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정엽, <식사준비>, 1995년
오래 전 한 여성에게서 “거리에서 직접 구호를 외치는 것보다 시위하는 사람들 음식 해주는 일이 나에게 더 잘 맞더라, 이런 사람들 가는 곳마다 따라가서 음식 해주고 싶다”는 말을 들은 적 있다. 당시 내게는 신선하게 들렸다. 시위에 ‘참여’한다고 하면 직접 거리에 서는 모습만 생각했던 내게 ‘참여’의 범위를 확장해 주었다. 시위든 전쟁이든 먹어야 싸울 수 있다. 지난 촛불 집회 때도 따뜻한 커피를 지원하던 카페, 생수와 김밥 등을 지원하는 단체들이 있었다.
광주항쟁을 소재로 한 영화 <택시 운전사>에서 대사가 있는 거의 모든 여성은 주변 인물에게 밥을 준다. 이 영화에서 대사가 있는 여성이 몇 명 되지도 않고, 그 대사 분량도 적다. 영화의 소재가 실제 있었던 택시기사와 독일 언론인의 경험에 근거하기에 여성의 적은 출연 자체를 비판하는 게 아니다. 그 적은 출연 분량에서 그들의 ‘역할’이 밥 주는 일에 국한된다는 사실이 과연 우연일까. 그리고 광주에 대한 영화는 언제까지 남성 중심의 저항과 상처만을 중심에 놓을 것인가.
이 영화 속의 밥상은 대체로 가부장의 밥상이다. 11살 딸이 아버지에게 밥상을 차려주고 (이때 아버지 김만섭은 음식 맛을 보며 “시집갈 때 다 됐네”라고 칭찬한다), 광주에서 시위에 참여한 여성은 시민들에게 주먹밥을 나눠주고, 광주의 택시 기사 아내는 한밤중 갑자기 남편이 데려온 서울 택시 기사와 독일 언론인에게 밥을 차려준다. 김만섭이 다시 서울로 돌아가는 길에 국수를 먹는 식당에서도 여자 주인은 주먹밥을 덤으로 준다. 장면이 직접 나오진 않으나 만섭과 딸이 세 들어 사는 집의 주인 상구 엄마도 이들에게 음식을 주고, 혼자 아버지를 기다리는 은정의 식사를 챙겨주는 암시가 있다.
이 중에서 가부장의 밥상과 가장 거리가 있는 밥은 시위 중에 나눠준 주먹밥이다. 광주에서 주먹밥을 주던 여자는 후에 피투성이가 되어 만섭의 택시 위로 쓰러지는데 이때 만섭은 “주먹밥....”이라고 중얼거린다. 이 여성은 주먹밥과 동일시 된다. 전혀 모르는 사람에게 주먹밥을 받았으니 그를 기억하는 방식이 그가 준 밥이 되는 것은 어찌 보면 자연스럽다. 그러나 이 ‘자연스러움’이 대부분 여성의 역할로 국한된다면? ‘어머니가 끓여준 된장찌개’에 대한 향수처럼 어머니를 기억하는 방식이 ‘나를 위해 어머니가 해 준 음식’에 머무는 중후한 남성들의 목소리를 한두 번 들었는가.
영화 속에서 여자가 등장하면 그저 밥이 따라오거나 여자의 몸을 보여주거나, 크게 보면 이 틀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택시 운전사>에서 여성 인물들이 밥을 주는 모습은 여자와 밥을 세트로 생각하는 상상력의 한계가 빚은 산물이다. (집안의 여자는 밥과 세트이며 집 밖의 여자는 술과 세트다) 여기에는 두 가지 문제가 겹쳐있다. 하나는 여성 인물들이 주로 밥을 주는 모습만 보여주는 점, 또 다른 문제는 밥을 주는 그 여성들의 노동을 노동으로 조명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노동이나 사회참여가 아니라 여성의 ‘자연스러운’ 성역할로 밥하기를 보여준다. 남편이 데려온 손님에게 아내인 여성이 밥상을 올리도록 하는 행동은 남편이 집안에서의 힘을 과시하는 태도이다. 그래서 괜히 “손님이 왔는데 찬이 이게 뭐야?”라고 말하며 남자는 허풍을 떤다.
‘밥을 짓고 밥을 주는 일’에 대한 노동가치를 명백히 인식시키기. 나아가 여성의 밥하기 노동이 ‘자연스러운 성역할’이라는 관념에서 벗어나기. 이 두 가지는 양립할 수 있다. ‘성역할’이 아니라 노동으로 인식할 때 여성이 음식이라는 매개로 어떻게 사회 참여를 했는지 더 명확하게 볼 수 있다. 아내로서, 엄마로서 밥을 주는 모습을 재현하는 방식은 오히려 여성의 노동과 사회참여를 흐릿하게 만든다.
