기획할 때도 원칙부터 차근차근 설명하자는 것이 저희 목표였어요. 와인을 처음 공부하는 분들도 와인만 공부하기보다는 음식과 함께 페어링을 할 수 있도록 기본적인 지식을 정리하고, 레시피를 함께 보는 형식으로 구성을 했죠. 그래서 와인을 스타일별로 나누고, 각 스타일에 어울리는 요리 레시피를 직접 만들면서 매칭을 해보자고 했어요. 일일이 여러 재료의 음식을 직접 만들고 먹어보고, 와인과 페어링해 보면서 페어링 포인트를 잡았죠. 


맛있는 음식을 먹으면 정말 행복하잖아요. 맛있는 와인을 아주 잘 어울리는 음식과 함께 먹었을 때 그 경험이 주는 행복감, 새로운 미식의 경험을 이 책을 통해 많은 분들이 할 수 있다면 좋겠어요. 저는 사람 초대해서 음식을 대접하는 걸 좋아하지만 요리 과정이 힘들면 즐기기 어렵더라고요. 그래서 최대한 간단하고 미리 준비해 두기 좋은 레시피를 담으려고 했어요. 


사진 : 표기식

 

흔히 와인은 양식과 곁들여 먹어야 한다는 생각이 드는데, 이 책의 레시피를 보면 떡볶이, 쌈밥 같은 한식부터 한식 식재료를 활용한 퓨전 양식, 편의점 음식과의 조화 등 친근함에서 오는 색다른 조합이 눈에 띄어요. 

기존의 와인 페어링 책들은 대부분 양식에 기반하고 있어요. 하지만 사실 우리가 쉽게 구할 수 있는 건 사실 한국의 장, 들기름, 참기름, 각종 나물 같은 한식의 재료들이죠. 분명 한식 식재료와 와인이 잘 어울릴 수 있을 텐데, 이 부분을 제대로 설명해 주는 책이 거의 없더라고요. 예를 들어 허브 뉘앙스가 있는 소비뇽 블랑은 우리나라 참나물, 미나리 나물 등과 정말 잘 어울리거든요. 와인의 아로마와 음식의 향이 비슷하면 잘 어울려요. 이런 페어링 원칙을 어떻게 응용할 수 있는지 최대한 많이 담으려고 노력했습니다. 

 

레시피 아이디어는 어떻게 얻으시나요?

한국에 살고 있기 때문에 우리나라의 좋은 재료를 사용할 수 있다는 점에 주목했어요. 양식에 기반한 전통적인 페어링도 물론 훌륭하지만, 일상적으로 먹는 음식, 이를테면 “솥밥과 와인은 잘 어울릴까?” “술을 마시면 탄수화물이 당기는데 라면과 어울리는 와인은 무엇일까?” 이런 질문을 던져봤던 것 같아요. 페어링을 보다 재미있게 경험하실 수 있기를 바라면서요.

 

저는 음식을 통해 사람들이 새로운 경험을 하게 만들어 주고 싶어요. 책에서도 아이스크림에 간장이나 참기름을 뿌려 먹는다든가, 볶음밥에 바질이나 올리브를 넣어 향긋하게 즐기는 등 새로운 조합, 새로운 경험을 할 수 있는 레시피를 많이 넣어보려고 했어요. 좋은 재료로 좋은 음식을 만드는 것도 즐거운 경험이지만, 흔한 재료를 재미있게 만들 때 많은 분들이 좋아하는 것 같아요. 비싸기만 하다고 좋은 와인이 아니고, 잘 맞는 음식과 페어링을 하면 음식과 와인이 모두 빛을 발하거든요. 


방풍나물 부라타 삼합. 사진 : 출판사 제공

 

한식에 대한 애정이 남다르신 것 같아요. 운영하고 계신 와인 다이닝 ‘비놀로지’에서도 ‘한식의 미’를 강조하고 있죠. 

