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큐레이션] 자궁근종인의 식탁에는 고기가 없다
나의 소중한 몸과 지구를 위해 채식을 고민하는 사람들을 위해 최혜미 한의사가 추천하는 세 권의 책.
글ㆍ사진 최혜미
2025.02.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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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편은 육식주의자입니다. 식탁 위에 어떤 종류든 고기가 올라오지 않으면 실컷 배불리 먹고도 ‘먹은 게 없다’며 서운해하는 사람이고 중국요리집에서 ‘공심채 볶음’을 독립된 메뉴로 인정한 지 얼마 되지 않았습니다(“겨우 야채 한 줌 볶아놓고 이렇게 비싸게 받다니!”). 연애할 때 ‘샐러드 바’라고 불리는 캐주얼한 뷔페 레스토랑이 유행한 적이 있었는데 처음에는 꾹 참고 몇 번 가더니 ‘그 돈을 주었는데 고기가 너무 없음’을 탄식하며 나중에는 ‘풀(만 있는) 바’에 또 갈 거냐고 메뉴를 정할 때마다 경계하기도 했습니다. 

 

저는 채식주의자는 아닙니다만 원래 고기를 그렇게 좋아하는 편이 아니고 채식할 때 속이 편안하다고 느끼기도 합니다. 게다가 최근 몇 년 사이에는 자궁근종 때문에 더더욱 잘 먹지 않습니다. 자궁근종이 자꾸 재발한다면 가장 피해야 하는 음식은 붉은 살코기, 그것을 재료로 만든 햄과 소시지, 그리고 그 부산물인 우유와 유제품입니다. 고기를 먹지 않는 아내라니, 세상의 모든 붉은 살코기를 사랑하는 남자에게는 청천벽력 같은 소리입니다. 늘 같이 밥을 먹는 자기 아내에게 ‘뭐 먹고 싶은 거 없어?’라고 물어봐도 핏물이 고이는 두툼한 스테이크, 지방질이 크림처럼 곱게 퍼진 꽃등심, 녹진하게 입안에서 녹는 참치 대뱃살까지 자기가 좋아하는 음식을 말할 가능성이 현저히 낮다는 건 제가 생각해도 좀 안타까운 일이긴 합니다.

 

여자에게 육식은 양날의 검입니다. 늘 월경으로 출혈이 발생하는 여자의 몸은 항상 철분이 부족해질 위험에 처해있어 붉은 살코기에 들어있는 철분과 양질의 단백질이 꼭 필요한 건 사실이지요. 그렇지만 여성호르몬의 자극으로 인해 쉽게 자라고 개수가 늘어나는 자궁근종과 같은 여성기관의 종양에 공장식 축산으로 길러진 붉은 살코기가 미치는 나쁜 영향도 계속 보고되고 있습니다. 고기를 피하고 고기로 만들어진 햄을 피하고 우유와 유제품을 피하다 보니 제가 추구하는 식단은 대충 채식주의자의 그것과 비슷해졌습니다. 

 

식단의 관리를 물어보는 저의 환자들에게도 체질식보다 우선 채식을 먼저 고려해보라고 할 때가 많은데, 그럴 때마다 때로는 슬퍼하고(“저는 고기를 너무 사랑하는데요 흑흑”) 때로는 난감해하는(“야채만 먹고 어떻게 살아요”) 반응을 맞닥뜨리게 됩니다. 그저 건조한 팩트만 전달하고 끝내지 않고 여성의 건강에 꼭 필요한 말들을 조금 더 친절하게 전하기 위해 육식과 채식의 차이를 공부하고 채식으로 가능한 미식에 대해 탐구하게 되었습니다. 


