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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야, 화가야? 왜 이렇게 그림을 잘 그려?

『귀소본능』 편집 후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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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 가을에 하인리히의 전작 중 『베른트 하인리히, 홀로 숲으로 돌아가다』를 편집 출간한 이후, 이번 책 『귀소본능』으로 그의 글을 만나볼 수 있는 또 한 번의 행운을 얻었다. 그의 글을 읽는 내내, 자연이 내게 돌아오라고 속삭인다는 기분이 들었다. (2017.11. 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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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야, 화가야? 왜 이렇게 그림을 잘 그려’ ‘어떻게 늘, 끊임없이 이런 방향의 의문을 가질 수가 있지?’ ‘그가 관찰하는 순간은 늘 시간을 길게 늘여놓은 것 같아, 놀라워’ 이 책의 저자, 베른트 하인리히에게 처음 든 생각들이다. 그리고 이렇게 꼬리를 무는 생각을 불러일으키는 그의 글은 고요한 감동과 함께 어느덧 나를 숲 한가운데로 데려갔고, 자연의 속삭임을 숨죽여 감상하게 했다.

 

베른트 하인리히의 숲속 삶은 도시에서 사는 내가 전혀 상상할 수 없는 것이었다. 그도 그럴 것이 하인리히의 숲 생활은 보통 우리가 도시와 대조적으로 떠올리는 시골 생활하고도 많이 달랐기 때문이다. 그는 『월든』의 저자 헨리 데이빗 소로가 사랑했던 메인주에 직접 소박한 오두막집을 짓고 숲속 작은 삶을 시작했는데, 어쩐지 그의 하루는 우리가 생각하는 숲의 평화롭고 조용한 하루와는 거리가 멀다.

 

예를 들자면 이런 거다. 생물학자의 집 아니랄까 봐 집에는 흰발생쥐, 마멋, 피비, 흰머리말벌, 붉은개미, 수천 마리의 파리 떼, 수십 마리의 무당벌레 등 온갖 손님들의 발길이 끊이질 않고, 집 안에 줄을 친 거미에게는 ‘샬롯’이라는 이름을 붙여준 뒤 수개월 간 먹이를 주고 그 모습을 주의 깊게 관찰하며 함께 살아간다. 11월이면 사슴사냥을 하고(그가 자연주의자라는 말이 ‘모든 생명을 죽이지 않는다’는 뜻은 아니다. 그는 무의미한 살생을 하지 않을 뿐이며, 자연 속 생명의 ‘순환’과 ‘재생’을 중요하게 생각한다), 애벌레가 만드는 고치나 새들이 짓는 각양각색의 둥지를 자세히 살피고 세밀한 그림으로 기록한다. 때로는 도시 속 삶보다 훨씬 흥미진진하고 바빠 보이는 생활에 나는 처음으로 숲 생활을 꿈꿔보게 됐고, 자연주의를 실천하는 그의 모습을 보며 조화로움과 여유, 그리고 생명이 꿈틀대는 삶이 무엇인지 느꼈다.

 

그랬던 그였기에, ‘귀소’와 ‘집’을 다룬 이 책이 주는 감동은 훨씬 웅장했다. 이민선(船)에 오른 고작 열 살에 불과한 어린 소년(저자)이 망망대해 위의 알바트로스를 보고 ‘귀소성’에 대한 다양한 생각을 갖게 되었다는 대목에서도, 인간의 주거지뿐만 아니라 다른 동물들의 주거지 역시 ‘집’으로 간주하면서 ‘과학적 엄밀성과 객관성을 확보하는 동시에 인간과 동물의 삶에 얽힌 연관성을 인정하려는 의도’를 담았다고 말하는 데서도 놀라지 않을 수 없었다. 하인리히는 ‘인간과 자연’, ‘인간과 그 밖의 동물’이라고 이분법적으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의 사고는 아주 어릴 적부터 자연 속에 조화롭게 동화되어 있었던 것 같다.

 

어떤 종은 냄새로, 어떤 종은 태양으로, 어떤 종은 자기(磁氣)로, 어떤 종은 하늘의 별을 보고 자신이 태어난 곳, 집, 고향으로 돌아갔다. 귀소 메커니즘은 저마다 달랐지만, 헤아릴 수 없이 많은 생물종이 살아가는 천혜의 자연에서 애착이 가는 특정 장소로 돌아가고자 하는 본능만은 모두가 같았다.

 

작년 가을에 하인리히의 전작 중 『베른트 하인리히, 홀로 숲으로 가다』를 편집 출간한 이후, 이번 책 『귀소본능』으로 그의 글을 만나볼 수 있는 또 한 번의 행운을 얻었다. 그의 글을 읽는 내내, 자연이 내게 돌아오라고 속삭인다는 기분이 들었다. 내가 돌아가고 싶은 아늑한 보금자리는 어디일까 차분히 생각해본 가을이었다.


 

 

귀소본능베른트 하인리히 글그림/이경아 역 | 더숲
하인리히의 이러한 탐구과정을 지켜보고 있다 보면, 어느새 생물학의 색다른 묘미에 흠뻑 빠져 있는 자신의 모습을 발견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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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ㆍ사진 | 강정민(더숲 편집자)

기운 넘치면서도 꼼꼼하고 싶은 편집자. 내가 읽으며 재미있어하는 글을 책으로 만들 때 특히 유쾌하고 즐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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