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년은 꽤 긴 산통(産痛)이었다. 현란한 전자음과 제어불가의 가사로 잔뜩 채운 데뷔작 <201>과, 반대로 어쿠스틱 사운드를 전면에 내세워 망망대해를 표류하는 막막함과 고독을 녹여냈던
신보에서 그가 그리는 세계는 사랑만이 존재하는 곳이다. 하지만 이 사랑엔 설렘이나 들뜬 열기 대신 미온과 쓸쓸함이 있다. 달콤한 사랑노래들과 달리 세상에서 벗어나 오직 단 둘만이 남는 공허하고 고립된 공간을 담는다. 대다수의 노래를 흔한 사랑이라는 주제로 채웠음에도 부담이 되거나 물리지 않는 이유는 특유의 건조한 질감에 있다.
첫 곡 「난 아니에요」는 술 취해 늘어놓는 자기 독백에 가깝지만 다음 곡 「Big love」는 상대를 향한 열띤 사랑고백이다. 이 두 곡은 음악적으로도 감정적으로도 분명 다른 색채를 가진다. 이 차이를 특정한 노이즈 소리가 잇는다. 앞 곡의 중심에서 휘몰아치듯 몽환을 더하는 요소로 사용됐던 소리를 「Big love」의 인트로까지 끌어오면서 넘김은 매끄럽고, 소리와 감정의 비약을 어느 정도의 공통점으로 희석한다. 드림 팝에서 밝은 분위기로 전환 후 이를 「Diamond」와 「Love is all」까지 끌고 간다.
또렷했던 소리들이 「나랑 아니면」부터 조금씩 부드러워지기 시작하며 신스 팝의 골조를 세운다. 앞서 중심에 있던 기타 소리들은 후면에 놓이고, 그 자리에 현악기와 보컬 코러스가 고루 깔리며 포근한 소리로 뒤바뀐다. 말랑한 사운드와 달리 꾸밈없는 가사가 노래의 매력을 배가한다. 「나랑 아니면」에서 처음 등장하는 ‘야 나랑 놀자’, 「혜야」의 ‘난 너랑 있는 게 제일 좋아’ 같은 가사들이 그렇다.
앞으로의 3부작 프로젝트를 알리는 첫 발인 이 앨범의 핵심은 사랑이다. 그래서 여기엔 오로지 사랑을 하는 나와 너만 있다. 조휴일은 ‘나를 기다린 줄 알았던 사람들은 떠나가고 다시 우리 둘만 남았네’(「Love is all」), ‘내 노래가 멈춘 뒤엔 모두 떠나가고 또 너와 나 둘만 남겠지’(「폭죽과 풍선들」)라는 가사들로 이 사실을 끊임없이 재확인한다. 그렇게 둘만의 울타리는 견고해지고 말 그대로 ‘사랑이 전부’가 된다. 이질감 없는 대중적 사운드가 듣는 이에게 효과적으로 다가와 이를 융화하나 그만의 독특함을 저해하지는 않는다. 세상에서 한 발 비켜 선 이들이 만드는 사랑은 이토록 외롭고 애틋하며, 그래서 더 로맨틱하다.
강민정(jao1457@naver.com)
이즘
이즘(www.izm.co.kr)은 음악 평론가 임진모를 주축으로 운영되는 대중음악 웹진이다. 2001년 8월에 오픈한 이래로 매주 가요, 팝, 영화음악에 대한 리뷰를 게재해 오고 있다. 초기에는 한국의 ‘올뮤직가이드’를 목표로 데이터베이스 구축에 힘썼으나 지금은 인터뷰와 리뷰 중심의 웹진에 비중을 두고 있다. 풍부한 자료가 구비된 음악 라이브러리와 필자 개개인의 관점이 살아 있는 비평 사이트를 동시에 추구하고 있다.
설다올
2017.10.0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