 

『이토록 불편한 고기』

크리스토프 드뢰서 글/노라 코에넨베르크 그림/신동경 역 | 그레이트북스(단행)

 

붉은 살코기가 근종에 해로운 이유는 공장식 축산 때문입니다. 저의 남편이 사랑해 마지않는 지방질이 곱게 퍼진 부드러운 육질을 안정적으로 생산하기 위해 동물에게 투여하는 호르몬이 여성의 몸에 유사 성호르몬으로 작용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지요. 현대의 공장식 축산에 관해 인식을 깨우고 문제를 제기하는 책들은 많지만 이제 막 이 문제에 관심을 가졌다면 입문서로 『이토록 불편한 고기』를 추천합니다. 초등학생 추천 도서에 무수히 이름을 올린 이 책은 아이들이 읽어도 좋을 만큼 다양하고 이해하기 쉬운 그림과 글로 설명되어 있습니다. 저자 크리스토프 드뢰서는 고기를 먹는 행위를 통해 사람과 동물, 그리고 환경의 관계에 대해 쉽게, 하지만 진지하게 고민합니다.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

이동호 저 | 창비

 

공장식 축산이 아닌 자연식 축산에서 기른 돼지라면 괜찮을까, 한걸음 더 나아간 질문에 대한 생각은 『돼지를 키운 채식주의자』를 읽으면서 다시 한번 해보게 됩니다. 저자 이동호는 직접 세 마리 돼지를 키우면서 ‘고기 이전의 돼지’라는 키워드를 통해 식품이기 이전에 동물로서 사람과 관계를 맺은 돼지를 먹는다는 것에 관해 생각을 발전시켜 나갑니다. 20대 이른 나이에 귀촌하여 실제 돼지를 키우면서 맞닥뜨리는 현장의 좌충우돌을 흥미진진하게 따라가다 보면 어느새 작가를 다라 육식에 조금 다른 생각을 하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됩니다.


 

『채소 마스터 클래스』

백지혜 저/정멜멜 사진 | 세미콜론

 

그렇다면 고기가 아닌 무엇을 먹을까, 미식을 포기하기 힘든 여성들에게 제시하는 근사한 대안은 백지혜 작가의 『채소 마스터 클래스』에서 찾을 수 있습니다. 식사는 매일매일 몇 번씩이나 반복해야 하는 일이고 삶의 기쁨 중 하나이기 때문에 건강이나 환경, 철학을 이유로 ‘맛’을 포기하기는 어려운 일입니다. 음식을 통한 관리는 잠깐 하고 말 수 있는 게 아니라 긴 시간, 어쩌면 평생 해야 하는 일이기 때문에 참아서 될 일이 아니지요. ‘제리코 레시피’로 유명한 저자 백지혜는 고기를 좋아하지만 채식을 지향하는 ‘플렉시테리언’으로 육식파들까지 설득한 ‘진짜 맛있는 채식 레시피’를 모아 이 책으로 펴냈다고 합니다. 실제로 이 책이 나온 ‘당근 뢰스티’는 팟캐스트 ‘여둘톡’에 소개되어 큰 인기를 끌기도 했습니다. ‘채식만 하고는 살 수 없다’고 말하는 환자들에게 저도 늘 추천해주는 책이기도 합니다.


 

건강을 위해 음식도 가려먹어야 하는 시대입니다. 한의사인 제게 ‘무엇을 먹어야 하는가'를 묻는 분들도 많지만 좋은 음식을 챙겨먹는 것보다 나쁜 음식을 먹지 않는 것이 늘 먼저랍니다. 자궁근종은 2040 여성에게 너무 흔한 질환이라 생활 관리가 더 중요합니다. 더불어 자궁근종을 관리하기 위해 시작된 채식에 관한 고민이 동물의 인권과 지구 온난화에 이르기까지 확장된다면 그 또한 독서의 즐거움 중 하나가 아닐까요. 



* AI 학습 데이터 활용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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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토록 불편한 고기

<크리스토프 드뢰서> 글/<노라 코에넨베르크> 그림/<신동경> 역

출판사 | 그레이트북스(단행)

채소 마스터 클래스

<백지혜> 저/<정멜멜> 사진

출판사 | 세미콜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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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혜미

한의사. 달과궁한의원 대표 원장. 서울대학교 의류학과 졸업 후 〈더블유코리아〉 창간 멤버로 입사해 패션 에디터로 일했다. 자신을 비롯한 주변 여성들이 겪는 몸의 문제를 제대로 이해하고 싶어 에디터 4년 차에 한의학도의 꿈을 안고 퇴사, 같은 해에 한의과 대학에 진학했다. 현대를 살아가는 여성들의 삶의 질을 높이기 위해 진료하고 글을 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