강연균, <하늘과 땅 사이 1>, 1981년, 직접 광주 항쟁을 목격했던 작가가 담은 참상
고정희의 「광주민중항쟁과 여성의 역할」, <젠더와 사회>에 실린 안진의 논문 「5ㆍ18 광주항쟁에서 여성 주체들의 특성」 등을 참고하면 실제로 광주항쟁에서 여성들은 남의 몸에 밥 주기부터 제 몸으로 피 흘리기까지 다양한 방식으로 참여했음을 알 수 있다. 고정희는 시위 현장에서 여성들이 만들어 나눠준 주먹밥을 “광주 공동체의 피로 맺어진 약속의 밥”이라 표현한다.
“시민들의 왕래가 잦은 곳이면 어디든지 동네 아주머니들이 모여서 길목을 지키다가 지나는 시위차량을 멈추게 하고는 김밥과 주먹밥을 한 함지씩 실어 주는 것이었다. (중략) 광주시민이면 아무나 찾아와 요기를 할 수 있었고 어느 곳에나 푸짐한 음식이 준비되어 있었다. 특히 시장 아주머니들이 가장 열성이었다. 그들은 지난 며칠 동안의 참상을 똑똑히 보았던 사람들이었다. 양동시장?대인시장?학동시장?산수시장?서방시장 등에서는 조직적으로 밥과 반찬이 공급되고 있었다. (중략) 전투가 치열했던 금남로에는 동별로 나온 수백명의 가정주부들이 김밥을 함지에 담아 도로에 펼쳐 놓고 시위대에게 나눠 주었으며 주먹밥?달걀?김치?음료수?빵 등 각양각색의 음식이 형제자매들의 손에 아낌없이 나뉘어졌다. (중략) 이 주먹밥이야말로 광주 공동체의 피로 맺어진 약속의 밥이었다. 밥을 먹는 시민들은 자신이 광주 공동체가 뽑아서 민주화 전선으로 내보낸 전사임을 새롭게 자각했고 밥을 해준 주부들은 비인간적인 공포로부터 벗어나 그것들을 몰아내는 데 자신이 동참하고 있다는 사실에 신바람이 나서 밥을 나누어 주지 않고는 못배기는 모습이었다. 이와 같은 식사의 연대는 금남로의 시위 군중을 새로운 전의에 불타도록 만들었고 뜨거운 시민 공동체를 형성하고 있었다.”
- 고정희, 「광주민중항쟁과 여성의 역할」 중
당시 광주에서 정현애와 김상윤이 운영하는 녹두서점은 광주 운동권의 주요한 역할을 담당했다. 광주항쟁 때도 이 녹두서점으로 청년들이 모였고 플래카드와 유인물을 비롯한 시위 준비물을 마련했다. 이를 위한 자금도 여성들이 준비했다. 특히 녹두서점은 진보적 여성단체인 송백회 회원들의 집결지였다. 그뿐 아니라 정현애는 운동권 학생을 비롯하여 이 서점에 들러 민주주의에 대한 열망을 키우던 사람들에게 평소에도 밥을 챙겨줬다.
송백회 회원, 노동운동 모임인 들불야학 회원, 문화운동단체인 극단 ‘광대’의 여성들, 여성 노동자들은 민주화 운동 단체와 연대하여 활발히 활동했다. 이들은 항쟁의 처음부터 끝까지, 마이크를 잡고 방송을 하는 일부터 거리에서 피를 흘리며 쓰러지기까지, 전단 작성부터 화염병 만들기까지 다양하게 참여했다. 시위대 사이를 휘젓고 다니며 밥을 나르는 주부와 식당 종업원으로부터 병원에서 부상자를 치료하느라 비번도 없이 일한 간호사까지, 다양한 인물이 다양한 일을 했다. 그럼에도 광주항쟁을 다룬 영화 속에서 여성의 역할은 극히 통념적 성역할에 국한되어 있다.
현대 민주주의 정치에서 여성의 저항사는 잊혔다. 남성의 무장투쟁이 항쟁의 대표적 얼굴이 되었고, 여성 의병이나 여성 독립운동가가 지워졌듯이 광주항쟁에서 여성의 참여도 지워져 왔다. 여성의 역사는 축적되는 속도보다 지워지는 속도가 더 빠르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온 힘을 다해 남성연대가 여성의 역사를 지운다. 마치 매번 먹어치우는 밥처럼. 어쩌랴. 그래도 매번 밥을 짓듯이 여성들은 계속 역사를 직조할 수밖에.
이라영(예술사회학 연구자)
프랑스에서 예술사회학을 공부했다. 현재는 미국에 거주하며 예술과 정치에 대한 글쓰기를 이어가고 있다. 지은 책으로 『여자 사람, 여자』(전자책), 『환대받을 권리, 환대할 용기』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