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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산과 책의 미래

때맞춰 다음 장으로 넘겨주는 기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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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종 아마추어 발명가들이 만든 책장 넘겨주는 기계가 책장 대신 아이스크림 컵을 엎고 있는 사이, 전자책은 리모컨으로 페이지를 넘길 수 있게 진화했다. (2017.1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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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를 피하기 위해 갓 위에 쓰는 갈모 ⓒ국립민속박물관

 

독서는 어떻게 해도 딱히 편하지가 않다.

 

읽는 동안은 불편한 줄을 모르다가도, 책을 다 읽고 나면 몸 여기저기서 우두둑 소리가 난다. 책을 들고 있었던 손목도 아프다. 그렇다고 허리를 세워 엉덩이를 의자에 깊숙이 넣고 가볍게 등을 기대 앉아 양손으로 책을 잡고 시선을 15도 정도로 아래로 두는 것은 심리적으로 불편하다. 침대에 엎드리거나 소파에 널브러지거나 귀가 찌그러지도록 옆으로 드러누워 책을 '즐기고' 싶은데, 이것저것 다 불편할 뿐 아직도 최적의 독서 자세를 못 찾겠다. 이유는 간단한데, 책이 이렇게 생겼기 때문이다. 어쩔 수 없이 잡고 있는 손과 넘기는 손 2개가 있어야 한다. 넘기는 손은 계속 움직여야 하고 책을 잡은 손은 저리기 쉽다. 목에 알맞게 시선을 조절하면 팔이 아파야 한다. 반대로 팔이 편하면 목뼈가 아프다.

 

최초의 책은 글자를 새긴 점토판이나 쪼갠 대나무 묶음이었다지만, 채륜이 종이를 발명한 이후 책의 모양은 이천 년 가까이 별로 달라지지 않았다. 종이도 바뀌고 인쇄술도 발전하고 다양한 장정과 후가공법이 등장했지만, 여러 장의 종이에 글자를 적어 한쪽을 묶은 물체라는 점은 놀랍도록 그대로이다. 왼쪽을 묶는지 오른쪽을 묶는지 실로 묶는지 아지노무선제본인지 그런 것만 다를 뿐 딱히 획기적인 변화가 없다. 이천 년이 넘게 사용된 생활 필수품 중에서 이 정도로 비슷한 모양을 유지하고 있는 것은 아마도 우산뿐일 거다.

 

갈모부터 요즘의 자동우산까지 살펴봐도 원의 가운데를 중심으로 가장자리를 접고 펴는 우산의 모양은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2054년의 미래를 그린 영화 마이너리티 리포트 속에서도 비가 오면 사람들은 하릴없이 우산을 펼쳐 든다. 새로운 우산을 만들기 위한 시도는 많았지만 매번 무용으로 돌아갔다. 돔처럼 생겨서 상체를 거의 감싸는 우산이 나왔었지만 널리 팔리지는 않았던 것 같다. 공중으로 공기를 쏘아 올려 비를 튕겨내는 우산도 고안되었다고 한다. 그래도 오늘 들고 나서는 우산은 이천 년 전의 우산과 매양 일반이다. 지금의 모양이 우산이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인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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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건 그냥 제 우산입니다                  

 

책도 우산처럼 도달할 수 있는 최대치까지 발전해버린 것인가 생각했을 때 전자책이 등장했다. 전자책도 책과 비슷한 모양을 갖고 있지만 넘기는 손의 불편함은 많이 해결했다. 그 점에서 책은 우산보다는 상황이 나아 보인다.

 

가끔 미래에는 책이 어떤 모습일지 공상해보곤 한다. 책을 읽는 동안 글자가 뇌에 미치는 영향을 역구성하여, 책을 읽을 것 없이 뇌에 바로 책을 읽은 것과 같은 전기적 자극을 주는 건 어떨까? 손목 언저리에 뇌로 가는 신경망과 연결된 센서를 장착한다. 손목에 찬 전자기기를 이용하면 뇌에 한 권의 책이 그대로 느껴지는 것이다. 저자와 편집자는 필요한 자극의 순서와 조합을 만드는 역할로 바뀔 거다. 서사를 쓰는 방식도 달라져서 안타까운 죽음을 만들기 위해 간절한 소망을 가진 젊은 등장인물을 만들어내는 대신, 축삭돌기가 신경세포의 흥분을 잘 전달할 수 있는 방법에 고심하게 될 거다.

 

움베르토 에코가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에서 포르노를 정의하며 불필요한 부분을 지나치게 오랫동안 보여주는 것이라고 한 바 있다. 책이 뉴런을 점화시키는 방식으로 바뀐다면 책장을 넘기는 행동이나 글자를 하나씩 읽는 행동은 일종의 포르노적인 상황처럼 비치게 될지도 모를 일이다. 독서가들은 오래된 지하 동굴에 비밀 결사나 종교 단체처럼 모여 낡은 장정과 책끈을 감격스럽게 쓰다듬을 지도.

 

종종 아마추어 발명가들이 만든 책장 넘겨주는 기계가 책장 대신 아이스크림 컵을 엎고 있는 사이, 전자책은 리모컨으로 페이지를 넘길 수 있게 진화했다.

 

그러나 내가 원하는 것은, 책이 독자의 눈빛을 읽어내어 페이지의 마지막 글자에 시선이 닿을 때 때맞춰 다음 장으로 넘겨주는 기능이다. 생각보다 머지 않아 등장할 수도 있다고 생각한다. 국물떡볶이 먹으면서 책보는 게 불편한 건 저만이 아닐 테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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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 | 고여주

'그래, 난 취했는지도 몰라'라는 변명 아래 책과 전자책에 대한 이야기를 합니다. 작년부터 알코올 알러지를 앓고 있는데 개가 똥 알러지 같은 소리라는 핀잔만 듣고 있습니다. 고양이 4마리, 개 1마리와 살며 책에 관한 온갖 일을 합니다.

세상의 바보들에게 웃으면서 화내는 방법

<움베르토 에코> 저/<이세욱> 역11,700원(10% +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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