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의 장바구니] 『빨래』 『비신비』 외
20주년을 맞은 뮤지컬 <빨래>의 대본집부터 특별한 크리스마스 단편선까지. 서점 직원의 신간 장바구니를 소개합니다.
글: 채널예스
2025.11.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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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아는데』

박영란 저 | 우리학교


학교 폭력의 가해자이자 ‘나’에게는 동경과 매혹의 대상이었던 '그 사람'이, 모든 기억을 잃은 채 다시 돌아왔다. 『나는 너를 아는데』는 이웃도 친구도 선후배도 아닌, 그 무엇으로도 단정할 수 없는 복잡한 관계를 감정의 층위에서 바라보며, 청소년기에 경험하는 관계의 권력과 감정을 섬세하게 포착한다. 깜깜한 숲속, 번듯하지만 텅 빈 전원주택 단지 같은 공간들은 사라진 '그 사람'의 기억과 겹치며 서스펜스를 만들고, '그 사람'이 정말 기억을 잃어버린 것일지 의심하는 과정에서 ‘나’는 스스로의 감정과 기억을 마주하게 된다. 폭력의 흔적을 따라가는 이 여정의 끝에 '나'는 어떤 용기를 낼 수 있을지, '그 사람'은 어떤 선택을 할지 인과응보와 권선징악의 의미를 생각해 볼 수 있는 청소년 소설이다. (이참슬 에디터)




『비신비』

백은선 저 | 문학과지성사


귀신들의 딸꾹질이 펑펑 쏟아지는 겨울 밤에 읽고 싶은 시집이 도착했다.(「목격자」 인용) 지독하게 추운 밤 좁은 가게에 들어가 마시는 독주를 닮은 시들, 그러므로 백은선 시인의 다섯 번째 시집 『비신비』를 읽으려면 혼자인 밤이 필요하다. 하나의 시에 걸려 넘어져 더듬더듬 일어나면 다음 시에서는 다른 방식으로 넘어지고 만다는 말 외에는 달리 『비신비』를 설명할 길이 없다. 김승일 시인이 시집 발문에서 “여러분이 비신비를 돌림노래 취급하길 바란다. 이 시집은 한 번만 읽어서는 안 된다. 계속 읽기를, 낭독하기를, 따라 부르기를 바란다”고 한 말에 전적으로 동의한다. 번번이 딸꾹 딸꾹 넘어지며 시집 안을 돌림노래처럼 헤매다 보면 어느새 작가의 말 첫 문장에 다시 도착한다. “노래는 빛나는 얼굴을 가졌는데 어째서 그토록 어두운 걸까.” (박소미 에디터)




『빛을 먹는 존재들』

조이 슐랭거 저/정지인 역 | 생각의힘


환경 전문 기자로 일하며 기후 변화를 취재하던 조이 슐랭거는 어느 날 식물에 빠져든다. 식물을 잘 안다고 생각했는데, 최근 연구를 접하며 그렇지 않다는 사실을 깨달았기 때문이다. 마치 우리가 물고기를 잘 몰랐던 것처럼. (『물고기는 존재하지 않는다』를 번역한 정지인 번역가가 이번 책을 번역했다.) 슐랭거는 식물과학 연구가 불러일으킨 논쟁, “식물에게도 지능이 있는가?”라는 질문을 파고든다. 소리를 듣고, 접촉이 느껴지면 반응하고, 기억을 활용하고, 정보를 교환하는 식물들의 영리한 사례를 읽다 보면 집 안의 식물이 별안간 낯선 이처럼 느껴진다. 하지만 슐랭거는 의인화를 경계하는 식물학자들의 목소리 또한 분명하게 전한다. 인간의 관점에 편중된 섣부른 은유나 지나친 신비화가 식물에 대한 이해를 방해하기 때문이다. 그러니 다시 자세를 고쳐 잡고 물을 차례다, 식물이란 무엇인가. (박소미 에디터)