럭셔리 브랜드와 협업을 할 때는 파인 다이닝의 섬세한 경험에 초점을 맞춘다면, 비놀로지에서는 제주도 해녀와 함께하는 해산물 클래스, 농부와 함께하는 채소 시장 팝업처럼 캐주얼하고 재미있는 시도를 많이 하고 있어요. 파인 다이닝에 가는 것만이 미식이 아니라고 생각해요. 예전에는 파스타를 먹으려면 되게 비싼 식당에 가야 했는데, 볼로냐에 가서 한 달 살기를 해보니까 우리 떡볶이 먹는 것과 똑같더라고요. 반면 전 세계적으로 비건식이 트렌드가 되면서 해외에서도 우리의 나물, 발효장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거든요. 럭셔리 브랜드와 협업을 하다 보면 그들이 얼마나 자신들의 헤리티지에 많은 시간을 투여하는지 알 수 있어요. 유산을 지키기 위한 노력을 하는 거죠. 제가 생각했을 때 한국에도 아름다운 유산이 많거든요. 발효 장, 해녀의 문화, 나물, 김치 셀 수 없어요. 이런 부분을 놓치고 싶지 않은 것 같아요. 

 

넷플릭스 시리즈 <흑백요리사>의 인기로 미식에 대한 관심이 많이 늘어났어요. 박은영, 에드워드 리, 파브리 등 출연했던 셰프들과도 다수 협업을 하셨더라고요. 더 좋은 미식의 경험을 위한 영감은 어디서 받나요? 

저는 정말 여기저기 엄청 많이 다니면서 사람들을 많이 만나려고 해요. 관심이 조금이라도 생기면 무조건 가보고요. 많이 보고, 맛보면서 직접 경험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미술 컬렉팅에도 관심이 많아요. 작품을 컬렉팅하면서 예술가분들을 직접 만나고 대화를 하면서 창의적인 아이디어를 많이 얻었던 것 같아요. 미식과 미술은 통하는 부분이 있거든요. 헤리티지가 어디서 나오는지 항상 연구하고, 디테일한 부분이 굉장히 중요하고요. 『한국미의 레이어』 저자 안현정 학예사님을 만났는데, 미술의 레이어, 눈맛에 관한 이야기를 하시더라고요. 너무 신기했어요. 음식에도 맛의 레이어가 있고, 입맛이라는 게 있잖아요. 미술과 닮은 부분이 많아서 눈여겨보고 있습니다. 


사진 : 표기식


주방과 서재에서 가장 많은 시간을 보내신다고요. 어떤 책을 좋아하시나요?

요리책은 정말 많이 봤어요. 지금 소장하고 있는 책도 200권이 넘어요. 『온지음이 차리는 맛』이라는 책을 특히 좋아해요. 온지음이 원스타 파인 다이닝이기도 하지만, 우리 맛의 전통을 지켜 나가는 연구소이기도 하거든요. 이 책을 읽으면 한식의 정수를 만날 수 있어요. 『풍미 사전』이라는 2권짜리 책이 있는데 이 책도 자주 봐요. 과학적으로 재료의 조합을 설명해 주는 책인데 레시피 개발하는 업무를 주로 하다 보니 큰 도움이 되더라고요. 

 

『푸드 앤 와인 페어링 쿡북』을 어떻게 활용하면 좋을까요? 

레시피마다 페어링 팁을 써두었어요. 어떤 이유로 이 음식이 와인과 매칭이 잘 되는지 알고 계신다면 딱 맞는 재료가 없더라도 비슷한 재료를 활용해서 응용할 수 있게요. 이를테면 캐비어는 비싸서 사기 어렵지만, 새우젓이나 명란젓을 사용하면 감칠맛도 올리고 재미도 있죠. 

 

곧 명절이 다가옵니다. 다 같이 모여 앉아 즐기기 좋은 요리 하나를 추천해 주신다면요?

새해를 맞아 샴페인이나 화이트 와인을 많이들 드세요. 의외로 곰취 쌈밥이 화이트 와인과 잘 어울리거든요. 쌈밥에 브리 치즈를 함께 넣어 먹으면 풍미도 좋고 건강도 챙기실 수 있답니다. 다만 밥이 들어간 메뉴와 와인을 함께 먹을 경우, 과실 향이 강한 와인은 그다지 어울리지 않는 편이에요. 이때는 짭조름한 미네랄 풍미가 있는 와인을 곁들여보세요. 특히 프랑스의 샤블리, 상세르, 코토 샴프누아 지역의 화이트 와인을 추천해요. 쌈밥에 들어 간 쌈장의 짭짤한 맛이 짠맛이 있는 와인과 잘 어우러질 거예요.


브리치즈 곰취 쌈밥. 사진 : 출판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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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참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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