『빨래』

추민주 저 | 난다


한국 창작 뮤지컬을 대표하는 <빨래>가 올해 20주년 공연을 맞으며 대본집을 출간했다. '서울살이 몇 핸가요?'라는 노래로 열고 닫히는 이 뮤지컬은 일자리를 찾아 서울로 향하는 젊은이들이 많아지던 2000년대 초반을 배경으로, 급격한 도시화, 경제 위기를 지나가며 발생한 비정규직 문제, 이주 노동자 차별, 주택난 등 흔들리는 소시민의 삶을 유쾌하고 따뜻하게 그린다. 먹고 살길을 찾아 고향을 떠나온 나영과 솔롱고가 겪는 일의 고단함, 평범한 얼굴 속에 저마다의 사연을 품고 사는 시끌벅적한 이웃들의 이야기가 빨래처럼 깨끗하게 씻기고 포근하게 말리며 묵직한 위로를 건넨다. "시간이 흘러 흘러 빨래가 마르는 것처럼 슬픈 네 눈물도 마를 거야. 자 힘을 내!" (「슬플 땐 빨래를 해」 중에서) 이십년이 지난 지금도 <빨래>의 이야기가 생생하다는 점이 슬프면서도, 위로가 필요할 땐 나도 모르게 <빨래>의 넘버를 흥얼거리게 된다.  (이참슬 에디터)



『우리 몫의 후광은 없나 보네』

로베르트 발저, 뮤리얼 스파크, 블라디미르 나보코프, 오 헨리, 쥘 쉬페르비엘 저 외 4명 | 돛과닻 


어쩐지 이번 책은 직접 말을 건네듯 소개하고 싶습니다. 우리에게 크리스마스 선물처럼 도착한 책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속단하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괴팍한 산타클로스가 된 마음”으로 “희망이 그러하듯 절망 또한 함부로 여길 수 없다는 사실을 일깨워주는” 세계 크리스마스 단편을 신중히 골라 묶었기 때문입니다. 블라디미르 나보코프의 크리스마스 이야기가 온기를 머금은 축에 속한다면 짐작하실 수 있을까요? (물론 그렇기 때문에 특별한 책입니다.) 코밑에 솜사탕이 묻은 것처럼 달큰하게 달라붙는 연말의 공기를 피해 잠시 뒷골목으로 빠져나오고 싶을 때가 있다면, 7편의 이야기가 비밀스럽고 으스스한 동행자가 되어줄 것입니다. “우리 몫의 후광은 없나 보네”라고 은밀하게 속삭이며. (박소미 에디터)




『인재전쟁』

KBS 다큐인사이트 <인재전쟁> 제작팀 저 | 21세기북스


"올해 본 영상 중 가장 무섭다." 중국의 인재 양성 시스템과 비교해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과 위기를 조명한 KBS 다큐 인사이트 <인재전쟁>을 본 시청자들은 입을 모아 이렇게 말했다. 챗지피티, 제미나이 등 생성형 AI가 일상적으로 사용될 정도로 과학기술은 너무나도 빠른 속도로 발전하는 중이고, 전 세계 각국은 기술 인재 확보를 미래 자원으로 내세우며 생존을 모색한다. 올해 초 챗지피티 개발비의 10%로 만들어진 것으로 알려져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준 인공지능 챗봇 개발사 딥시크의 이면에는 이미 수년 전부터 기술의 발전을 국가 과제로 삼고 인재를 길러낸 중국 중앙정부의 정책이 있었다. (딥시크 연구 인력들은 해외 유학 경험 없이 중국에서만 학위를 취득했고, 경력도 길지 않아 더욱 충격을 안겼다.) 반면 한국의 이공계 인재는 우리가 너무 잘 알고 있듯이 의대로 몰리고 있다. 『인재전쟁』은 다큐멘터리로는 다 담지 못했던 미공개 통계와 인터뷰를 수록해 한국의 인재 양성 시스템을 더욱 깊이 있게 살펴보면서 동시에 근본적인 질문을 던진다. 우리 인재들이 의대를 선택하게 된 이유는 무엇인가, 우리 사회는 도전을 감수하고 불안을 견디면서 끝까지 해낼 수 있도록 충분한 기회를 주고 있는가? (이참슬 에디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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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너를 아는데

<박영란>

출판사 | 우리학교

비신비

<백은선>

출판사 | 문학과지성사

빛을 먹는 존재들

<조이 슐랭거> 저/<정지인> 역

출판사 | 생각의힘

빨래

<추민주>

출판사 | 난다

우리 몫의 후광은 없나 보네

<뮤리엘 스파크>,<한스 크리스티안 안데르센>,<블라디미르 나보코프>,<로베르트 발저>,<쥘 쉬페르비엘>,<오 헨리>,<찰스 디킨스>

출판사 | 돛과닻

인재전쟁

<KBS 다큐인사이트 〈인재전쟁〉 제작팀>

출판사 | 21세기북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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